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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작성일 : 13-06-27 17:00
여자다, 노동자다. 이 말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여자, 노동을 말하다
 글쓴이 : 강이
조회 : 736  

박수정, "여자, 노동을 말하다"", 이학사, 2013.

여자다, 노동자다. 이 말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강이 살림의료생활협동조합

 

나는 여자다, 그리고 노동자다. 이 말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대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일을 해 오면서 내 스스로가 여자이며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그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오랫동안 열악한 근무조건과 비합리적인 생활환경 속에서 하나둘 쌓여온 불만들이 구체성을 띠면서, 여자이며 노동자인 내가 직면한 현실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여성과 노동자를 분리하지 않고 여성노동자로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사실 난 직업상 남자들과 같이 일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지금의 상사는 남자지만 오랫동안 여자상사 밑에서 일했다. 개인적으로는 선배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나의 일을 앞서 했던 분이었다. 그러나 사업체를 이끄는 위치에서 나를 만났기 때문에 우리의 입장은 매우 달랐다. 그렇다 해도 자기와 같은 길을 가는 아랫사람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때에는 자신이 올챙이였던 시절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여자상사 밑에서 일하면서 같은 여자로서 이해받지 못하는 서러움과 피고용인으로서 느꼈던 여러 부당함이 내가 여성노동자임을 일깨워 주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여자로 살면서 느꼈던 여러 불편과 편견과 부당함들이 노동자로서 겪어야 하는 그것들과 어느 지점에서 자연스레 만나 여자와 노동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이 내 존재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 발견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깨달아 가는 첫 단추였고, 나 혼자의 힘으로는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해결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에 오르게 되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오랜 시간 헤매다 박수정 작가의 여자, 노동을 말하다라는 책을 만난 듯하다.

살림의료생협이라는 곳에 발을 담그면서 나의 고민은 조금씩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공부와 소모임은 나의 고민을 해결해 나가는 작은 창구가 되었다. 그중 올 초 시작된 공부모임인 교장놀이에서 첫 번째 커리큘럼으로 여성과 노동을 채택하였고 첫 번째로 읽게 된 책이 바로 여자, 노동을 말하다이다.

이 책은 총 여덟 명의 여성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이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 모두, 작가의 말을 빌리면 몸을 움직여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생각이 없다’, ‘생각할 줄 모른다’”고 얕잡아 보는 세상에서 몸을 움직여 힘든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다. 그래도 한결 같이 일하고 싶어 하며 자신이 처한 삶을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나이는 20대부터 60대까지로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나이대의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동시에 노동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대략적이지만 노동역사도 알 수 있다. 70년대부터 노동자로 살아온 분부터 이제 막 노동자의 길로 들어선 젊은 여성들까지 다양한 세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놀라운 것은 70년대나 2013년 현재나 고용형태만 바뀌었을 뿐 노동현실은 그다지 바뀐 게 없다. 사회는 분명 더 풍요로워지고 더 자유로워진 것 같은데 노동현실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팍팍해졌다. 다른 욕심 부리지 않고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온 노동자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열악한 생활환경 속에 놓여 있으며 자식 세대에까지 가난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이들의 삶을 보면서 도대체 사회는 어디에서 어떻게 잘못되었고, 우리의 노동현실은 어떤 식으로 뒤틀려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노동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며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게 할 수 있을지 이들의 이야기를 반추하며 삶의 현장에서 고민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나는 내가 처한 현실과 비교하면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우선,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노동조합의 필요성과 정당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앞의 세 명은 노동조합의 경험이 없고 나머지 뒤의 다섯 명은 노동조합의 경험이 있는 분들인데 노동조합의 경험이 노동자들의 인식세계를 현저하게 바꾸어 놓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그저 열심히 일할 뿐 자신이 왜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는지,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 어렴풋이나마 뭔가 불합리하다는 걸 느끼면서도 그것이 사회구조 때문이라기보다 개인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경험한 분들은 자신의 부당함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뚜렷한 인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정체성도 확고해지고 노동자로서의 자부심도 가지게 됨을 볼 수 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육체노동자들이 훨씬 더 노동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생각도 긍정적인 것 같다. 이제야 나도 노동자라 생각하고 내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그 이유는 내 스스로를 노동자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정자 씨도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다. 처음엔 1년만 일하고 주부로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스스로를 노동자라 여기지도 않았고 그래서 다른 동료들하고도 관계를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노동자임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 후 동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스스로를 노동자라 인정하는 데에는 암묵적인 무시와 멸시를 인정해야만 할 테니까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스스로를 노동자라 인식하지 못한 데에는 그런 생각이 깔려 있었던 건 아니었나 싶다. 게다가 나의 노동은 저급한 육체노동이 아니라 고급한 정신노동이라는 허위의식을 가졌던 듯하다. 나뿐 아니라 동료들도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온 이들이었기에 자신을 노동자라고 인식하지 못할 뿐더러 다수는 현재도 그런 것 같다. 교육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고 나름 전문직이라 생각하기에 직업적 자부심도 높은 편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육체노동자와 같은 급으로 여기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노동조합의 필요성이나 정당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며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노동현실을 따지고 보면 육체노동자들이나 나의 동료들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어차피 자본가 밑에서 월급을 받고 있으며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는 우리 모두 자본에 의해서 굴림 당하는 존재라는 사실만 일깨워 줄 뿐이다. 이 부분에서 이정자 씨의 이야기는 새겨들을 만하다.

일반 생산직으로 소규모 사업장에 있는 노동자들과 달리 큰 직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신분이 다르다는 의식을 갖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상담을 해보면 영세 사업장 사람들이 상담하는 내용과 똑같거든요. 대기업 노동자나 영세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나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우리 노동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과 처지는 똑같은데 선입견을 갖는 거죠.”

우리는 누구나 노동자잖아요. 우리 사회 대다수가 노동자인데도 노동자라는 화두 자체를 부정하고 멀리 떨어진 것처럼 마치 내 문제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일이 많아요.”

 

그러나 나는 노동조합의 경험이 없고, 어떻게 조직해야 되는지도 모르며 심지어 내가 누려야 할 혜택퇴직금이라든지 육아휴직이라든지 하는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터뷰이 중에서 노동조합을 통해 사측과 싸워 이긴 이들의 이야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사측과의 투쟁은 대부분 험난한 과정이다. 자신들이 내건 조건보다도 낮춰서 타협을 본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험난한 투쟁이 있었기에 자신들의 주장이 조금이라도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일방직에서 투쟁을 거쳐 여덟 시간 노동을 쟁취해 낸 추송혜 씨, 1987년 노동조합 건설을 통해 좀 더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만들었던 나우정밀에 뒤늦게 들어가게 된 이정자 씨, 2007년 삼성 에스디에스 파업을 이끌다 복직된 최세진 씨, 비슷한 시기에 이랜드 일반 노동조합 홈에버지부에서 파업하다 무기계약직으로 복귀한 황옥미 씨 등. 이들은 하나같이 좀 더 나은 노동현실을 이루어내려면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단결해야 함을,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함을 역설한다. 노동자 스스로가 소리 내어 요구하지 않으면 어느 것 하나 바뀌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요구하지 않으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리라는 사실도 안다.” - 김희영 씨 편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학교에서 아무리 교육을 시켜놔도 사회에 나오는 순간부터 비정규직 일을 한다는 거죠.”

-박남희 씨 편

노동자가 일하면서 느끼는 불편한 점을 회사에서 미리 알아채는 일은 극히 드물다. 설사 안다고 해도 먼저 나서서 푸는 일도 없다. 당장 몸으로 어려움을 느끼는 노동자가 문제를 말하고 바꾸려고 노력해야 작은 것 하나라도 해결된다” - 황미옥 씨 편

 

그러나 한국의 노동자들은 아직도 자신의 권리를 찾는 데에 주저하고 일자리를 준 데에 감사해하며 오히려 나로 인해 회사에 어떤 불이익이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하기까지 한다. 노동운동을 하면서도 열심히 글을 썼던 추송례 씨와 전업주부에서 노동자로, 다시 노동운동가로 변신한 이정자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노동과 자신의 가치를 낮추게 하는지, 사회 발전을 해롭게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여덟 명의 인터뷰를 보면서 노동노동자에 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글은 대체로 이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담담히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래서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를 곱씹을수록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지금 현재 한국사회의 노동현실이 얼마나 열악한지, 어떻게 70년대에서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노동현실이 바뀌지 않는지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비정규직법으로 인해 양산되는 고용불안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는 어떤 긴장이 흐르고 있는지, 젊은이가 기술을 익혀 사회에 나가도 얼마나 미래가 보이지 않는지, 청소년들의 노동은 얼마나 싸구려 취급을 받는지, 파견직이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는지, 대기업에서는 어떤 식으로 노동자들을 내모는지 등등……. 그러다 보니 할 이야기들이 많다. 청소년노동 문제, 비정규직 문제, 직장 내 성희롱문제, 사내하청문제 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너무나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어 하나로 묶어내기엔 좀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주로 노동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결국 인생살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니 삶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인터뷰이들은 모두 여자들이지만 대체로 노동, 노동자, 노동현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읽으면서 조금 아쉬웠던 부분도 있다. 책 제목을 보고서 여성노동자는 어떤 처지에 놓여 있을까, 거기에는 여성으로서의 삶도 녹아 있을 텐데 그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노동자의 신분을 어떻게 일구어 냈을까, 여자의 노동은 일반적 노동과 무엇이 다를까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는데 그 내용이 다소 적었다는 점이다.

여성노동자로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가사와 육아일 것이다. 물론 미혼(비혼)인 여성노동자도 있지만 인터뷰이 대부분이 결혼한 상태였기에 가사와 육아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대부분이 결혼 후 공장노동자로, 가정부나 식당아줌마로, 마트점원으로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일터를 잡았다. 조금이라도 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점심시간에 집에 들러 바쁘게 식사를 해결하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아이를 챙기려는 엄마의 마음이 드러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아침마다 어린 아이를 떼어놓느라 눈물을 뿌리고 공장에 갔다던 이정자 씨, 쉬는 시간이면 얼른 집에 와서 연탄불을 갈고 어린 애들이 잘 있나 들여다보았다던 오경숙 씨, 가능하면 아이가 어릴 때는 곁에서 돌보면서 일하고 싶었는데 막내딸한테는 그러지 못해 늘 미안하다던 황옥미 씨의 이야기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는 가사와 육아의 책임을 여성 개인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 강화되었다고는 하나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 여전히 회사 안에서는 눈치를 봐야 하거나 간접적으로 퇴사 압력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게다가 여성노동자 대부분이 비정규직인데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출산휴가를 내려고 하면 재계약을 하지 않으려는 회사도 많다.

여기에 더해 신자유주의 시대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또 여성노동자라고 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장을 맡았던 박남희 씨는 말한다.

여성노동자에게 가해지는 부당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해고 제1순위는 여성노동자이다. 그래서 늘 고용불안에 떨어야만 한다. 여성노동자 중에는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터인데 왜 여성이라고 해서 생계책임이 적으리라고 생각하는지 우리사회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또한 고질적으로 남아있는 직장 내 성희롱 문제나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등 여성에 대한 차별대우가 아직도 여전하다. 남성노동자와 함께 있는 노동조합 내에서도 이런 문제가 잔존한다고 한다. 성희롱 문제나 여성성의 문제는 단순히 여성노동자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에서 여성 일반이 겪어야 하는 부당함이다. 그런데 노동자라고 하면 더 무시당하는 게 현실이니 여성노동자가 받는 무시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일례로 추송례가 유인물을 썼을 때, 경찰들이 방직공장 여공이 무슨 글을 쓸 줄 아냐면서 도대체 믿지를 않았다 한다. 학교에서 청소하는 분들을 향해 , 저기 청소하는 아줌마, 저임금 받는 사람이라는 취급을 하는 것을 보면 여성이고 노동자가 받는 멸시와 무시는 이중적으로 심해질 수밖에 없다.

아직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이렇게 많은 이야기 거리가 생기다니 그만큼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노동문제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여덟 명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노동의 문제이자 사회의 문제들이거 여성의 문제들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전반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사회가 좀 더 살기 좋은 사회로 나아가려면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자본에 맞서 싸울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모든 노동은 가치 있으며 그 가치가 골고루 인정받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직면한 현실부터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자, 노동을 말하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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