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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작성일 : 13-06-27 17:06
위기를 극복하는 경제학이란 이런 것이다:
 글쓴이 : 손진
조회 : 945  

진보평론 56호(2013년 여름) 서평

신희영
, 위기의 경제학, 이매진, 2013.
 

위기를 극복하는 경제학이란 이런 것이다: 팩트-데이터-사상사를 엮어 금융위기 극복의 길을 찾고 경제학의 위기를 벗어날 지적 자산을 제시한 책

  손진 서울대 경제학부 박사과정 수료. 거시경제학 강사
 

"위기의 경제학"과 같은 역작을 동시대의 학자로부터 받아본다는 건 분명 행운이다. 대공황이 그러했듯 두고두고 논란의 대상이 될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를 이보다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경제사에서 분수령이 될 최근 5-6년 동안의 사태에 대해 이 책은 일련의 사실관계와 통계수치를 확인해 가며 차분히 그 실체적 진실로 우리를 안내한다. 아울러 주류경제학이 위기를 읽어내지 못하고 위기 대응에도 무기력하게 된 지적 기원을 밝히고, 위기를 올바로 해석하고 위기극복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지적 자산들을 제시해 준다.



1.
사실관계를 추적하는 집요함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사실에 기초한 연구, 데이터에 기초한 분석의 모범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미 연준의 예외적인 긴급 유동성 투입 조치들을 모두 망라하면서 이를 연준의 자산구조 변동과 함께 보여주고(46-50), 금융회사에 막대한 유동성이 투입되어도 그것이 가계와 기업에 대출로 흘러들어가기보다 자산가격을 올리는 데에만 쓰였음을 기업 신규 채권 발행률 추이, 내구재 소비를 통한 기업과 가계의 투자율 추이, 기업 채권 이자율 및 이자부담률 추이, 기업 대출금리 추이와 같은 갖가지 지표를 통해(59-61) 살피고 있다. 이것으로 긴급 유동성 투입이 실물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유럽 재정위기에 대해서도 2007년과 2009년 국제통화기금의 태도가 180도 바뀜을 밝힌 것(127)은 성실한 조사와 추적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유로존 각국의 경상수지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구조적인 문제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각국 재정적자 추이를 살핌으로써 그리스 문제가 조기에 수습될 수도 있었음을 증명한다(134-135). 공직사회의 부패, 방만한 재정지출, 유로화 출범이후의 과잉유동성, 통화정책의 자율성 상실 등 유럽 재정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왜 하필 2010년 이후의 시기에, 남부유럽 위주로 재정위기가 불거졌는지에 대한 이 책의 논지는 선명하다. 미국발 파생상품으로 인한 유럽 금융기관의 손실과 그에 따른 구제금융으로 인해 각국 재정이 악화되었다는 점, 남유럽에서 단기 투자자금이 유출되면서 국채 이자율이 더 상승하게 되었다는 점, 트로이카의 긴축조치는 경기후퇴를 더 심하게 만들고 정부 채무부담을 더욱 키웠다는 점이다.

이 책이 유럽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재정위기가 진행될 당시 국면별로 단기 처방까지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사실관계를 집요하게 추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 사태가 불거졌을 당시에 유럽중앙은행이 그리스 정부 발행 단기 채권을 사들이면서 만기일을 조정할 수 있게 유도했다면 재정위기를 조기에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진단이 그것이다(134).

미국발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국제 원자재 가격 폭등과 관련하여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었던 미 연준의 대응이 잘못되었음을 보이기 위해 이 책은 유엔무역개발위원회 (UNCTAD)의 보고서를 샅샅이 뒤져 원자재 가격 상승이 투기와 선물거래 때문이라는 인식이 이미 있었음을 보여주고, 같은 이유로 선물시장 규제에 관한 법안을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 (CFTC)가 의회에 제출했으나 처리되지 않은 사정도 소개한다(115-116).

2. 현실 인식과 사상적 조망의 시너지 

더 나아가 이 책은 현실에 대한 인식과 사상에 대한 조망을 결합하여 나타날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책 속에서 실현하고 있다. 경제사상에 대한 논의는 현실 인식의 틀을 개념적으로 명확히 해 주고, 거꾸로 최근의 위기는 경제사상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돕는다.

미국 정부와 연준의 확대 재정·통화정책이 동아시아 외환위기 때의 긴축 강요와 극명히 대조적인(51) 것이나, 영국·프랑스·독일이 확대 재정·통화정책으로 보조를 맞추다가 남유럽 재정위기에 대해서는 긴축으로 돌아서는 위선을 보인(41) 것은 마치 리스트가 선발 산업국의 자유무역 이데올로기를 사다리 걷어차기”(211) 라며 비난했던 것과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이는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국가들이 겉으로는 보편적인 경제 원리인 양 강요한 일련의 준칙들이 실제로는 자국 지배계급의 이익을 보장하는 특수 이념에 불과하다는 것”(56)을 우리가 언제나 직시해야 함을 웅변한다.

사상사적 조망 없이 사실관계만 보았다면 미 연준의 저금리 정책에 대해서도 양시론 혹은 양비론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파는 연준의 부적절한 시장 개입이 문제를 키우고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비판하는 반면 좌파는 저금리 정책이 금융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웠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연준도 할 말이 있는 것이 2001-2002년엔 IT거품 붕괴와 9·11 테러로 인한 경색을 완화하기 위해서, 2003-2004년엔 1990년대 일본과 같은 디플레를 우려했기 때문에 금리를 낮춰야 했다. ‘연준금리를 어떻게 정했어야 하나?’라는 질문에 갇히면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우려될 때는 기준금리를 낮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효수요를 끌어올리려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 자산시장이 과열될 때는 기준금리를 올리기만 할 게 아니라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케인스와 칼레츠키가 우리에게 주는 혜안이며, 이를 통해 유럽 재정위기에 긴축만을 강요하는 트로이카가 틀렸음을 우리가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마르크스를 다룬 제7장은 위기론보다는 체제대안에 초점을 두고 있어 금융위기 혹은 재정위기 분석과 직결되는 내용은 아니지만, 뒤에 나올 케인스-민스키-칼레츠키의 처방(유효수요 증대 및 금융의 사회화)이 어떤 사회체제에서 가능할 것인지 고민을 확장한다면 자연스럽게 생산수단의 공동점유에 기초한 개인적 소유와 시장·국가·시민사회가 조정의 부분적인 역할들을 담당하는 체제를 상정하게 될 것이다. 위로부터의 단절적 이행을 지양하고, 아래로부터의 연속적인 이행을 꾀한다면 말이다. 마르크스를 다룬 제7장이 존재함으로써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이 책의 처방들이 장기적인 전망으로 이어진다.


3. 몇 가지 아쉬운 점 

고전학파, 신고전파종합, 뉴케인지언이 대동소이하지만, 옥석을 가리는 섬세함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라이프사이클가설이 가정하고 있는 기간 간 효용극대화 가설은 기존의 포스트케인스주의 혹은 최근 행동경제학의 연구 성과에 의해 이론적, 실증적으로 기각되는 것이라 모조리 버려도 무방하겠지만, 케인스를 왜곡한 또 하나의 주범으로 이 책에서 간주하는 IS-LM 모형은 과연 해악적이기만 한 것인지 의문이다. 물론 IS-LM 모형이 케인스에서 벗어나는 측면으로는 1) 투자를 이자율의 감소함수로 본다는 점 2) 투자의 한계효율법을 현재가치법과 동일시 한다는 점 3) 생산물시장과 화폐시장의 균형을 전제로 분석한다는 점이 있다. 하지만 IS곡선과 LM곡선의 기울기에 관한 고전학파와 케인스학파의 상이한 해석을 감안할 때, 1) 투자가 이자율에 민감하지 않고 야성적 충동에 의존하므로 IS곡선의 기울기는 가파르다는 점 2) (이자율의 영향을 받는) 투기적 화폐보유 동기가 화폐수요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므로 LM곡선의 기울기는 완만하다는 점 3) 따라서 통화정책의 효과는 작고 재정정책의 효과가 크다는 쪽으로의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IS-LM 모형이 가정하고 있는 정태적 성격 (한계소비성향, 조세율, 거래적화폐수요의 소득탄력성, 투기적화폐수요의 이자율탄력성 등이 상수)을 감안할 때, 일시적으로만 유의미한 것으로 본다면 위기의 경제학의 시선에서도 받아 들일만 하다.

통화정책 운용체계에 있어서도 통화량 목표제(monetary targeting) 와 금리 목표제(interest rate targeting)를 통화주의로 묶어 한꺼번에 비판하는 것(45, 103)이 적절한 지 의문이다. 통화량 목표제가 통화량을 조절해서 물가를 관리한다는 통화주의 본연의 것이라면, 금리 목표제는 통화량 관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이자율을 중간지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내생적 화폐론을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자금수요와 자금공급에 의해 이자율이 결정된다는 대부자금설을 사실상 기각하고 최소한 단기 금리는 중앙은행이 통제할 수 있다고 본 점에서 외생적 금리론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 책에서 제1부와 제2부의 전반적인 내용이 매우 유기적임에도 불구하고 민스키에 관해서는 그의 사상이 제1부의 금융위기 분석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지 않은 듯하다. 29장에서는 케인스에 대한 민스키의 급진적인 해석을 경유하여 금융불안정가설의 원형을 고스란히 제시한다. 근본적으로 불확실한 자산 수익률에 대한 기대 속에서 투자가 결정되고 투기적 투자 팽창과 거품 붕괴 및 부채 디플레이션에 이르는 사이클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제12장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 과정에서는 민스키가 설명한 금융위기의 동학이 드러나진 않는다. 물론 2장의 초점이 금융위기에 대한 연준의 대응과 그 결과에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지만 아쉬운 점이다.

아울러 제10장 칼레츠키에 대한 소개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케인스에게 남아있던 신고전파의 유산을 피하면서도 케인스에 대한 급진적인 해석과 맥이 닿는다는 점에서 이 책은 칼레츠키에게 매우 중요한 위치를 부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거시 변수들 간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성공적인 해명이 되지 않은 듯하다. 재생산표식에서 도출하는 여러 집계변수들 사이의 관계는 그저 항등식일 뿐 인과관계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칼레츠키의 모형은 최근 포스트케인스주의에서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는 스톡-플로우 모델 (Stock Flow Consistency)과 결합할 때 적극적인 해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지엽적인 아쉬움들이 책의 품위를 건드릴 정도는 아니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의 전모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연구자로서 성찰과 고뇌의 깊이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깨닫게 해 준다는 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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