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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작성일 : 13-10-01 19:32
중심을 향한 경쟁보다 변방에서 새로운 중심을 같이 만들자!(강수돌, 팔꿈치 사회 서평)
 글쓴이 : 조규준
조회 : 1,097  

진보평론 57호(2013년 가을( 서평

강수돌
, "팔꿈치 사회", 갈라파고스, 2013.


중심을 향한 경쟁보다 변방에서 새로운 중심을 같이 만들자!
변방 콤플렉스에 빠진 우리에게 책 팔꿈치 사회가 답하다

조규준 고려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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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에게 주문을 외듯 어서 빨리 앞으로 그리고 더 멀리나가야 하며 중심으로 편입되어 정보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한다. 그 이유는 그 경쟁의 끝에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안락한 미래와 행복이 있다고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기 때문이다. 또 사회란 곳이 원래 그렇다고 들어왔다.

정말 아이러니 한 사실은 공중파 매체, 라디오, 잡지, 신문 그 어떤 것도 국민 행복도를 논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실제로는 그 모두가 경쟁 사회를 암묵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자기 개발서는 오히려 정직할 정도로 경쟁사회를 노골적으로 당연시 하고 있다.

이 책 팔꿈치 사회에서 저자는 개성을 가진 인간성과 경쟁의 치열함 사이에서 그 각축장인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우리 내면에 대한 왜곡되고 비틀어진 사고가 만든, 우리 교육이 다루지 않는 허와 실에 대해 논의한다. 그와 더불어 생계의 길과 꿈의 길을 대조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이 대조적인 시각을 낳은 뿌리는 단연코 자본주의 경쟁이다. 바로 이 경쟁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며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저자는 대안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저자는 우리 현실을 현미경 보듯 들여다보며 오늘날 가정의 이미지는 더 이상 보금자리(nest)’가 아니라 단순한 버스정류장(bus stop)’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하며 가정은 노동에 종속되어 노동의 긴 여정을 다니기 위한 간이정류장으로 변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노동하는 어른들과 둘러앉아 삶의 의미와 행복을 나누는 시간을 함께 갖기 어려운 사실을 부끄럽지만 토로한다. 아이들 또한 차라리 학원에서 또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척이라도 하면 마음이 좀 편한 듯 하나 여전히 내면은 불안하고 공허한 현실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가시적으로 성과를 내야 다소 마음이 편안한 일중독 사회로 내 몰린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렇게 내몰린 사람들은 자연스레 경쟁의 논리를 쉽게 받아들인다. 그러한 사람들은 경쟁의 논리를 내면화하여 연대와 단결대신 더 높은 사다리를 향하여 자신들을 채찍질할 뿐이다.

그렇다면 그 채찍질은 내 삶을 행복하게 하였는가.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가 강제하는 공포의 결과로 나타난 강자와 동일시경쟁의 내면화와 더불어 자신의 참된 내면으로부터 우리가 점점 멀어진다고 한다. 그리하여 겉으로는 살아 있으되 속으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또한 겉으로는 부와 권력과 명예, 외모와 건강을 과시하되, 속으로는 끊임없는 불안과 공포, 두려움과 불만족에 시달리는 표리부동한 삶을 살게 되며 결국 우리는 제아무리 보약을 먹고 오래 살아봐야 한마디로 헛살기쉽다고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비록 우리가 열심히 산다 해도 그 내면의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성공적인 경우조차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이라 하나 가장 중요한 자신이 자신에게 인정받기 어려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내면 안에 불안감은 더욱 더 증폭된다.

필자가 보기에 오늘날 경쟁적인 팔꿈치 사회를 돌파하려면 주체성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은 주체성의 필요를 느끼긴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는 것을 이유로 자신의 미래 선택을 타인의 기준에 맞추는 경향을 보인다. 어쩌면 이들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둘러대지만 실은 주류집단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는 욕망 또는 두려움이 작동 하는 건지도 모른다. 특히 오늘날 여러 경향 중 하나가 자꾸 분류하고 나누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자신만이 중심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기 쉽다.

이러한 두려움 내지 불안감은 가정을 넘어 공교육체계에서도 여전히 존재할 뿐 아니라, 학교가 오히려 그런 두려움을 적극 재생산하고 있다. 그러면 학교는 어떤 식으로 두려움을 재생산하며 경쟁을 내면화하게 만드는가?

저자에 따르면 학교는 우애와 협동을 가르치기보다는 경쟁과 성공 욕망을 부추긴다. 숱한 시험과 상대평가는 아이들을 경쟁의 내면화로 몰아간다. 그 가운데 상중하로 구분된 사다리 질서는 강화되고 아이들은 성장하는 인격체가 아니라 예비 인적자원으로 대상화된다. 상중하로 등급 분류된 대학조차 진리를 탐구하며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큰 배움터가 아니라 기득권 경쟁의 각축장이 되었다. 학교에서 이어진 직장이라는 삶의 공간 역시 경쟁과 분열의 공간이다. 상중하의 사다리 질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아가 승진하고 출세하기 위해선 옆 사람을 팔꿈치로 치고 나아가야 한다. 일중독과 고용불안은 동전의 양면이다.

나는 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특히 가장 공감하는 문제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 과정에서 미숙한 부분은 주위 또래나 어른과 다양한 대화를 통해 채워나가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가치를 너무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주체성이 부족하고 무기력하다고 하는데 왜 그 아이들이 무기력해졌는지, 왜 현실에 집착하는 증세를 보이는 건지 잘 따져야한다. 아이들에게 주체성과 책임성을 길러주어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대학은 큰 공부를(大學) 하는 곳이고 다양한 학습과 깊이 있는 사고를 요구한다. 학생은 선생님을, 선생님은 찾아온 학생에게 준비된 학습을 하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 과정을 통해 기존 사다리의 질서대신 원탁형 질서를 추구하는 분위기로 나아가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맞춤형 교육으로 다양한 사람을 포함 할 수 있는 교육을 실현하여 각 개인마다의 능력을 키워주어야 하며 노력한 사람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여러 문제들을 직면하게 되면서 내적으로 갈등되는 부분은 생계의 길을 갈 것이냐 꿈의 길을 갈 것이냐 하는 점이다. 저자는 단연코 산입에 거미줄 치랴?’는 말을 기억하고 꿈의 길을 갈 것을 촉구한다. 이렇게 꿈의 길을 가는 사람은 일류대학이나 일류직장에 목숨 걸지 않고 일류인생을 살게 된다고 말한다. 이 일류인생, 즉 멋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열린 기회이고 그를 위해서는 꿈의 발견, 실력 증진, 사회 헌신 등 세 요소만 갖추면 된다. 꿈의 길을 걷는 자는 꿈도 이루고 생계도 해결한다.

이에 덧붙여 나는 꿈의 길을 향하는 이들에게 변방으로 가라고 말하고 싶다. 변방이란 사전적 의미로 중심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을 뜻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피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여기에 가장 핵심적인 의미가 숨어 있다. 그 의미를 신영복 선생은 중심부가 쇠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변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은 그곳이 변화의 공간이고, 창조의 공간이고, 생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변방은 극복해야 할 공간이 아닌 새로운 창조의 공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참 신선한 시각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점이 아니가. 그러기 위해선 정작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내면에 있는 변방 콤플렉스이다. 우리는 중심부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열등감을 없애야 한다. 책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나타내듯 중심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만큼 삶의 과정에서 치열함을 요구하며 그 삶을 유지하다 병들기 쉽고 자칫 기득권의 고인 물이 될 수 있다. 반대되는 변방은 그 자체로 사색의 공간이자 깊이를 추구하는 공간이며 가능성의 공간이다. 변방으로 간다는 것이 중심부로부터 멀어져 걱정과 불안감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이러한 고민에 저자는 오히려 남들이 다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은, 얼핏 나 혼자만 유난을 떠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은 더욱 자세히 보면 모두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 다 다른 것도 아니지만 다 같지도 않다. 이런 사람들도 많고 저란 사람들도 많다. 대다수가 간다고 하는 것도 상대적 다수에 불과하며, 극소수가 하는 일이란 것도 상대적 소수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마음 깊은 곳에서 정말 절실하다고 느끼는 길, 정말 가고 싶다고 느끼는 길을 찾고 꾸준히 걷는 일이다. 남들이 간다고 나도 덩달아 가는 길은 겉보기에는 안심이 되지만 속으로는 늘 (가장 중요한) ‘2퍼센트 부족’, 공허함을 느낄 뿐이다.” 라고 말하며 우리의 불안함에 답하고 있다.

나는 요즈음 학교를 쉬는 대신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을 보려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는데 특히나 돈의 삶’(경쟁적으로 돈벌이에 매몰 되는 삶)에 얽매이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변하지 않는 주체성과 가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거듭 되새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갖고 있으면서도 중심부를 벗어나거나 좀 쉬었다가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변화는 변방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머리와 가슴의 충분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진정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할 지 알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이 토대가 된다면 여러 콤플렉스의 늪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고 이러한 소통의 결과로 변방으로 가는 것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의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고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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