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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채의 민족경제론: 민족의 미학화를 넘어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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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노동운동, 성찰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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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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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을 둘러싼 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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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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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논문
가사노동자 노동주체와 노동성격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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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계급투쟁에서 경쟁협조주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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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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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치경제학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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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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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와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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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의 시대-타자의 삶
책임 담론이 책임질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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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프레카리아트의 호명과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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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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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사회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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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작성일 : 13-10-01 19:38
책임 담론이 책임질 수 없는 것
 글쓴이 : 이순웅
조회 : 903  

진보평론 57호92013년 가을) 남성이 읽는 페미니즘 고전:

아리리스
M. ,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 허라금·김양희·천수정 옮김, 이후.


책임 담론이 책임질 수 없는 것


이순웅 숭실대 강사


1. 페미니즘에 관한 불편한 기억


나는 페미니즘을 잘 모른다. 주변에 페미니스트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몇몇 있고, 그저 남녀는 평등하게 살아야 하고 차이가 있다고 해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정도의 생각이 있을 뿐이다.

1980년대 초반에도 계급모순이 우선이냐 민족모순이 우선이냐 하는 논쟁이 있었다. 당연히 대세는 계급모순 우선이었고, 남녀 간의 모순은 모순 논쟁 속에 감히(?) 끼어들지도 못했다. 물론 주변에는 페미니즘을 강조하는 여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지만 왠지 듣기가 거북했던 기억!

이유는 내가 계급모순을 우선시했기 때문일 것이고 그녀의 태도가 이른바 페미년다웠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래 네 말이 옳아, 암 그래야지하고 대답했지만 그녀의 말에 어설프게 동조했을 때 들었던 핀잔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면서 불편한 심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설프게 동조했다는 것은 적극 동조하는 너의 모습에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그녀의 판단에 근거하는 표현이다. 적극 동조해도 욕먹고 동조하지 않아도 욕먹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도 욕먹는, 그래서 웬만해서는 페미니스트와의 대면에서 본전을 찾기가 힘들었다.

사실은 지금도 헷갈린다. 나는 진정으로 페미니즘에 동조하는 걸까? 그녀가 나를 제대로 봤던 것인지, 내가 진정성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지금도 계급모순이 남녀문제, 젠더문제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환경문제의 근본 역시 빈부문제이며, 계급은 빈부격차를 통해 자기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곧 힘 아닌가. 이른바 경제력은 죽은 사람 살리기빼고는 거의 모든 것을 다할 수 있게 해준다.

계급모순을 해결했다고 선전했던 기존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젠더문제(길러지는 성의 문제가 페미니즘에서 다루는 근본문제이므로 남녀문제 대신 젠더문제라고 표현하겠다)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사회주의 사회가 실패로 끝난 실험이었다고 해서 계급모순을 우선시해야 하는 이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 사회주의의 실패는 자본주의적 질서의 확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른 모순보다 계급모순을 우선시했던 관점 자체가 폐기될 이유는 여전히 없다.


2.
책 소개


3. 중심 주장

1) 구조적 부정의
2) (guilty)와 책임의 구분

3) 공유된 책임성
4) 사회적 연결모델
5
) 책임 회피

6) 책임과 역사적 부정의




4. 비판적 독해

1) 영의 시야와 관련하여
2) 죄와 책임의 구분과 관련하여

3) 책임을 어떻게 강제할 것인가
4) 적과 동지의 구분이 없다
5) 미래 지향적 책임 개념이 갖는 문제점
6) 근본적 개혁이라기보다는 개량주의


  5. 페미니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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