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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시평
 
작성일 : 13-12-13 16:39
그들의 대한민국 역사: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역사 인식
 글쓴이 : 이기훈
조회 : 845  

진보평론 58호(2013년 겨울) 정세

그들의 대한민국 역사
: 교학사 한국사교과서의 역사 인식


이기훈 목포대 사학과

1.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어이 없이 불타버렸던 숭례문이 최근 복원을 마쳤다. 그런데 전통기술을 사용해 새로 복원했다며 떠들썩했던 숭례문의 단청이 떨어져 나가는 등 부실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기는 하지만, 당장 무너질 만큼 심각한 일은 아니니 이번에는 신중하고 철저한 연구를 통해 다시 복원할 길을 찾으면 될 일이다. 다만 뜻밖인 것은 이 사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철저한 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밝히고 비리 관련자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묻고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한국일보" 2013. 11. 12).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이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한 외압,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청구 등 심각한 정치적 문제들이 점점 꼬여만 가는 이 와중에, 숭례문 단청(다른 구조적 문제도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니다) 문제가 원전 비리만큼이나 심각하다니 납득하기 쉽지 않다. 또 복원과정의 실수인지, 구조적인 비리가 있었는지 감사나 수사도 시행되기 전에 비리 관련자의 책임을 언급했으니 없는 비리라도 찾아내야할 판이다. 대통령이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각별해 그랬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쩐지 대통령이 우리 역사에 이만큼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좀 더 획기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신호이며, 그리하여 이제까지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건으로 수세에 몰려있던 역사 전쟁에서 보수 세력의 대반격이 시작될 것이라는 전조로 느껴진다.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새로운 교과과정에 맞추어 나올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의 교과서 중 권희영, 이명희 등이 집필한 교학사 교과서다. 두 사람이 핵심 집필자이지만, 그 배후에는 한국현대사학회라고 하는 보수 학회가 있다. 교학사 교과서는 한국현대사학회는 물론이고 그 이전부터 활동해온 뉴라이트 재단 등 보수 이념 진영이 10년에 걸쳐 한국근현대사를 둘러싸고 전방위적으로 퍼부은 공세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 결과물이 참혹할 정도로 수준 이하라는 사실은, 오늘날 한국 보수 이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필자는 교학사 교과서가 발간되기 전에는 아마도 검정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교적 낙관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검인정으로 민간의 출판사가 전문가들을 섭외하여 연구개발한 교과용 도서를 교과부의 검증을 받아 발행하고 일선 학교에서 채택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검인정 교과서는 교과부가 정한 교과과정을 비롯한 집필기준을 가이드라인으로 해서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핵심 목차, 각 단원의 주요 내용, 서술방향 등이 포함되어 있어 이것과 다르게 서술할 수 없다. 검정은 집필이 끝난 교과서가 집필기준을 충족했는지, 내용의 오류는 없는지 확인하여 교과서로 사용가능한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 간의 내용 차이는 그렇게 크게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고등학교 교과서들은 수능 출제의 기준이 되는데다, 2017년부터 한국사가 필수과목이 될 터이니 심사는 더욱 엄격해야할 시점이다. 그런데 교학사 교과서는 검정 과정에서 다른 교과서보다 2배에 가까운 오류를 지적받고도 무사히 통과했다. 기실 한 교과서에서 너무 많은 오류가 나오다 보면, 아주 꼼꼼히 살펴보기가 쉽지 않다. 다른 교과서들도 다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한 종의 책만 붙들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부여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식의 어이없는 오류도 검정 과정에서 지적당하지 않고 살아남았을 것이다. (권희영 교수는 교학사 교과서가 다른 교과서에 비해 표기 표현상의 오류에 대한 지적이 적었다고 했는데, 내용 오류에 압도되었기 때문 아닌지 의심스럽다. 표기 오류나 문장의 오류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상식적으로는 당연히 탈락해야 할 교과서가 통과한 것이다. 이 통과라는 의외의 결과는 보수 우익과 권력이 교학사 교과서를 근 10년에 걸친 역사 전쟁의 성과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2. 역사 전쟁

역사 전쟁이란 말은 원래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미화에 대응하는 국가 간의 역사 분쟁에서 시작한 말이지만, 요즘 들어서는 한국 내부에서 진보와 보수 사이의 역사 서술을 둘러싼 대립, 즉 내전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더 빈번히 사용된다. 그 가운데서도 논란의 핵심은 교과서다. 교과서를 둘러싼 공방은 2004년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역사 교과서들이 좌편향되었다는 보수 진영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공세를 처음 시작한 것은 학자들이 아니라 "월간 조선"이었다. “경고! 귀하의 자녀들은 위험한 교과서에 노출돼 있다-고교 국사교과서의 대한민국은 때리고 김일성 부자 감싸기라는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는 근현대사 교과서들이 반미·친북적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고 공세를 시작했다.

논란을 확산시킨 것은 정치권이었다. 2004년 가을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이 국회에서 이 기사를 근거로 근현대사 교과서, 특히 금성출판사의 교과서를 집중 공격했고, 보수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언론과 정치권이 이슈를 주고받으며 정치적으로 부각시키는 전형적인 사례였다. 교과서들은 민중사관으로 집필되었다고 집중공격을 받았다. 이런 비난은 대부분 근거가 없었다. 예를 들어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가 새마을운동과 천리마운동을 비교하여 새마을운동은 장기집권책이고, 천리마운동은 경제건설에 기여한 정책으로 평가했다고 했는데, 새마을운동과 천리마운동은 다루고 있는 단원 자체가 달랐다. 비교가 불가능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서술의 맥락도 일방적인 칭찬이나 비난과는 거리가 멀었다. 6.25 전쟁을 군사적 충돌로 서술했다는 비난도 전혀 근거가 없었다. 금성교과서의 군사적 충돌이란 1950625일 이전 3·8선에서 일어난 무력충돌을 서술한 것이었고, 전쟁 자체는 분명히 남침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무렵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연이어 집권하면서 보수 우익 세력은 큰 위기를 느끼던 시점이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반격의 하나로 역사 이념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필자는 한 원로 교수님으로부터 당신과 일부 학자들이 같이 나서서 (진보적 역사학과) 왜 싸우지 않는지에 대해 비난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기도 했다. 뉴라이트가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지만, 20051교과서포럼이 대한민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겠다며 창립한 것도 조직적 이념 공세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다.

교과서포럼의 창립은 다음날 조선일보 1면에 보도되는 등 보수 우익의 이데올로기와 언론의 연대는 확고했다. 2008년 교과서포럼은 식민지근대화론을 수용하고 이승만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며 개발독재를 합리화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교과서포럼의 시각을 바탕으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07년까지 교과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던 교과부는 정권 교체 이후 입장을 바꿨다. 여기에 더 불을 지핀 것은 촛불 시위였다. 20085월 시작하여 6월에 정점에 달한 촛불 시위에 수많은 중고생이 참여하자, 이명박 정부는 그 원인을 편향된 역사교육에서 찾기 시작했다. 당장 교과서를 수정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교과서 저자들은 물론이고 역사연구단체와 교사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제로 교과서를 고쳤지만, 그 수정의 내용이라는 것은 원래 <‘민주개혁’>이라고 되어 있던 것을 <이른바 민주개혁’>이라고 고치는 수준에 불과했다. 실제 내용을 손보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가 좌편향이어서 아이들을 잘못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할 근거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이후 보수 우익의 역사 이념에 대한 공세는 한층 강화되어 대안교과서가 아닌, 정규 교육과정의 교과서를 집필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이 교학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다.

 

3. 관점 1 - 필연적 운명: 국가와 시장 경제

교학사 교과서가 공개되자 엄청난 논란에 휘말렸다. 이념적 편향은 고사하고 아예 수준 이하의 오류들이 엄청나게 나타났다. 이 오류들에 대해서는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가 작성한 검토문이 상세히 다루고 있고, 언론에도 많이 다룬 바 있으므로 굳이 언급하지는 않으려 한다. 여기에서는 이 교학사 교과서가 전제로 하고 있는 역사관을 문제 삼을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자신의 관점을 책 서두의 머리말에서 잘 밝히고 있다. 이 머리말은 2008년 발간된 교과서 포럼의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이하 "대안교과서")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기도 하다.

교학사 교과서는 자유 민주 국가인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필요한 가치를 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대한민국의 시민이라고? 대한민국의 국민도 아니고 민주사회의 시민도 아닌, 대한민국의 시민이라는 이 어색한 표현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교과서 포럼의 "대안교과서"에도 이 비슷한 표현이 나타난다. ‘한국인이 그것이다. 다만 대안교과서 쪽이 좀 더 솔직하게, ‘우리 민족대신 한국인을 역사의 주체로 설정하겠다고 밝히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 민족이 아닌 한국인이란 것도 알쏭달쏭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현존 국가에 완전히 귀속된 구성원 정도의 의미인 듯하다. 그런데 이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하면, 검정에서 탈락하게 된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은 한국사의 성격을 민족사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못한 채, ‘대한민국만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 나라일까? 교학사 교과서는 이렇게 단언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리는 번영과 평화는 우리를 위해 피와 땀을 흘린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너희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과 평화를 받아들이고 감사하라는 뜻인데, 받아들이기 힘들다. 우리 사회는 번영과 평화의 바깥이 너무나 크고 넓기 때문이다.

머리말에서 교학사 교과서의 저자들은 자기 교과서가 학생들이 자유로운 개인과 책임 있는 대한민국 시민으로 성장하게 할 것이며, 거듭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 자유 민주주의는 “20세기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지속되는 전체주의로부터의 도전을 잊지 않고 극복할 수 있기 위해강조하는 것이며 대한민국의 성취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니, 결국 반공주의에 다름 아니다. 이들의 자유 민주주의는 민주적 가치나 권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적, 번영의 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이념일 뿐이다.

또 이들은 한 국가의 폐쇄성은 그 국가를 빈곤과 파멸로 몰고 간다면서 세계와 더불어 소통하는 것을 귀중한 덕목으로 다루었다고 했다. 반공적인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관에서 세계와 더불어 소통한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적극 옹호하겠다는 뜻이다. 교과서 포럼의 "대안교과서"는 이것을 좀 더 솔직히 표현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인간의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기에 적합한, 지금까지 알져진 한 가장 적합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단언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자본주의, 그것도 오늘날의 세계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야말로 가장 우월하고 아름다운, 자유와 풍요를 보장하는 체제가 된다.

문제는 현존 체제와 국가를 찬양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체주의의 도전은 여전히 극복해야할 과제로 제시된다. 현대사 부분의 소단원 제목들을 보자. 단독정부 수립 활동과 좌익의 방해(305), 글로벌 체제 경쟁: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320), 이승만 정권의 시련, 성취와 함정(322). 거의 모든 단원들이 이른바 자유 민주주의체제를 수립하고 지키려는 노력과 여기에 대한 도전이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북한의 위협과 한국 정치의 변화(328). 한국 정치는 민주화 요구가 아니라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여 변화해 왔다는 것 외에 어떤 다른 의미로 읽히는가?

더욱이 심각한 문제는 현존하는 국가와 체제가 근·현대를 관통하는 숙명적인 흐름과 투쟁 속에서 필연적으로 형성되었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교과서 포럼의 대안교과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숙명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본주의 문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역사를 문명사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은 개화기 이래 수많은 선각자가 기울였던 애타는 노력(교과서 포럼 대안교과서 6)”으로 결실을 맺은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한 나라라는 것이다. 이 시각은 교학사 교과서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본주의 문명=자유 민주주의=대한민국의 기초>라는 등식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읽는 사람들을 당혹하게 한 을미사변 관련 서술도 <자본주의 문명=자유 민주주의=대한민국의 기초>라는 등식의 문맥에서 파악할 수 있다. 교학사 교과서는 명성황후 시해에 참여한 일본인의 회고를 제시하고 당시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과격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라고 질문한다. ‘대한민국 시민을 위한 교과서가 맞는지 의심하게 하는 서술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문명=역사적 필연=대한민국의 기초>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제국주의란 자본주의 문명이 글로벌한 수준으로 확산되면서 나타나는 필연적 양상이니, 명성황후 시해도 일본 제국의 세력 확대 과정에서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일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게 될 터이다. 사실 이런 관점도 좀 더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 터인데, 이 정도로 거칠게 본심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것 자체가 이 교과서가 얼마나 조악하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준다.

이렇게 성립한 대한민국의 역사는 더 이상 근본적인 오류나 반성이 필요로 하지 않는 체제가 된다. 그러니 반민특위도, 한국전쟁 기간 중의 민간인 학살도 극히 소략하게 서술할 따름이다. 점령의 비극이라는 소단원에서 북한군은 북한에서도 학살을 자행하였다.……남한에서도 민간인들에 대하여 살상이 일어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도연맹 사건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남한 민간인들을 살상한 것이 누구란 말인가?

 

4. 관점 2 - 적과 방해자/ 정통과 영웅 만들기

<자본주의 문명=자유 민주주의=대한민국의 기원>을 근현대사 전체를 관통하는 역사적 흐름으로 내세우면서, 그 반대편에 자본주의의 적들, 또는 방해자들이 제시된다. 이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실제 역사에 대한 왜곡도 불가피하다. 대표적인 것이 일제하의 민족운동을 두 가지 길로 나누어 놓은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세계 곳곳의 식민지 국가들에게 독립으로 가는 길도 제시되었다. 하나는 미국 윌슨 대통령이 제시한 민족자결주의의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레닌이 제시한 반제 민족 해방 투쟁의 길이었다. 우리 민족도 대체로 이 두 가지 길을 따라 때로는 서로 협력하고 또는 대립하면서 세계의 어떤 민족보다도 힘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230). 그런데 이 두 사상은 결과적으로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분열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269).

무지인지, 고의적인지는 알 바 아니지만 심각한 왜곡이다. 우선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세계대전 후 패전국의 식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차원의 대안이었다. 민족운동을 관통하는 이념이나 노선 따위가 될 수가 없다. 민족자결 자체가 특별한 내용을 가진 이념이라기보다는 원칙 혹은 방침이니만큼, 레닌이나 사회주의자들의 주장 속에도 민족자결론은 자주 나타난다. 민족 자결 주의와 반제 민족 해방 투쟁의 두 가지 길이란 어불성설이다.

민족자결주의를 굳이 사회주의적 운동과 대립시킨 것은, 외교 독립 운동이나 실력 양성 운동과 같은 자본주의 문명 중심의 운동론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 계열을 강조하면서 또 다른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192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민족 독립 운동에 침체의 기운이 감돌았다. 임시 정부를 비롯한 해외의 독립운동이 퇴조하고, 국내에서는 민립대학 설립운동이 좌절되었다. 조선공산당도 검거되었고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서로 갈등하게 되었다”(264). 그렇다면 1929년 원산총파업은 지역적 사건에 불과하고, 광주학생운동(1929-1920)은 학생들의 시위일 뿐이며, 신간회(1927-1931)는 별 의미 없는 조직이었던가? 1930년대 초반까지도 민족운동은 여전히 활발했다. 자본주의 문명의 관점에 적합한 운동이 없었다고 민족 독립 운동이 침체되었다고 하는 저 과단성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궁금하다.

장병준이라는 독립운동가가 있다. 전라도의 장산도라는 작은 섬 출신이지만,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이었으며, 국내에 잠입해 만세 시위 사건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렀다. 해방 이후에는 한민당 전남도당, 독립촉성국민회 전남 지부의 간부를 역임한 전형적인 우익인사다. 서태석이라는 사회주의 활동가가 있다. 잘 알려진 암태도 소작쟁의 지도자였고 서울청년회 계열의 사회주의자로 조선공산당에도 참가했던 인물이다. 이런 경력으로만 본다면 두 사람은 전형적으로 두 가지 다른 길을 걸어간 사람이다. 그런데 서태석을 운동으로 이끈 사람이 바로 장병준이다. 191911월까지 암태면장을 지냈던 서태석은, 19202월 목포에서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전단을 뿌리고 태극기를 게양하는 투쟁을 벌였다. 이 투쟁을 주도한 사람이 임시정부에서 파견된 장병준이었다. 서태석은 이 때 구속되었고 석방된 이후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가지만, 그 인맥도 장병준을 통해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장병준은 서태석 외에도 송내호 등 서울청년회 계열의 사회주의자들과 친분이 깊었고 이후 그가 신간회 목포 지회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교류 덕분이었을 것이다.

좌익과 우익을 간단히 나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1920, 30년대의 사회주의 활동을 바로 1948년 이후의 북한 체제와 연결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역사적 결과는 단일한 원인이나 기원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좌우 사이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교류가 있었다. 대립과 경쟁도 있었지만, 그조차도 각각에게 자극이 되었을 수도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체제의 기원에는 우익적 요소만이 있을까? 농지개혁을 입안했던 조봉암은 1920년대 대표적인 사회주의자였으며, 제헌의회 혹은 2대 국회에 혁신적 인사들도 꽤 많았다. 교학사 교과서는 현실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그들이 설정한 대한민국을 기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농지개혁이나 반민특위대한민국이 아니었던가? 이승만이 거부했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역사가 아닌 게 되는 것인가?

현재 한국사 교과과정의 전제는 민족사. 급격히 변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민족사의 유효성은 고민할 문제다. 그러나 실제 역사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교과서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재의 유일한 방안이 민족사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이 틀을 실질적으로 부정한다. 그것은 단순히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찬미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적과 이단을 만들어내면서 대립과 분열을 강조하는 교학사 교과서는 분노와 증오의 역사를 만들게 될 것이다.

교학서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현 체제라는 역사적 필연을 설정하고, 이것을 구현한 역사적 주체들을 발굴하여 영웅으로 만들고 있다. 이승만을 국부로, 영웅으로 미화하고 있는 점은 여러 번 지적되었으니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단일한 기원과 절대적 연속성을 설정하고 그것을 실현한 영웅을 탄생시킨 교학사 교과서의 서술은 마치 왕조시대의 정통론으로 복귀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승만, 박정희 등의 정치적 영웅은 물론이거니와, 김성수, 박승직 등 기업가 영웅들이 줄줄이 나선다. 이렇게 주류가 정통이 되니 소수는 역사에서 배제될 따름이다.

 

5. 역사를 망하게 하다

문제 많은 교과서지만 당장 부작용이 우려되는 바는 앞으로 수학능력시험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포함하여 이번 검정에서 통과한 8종의 교과서들이 일선 학교에서 채택된다면 수능은 이 교과서들을 근거로 출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역사학계의 일반적 견해를 전혀 수용하지 않는 오류와 독선의 이 교과서는, 존재 그 자체로 골칫덩어리다. 사실 교과서 검정과 수능 출제가 유일하게 이원화되어 있는 것은 한국사 과목밖에 없다. 다른 교과목들은 모두 교육과정평가원에서 교과서 검인정과 수능 출제를 담당한다. 지금까지 진행상황을 보니 국사편찬위원회는 검정 과정에서 수능 출제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듯하다. 단순히 골치 아픈 차원이 아니라, 이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은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교학사 교과서로 가르쳐 본 교사들의 실험에서도, 일반적인 견해와 다른 학습자들의 반응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보다 더 걱정인 것은 이런 수준 이하의 교과서가 버젓이 출제의 근거가 되면서, 학생들이 그렇지 않아도 외울 것 많은 암기과목 정도로 받아들이는 <한국사>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릴 것에 대한 우려다.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하지 않는 것이 목적이라면 대성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교학사 교과서가 어떤 생각으로 만들어졌는지 대충 살펴보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전제에 대해서는 아직 언급하지 않았다. 교학사 교과서를 만든 사람들을 비롯한 보수 우익은 아이들의 생각이 주조된다고 믿는다. 학교가, 교과서가 가르치는 대로 생각하리라는 것이다. 교과서가 반공이라고 하면 반공을 신념으로 삼고, 자본주의가 영원하며 가장 우월한 체제라고 하면 또 그렇게 믿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들은 의심한다. 도대체 누가 저들을 저렇게 가르쳤을까? 저 아이들의 배후에는 어떤 정치 세력이 있고, 어떤 음모가 있을까? 그렇지. 민중사관에 물든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니, 아이들이 저렇게 되는 거야. 당장 교과서를 고치자.

많은 어른들은 이 신념을 공유한다. 교육의 힘은 놀라운 것이지만, 뜻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이 늘 자신이 원하는 인간형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전체주의의 역사, 특히 공산주의적 인간형을 만들고자 했던 스탈린주의의 실패가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다양하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을 수도 있고, 자신이 속한 사회의 일원으로 정체성을 확인할 수도 있는 것이며, 역사적 변화의 경향을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교과서 따위의 권위에 굴종하지 않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시간 위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것이 국가이든, 이념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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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ilda 18-06-2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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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a joy to find sonomee else who thinks this way.
Benon 18-06-24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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