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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시평
 
작성일 : 14-06-21 17:04
통일대박론의 좌초, 구조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글쓴이 : 장창준
조회 : 510  

통일대박론의 좌초, 구조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장창준 _ 진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통일준비위원회(이하 통준위)가 보이지 않는다. 한 때 언론은 통준위를 대서특필했다. 언론은 특히 315일 통준위 위원장을 대통령이 겸임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대통령이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통일사령탑으로 진두지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까지 평가했다. 대통령 직속 기구 중에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것도 통준위가 유일하다며, ‘통일준비위원회의 위상이나 격을 다른 위원회보다 한 단계 끌어올려 통일 준비에 더욱 강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데 방점이 찍힌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애초 출범 시점이 4월이었다. 정상적으로 준비되고 있었다면 4월 초순 정도만 되었어도 통준위 관련 기사가 봇물 터지듯 나와야 했다. 그러나 그 후 통준위 발족에 대한 소식이 좀처럼 전해지지 않았다.

415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통준위 구성 작업이 차질 없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발표한 이후에 (방침이) 변한 건 없다면서 아직도 (출범이 예정된) 4월이 많이 남아있다. 그러니까 가타부타 (발족 시기와 관련해) 할 말은 없다며 예정대로 통준위 발족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리고 430일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입을 열었다. 그는 통일준비위원회의 출범 시기에 대해 북한의 태도나 세월호 사건 등으로 발족이 늦어졌다며, 애초 약속한 4월 출범은 아니지만 적당한 때가 되면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여파 때문에 통준위가 늦어진다는 주철기 수석의 말은 신뢰하기 힘들다. 정부와 여당은 세월호 참사에도 많은 일들을 일사천리로 해결해왔다. 58일 새누리당은 한국방송 수신료 인상 승인안을 미래창조과학방송위원회에 기습적으로 상정했다. 세월호 참사에도 새누리당의 상당수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은 선거운동을 진행했다. 새누리당 서울시당 예비후보 김황식 전 국무총리와 정몽준 의원은 고소전 등으로 극단적인 갈등양상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 뿐인가. 57일 검찰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과 청와대 사찰 의혹에 대해 채동욱 전 총장의 혼외아들은 맞다”, “청와대는 정상적인 특별감찰을 했다는 요지의 수사결과를 전격 발표했다. 422일에는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댓글 관여 의혹을 받고 있던 연제욱 청와대 국방비서관을 인사 조치했다. 세월호 참사에도 정부여당은 자신들이 설정하고 있는 계획을 추진하는 데서 주저함이 없다. 특히 정부는 세월호 참사에 국민들의 눈과 귀가 집중되어 있는 틈을 타 정권의 악재들을 털어냈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통준위 출범이 늦어지고 있다’, ‘적당한 때 출범할 것이라는 주기철 수석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이다.

 

드레스덴 선언 이후 통준위 표류

2월 이산가족 상봉과 상호 비방·중상 중단 이후 남북 관계가 개선될 것에 대한 희망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야심차게 준비한 드레스덴 선언이후 오히려 남북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비방·중상이 난무하였다.

드레스덴 선언은 발표되기 전부터 우려스러운 점이 있었다. 315<세계일보>박 대통령이 독일에서 북한 재건 구상 등을 밝힐 예정이라는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북한 재건 구상이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재건이라는 것은 망함을 전제로 한다. 즉 북한은 망한 국가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에 북한 재건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이다. 이때부터 필자는 우려스러웠다.

328일 발표된 드레스덴 선언은 예상했던것 이상의 참담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이 핵을 버리는 결단을 한다면, 이에 상응하여 북한에게 필요한 국제금융기구 가입 및 국제투자 유치를 우리가 나서서 적극 지원하겠다라는 선언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번 선언은 대북지원 선언이었다. 그것도 전제조건이 붙은 대북지원 선언이었다. 핵을 포기하면 북한 경제 재건을 지원하겠다는 말, 이 말은 너무나도 귀에 익숙하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이 떠오른다. 드레스덴 선언은 경제지원을 미끼로 북한핵을 폐기시키겠다는, 비핵개방 3000의 복사판이었던 것이다.

군사적 대결의 장벽, 사회문화적 장벽, 단절과 고립의 장벽을 허물자는 제안 역시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는 군사적 대결의 장벽을 허물자고 하면서 연일 한미군사연습을 진행하고 있었다. 키 리졸브, 독수리 훈련에 이어 쌍용 훈련까지 대규모로 진행하였다. 쌍용훈련은 해병대 지상전투 병력을 한국의 연대상륙팀과 함께 수륙양용 통합 원정여단으로 통합시켜내는 미군의 역량을 과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매년 실시되지만 이번 훈련은 지난해보다 큰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4월 초에는 한미공군의 공중종합 연합훈련인 맥스썬더훈련이 예정되어 있었고, 이 훈련에도 미7공군 전력이 투입될 예정이다. 과연 이 같은 대규모의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진행하면서 군사적 대결의 장벽을 허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정리하자면 드레스덴 선언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대북선언이 아니라 남북관계 파탄을 위한 대북선언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면 첫째, 핵연계론, 선핵포기론을 답습하고 있다. 드레스덴 선언 전에 헤이그에서 있었던 한미일 삼국 정상회담은 북한에 대한 완전하고도 불가역적이며 검증 가능한 핵폐기를 주문했다. 부시 정부 때의 CVID가 부활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핵연계론, 선핵포기론의 관점에서 CVID, 비핵개방 3000 부활선언을 한 것이다. 게다가 핵정상회담 기조 발언에서는 영변핵시설은 체르노빌보다 더 심각한 핵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북측을 노골적으로 자극하기도 했다.

둘째, 서독의 통일모델 즉 동독의 서독으로의 흡수통일을 통일모델로 삼고 있다는 의구심을 던져주었다. 드레스덴 선언에 담겨있는 아래와 같은 표현들은, 드레스덴 선언이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는 라인강의 기적이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졌듯이, 독일 통일도 한반도의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토록 높아 보였던 베를린 장벽도 동서독 국민들의 자유와 평화에 대한 열정을 막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자유와 행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이 있습니다.”

독일 국민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자유와 번영, 평화를 이루어냈듯이, 이제 한반도에서도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장벽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따라서 이번 드레스덴 선언은 흡수통일 의사를 밝힌 선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흡수 통일했던 것처럼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남측으로 흡수 통일하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피력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드레스덴 선언 발표 후 며칠 되지 않은 41일 북한 노동신문은 개인필명의 논평을 통해 박근혜가 추구하는 통일은 우리의 존엄 높은 사상과 제도를 해치기 위한 반민족적인 체제통일’”이라며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연이은 비판에 이어 북한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가 공식적으로 강한 비난을 내놓은 것은 412일이다. 국방위는 이날 박근혜는 황당무계한 궤변으로 온 민족을 우롱하지 말아야 한다는 대변인 담화를 발표하면서 드레스덴 선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북한 정부의 공식적인 거부였던 것이다.

단순한 거부 선언만이 아니었다. 드레스덴 선언 이후 남북 관계는 상호 비방·중상을 하지 않기로 한 2·14 합의가 무색하리만치 극단적인 비방전을 전개했다. 남북 관계는 다시 시계 제로 상태가 되었다.

 

남북 관계 악화의 원인

그렇다면 남북관계 악화의 원인을 드레스덴 선언에만 돌릴 수 있을까? 아니 더 진솔한 질문은 이렇다. 드레스덴 선언에서 더 진전된 내용이 추가될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드레스덴 선언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의 기본 입장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가장 솔직한입장 표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혹자들은 드레스덴 선언을 전망하면서 2000년 역사적인 1차 남북정상회담의 계기로 작동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과 비교하기도 했다. 14년 전 베를린 선언처럼 드레스덴 선언이 남북 관계 발전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했던 것이다. 필자 역시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드레스덴 선언의 구체적 내용을 기다리는 입장이었고, 그런 차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개선시키고자 하는 의사가 있다면 신뢰 프로세스의 하로동선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로동선(夏爐冬扇)은 한자 뜻 그대로 여름에 난로, 겨울에 부채를 의미한다. 무더운 여름에 난로가 무슨 소용이 있고, 추운 겨울에 부채를 부칠 이유가 없다. 즉 아무 쓸모없는 경우나 존재를 일컫는다. 방해되는 상황이나 존재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로동선은 2월 말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던 금강산에서 등장했다. 북측 관계자들이 남측 취재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 민족끼리 잘해보려고 할 때 부채를 해야 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 아니냐고 꼬집었고, 다른 북측 관계자는 그 말을 받아 남측 언론을 보면 남북관계가 잘 되도록 하는 부채라기보다는 꼭 하로동선같다고 발언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주위에 하로동선 같은 존재들이 많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첫째, 남측 군부가 그렇다. 216일 군 고위 관계자가 상호비방, 중상 중단과 군 차원의 대북 심리전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며 대북 심리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일환으로 북측 지역에 라디오와 TV 전파를 동시에 송출할 수 있는 차세대 기동중계 장비 개발에도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대북 전단을 더 멀리 날려 보낼 수 있는 K-9 자주포용 신형 전단탄도 개발할 계획까지 갖고 있다. “수 만장의 전단을 채운 전단탄을 적진 상공에서 공중 폭발시킴으로써 적진의 사기를 약화시키고 북한 주민에게 정확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말이다.

214일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상호 비방·중상 중단 합의 이틀 만에 군부가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는 남측 군부의 2·14 합의 거부 선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우리 군의 대북 심리전에 대한 욕망은 참으로 대단하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북의 정치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그들의 확신은 심리전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와 같은 집착이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군 관계자가 자신의 입으로 말했던 것처럼 전단탄은 북측 영공에서 폭발해서 전단지를 흩뿌린다. 이는 도발을 뛰어넘는 침공’, ‘침략행위이다. 그 실행 가능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그와 같은 발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위험성을 갖고 있다.

둘째, 외교부 관료들의 사대근성도 빼놓을 수 없다. 2·14 합의 당시 박근혜 정부 내에서는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설전이 진행되고 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분위기 속에서 통일부는 금강산 관광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대상이 아니라며 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를 타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외교부는 금강산 관광 재개는 안보리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금강산 관광 재개에 웬 안보리? 하실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2013년 북이 3차 핵실험을 하자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안(2094)을 채택한다. 그 결의안에는 북한의 핵, 탄도 미사일, 여타 대량 살상 무기 관련 프로그램 활동 또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 반하는 제반 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대량 현금의 북한행 이전을 금지한다고 돼있다. 외교부가 유엔 결의안을 거론하는 것은 금강산 관광의 재개는 대량 현금의 북한행에 해당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225일 정례브리핑에서 조태영 대변인이 금강산 관광 재개가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따라 채택된 유엔 대북 제재 결의(2094)에 위배되느냐는 질문에 최종적으로 유엔안보리의 유권해석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통일부의 해석은 조금 달랐다. 지난 해 3월 박수진 대변인이 위와 비슷한 질문에 금강산 관광은 다른 사안이라고 보고 있다고 하여 금강산 관광 재개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뜻을 밝힌 바 있다.

221일 미의회조사국(CRS)이 발표한 한미관계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개성공단 확대와 국제화를 추진할 경우 미국 의회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런 사대근성에 빠진 한국의 관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CRS는 이 보고서에서 “(남북관계 진전과 개성공단 확대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움직임은 대북 금융제재 강화 법안 등 북한에 대한 제재를 확대하려는 미국 의회 내의 입법노력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 관료들의 사대근성은 미국이 남북관계 진전을 반대하는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 논리에 입각해서 미국은 남측 당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내정 간섭적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미국의 대북 정책이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226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북한은 가장 악한 곳이라는 발언을 했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잔인한 곳 가운데 하나라고 북한을 비방하고 우리는 지속적으로 (북한의) 행동을 압박할 것이라며 북미 대화보다는 대북 압박 정책을 지속할 것임을 밝혔다.

지난 2월 초 북한은 케네스 배 석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로버트 킹 미국 대북인권특사의 방북을 허용했다. 그런데 그 직후 미국은 괌에 있는 B-52 전략폭격기 훈련을 한반도에 진입시켜 폭격 훈련을 실시했다. 그 날이 하필이면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한 25일이었다. 북측은 즉각 반발하여 로버트 킹 특사 방북을 불허했다.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한 날 미국이 전략폭격기 훈련을 했다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지 않는다는 노골적인 의사표현이었다.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에도 대북적대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선언이나 진배없다.

결국 미국의 대북정책은 군사적 압박, 외교적 압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사대근성에 찌든 한국의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미국의 이 같은 강경한 대북 정책은 남북 관계 개선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결정적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 악화는 2·14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 이후에도 대북심리전에 치중하는 남측 군부, 사대근성에 빠져 있는 외교관료 그리고 적대정책에 매진하는 미국에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책임한 정부, 침묵하는 대통령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은 없는가? 이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2·14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25일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220-25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갖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26일 새로운 상황이 연출된다. 북 국방위원회 대변인이 성명을 발표하는데, “지난 시기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이산가족 상봉을 전쟁연습마당에서 치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훈련과 이산가족 상봉 일정이 겹치면 이산가족 상봉을 연기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미국이 키 리졸브 훈련 일정을 223일부터 시작한다고 발표한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리고 28일 북측은 남측에 고위급 접촉을 제안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청와대 국가안보실 앞으로 전통문을 보내 청와대 관계자가 나올 것을 제의했다는 사실이다. 앞서 소개했던 26일자 북 국방위 대변인 성명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남조선당국이 진정으로 민족사적흐름에 합류할 용의가 있는가, 아니면 그에 역행하여 현 대결의 악순환을 그대로 지속시키겠는가 하는 시대와 겨레의 엄숙한 물음에 정식으로 자기의 속내를 명백히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 대목과 연결시켜 본다면, 고위급 접촉에서 박근혜 정부의 속내를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남측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214일 남북 고위급 접촉이 열렸다. 그리고 이 접촉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애초 합의대로 진행하기로 합의하였다. 대신 남과 북은 비방·중상을 하지 않고, 고위급 접촉을 이어가기로 합의했다. 남측은 이산가족 상봉이 연기되는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었고, 북측은 비방·중상 중단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다. 남과 북이 모두 윈윈하는 결과를 내왔다고 평가해도 손색이 없다.

여기서 북측이 2·14 합의에 도달하게 된 배경이 추론된다. 고위급 접촉에서 북측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호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북측이 합의에 도달했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북측이 진지하게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중의 내용은 분명하다. 정부 차원의 비방과 중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측은 2·14 합의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이후 상황 전개에 대해 북측은 대단히 불편한 심기를 갖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앞서 언급했듯이 남측 군부는 대북심리전을 강화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또한 군부와 경찰의 묵인 아래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행위가 연일 이어졌다. 북측이 보기엔 비방·중상 중단 합의의 위반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나 국가안보실 차원의 이렇다 할 방비책이 나오지 않았다.

북 국방위원회는 35일 청와대 국가안보실 앞으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는 내용의 전통문을 보냈다. 정부는 민간단체에서 자율적으로 하는 전단 살포이기 때문에, 정부가 자제를 요청하거나 물리적으로 못하게 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지난 201210월 탈북자 단체들로 구성된 북한민주화추진연합회가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뿌리던 대북 전단은 경찰의 통제로 무산된 바 있기 때문이다. 못 막는 것이 아니라 안 막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연히 북측은 대통령과 남측 당국이 2·14 합의를 지킬 의사가 없다는 판단을 했음직하다.

북한은 예의 날선 발언을 이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는 비방을 시작했다. 남측 역시 2·14 합의 위반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후 남북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갔다.

 

드레스덴 선언 이후 남북 관계의 급속한 악화

그 결정적 쐐기를 박은 사건이 드레스덴 선언이었다. 북측은 드레스덴 선언 발표 이후 남측에 대한 비판 강도를 강화했다. 특히 412일 북 국방위원회 대변인은 담화를 발표해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것보다 못한 드레스덴은 입에 올리기도 더러운 민족반역과 위선, 반통일 속내로 얼룩진 시대의 퇴적물이라고까지 평가 절하했다. 국방위원회의 위상을 감안하면 북측이 드레스덴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정부는 드레스덴 선언의 내용을 추진할 의사를 피력했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지난 430우리로서는 드레스덴 구상은 그냥 내놓은 게 아니다. 계속 추진해 나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특히 핵문제와 관련해 북핵이 그대로 나간다면 민족 전체가 파멸하고 주변국에 핵 도미노가 생기고 통일을 막는 것이라며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한다면, 국제사회와 함께 과감하게 협력해서 길을 열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남북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북측은 드레스덴 선언을 거부하고 있는데, 남측은 드레스덴 선언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것은 대화보다는 대결의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드레스덴 선언 이후 남북 관계는 군사적인 충돌로까지 비화되었다. 북은 331일 서해 북방한계선을 향해 사격훈련을 실시하면서 100여발의 포탄을 남쪽 해상으로 떨어뜨렸다. 남측 군도 K-9 자주포로 대응 사격을 했음은 물론이다. 북측이 500여발, 남측이 300여 발을 발사했다는 점에서 사뭇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도 있었다.

물론 북측의 이 훈련 역시 한미 양국의 연합군사연습에 대응하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당시 포항에서는 호주군 130여명이 포함된 한미 병력 12천여 명이 쌍용훈련의 일환으로 대규모 상륙작전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현재 남북관계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 작업에 착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423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10개 항의 질문장을 공개했다. 조평통은 북남 관계를 진실로 개선해 나가는 것인가 아니면 계속 대결하자는 것인가, 통일이냐 반통일이냐, 평화냐 전쟁이냐 이제 그에 대한 입장을 명백히 할 때가 되었다며 공개질문장의 취지를 밝혔다.

조평통은 박근혜가 말하는 통일이란 어떤 통일인가. 먹고 먹히는 체제대결이라면 전쟁 밖에 없는데 그것을 바라는가라며 체제대결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기나 하는가. 체제대결은 곧 전쟁이다. 박근혜는 우리와 진짜로 전쟁을 하자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또한 조평통은 동족대결정책을 악랄하게 추구하면서 무슨 신뢰프로세스를 떠들 체면이 있느냐대결과 신뢰는 양립할 수 없다. 대결인가 신뢰인가. 어느 쪽이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최종적인 입장을 정리하기 위한 질문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가 여기에 긍정적인 답을 주지 않는다면 북측은 남북대화의 창을 닫으려 할지도 모른다.

남북대화의 창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의 창이기도 하다. 330일 북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을 예고했다. 430일에는 지난 330일 성명에서 천명한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도 배제되지 않는다는 우리의 선언에는 시효가 없다며 이를 상기시켰고, 57일 리동일 유엔 주재 북한 차석 대사는 방어를 위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연례행사처럼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북은 남북 대화의 창이 닫히는 순간 한반도 핵문제 해결의 창도 동시에 닫힐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대박론과 통미통남론이 만날 기회의 창은 여전히 열려 있어

드레스덴 선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 프로세스 그리고 통일대박론이 좌초의 위기에 몰려있다. 그렇다면 통일대박론은 이렇게 좌초되고 마는가? 현재 북의 입장을 보면 여전히 그 기회는 열려 있는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이 북측 조평통이 박근혜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공개 질문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답변을 기다리겠다는 의사의 표현이다. 지난 2월 미국이 키 리졸브 훈련 일정을 마음대로 발표하여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남북 고위급 접촉을 개최하여 위기를 모면했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이 위기는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

북측은 통미통남 정책에서 완전히 이탈하지 않았다. 올해 북측 대남정책의 특징은 한마디로 말해 통미통남 정책이라고 명명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남북관계에 적극적이었다. 오히려 통미보다는 통남에 더 치중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미 군사연습과 일정이 겹침에도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개최한 것은 그 단적인 사례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미 출범 초부터 신뢰 프로세스를 강조했고, 지난 해 말부터 통일대박론을 역설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측은 자신의 통미통남 정책과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이 접점을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20006·15 공동선언에서 남북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점을 합의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있다. 아직 기회의 창이 열려 있는데 드레스덴 선언을 강조하고, 그것을 추진할 강력한 의사를 피력한다면 이는 북측에게 창을 닫으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효과를 가져 온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북측과 대화를 하고 싶다면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고 그 파악에 기초해 소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북측은 드레스덴 선언 발표 이후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따라서 당장은 드레스덴 선언을 강조하기보다는 북측과의 대화의 창을 조속히 개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2·14 합의 정신을 다시 살리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다행히 상황도 좋다. 당분간은 한미 군사연습도 존재하지 않는다. 2·14 합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북측에 고위급 접촉을 제안한다면 북측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한 가지 더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남북관계와 핵문제를 연계시키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남북 관계의 역사에서 남북관계와 핵문제를 연계했을 때 성공한 사례가 없다. 남북관계와 핵문제를 독립시켜 병행 추진했을 때 남북관계도, 핵문제 해결도 돌파구가 열렸다는 점에 박근혜 정부는 착안해야 한다.

그런데 솔직히 과연 박근혜 정부가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면서 대화의 창을 유지할지 회의적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하여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는 박근혜 정부의 입장에서는 남북 대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보다는 남북 대결을 통해 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유혹을 더 강하게 느낄 것으로 판단된다. 무인정찰기 소동은 너무나도 많은 의혹과 불신의 씨를 남기면서 다시 북한 소행으로 결론을 내렸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하게 나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합참은 이미 무인정찰기 사태와 관련하여 북한의 명백한 군사도발이라고 규정했다. 천안함의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남북 대화의 창이 닫히는 것은 남북 대결의 본격화를 의미하며, 핵실험을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 이후 상황은 예측불가능하다. 악순환이 악순환을 부르는 사태가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희망을 잃고 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남북관계의 희망, 한반도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희망의 끈마저 잃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이 예감은 틀린 예감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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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gler 18-06-2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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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lee 18-07-08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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