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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시평
 
작성일 : 14-06-21 17:08
진보정치는 ‘현상’의 공범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글쓴이 : 윤현식
조회 : 498  

진보정치는 현상의 공범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윤현식 _ 노동당 정책위 의장




1. “그놈이 그놈인 정치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의 정국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예측불허가 적절할 것이다. 2013년의 안녕하십니까?” 돌풍, 연말을 흔들었던 철도파업, 그리고 지난 416일 세월호 참사의 여파는 사회적 가치관과 체제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까지 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맞이하는 선거가 과연 어떤 결과와 의미를 남기게 될지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각 사건이 불러일으킨 본원적 문제의식이 선거라는 일종의 달력 이벤트를 통해 해소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갈등의 해소라는 정치 본연의 특질을 배제한 추상적 논의만으로 대안을 도출할 수도 없다. 선거의 결과는 얼마든지 문제의식의 해소를 위한 답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더 심오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기서 정당을 비롯한 정치세력의 역할이 주목된다. 선출직 공직자를 배출하는 정당의 역할은 욕망과 적대의 충돌을 허용된 공론의 장을 통해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 역할이 수행되지 못할 때 남는 것은 양편의 바리케이트 사이에 유혈 낭자한 아스팔트일 뿐이다. 따라서 작금 예측불가의 상황에서 정치세력이 어떠한 역량을 발휘하느냐가 제도화를 통한 혼란의 극복이 가능할 것인지, 정국의 바로미터가 될 터이다. 그러나 과연 현존하는 정치세력이 요동치는 정치적 상황에 일정한 진로를 제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형식적으로는 일정하게 분립 구획되어 있는 듯 보이는 현재의 정치지형은 분출하는 사회적 열망의 이중성만큼이나 복잡하다.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열망과 이 사회에서 살아남겠다는 열망의 중첩이 개인에게 내재된 이중성이라면, 이 열망들에 답을 제시할만한 정치세력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명확하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것은 각 정치세력의 능력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때 각각의 정치세력 내에서 활로로 제시되는 것이 재편이다. 정당이라는 정치적 생명체는 언제든 합칠 수도 있고 찢어질 수도 있다. 재편의 과정에서 조직의 가치와 체계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으며 이것이 때로는 사회적 열망에 대한 나름의 답으로 제시될 수 있다. 핵심은 정치세력의 재편이 어떤 가치와 어떤 목적,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느냐는 점이다. 그런데 적어도 한국 정당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 극장의 수순에 따르는 반복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마르크스의 전언과 같은 비극과 희극의 교호 따위는 한국 정당사에서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오로지 같은 양상의 반복과 재반복이 이루어지고 있을 따름이다. 다시 말해 정당 간 재편이 열망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수준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태가 연속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불행하게도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데, 이념적 혹은 계급적 정체성에 따른 양정립이 향후로도 상당한 기간 어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 불편한 예측에 당위를 부여하는 두 가지 사례가 있다. 하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창당으로 대변되는 <보수진영+민주개혁진영>의 혼선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진영의 전망부재다. 불행은 홀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이 두 가지 문제는 정치를 위협하는 처치 곤란한 위험을 함께 몰고 온다. 바로 탈정치의 정치화다. 정치혐오 또는 정치의 희화화는 탈정치의 자양분이다. 그런데 그 자양분을 보수의 혼란과 진보의 전망부재가 제공한다. 시중의 장삼이사는 이러한 상황을 그 놈이 그 놈이라는 매우 현명한 표현으로 정의한다.

이하에서는 노동당의 활동가로서 보고 들은 바를 바탕으로 주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창당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 특히 탈정치 혹은 반정치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겠다. 이를 위해 안철수 현상을 개관하면서 그 한계를 짚어본다. 또한 현상을 추수하지 못하는 진보의 한계도 간략하게 짚어보기로 하겠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6·4 지방선거 이후의 정치지형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제시한다.

 

2. 안철수 현상의  이면

개발독재 및 반공이데올로기와 민주주의가 대당하던 거대담론의 정치적 쟁투가 있었다. 그 격동의 대립이 가지고 있던 첨예함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일정한 제도화를 경유하면서, 또는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우리의 삶을 알뜰하게 장악하면서 마모되었다. 10년에 걸친 민주화세력 및 개혁세력의 집권이 사회전환의 비전을 보여주기는커녕 우경화로 선회하면서, 이들이 군사독재의 후신들과 차별성이 없음을 확인하게 된 민중들의 피로감은 커졌다. 사회체제를 논했던 거대담론은 개인의 생존이라는 문제로 파편화되었지만, 정작 이러한 현상을 포용할 수 있는 대안체제를 보여줄 만한 정치적 의제와 담론은 형성되지 못했다.

이 공백의 시공간을 치고 들어온 것이 이명박 정부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5년은 빈 공간의 충족 또는 대체라기보다는 공백의 거대함을 더욱 확실하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기간이었다. 가치지향의 기준을 확인할 수 없는 처지의 대중들로서는 개체화와 파편화를 숙명처럼 받아 안아야 하는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이때, 대안에 목말랐던 대중들에게 나타난 사람이 안철수였다. 기성 정치인과는 뭔가 다르다는 차별성과 이에 근거한 기대를 통해 안철수는 개인으로 머물지 않고 사회적 현상으로 전환되었다.

대중이 이 현상에 열광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현상은 인물의 측면에서 안철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 소통능력, 자기혁신, 이타주의, 성공신화, 나눔과 연대를 제시하기도 한다. 한편 가치라는 측면에서 공정, 공생, 공감, 대안적 측면에서 정의, 복지, 평화를 열거하기도 한다. ‘현상이 가지는 이러한 내용들은 기존 정치가 담보하지 못했던 부분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즉 기존 정치인들의 면면에서 안철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발현되지 못했고, 기존 정치세력이 내세운 가치와 대안은 비록 현상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을지라도 말만 많았을 뿐 대중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안철수 현상의 요인을 여러 각도에서 심도 있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분석에 따르면, 기존 정당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 소수 엘리트에게 집중된 부의 편중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지를 가진 인물에 대한 갈망, 소용돌이 효과이자 바람의 정치로서 인물정치의 포퓰리즘의 반복, 젊은 세대에게 호응을 받은 IT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성공한 이미지’, 구세대 리더십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적 리더십으로서의 이미지 부각, 탈정치 혹은 포스트정치의 정치양식에 부응하는 능력 있는 자본가’, 진자의 움직임과 유사한 주기적인 정치순환론등이 현상의 원인으로 제시된다.

각종의 분석은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들 분석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제는 그 현상이 정치적으로 조직화되는 과정을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현상의 발현 자체에서 기인하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 열망들이 정치적 조직화보다는 안철수라는 개인에 대한 기대에 머물기 때문이다. 더 내밀한 문제는 열망의 강도와는 별개로 그 열망이 이미 정치적인 것에 대한 혐오와 회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열망의 실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공론의 장에서 의제로 전환되어야 하며 정치화의 과정을 거쳐 제도화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과정은 현상이 존재하기 위해선 억제되어야 하고 현상의 기저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만일 현상을 폭발시킨 열망이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현상이 가지고 있는 특장점은 폐기되고 만다. ‘현상을 정치화하는 순간 스스로 혐오와 회의의 대상이 되었던 것들의 전철을 밟아야 한다.

 

3. 안철수 현상의 현실

안철수가 현상의 아이콘을 넘어 정치인으로 나서는 과정에서 현상환상의 다른 표현이었음이 드러난다. ‘현상의 거름이 되었던 정치혐오와 회의가 다른 형태의 정치화로 전환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안철수의 정치가 현실이 되는 과정을 두 시기로 구분해서 간략히 확인해 보자. 첫 번째 시기는 안철수가 201110·26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후보로 물망에 오를 때부터 2012년 대선 전까지의 기간, 두 번째 시기는 대선시기부터 현재까지로 구분한다. 앞의 시기가 안철수 현상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려는 시기였다면, 후자는 그 현상이 현실에서 어떻게 좌절되어 가는지를 확인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서울시장후보를 박원순 후보에게 아름답게양보한 2011년 보궐선거를 통해 안철수는 정치인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받는다. 이것은 다른 말로 안철수 현상이 단순한 추상적 희망을 넘어 정치적 실재가 될 수 있음을 인정받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상에 열광했던 부류는 물론 현상에 대하여 거리를 둔 비판세력과 아예 적대적이라고 할 수 있었던 정치세력들까지도 기대와 우려의 연장선에서 안철수를 바라보게 되었다. 기대는 현상이 실제적인 정치세력화를 통해 구태를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우려는 두 측면에서 제기된다. 하나는 박원순 지지를 통해 안철수의 정치적 입지가 개혁세력 쪽에 치우쳤다는 판단에서 오는 보수진영의 우려였다. 이 우려는 특히 2012년에 연거푸 있을 총선과 대선 양대 선거에서 안철수의 바람이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진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분석에서 기인했다. 반면, ‘현상이 정치적 전환을 통해 적극적인 현실추동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입장에서는 일단의 행보에서 안철수가 정치세력으로서 조직화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우려했다. 전자의 우려가 안철수 개인과 현상을 등치시킨 차원에서 제기된다면, 후자는 현상이 개인을 넘어서지 못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제기된 우려였다.

2012총선에서 정치세력화의 요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는 현상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승화하는데 주저했다. 그것은 신중한 처세의 일환일 수도 있고 간철수라는 오명에서 나타나듯 우유부단함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세간의 평가는 어찌되었든 간에 이때 이미 안철수는 정치입문을 위한 수업을 받고 있었다. 총선을 별다른 움직임 없이 지나친 안철수는 719"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하면서 대선도전의 행보를 시작한다. 때마침 출간 전날 한 방송국의 예능프로그램인 힐링캠프에 출연하여 녹화를 했고, 책이 발간된 후인 23일 방송되기도 했다. ‘힐링캠프를 통해 안철수의 인지도는 급상승했고, 이후 각 정당의 대선 유력후보들과 동급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처럼 기대와 우려가 혼재된 채 현상을 바라보던 앞의 시기와는 달리 뒤의 시기로 넘어오면서 기대는 환상이 되고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보수진영의 우려는 결과적으로 과도했고 민주개혁진영의 우려는 밑천까지 드러난 현실에 더욱 심각해졌다. 대중의 기대를 받던 안철수는 대선시기에 접어들면서 빈곤한 정치적 한계를 노정한다. 무엇보다도 안철수의 정치적 지향의 실체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새정치라는 단어로 함축해 공개한 안철수는 정작 그게 뭐냐는 질문에 답변하지 못한다. 대선 직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확인된 새정치의 빈한함은 비판자들은 물론 지지자들조차 이해가 곤란한 것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귀결인데, ‘새정치에는 이해를 필요로 하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20121118,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공동명의로 새정치공동선언문을 발표한다. 공식적으로 새정치의 내용이 최초로 소개된 이 선언에서 정작 새정치라고 확인될 수 있는 정치의 내용은 전무했다. 2013년 노원병 지역구에서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안철수는 연말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새정추)’를 결성하였다. 새정추 회의에서 안철수는 신당의 방향에 대해 어느 한 쪽에 치우침이 없고 국민 이익을 가장 우선하는 합리적 개혁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합리적 개혁주의의 내용은 명확하지 않았다. 이처럼 도대체 그 방향이 무엇이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새정치2014326일 느닷없는 민주당과의 통합과정에서 실체를 드러낸다.

 

4. 오직, 기초공천 폐지?

보궐에서 당선된 안철수와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과천에서 당선되었다가 탈당해 안철수와 합류한 송호창 두 의원이 주력이었던 새정치연합은 지분 5:5로 당권을 확보하면서 128석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과 합당한다. 안철수의 정치는 자산을 150배로 불리는 놀라운 수완을 발휘하면서 신당의 당명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약칭을 새정연으로 하면서 민주라는 단어를 새정치 뒤로 감춰버렸다. 그러나 창당과정의 화려한 말잔치 속에 축약된 두 세력의 공통분모는 오로지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기초공천제 폐지)’ 단 하나였다. 그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것만이 약속의 정치또는 다른 말로 새 정치의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유력 후보들과 정당이 너나 할 것 없이 내세운 정치개혁의 제1 과제가 바로 기초공천제 폐지였다. 이 주장은 사실 연원이 꽤나 오래된 것이기도 하거니와 여야 정당이 위치가 뒤바뀔 때마다 들고 나왔던 고전적인 의제였다. 다만 이것이 정당정치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기에 일부 시민단체와 기초단체장 협의회 등 몇몇 조직에서 강조되었을 뿐 주요한 정치적 의제로 등장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2012년 대선과정에서 안철수가 새정치의 중요한 과제로 이를 들고 나왔고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또한 덜컥 수용했던 것이다.

안철수가 새누리당과 민주당에게 대선 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하면서 기초공천제 폐지 논의는 사회적인 의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당면 선거인 20146월 지방선거에서 조직적으로 열세인 새정치연합이 정당차원에서 실속 있는 결과를 얻기 힘든 상황적 조건이 이 주장을 강박적으로 밀어붙이게 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오히려 대선시기에 주도적으로 이 주장을 제시했던 안철수에게 있어 정치적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물러설 수 없는 승부처가 바로 기초공천제 폐지에 있음이 타당할 것이다. 만일 안철수가 독자적으로 이 주장을 철회할 경우 새정치의 근간인 약속을 지키는 정치를 스스로 깨게 되는 모순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김한길 대표체제의 민주당이 2013년 내내 기초공천제 폐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역시 합당의 요인이 되었다. 정당정치의 근간이 훼손될 사안임을 모를 리 없는 민주당이지만, ‘약속의 정치를 앞세운 안철수의 공세가 자칫 제 살을 깎아먹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던 것이다. 민주당은 20137월에 전 당원 투표를 통해 기초공천제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민주당은 전당원투표에 의한 당론결정을 높은 수준의 논의와 무게를 가진 대한민국 정당사상 중요한 정치실험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당원들은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투표결과가 폐지 찬성으로 나오게 되면 당원들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 되고, 폐지 반대로 나오게 되면 당원들이 자당의 공약을 폐기하자고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차들이 있기에 새정연은 탄생할 수 있게 되는데, 이후 4월 초 새정연은 전당원투표를 통해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철회했다. 안철수의 입장에서는 한편으로는 약속의 정치인 새정치의 후퇴가 아쉬울 수 있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끝까지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다는 인식을 남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바로 이 시점에서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와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분리된다. 정치인 안철수가 정치혐오와 회의를 유발하는 한 축으로 전향함과 동시에 안철수라는 이름이 빠진 현상은 그 기저의 정치혐오를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

결국 새정치는 기초공천제 폐지가 물 건너감과 동시에 남는 것이 거의 없음이 밝혀졌다. 본격적인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새정연의 창당은 기껏 기초공천제 폐지를 관철하기 위한 방법론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새정연이라는 정당의 목적은 정권창출이고 그 목적의 달성은 향후 2017년 대선의 정권교대에 시점이 맞추어져 있다. 기초공천제 폐지는 이 목적달성을 위해 대중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에 불과할 뿐이었다. 결국 현상의 포섭을 포기하면서까지 창당된 새정연은 지금까지 있어왔던 정계재편의 폐단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 보스정치의 패러디

잠깐 정계재편의 과거를 복기해보자. 1980년대 이후 굵직한 몇 번의 정계재편이 있었다. 1985년 신민당의 민한당 흡수·통합은 군부독재정권을 견제할 수 있는 거대 야당이 출범했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당시 187석의 지역구 의석 중 민정당이 87석을 점유했지만, 신한당과 민한당이 합쳐 76석을 확보함으로써 민정당과 신민당 간의 거대 양당 대립구도가 형성될 수 있었다. 여기서 확인해야 할 것은 민한당과 신민당의 통합이 어떻게 가능했느냐는 점이다. 물론 양 당 간에 이념의 차이도 크지 않았고 정책적 간극도 그다지 없었다는 점이 통합의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는 중앙지도부의 합당의사만으로도 통합이 가능했던 비민주적인 정당구조가 신민당의 창당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군부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규모를 갖춘 통합된 야당이 필요했던 신민당 사례와 비견되는 것은 1990년 민자당의 탄생으로 이어진 3당 합당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정당과 김종필 주도의 신민주공화당 및 김영삼 주도의 통일민주당이 합당하여 민자당을 창당했다. 정권장악의 욕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는데, 이때에도 3당 합당이 가능했던 결정적 이유는 각 당이 총재에게 공천은 물론 합당까지 포함해 모든 당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비민주적 정당구조에 있었다.

당대당 통합의 형식은 아니었지만, 1997DJP연합도 빼놓을 수 없다. 1995년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DJP연합이라는 지역연합을 시도했다. 앞서의 두 경우와는 달리 이때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이념이나 정책을 완전히 달리하는 정당이었다. DJP연합은 지역할거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 정당의 현실에서 지역분점의 효과를 높이려는 목적 하나로 구성된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기묘한 지역연합 역시 당 지도부의 독단적 결정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 시기까지 확인되는 것은 각 정당의 실권자는 기반지역의 맹주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2003년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외연적으로는 기존의 정계재편과 차이가 있다.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개혁국민정당의 인사들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아 노무현 전 대통령을 구심으로 몰려들었다. 즉 열린우리당이 보여줬던 구정치와의 차별성의 근저에는 노 전 대통령이라는 인물이 주요하게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물중심의 정당이 가지는 한계가 여전히 노정된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소위 탄돌이들의 돌풍으로 의회과반수를 점유했으나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2005년 재보궐선거에서 연속된 패배, 대연정 제의의 불발, ‘좌회전 깜빡이를 켠 채 진행된 우경화가 진행되면서 구심점의 역량이 소멸됨과 동시에 당 또한 와해되었다. 결국 시기적 특수성에 편승했던 효과를 살리지 못한 채 기존의 보수정당들이 걸었던 길을 똑같이 걸었던 것이다.

보수+민주개혁세력들만 이런 식의 정계재편을 경험한 것은 아니다. 2011년 통합진보당 창당은 진보세력도 마찬가지의 경로를 따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탈당파, 국민참여당이 정파연합당의 성격으로 합당한 정당이 통합진보당이었다. 통합과정에서부터 자유주의성향의 국참계와 종북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연합계열의 구 민주노동당계, 그리고 진보신당의 당론을 위배하고 탈당한 인사들의 성향이 화학적 결합을 이룰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있었다. 그 한계는 너무나 빨리 드러나게 되는데, 2012년 총선 이후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알력이 심화되면서 비례후보 경선과정의 문제가 불거져 폭력사태까지 유발되었다. 결국 구 민주노동당계의 인천연합, 진보신당 탈당파, 국민참여당의 인사들은 다시 통합진보당을 탈당해 정의당을 창당한다. 이념과 정강정책의 차이를 무시한 채 2012년 총선 및 대선을 목적으로 선거용 연합당을 창당했던 후과이다.

이상에서 간략히 살펴본 과거의 정계재편은 정당 내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신민당, 민자당, DJP연합은 전형적인 보스정치의 폐단을 드러낸다. 열우당의 창당과 해체, 통합진보당의 성립과 분열과정은 주요 인사들의 의중이 정당 내에서 작동하는 절차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기존의 굵직굵직한 정계재편은 이념과 가치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특정 인사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급조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는 새정연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기초공천제 폐지를 전면에 내걸었지만 그것은 새정치의 알리바이에 불과했다. 양 정치세력 간의 이해관계를 실질적으로 결합시켰던 것은 지방선거를 앞둔 양자의 곤혹스러움이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래 민주당의 행보는 제1 야당이라는 명색에 맞지 않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지지율은 하염없이 내리막길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을 적절히 소화하지 못하는 김한길 대표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라간 상황이었다. 한편 새정치연합은 2014년 초에 새정치신당이라는 당명까지 확정하고 217일 발기인 대회를 마쳤다. 그러나 이후의 진행은 지지부진해서 정당법에 정한 기준에 따라 창당하는 것도 버거웠고 당장 6월 지방선거를 준비하기에는 당력이 부족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은 이러한 양자의 곤혹스러움을 해소하는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나 양자 간의 이념적 공통점, 정강정책의 유사성이 통합의 전제가 되었다고 볼 수 없다. 애초부터 양자는 상호 비교를 해볼 수 있을 정도로 각자의 이념이라든가 정강정책을 명징하게 드러내 보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선거 시기 승률 높이기에 맞추어져 진행된 새정연의 창당은 새로운 형태의 정계재편은커녕 3김 시대 보스정치의 패러디에 머무르고 말았다.

 

6. ‘현상의 공범들

기성정치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야기한 안철수 현상이 희망과 기대로 전환하지 못하게 된 우선적 요인은 그 열망을 온전히 자기 개인에게 귀속시킨 안철수 자신이다. 정치인 안철수는 교과서적인 의미에서는 정치 신인이기 이전에 정치 문외한이었다. 반면 정치적 욕망의 차원에서 안철수는 상당히 효과적인 위상정립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정치혐오의 정치화에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음을 의미한다. 안철수의 정치적 지향이라는 것은 실제로 탈정치였는데, 그 요체는 정치의 자리를 행정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안철수는 기성 보수정치의 폐단을 비판했고 그 대안을 제출하지 못하는 진보정치의 무능함을 비웃으며 기성정치의 빈 공간을 헤집고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그가 현상의 열망들에게 제시했던 것이 바로 탈정치였다. 하지만 탈정치를 정치화하는데 성공한 것 자체가 결국 정치의 형해화로 이어지면서 현상은 힘을 잃게 된다. 요컨대 안철수는 자신의 정계진입의 발판으로 현상을 이용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현상은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 현상새로운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안철수가 정치라고 하는 것이 기실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정치혐오라는 현상은 과거와 절연된 채 근래에 불현 듯 등장한 어떤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류사에 정치가 등장할 때부터 정치혐오 역시 함께 등장했으며 둘의 관계는 빛과 그림자의 관계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다만 어느 때는 빛이 너무 강해 그림자가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때는 세상이 어둠에 먹힌 것처럼 그늘이 짙었을 뿐이다. 이 오래된 정치혐오를 탈정치가 해소해줄 수는 없다. 동물이 영양섭취의 방식을 광합성으로 바꿀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안철수 현상의 자양분인 정치혐오는 그 자체로 하나의 현상이다. 안철수 현상은 바로 이 정치혐오 현상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철수 현상에는 단순히 정치혐오로만 한정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지금과 다른 무엇에 대한 욕망이 더해져 있는 것이다. ‘현상이 정치화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그에 대한 또 다른 현상이 발생한다. 혐오와 회의의 대상인 정치로 전환되어버린 앞의 현상을 혐오하고 회의하는 후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쇄고리가 형성되는 이유는 현상이 열망하는 바, 기성정치와는 다른 형태의 정치에 대한 갈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순적이지만 숙명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이 한계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현상의 바깥에서 현상의 내용들을 수렴할 수 있는 정치세력의 등장이다.

새로운 정치라기보다는 새로운 인물을 갈구하는 대중들에게 나타난 제3의 인물들은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1992년 대선의 정주영이 그랬고 2007년 문국현이 그랬다. 안철수 현상이 정주영이나 문국현이 등장할 당시에 대중들이 이들에게 바랐던 것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정주영 현상혹은 문국현 현상이라는 용어의 정립까지 나가지는 않았지만, 당시 정주영이나 문국현이 보여주었던 기성정치와의 차별성이라는 것은 안철수가 보여준 그것과 실질의 측면에서 대동소이하다. 결국 열망의 연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현상은 새로운 것이 아님은 물론이려니와, 불행히도 현상으로까지 확장되고 심화되는 대중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대체물로서의 정치가 여전히 도래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보수정치는 물론 진보정치 역시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

새정연의 창당이 보여주는 민주개혁진영의 혼선은 새누리당으로 대변되는 보수진영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민주개혁이나 보수로 구분은 하지만 현실에서 이 둘은 매번 자리만 바꿔 공수를 주고받을 뿐인 거울쌍에 불과하다. 양자 모두 정치에 대한 회의와 혐오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인 동시에 그 회의와 혐오를 자신들의 정치지반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겐 현상을 포섭할 여지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현상의 증폭이 스스로의 살 길이 된다. 이 대목에서 안철수의 처신은 오히려 자신이 위치한 장소에 적절한 것임이 확인된다. 문제는 그 반대편에 위치한 진보진영이 현상의 열망을 자신들의 정치적 지형 안으로 수렴할 수 있는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철수 현상의 기저에는 이처럼 진보진영의 존재감 상실과 대안부재가 함께 자리한다.

진보진영이 현상을 해소할 수 있으리라 낙관할 수 없는 이유는 단지 현재 진보정당들이 사분오열되어 정치적 역량이 분산되어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보정치는 자신들이 상상하는 세계가 현실에서 실현가능하다는 경로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중의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진보정치는 현상과 조우하지 못한다. 전통적으로 강점을 보였던 복지의제는 이미 보수와의 차별성을 상실했다. 대북정책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평화담론은 안보상황이 도래할 때마다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고, 노동문제가 탈각된 탈핵정책은 녹색이라는 중립적인 단어와 등치되면서 하면 좋은 것으로 인식되는 수준에 머문다. 노동(계급)정치, 지역정치 등 의제는 내놓고 있지만 그러한 의제들이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을 정도의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진보정당의 사정이 열악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해산의 위기로 몰린 통합진보당, 계파 간 균형을 맞추기도 힘에 겨운 정의당, 생존이 목표가 되어버린 노동당이 현상의 저변을 흡수하고 궁극의 대안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획을 만들고 실현하기엔 물리적인 곤궁함이 존재한다. 돌이켜보면 과거에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13%가 넘는 지지를 받을 때가 있었다. 그것은 보수정치세력에 의해 강요된 양당체제에 진보정치세력이 파열을 내고 제3세력으로 정립하면서 현상이 요구하는 열망을 담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회적 기대가 반영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나았던 그 때 이미 진보정치는 밖으로는 <보수진영+민주개혁진영>의 정치적 프레임을 추수하기 바빴고 안으로는 사상과 담론투쟁이 아닌 정파 간 권력장악을 위한 분쟁에 휘말렸다. 외곽에 대한 무장해제와 정리할 수 없는 내파가 동시 진행된 후 진보진영은 <보수+민주개혁>진영과 함께 현상을 만들어낸 공범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현상을 희망과 기대로 전환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7. 이후의 정치에서 진보정치의 과제

6·4 지방선거가 치러지기 전에 작성되고 있는 이 글에서 지방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6·4 지방선거가 어떤 형식으로 끝나든 간에 향후 정치지형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각도의 분석과 예측이 필요하다. 특히 보수 양당에 의해 독점된 정치를 제어하면서 진보정치의 기획을 제시하기 위해서 이 작업은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현실정치 안에서 현상을 환상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정치가 세상을 바꾼다는 구호 또한 환상으로 전락할 것이다. 여기서 새누리당의 당권이 어떤 인물과 계파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인지, 혹은 새정연이 언제 다시 헤쳐 모여를 할 것인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새누리당에 편재된 보수진영이 환골탈태하는 상전벽해가 일어날 일은 만무하고, 역대 정당사를 통해 2년 이상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버려본 적이 없는 현 새정연의 일부 구성원들이 2016년 총선을 전후해 판을 흔들 것이라는 등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예상 정도면 족하다.

무엇보다도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면 보수와 진보 양자 모두 본격적인 구체제 극복형 정치기획의 구성에 돌입해야만 한다. 박근혜 정부의 등장이 유신의 부활이라고 우려하는 시선이 있지만, 그보다는 산업화 세력 대 민주화 세력의 대립으로 이어졌던 지금까지의 정치적 구획에 종지부가 찍혔다는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 더 많은 민주주의 또는 더 강한 민주주의가 계속해서 요청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더 이상 독재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형성된 민주주의담론만으로는 현상의 답보를 면할 수 없다. 이제 우리가 논해야 할 것은 어떤 민주주의인지이다. 특히 과거가 되어버린 어떤 특정 인물의 아우라를 등에 업은 상조회 정치는 이번 정부를 끝으로 호흡기를 떼게 될 것이다. 회고의 정치로는 대중의 정치회의와 정치혐오를 더 이상 극복할 수 없다. 전망을 내놓지 못하는 정치가 계속될 때 현상은 그 골의 깊이만 더해갈 뿐이다. 결국 더 신속하게 상조회 정치이후의 정치를 제시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향후 정치지형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이다.

정작 문제는 이 긴절한 이후 정치의 기획이 온전하게 진보정치의 숙제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환기하자면 현상은 보수정치를 당혹하게 하는 비정상성인 동시에 보수정치를 존재하게 하는 토양이다. 보수정치가 이야기하는 통합의 정치는 실상은 적이 보이지 않는 정치 또는 적이 없는 정치이다. 이것은 정치가 적과 동지의 구별에서 출발한다는 오래된 명제를 정면에서 위배한다. 결국 보수정치가 이야기하는 통합의 정치는 정치가 아닌 다른 무엇이다. 실은 자신들 외의 정치세력이 완전히 멸절된 상태에 대한 갈망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수사는 매우 정치적인 형태로 나타나며 보수의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 세력에 대한 투쟁으로 전환된다. 다만 이 수사가 가지는 효과라는 것은 여전히 현상현상으로 남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그렇기에, 보수는 그 명칭 그대로 현 상태를 지키는(保守) 것만으로도 자신들의 정치적 기획을 세울 수 있으며 전망을 제시할 수 있다.

반면에 진보는 혹은 좌파는 현상을 흡수하지 못하는 한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진보정치가 체계화된 세력의 힘으로 자신들과 함께 현상이 공명할 수 있도록 만들지 못한다면 결국 안철수의 분신들은 시기마다 이름을 달리하여 나타날 것이고, 그들은 반드시 민주개혁세력을 포괄하는 보수진영으로 수혈되어 갈 것이다. 세계사적인 예외가 있는지는 차치하고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현상을 등에 업은 제3세력 혹은 인물이 돌이킬 수 없는 우경화의 길을 밟는다는 것은 경험적 법칙이다.

진보정치는 의제의 나열보다도 자신들이 제시하는 기획이 진보적임을 입증할 수 있는 내용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작금 회자되고 있는 노동(계급)정치의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 그 이념과 가치가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대중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대기업/정규직/남성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산하 대형 노동조합의 정치화, 여성노동자/불안정노동/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세력화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았던 영세자영업자/농어민 및 장애인/소수자의 노동에 대한 문제가 포함되어야 한다.

또 다른 예로는 지역정치가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명칭으로 익숙한 지역정치는 최근 들어 그 취지가 굴절되는 양상이 엿보인다. 지역정치와 중앙정치를 분리하면서 한편으로는 지역정치를 전형적인 행정의 영역으로 뒤바꾸는 착시의 조장이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안철수가 정치적 생명을 걸고 달려들었던 기초선거 공천폐지다. 이처럼 정치를 관리의 차원에서 다루려는 것이 안철수식 지역정치의 문제라면, 다른 한편에서는 풀뿌리 추수로 경도되는 협애한 정치를 지역정치로 정의하는 경향이 발견된다. 이들은 정치를 행정으로 바꾸려하지는 않지만 중앙정치와 지역정치를 종속관계로 바라보면서 지역정치의 독립을 선언한다. 이러한 경향들을 극복하고 중앙정치와 지역정치가 가지는 역동적 순환관계를 형성해낼 것인가가 진보정치의 과제가 될 것이다.

더불어 진보정치는 이러한 주제들이 가지고 있는 상호성을 충분히 극대화해야 한다. 노동(계급)정치와 지역정치의 관계가 한 예가 될 것이다. 지역정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지역이라고 분류되는 공간적 구획에 모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 지역 안에서 생존을 위한 거의 대부분의 개인적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전제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는 개발독재가 산업화라는 지상과제를 수행하기 전까지만 적절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 특히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공간은 전통적 의미의 지역과는 거리가 멀다. 노동, 소비, 문화의 향유, 관계형성 등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과거의 어느 때처럼 일률적이지 않다. 오히려 내가 사는 집이 있는 지역은 내가 일상을 마친 후 잠을 자는 지역과 같은 의미일 때가 더 많다.

이 부분을 명확하게 살피지 않은 채 진행되는 지역정치 논의가 가지는 위험성 중 하나는 노동문제를 외부화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주민과 직접 연관을 맺는 대표적인 노동자는 아파트 관리인이다. 아파트 주민들이 관리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경비인력을 축소하거나 임금을 낮춘다면, 결과적으로 경비노동자의 일부는 실업자가 되고 어떤 일부는 생계비를 줄여야 한다. 이 때 아파트의 주민들은 사용자의 위치에 서지만 소비자의 감수성으로 행동한다. 경비노동자의 처우 문제는 주민들에게 노동 사안이 아닌 것처럼 인식된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아파트 주민들의 상당수는 노동자일 텐데 이들의 노동은 아파트 단지 내가 아닌 원격지에서 이루어진다. 그 중에는 노동조합원도 있을 수 있고 그가 속한 노동조합이 현재 쟁의를 벌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정은 그의 아파트 단지, 즉 그가 사는 지역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

진보정치의 역할은 여기서부터 비롯되어야만 한다. 열거된 문제가 언제나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개별적 해법을 제시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핵발전의 중단은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복지의 문제는 보편이냐 선별이냐를 획일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조세나 재정과의 관계까지 긴밀하게 살펴야 한다. 실은 이러한 부분은 하나하나가 모두 계급적 혹은 계층적 대립의 과정을 예고하고 있으며, 어느 계급계층과 함께 서야 할지를 끊임없이 결정하게 만드는 과정의 연속이다.

진보정치의 화두이자 딜레마는 또 있다. 무엇보다도 정치는 세밀한 정책이 아니라 인식의 확장이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가치의 충돌이다. “할 수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할 것이냐를 판단하는 것이 정치적 결단이다. 여기서 정책의 완성도가 결단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진보정치가 결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준비는 필요하다. 준비 없는 결단은 자승자박으로 돌아오기 일쑤인데다가 현재 상태에서 진보정치세력은 결단만으로 이 체제에 파동을 만들 수 있는 역량도 없다. 이 딜레마의 외줄에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그건 진보정치의 숙명이다.

 

8. 가야할, 그러나 아직 가보지 않은

진보정치가 자신의 내용을 준비하고 결단의 역량을 갖추게 된다면 6·4 지방선거 이후는 물론 상조회 정치의 종언 이후에 벌어질 정치판도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6·4 지방선거의 결과가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그 결과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정계재편의 과정에서 보수진영이나 민주개혁진영과 마찬가지로 진보진영도 어떤 식으로든 재구성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재구성이 새정연과 판박이가 되거나 통합진보당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좀 더 견고한 신념과 지향을 확인해야 한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세간의 힐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분리해야 할 때 분리하지 못하고 제 정체성도 확인하지 못한 채 외부적 강요에 의해 몸을 합치는 것이 진보정치의 역량을 갉아먹는다. 두려워할 것은 분열이 아니라 내가 누군지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편의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미 가버린 과거를 예언하기는 쉽지만 오지 않은 미래를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을 확인하고 거기에 당위를 부여하는 것뿐이다. 여기서 절감해야 할 것은 진보진영에 대한 대중의 부채감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으로의 정치에서 대중이 막연한 동정심이나 과거의 개인적인 부끄러움을 만회하는 차원에서 진보진영에게 호의를 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치적 결단을 해야 할 시기가 도래할 때, 승부를 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철저하게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재편의 과정에서 합종연횡을 하든 아니면 홀로서기를 하든 간에 그 기준은 이념적 혹은 계급적 정체성과 이를 근거로 하는 정강정책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보수와 진보의 양정립이 제대로 형성될 수 있다. 이것은 협애한 기준에 사로잡혀 외골수처럼 자기 기준에 집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판단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겠지만, 적어도 선거를 위해 혹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붙고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런 일로 인해 발생한 해악은 보수정당에 의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게다가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조직적 차원의 결정을 무시하면서 이루어지는 정계재편은 오래 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효과도 크지 않다. 닳고 닳은 보수정당은 거기서 뭔가를 빼먹을 수도 있겠지만 진보정당은 그럴 정도의 요령도 없고 또 그리 해서도 안 된다.

현장에서 본 진보정치는 십 수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이 위태롭다. 2000년대 초반에 잠깐 반짝했던 도약은 과거의 노력이 집약되어 나타난 성과이긴 했으나 지속되지 못했고, 하염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진보정치의 배고픔은 당분간 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돌파구는 여전히 정치에 있다. 탈정치의 정치화에 맞서 정치의 복원을 주장해야만 한다. 그것이 비록 지금까지보다 더 지난한 시간을 요구하고 더 험한 도정을 예고할지라도 말이다. ‘새 정치는 안철수에게 맡기고 우리는 좋은 정치를 기획하면 된다. 오래 전부터 이야기해왔지만 정작 아직 실현되지 않은 정치가 무수히 남아 있다. 진보정치가 가야할 길은 아주 명료하다.

 

불가능한 꿈을 꾸고

불가능한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별을 잡아라.” -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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