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LOGIN | 구)진보평론 홈페이지 가기| 이론지 보러가기  
 
특집·기획
좁쌀 한 알 장일순 선생의 삶과 사상
리영희의 유산: 계몽적 지성의 의의와 경계 긋기
민중사건의 증언: 안병무의 민중신학
탈냉전의 선지자, 문익환 통일사상의 현재성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민족의 미학화를 넘어
 
쟁점
‘진보 재편(결집)’ 논의를 보는 불편한 시선
<국제시장>, 혹은 어떤 가족 영웅의 뭉클한 도착…
교육노동운동, 성찰과 전망
전교조운동의 성찰과 전망: 하성환의 ‘교육노동운…
전교조 운동 노선에 대한 비판적 제언
 
정세·시평
‘존엄과 안전’을 새로 쓰자: 4·16 인권선언운동에…
첫 발 뗀 민주노총 2015년 총파업: 박근혜 정부의 노…
특별법 이후, 4.16 운동으로 다시 한걸음
민주노조운동의 새 지평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다시 함께 광화문으로 걸어야겠다: 세월호참사와 분…
 
국제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을 둘러싼 쟁점들
분리된 팔레스타인, 독립의 길목의 장애물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비판적 재해석과 한반도에 …
2014 유럽의회 선거와 좌파의 대응
미 연준의 자산 매입 축소와 신흥국의 금융시장 불안…
 
발언대
통합진보당 해산 이유와 교훈: 싸워야 할 때 싸워야 …
밀양을 말하다: 옴니버스 영화 <밀양, 반가운 손님…
수서발 KTX 노선 분할 민영화와 정부조달협정 개정은 …
한국연구재단 공모 사업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
공단조직화를 위한 모색, 새로운 가능성: 서울디지털…
 
일반논문
가사노동자 노동주체와 노동성격 변화
정치적 주체화란 무엇인가? 푸코, 랑시에르, 발리바…
한국 성소수자 운동과 제도화의 역설
‘영원한 미생未生’만을 위한 노동 공간: 30-40대 직…
우파적 감성과의 사상사적 대결: 오에 겐자부로의 “…
 
기획연재
계급투쟁에서 경쟁협조주의로
푸리에의 <사랑의 신세계>
국가와 폭력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 3권 서평
모든 정당을 없애야 하는 이유
 
현대 정치경제학 비판
캔커피의 진정한 가격은 얼마인가?: 내재적 가치와 …
완전경쟁’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꿈
순환론과 동어반복: 수요-공급이론은 가격의 결정을 …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
 
소수자이야기
청소년성매매 어떻게 볼 것인가
같은 바다, 다른 사람, 상처는 아문 적이 없었다
거지와 국가
군대와 동성애: 로맨스, 폭력, 범죄화, 그리고 시민권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 장애인 탈시설자…
 
다시읽기
자본주의와 주술(화)의 관계: 막스 베버와 발터 벤야…
‘비정상의 정상화’를 의문시하기: ‘포스트 민주…
이윤율의 경제학’에서 ‘소득의 정치학’으로?: G. …
"대표의 개념"과 "선거는 민주적인가": 정치적 대표와…
"증여론"과 "세계사의 구조": 순수증여의 존재론
 
남성이 읽는 페미니즘 고전
성의 정치경제학과 섹슈얼리티의 정치학
'소수자의 리액션’ 혹은 울프식의 ‘뼈 있는 수…
잉여의 시대-타자의 삶
책임 담론이 책임질 수 없는 것
객관성과 중립성의 신화 부수기: 페미니즘 지식이론
 
서평
프레카리아트의 호명과 그 이후
‘나’의 인권이 아닌 우리들의 ‘인권들’
표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소수자들의 삶과 문학 )
비판과 운동의 맑스주의 형성사("탈정치의 정치학")
신자유주의는 미래를 수탈한다(홍석만 송명관의 부…
 
기타
일곡유인호학술상(인권과 인권들) 수상소감 및 심사…
제7회 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소감문 및 심사의 변
최진석 비판: 자유인가 무책임인가, 경계와 교차로에…
24시간 사회의 이면:
홉스봄을 읽으며, 홉스봄을 추모한다
 
 
 
  정세·시평
 
작성일 : 14-09-23 11:43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며: 밑바닥 인생 하청기술자들의 저항
 글쓴이 : 박점규
조회 : 433  

진보평론 61호(2014년 가을) 정세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며: 밑바닥 인생 하청기술자들의 저항

박점규 _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외환위기 이후  달라진 노동지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노동지도는 정규직 중심의 안정된 일터에서 비정규직 중심의 불안정한 일터로 바뀌었다. 1990년대 중반 조선업종에서 시작된 일터의 하청화가 외환위기 이후 제조업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확산되더니 2000년대 들어 공공부문과 민간 서비스업까지 전 산업의 영역으로 퍼져나갔다.

지난 71일 정부가 공개한 고용형태 공시자료를 보면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정부가 소속 외 근로라고 표현한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가장 많았고, 제조업 중에서는 조선업(64.5%), 철강금속(37.8%)이 높았다. 전 산업 평균은 20.1%였지만 재벌 대기업일수록 간접고용 비율이 높았다.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등을 운영하고 있는 롯데쇼핑은 직접고용 기간제를 합친 비정규직 비율이 무려 46.8%에 이르렀고, 20131만 명의 불법파견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이마트는 정규직 인원이 크게 증가했지만 여전히 비정규직은 30%에 가까웠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제조업과 유통뿐만 아니라 고급 기술자인 설치, 수리기사들도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로 만들었다. 삼성전자 184개 서비스센터 중에서 직영센터는 7개뿐이고 전국 177개 센터에서 일하는 6천여 명의 기사들이 모두 비정규직 하청에서 일한다. SK브로드밴드 91개 행복센터 4,500, LG유플러스 70개 고객센터 3,000여명도 모두 하청노동자다. KT는 직영으로 운영해왔던 올래설치-수리기사들을 하청으로 전환하기 위해 1만 명의 희망퇴직을 받았다. 태광티브로드, 씨앤앰 등 케이블통신 업계도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설치-수리기사들이 직영이 아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을 해왔던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노동조건이 향상됐지만, 기술서비스 노동자들은 법정최저임금을 받는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10

1999년 최초의 비정규직 투쟁이라고 불리는 한라중공업 사내하청노조 투쟁이 시작된 지 15년이 흘렀다. 곧이어 학습지, 레미콘, 방송사 비정규직노조가 잇따라 결성되었고, 2000년 한국통신계약직노조의 결성, 그리고 517일 파업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2003년 현대자동차에서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까지 지난 10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운동은 한국의 경제권력 재벌의 심장을 흔들었다.

지난 15년 동안 수많은 비정규직 노조들이 만들어지고 깨져나갔다. 최초 비정규직 투쟁이었던 한라중공업 사내하청노조를 비롯해 캐리어사내하청, 한국통신계약직, 하이닉스매그나칩, 뉴코아이랜드, 코스콤, KM&I 등 처절하게 싸웠지만 원청의 벽을 넘지 못하고 노조가 깨진 경우는 많다.

5천명이 넘는 조합원이 백 명 이하로 줄어든 전국학습지산업노조와 현대중공업, 한국지엠, 동희오토, 기륭전자, 쌍용차, 대우조선, KTX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극한의 투쟁을 통해 일부 정규직화나 복직을 쟁취하는 성과도 있었지만 현재 소수의 조합원으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정권과 자본의 극악한 탄압에 맞서 견결한 투쟁을 전개했던 현대하이스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상당한 힘을 갖고 노조를 유지하고 있다. 업종의 특성이 다르지만 화물연대, 플랜트, 타워크레인 등 건설운송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온갖 탄압을 이겨내며 탄탄한 조직력으로 싸우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운동은 인천공항, 학교 비정규직을 비롯해 공공부문과 홈플러스, 이마트 등 서비스부문 비정규직 노동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정권과 자본의 극한 탄압을 이겨내며 싸워온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성과를 이어 2013714일 무노조 삼성에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깃발을 올렸다. 그리고 태광티브로드, 씨앤앰,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기술서비스 노동자들의 노조 건설과 원청에 맞선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결성과 최종범 열사 투쟁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의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원청을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과 함께 노조결성이 대대적으로 추진됐다. 714일 전국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400여명이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노조 가입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수기를 경과하면서 삼성의 대대적인 탄압과 물량 빼가기로 노동자들은 움츠러들기 시작했고, 조합원들의 노조탈퇴가 잇따랐다.

힘들어하는 동료들을 지켜보던 천안센터 최종범 씨가 20131031배고파서 못살았다.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투쟁을 시작했다. 서초동 삼성 본사는 건물이 지어진 이래 집회와 시위, 농성이 연일 계속됐고, 지역의 서비스센터에서도 투쟁이 벌어졌다. 금속노조는 112고 최종범열사 추모 삼성자본 규탄집회를 시작으로 매주 대규모 결의대회를 열었다. 삼성서비스 조합원들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생계의 압박 등으로 지쳐갔지만 포기하지 않고 농성장을 지켜냈다.

185개 시민사회단체는 고 최종범열사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별이 빛나는 돌잔치등 연대투쟁을 벌였다. 누구보다 유족들이 잘 싸웠다. 별이 엄마를 비롯해 최종범 열사의 유족들은 장례도 미룬 채 삼성에게 열사의 죽음에 답할 것을 요구하며 19일 동안 삼성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였다.

1220일 금속노조는 삼성전자서비스 하청업체(삼성TSP)의 교섭권 위임을 받은 경총이 노조활동 보장 근로조건 개선 유족 보상 등에 합의했다. 다음날 삼성전자서비스는 하청업체에 공문을 보내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말 것을 요청했고 1223일 보도자료를 배포해 유류비와 업무용 차량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사합의로 1224일 최종범 열사 자결 55일 만에 장례가 치러졌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진지 6개월밖에 안 된 신생노조였고, 삼성이라는 최대 재벌과의 싸움에서 한꺼번에 모든 것을 따내기는 어려웠다. 1,004명의 조합원이 삼성전자서비스 원청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하고 있었지만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받는 싸움은 쉽지 않았다. 장례를 치러야 했기 때문에 해를 넘기기 전에 투쟁을 마무리하려고 했고, 조합원들의 조직력이 약화될 우려도 있었다. 이런 기조에서 금속노조는 연말 전에 타결하려고 서둘렀고, 경총을 통해 삼성전자서비스 원청회사와 접촉하면서 유족보상을 중심으로 타협안을 만들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백혈병 사망 사태가 보여준 것처럼 금속노조를 비롯해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 삼성은 두려운 존재다. 최종범 열사가 자결하고 유족이 흔들리지 않고 싸웠는데도 삼성이 움직이지 않자 두려움은 커져갔고, 그만큼 요구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금속노조가 합의한 상대는 삼성전자서비스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협의회도, 경총도 아닌 하청업체였고, 이 업체의 사장은 고 최종범 열사에게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던 당사자였다. 악질 하청업체 사장은 최종범 사망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하는 것으로 끝났고 사장에 대해 걸어놓은 형사고소는 민형사상 상호 면책조항에 따라 고소고발까지 취하하기로 합의했다.

삼성을 교섭에 끌어내지 못하고 위장도급과 불법파견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최종범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 가해자인 하청업체 사장에게 책임을 물어 이 같은 사태가 재발되지 않게 할 것이라는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장례를 치르고 열흘도 되지 않은 올해 12일 삼성전자서비스 해남센터에서 하청업체 자재팀장은 노조에 가입한 서비스기사들을 불러놓고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과 욕설을 쏟아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삼성은 골치 아픈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문제를, 최종범의 죽음으로 인해 사회 문제로 확대되고, 연말 안녕들 하십니까의 열풍을 타고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문제를 하청업체 바지사장을 통해 해결했다. 삼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삼성은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푼 것이다.

 

2014년 임단협 투쟁과 염호석 열사 투쟁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임금과 단체협약 체결 급여체계 재편을 통한 생활임금 보장 체불임금(수당 등) 지불 지역분할 반대 협력체 장부와 법인통장 공개 조합활동 보장 불법 하도급 철폐 및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지역별로 임금과 단체협상을 벌였다.

새해가 밝으면서 본격적인 임단협 투쟁이 시작됐다. 조직력이 좋은 부산양산권 9개 센터 170여명의 노동자들이 113일 첫 파업을 벌였다. 이어 쟁의권을 확보한 지역에서부터 파업을 벌이며 부분파업, 게릴라파업, 순환파업, 전면파업을 전개했다.

총파업을 앞둔 517일 삼성전자서비스 양산센터 염호석 조합원이 투쟁이 승리하는 날 화장해달라고 부모님과 동료들에게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시신을 탈취하고 유골마저 빼앗았다. 노조는 19일부터 총파업을 선언하고 전 조합원 서초동 삼성본관 무기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위영일 지회장, 라두식 수석부지회장 등 3명이 구속됐다.

금속노조는 520임단협투쟁승리 민주노조사수 염호석열사투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삼성의 직접 사과 및 명예회복 노조탄압 중단 및 노조인정 위장폐업 철회 및 고용보장 월급제 생활임금 보장 및 임단협 체결 등 4대 요구를 내걸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전체 1,500명의 조합원 중 쟁의권을 확보한 1천여명을 중심으로 노숙농성을 벌였다. 519850명에서 시작한 농성은 5월 말 700명 정도로 줄었지만 6월 말까지 노숙농성 대오가 줄어들지 않았다. 수원농성장과 양산분향소 50여명의 조합원을 포함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농성에 참여하지 못한 조합원들을 고려하면 대다수가 45일 동안의 노숙투쟁에 참여했다.

사회적 연대는 고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결성한 공정사회파괴 노동인권유린 삼성바로잡기 운동본부가 맡았다. ‘삼성바로잡기 운동본부1월 말부터 삼성 백혈병 문제를 다룬 또 하나의 약속관람운동을 펼쳐 사회적 관심으로 만들었고, ‘반올림과 함께 3월 고 황유미 씨 7주기 행사를 하며 삼성의 백혈병과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 관심으로 끌어올렸다. 또 염호석 열사 시신탈취 이후 삼성전자서비스 고 염호석 분회장 장례절차 경찰력 개입 관련 진상조사보고서를 발행하고, ‘밥 한 끼, 양말 한 켤레’, ‘책 한 권, 빵 한 조각등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냈다.

금속노조는 522일부터 사측과 물밑 교섭을 진행했으나 사측에서 삼성 본관 앞 분향소 철수를 전제로 하는 교섭을 요구해 교섭이 결렬됐다. 하지만 사회적 반향이 확산되면서 528실무교섭에서 의견접근 시 본 교섭을 열어서 합의한다는 내용으로 교섭이 재개됐다. 616일 사측이 6차 제시안을 제출하자, 금속노조는 삼성전국쟁대위를 소집해 교섭경과를 보고하고 강도 높은 총파업 투쟁을 이어나간다. 현재의 사측 제시안을 수용하지 않는다 교섭이 재개될 경우 열사대책, 고용안정, 노조활동보장에 대해 명확한 안을 요구한다고 결정했다. 내용적으로는 타결 국면으로 방향을 잡았고, 626일 실무교섭에서 주요 쟁점사항에 대해서는 의견을 접근했다.

금속노조와 하청업체의 교섭권을 위임받은 경총은 고 염호석 사망 관련 원청사 보도자료 및 하청업체 책임자 처벌 방안 강구 폐업센터 2개월 이내 고용 승계 노조 활동 보장 기본급 월 120만원, 60건 초과 수당 지급 식대 가족수당 명절선물 지급 등에 합의했다. 또한 교섭중인 49개 서비스센터 노사 간의 단체협약의 기준이 되는 기준협약안을 합의했다. 지회는 628일 기준 단협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해 15백여명 조합원 중 쟁의권을 가진 조합원 재적 982, 투표인원 610(재적대비 62.1%) 534명 찬성(87.5%)으로 통과시켰고, 630일 염호석 열사 장례를 치렀다.

 

잃을 것 없는 노동자들의 저항

삼성의 옷을 입고 삼성의 전자제품을 고치는 기술자들의 월급은 주유소 알바와 다르지 않았다. 하청제도와 건당수수료라는 노예의 굴레에서 삼성서비스 노동자들의 삶은 밑바닥 인생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1년 동안 4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중 3명이 배고파서 못살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가진 것 없고, 잃을 것 없는 노동자들의 절규였다.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분노가 노동조합을 통해 폭발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지난 해 최종범 열사 자결 후 55일 동안의 투쟁에서도, 올해 지역별로 진행된 파업에서도, 또한 염호석 열사 자결 이후 45일 동안의 전면파업과 노숙농성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버텨냈다.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싸워야 밑바닥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금속노조 지역지부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길잡이였다. 투쟁 경험이 풍부한 지역지부 활동가들이 삼성서비스 노동자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진정한 노동자로 성장하도록 안내했다. 지역별로 편차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금속노조 지역지부가 전면적으로 결합해 투쟁을 만들어냈다.

삼성서비스 노동자들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단체로 관람하고 지역과 중앙의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하면서 삼성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갔다. 지역 사회운동단체, ‘삼성바로잡기 운동본부의 헌신적인 연대가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삼성의 하청노동자들이 삼성과 직접 교섭을 하지는 못했지만 무노조 사슬을 끊고 당당하게 노동자임을 선포했고, 투쟁의 과정에서 삼성을 향해 한발씩 나아갔다. 그리고 싸우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전진이라고 할 수 있다. 타결 이후 조합원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노조를 세우는 일과 원청의 사용자성

민주노조를 세우는 일은 삼성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어느 자본에게서나 어렵다. 자동차부품회사인 KM&I 군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노조의 연대와 금속노조의 지원을 받으며 전면파업, 공장 점거, 집단 단식 등 수많은 투쟁을 벌였지만 끝내 노조 깃발을 세우지 못했다. 지금 존재하는 비정규직 노조들 중에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탄압과 폭력을 겪지 않은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이번 노사협약 타결은 그 동안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 온 삼성이 노동조합을 사실상 인정했다는 점에서, 또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에 대한 원청 사업자의 책임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이 노동조합을 사실상 인정한 것은 맞지만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 책임은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이를 잘 알기 때문에 금속노조도 비록 단체협약 내용은 부족하지만, 이는 지회가 단협을 가진 실제적인 노동조합이 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승리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는 의미였다.

삼성 투쟁에 함께 했던 사회진보연대는 백년 갈 튼튼한 노조로 만들자는 글에서 마침내 승리했다다윗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골리앗 삼성을 꺾은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이 싸움은 다윗이 골리앗 삼성 앞에 한 발자국 다가간 것으로 의미 있는 전진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합의 직후인 719일 삼성전자서비스 부산 광안센터에서 근무하던 한 수리기사가 저임금으로 인한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을 남기고 목을 매 자살했다. 그리고 기준협약이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아 싸움이 계속되고 있기에 위대한 승리라고 할 수는 없다.

지금은 현대제철 순천공장이 된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이 있다. 2005613일 전체 4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중에서 10개 업체 130명이 금속노조 현대하이스코지회를 설립했다. 회사는 4개 업체를 폐업하고 120명을 해고했다. 사내하청 노동자 61명이 1024일 순천공장 크레인에 올라가 1차 고공농성을 벌였고, 2006419일에는 33명이 2차 크레인 농성을 전개했다. 정권과 자본은 경찰특공대를 공장에 투입해 폭력으로 진압했고, 5명이 구속되고 100여명이 경찰 조사를 받는 등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51일 노동절 날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 120m 타워크레인에 올라 13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다.

2006513일 금속노조와 현대하이스코는 비정규직 해고자 120명 전원복직 고소고발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 취하 비정규직 노조활동 보장 등에 대해 합의했다. 이 합의서에는 현대하이스코 협력업체 3명의 대표 이름과 함께 원청인 현대하이스코 나상묵 공장장이 함께 서명했다. 합의서를 보증하기 위해 순천시장이 함께 서명했다. 원청인 현대하이스코가 직접 교섭에 나와 서명해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노조설립 9년이 지난 지금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을 이뤄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직접고용 정규직화 요구가 희미해져가고, 하청업체와의 임금 및 단체협상에 매달렸다. 10년 가는 노조가 됐지만 공장 안에서 2등 노동자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첫 발을 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가야 할 길은 100년 갈 노조가 아니라 진짜 사장을 찾아 나서는 길이다.

지난 10년 이상 처절한 비정규직 투쟁이 계속돼왔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 주체들의 투쟁 의지, 산별노조를 비롯한 노동운동의 역할, 사회적 연대의 힘이라는 세 가지가 제대로 결합될 때 승리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사회운동의 역할에 대한 반성적 평가가 필요하지만 무노조 삼성을 깨트릴 수 있는 일단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이번 투쟁의 사회적, 정치적 의의가 결코 작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투쟁이 부분적인 성과를 쟁취한 것이라고 할 때 풀어야 할 더 많은 과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모두가 알고 있듯이 무노조 삼성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주체들의 더 많은 투쟁과 연대의 힘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그런데 이번 투쟁 과정에서 보듯이, 또한 또 다른 사업장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투쟁에 나서는 주체는 언제나 존재한다. 문제는 오히려 상급단체나 연대 세력이 투쟁하고자 하는 주체의 의지나 뜻을 충분히 살릴 수 있을 만큼 뒷받침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노동조합이라는 형식에 갇히거나 가두는 투쟁으로 제한하려 한다면 노동조합 차원의 투쟁마저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만 한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트온 쪽지로 보내기

 
   
 

Copyleft by 진보평론(The Radical Review)   전화: 02)2277-7950 팩스: 02)6008-5138
(우100-391) 서울 중구 장충동1가 38-32 파인빌 4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