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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작성일 : 12-12-13 17:14
베네수엘라 대선: 차베스 4선의 정치적 의미
 글쓴이 : 원영수
조회 : 911  

베네수엘라 대선: 차베스 4선의 정치적 의미

원영수/  도서출판 타흐리르 편집장, 진보전략회의 운영위원



 들어가는 말


지난 107일 베네수엘라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우고 차베스가 승리하여 4선에 성공했다. 이로써 20132월에 시작되는 6년간의 임기를 보장받았다. 선거당일 일부 출구조사에서 차베스 패배의 오보소동이 있었지만, 미국이나 수구적 제도언론의 주관적 희망과 달리 차베스는 예상대로 승리했고 그들도 별 시비 없이 결과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집권당 베네수엘라 통합사회주의당(PSUV)의 후보로서 우고 차베스 프리아스(Hugo Chavez Frias)와 야당 정의제일당((Movimiento Primero Justicia, PJ)의 엔리케 카프릴레스 라돈스키(Henrique Capriles Radonski)는 각각 애국 대동맹(Gran Polo Patriótico, GPP)과 민주단결 연합(Mesa de la Unidad Democrática, MUD)의 선거연합을 매개로 전면적 대결을 벌였다.

최종투표 결과 차베스는 8,161,640(55.25%)를 얻었고, 야당후보인 엔리케 카플릴레스는 6,554,725(44.26%)를 얻었다. 두 후보 간의 격차는 약 11퍼센트(160만표)였다. 과거 야당들의 지리멸렬한 선거운동으로 인한 대선들에 비해 격차는 현격히 줄어들었다. 국내외 반차베스 세력은 다가오는 지방선거와 포스트 차베스 체제의 가능성에 새로운 기대를 걸고 있다.



이번 대선의 특징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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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차베스의 당선 자체나 두 후보 간의 표차이가 아니라 높은 투표율에 있다. 전체 18,733,198명의 유권자 가운데 15,092,598명이 투표에 참여한 80.59%란 높은 투표율은 선거와 투표가 희화화된 대공황 시대 민주주의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버락 오바마의 재선으로 끝난 미국대선이 참여율이 저조한 것과는 크게 대비된다.

높은 참여율은 한편에서 선거정치가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대중들에게 유의미한 공간임을 보여준다. 또한 베네수엘라의 첨예한 양극화를 반영하여 투표의 장 역시 가감이나 왜곡 없는 계급투쟁의 장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선거를 통한 변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대다수 선진 자본주의나 신흥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전혀 다른 맥락으로 역설적으로 장기독재라고 비난받는 차베스의 변혁과정에서 이룩한 민주주의의 성과이기도 하다. 특히 다양한 문맹퇴치와 교육 프로그램, 투표자 등록캠페인 등은 높은 투표율과 민주주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여기에 바로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혁명, 이른바 차베스 현상의 특수성이 존재한다.

주류언론은 이번 선거결과를 수용하긴 했지만, 차베스의 지지율이 낮아진 반면 젊은 야당후보의 선전과 높은 득표율에서 차베스 체제의 불안정성 또는 취약성을 지적하는 데서 위안을 삼고 있다. 이 지적은 일면 타당성이 있다. 왜냐하면 1998년과 2000, 2008년 대선에서 반차베스 진영은 차베스의 대중적 인기에 대적할만한 후보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20024월 쿠데타와 2002-2003년 석유총파업, 20048월 소환투표 등을 통한 탈법적, 합법적 정권타도 투쟁이 모두 실패하면서 자멸을 걸었던 데 비해 이번에는 반차베스 진영의 단결을 이뤘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류언론이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사실은 차베스의 득표수가 1998367만표에서 2012816만표로 2배 이상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는 지속적인 문맹퇴치 및 참정권 캠페인을 통한 유권자의 단순한 수적 증가만이 아니라, 베네수엘라의 사회적 변화와 정치적 개혁과정을 반영한 정치지형의 변화를 함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1998년 선거의 경우 투표율이 56%에 머물렀던 것은 주변적 민중의 사회적, 정치적 배제와 다수 대중의 정치에 대한 환멸 또는 실망이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2006년 대선의 경우 26퍼센트(차베스 62.9%, 마누엘 로살레스[Manuel Rosales] 36.9%)였던 격차가 이번 대선에서 약 11%로 줄어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반정부세력의 자멸적 전술의 후유증 속에서 치러진 2006년의 대선에 비해, 변화한 조건 아래서 카프릴레스 후보가 선전한 것이다. 그 결과 20122월 출마선언 이래 9월까지 기록했던 예상득표율 35%보다 10% 이상을 실제로 득표한 것은 카프릴레스 후보나 반정부 진영을 고무할 수 있는 점이고 다가오는 12월의 주지사 선거나 내년 4월의 시장 선거에서 더욱 공세적일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차베스의 득표율의 우위가 감소한 것은 2008년 개헌 국민투표 실패의 후유증, 정부와 당내 부패와 관료주의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지속적인 높은 범죄율 등 만성적 사회문제 등으로 인해 차베스 지지세력이 이탈했기 때문이다. 또한 민간언론을 장악한 과두제 우익의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악의적 선전공세, 막판 부동표의 야당후보 선회 등의 요소도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이번 대선에서 득표율 격차가 감소했다고 해도 차베스의 승리는 의문의 여지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선 승리의 의미는 다수의 베네수엘라 민중이 신자유주의 우파의 권력복귀에 반대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적 구체제로의 복귀에 단호하게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 승리를 통해서 우고 차베스는 급진적인 반자본주의 프로젝트, 21세기 사회주의 프로젝트를 중단 없이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게 됐다.

 

2012-2019년 사회주의 볼리바리안 정부를 위한 후보 우고 차베스 사령관의 제안 [요약]

 

1. (1819년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이후-필자 주) 200년이 지나 다시 쟁취한 가장 소중한 성과인 민족독립을 방어, 확대, 공고화할 것.

2. 야만적, 파괴적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우리 민중에게 가능한 최대의 사회적 보장, 정치적 안정과 행복을 보장할 베네수엘라의 21세기 볼리바리안 사회주의를 계속 건설할 것.

3. 아메리카에서 평화지대 창출을 확보하는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의 신흥강국의 일부로서 베네수엘라를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강국으로 변화시킬 것.

4. 우주의 균형 성취를 이룩하고 지구의 평화를 보장할 다중심적 세계를 만들 새로운 국제적 지정학의 발전에 기여할 것.

5. 지구의 평화를 유지하고 인류를 구할 것.

 

 

차베스 비판의 미몽

 

한국 내에서 차베스현상에 대한 이해는 지극히 우려스럽다. 이른바 진보진영조차 미국에 맞장 뜬 차베스 식의 선정주의적 이해는 차치하더라도, 차베스를 돈키호테적 인물로, 베네수엘라 체제를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는 피상적 접근을 반복한다. 불행하게도, 사실관계를 떠나, 이런 접근은 미국의 집권세력과 베네수엘라 과두제 블록, 그들과 결탁한 국내외적 주류/제도언론이 주도하는 반차베스 선전선동의 내용과 별 차이가 없고, 근거도 취약하다.

물론 차베스 개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볼리바리안 혁명의 한계임에 분명하다. 암 진단 이후 차베스의 개인건강이 돌발변수로 잠복해 있고, 혁명의 핵심적 문제 중의 하나인 주체와 조직문제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국제적 환경 역시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차베스와 볼리바리안 혁명의 취약성과 문제점에만 초점을 맞추는 차베스 비판은 결정적으로 베네수엘라의 격동적 역사, 그 속에서 민중의 투쟁을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결정적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차베스에 대한 비판이 유의미하려면, 베네수엘라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더불어, 이른바 베네수엘라 야당, 반정부진영에 속한 정치세력들의 역사적 뿌리와 그들의 실체에 대해 이해가 없다면 차베스 비판은 무의미하다. 차베스 비판이 최소한의 의미를 가지려면, 이른바 야당의 실체를 정확히 직시해야 한다.

차베스 등장 이전 반세기 동안 석유자원을 사적으로 이용한 후견체제의 기득권 과두제 세력이 현재의 야당세력이다. 비록 정치권력은 빼앗겼지만 이들의 재산과 권력, 영향력은 여전히 그들의 수중에 있고 차베스 정권하에서도 그들의 기득권은 전혀 침해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석유붐과 광범한 개발프로젝트를 통해 그들의 부는 증가했다. 더욱이 소수의 국영언론을 제외한 대부분의 TV 및 신문 매체를 독점한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영향은 여전히 막강하다.

반차베스 진영은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대중매체를 통해, 군인출신 독재자의 횡포에 맞선 민주주의 수호자로서 자신들을 묘사하지만, 그들의 실제적 행적은 전혀 다르다. 20024월의 쿠데타나 그해 겨울의 석유사보타지, 2008년의 소환투표 과정을 보면, 합법적이고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권을 온갖 불법적 수단과 폭력으로 타도하려는 탈법적 세력이다.

분열과 무능력으로 자멸을 길을 걸었던 반차베스 진영은 2008년 개헌 국민투표에서 승리하면서 나름 전기를 마련하였고 반차베스 진영이 광범하게 결집하여 이번 대선에서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적 뿌리와 차베스 정권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온갖 불법행위를 보면, 그들의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

 

 

계급투쟁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차베스주의의 진화

 

역사적으로 보면 베네수엘라에서 석유는 행운이자 재앙이었다. 1920년대 생산을 시작한 석유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보기 드문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을 결합시켰고, 이를 제도화한 것이 이른바 푼토피호 체제(Punto Fijo regime, Puntofijoism)이다. 1958년 출범한 푼토피호 체제는 외형상 선거민주주의를 정착시켰지만, 관료주의와 부패로 얼룩진 후견주의적 과두제 체제를 창출했고, 1970년대 경제위기와 석유가격 하락은 푼토피호 체제의 붕괴와 석유의존경제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의 석유수입은 19751인당 1500달러 수준에서 1999350달러로 하락하는 등 석유의존경제의 취약성이 드러났고, 이에 대한 과두제의 대응은 1989IMF에 의한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로의 선회로 집약됐다. 이에 저항한 카라카스 봉기(2천여 명 사망)는 푼토피호 체제의 종결을 상징하며, 이후 제도정치의 붕괴와 가두정치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우고 차베스가 등장했다. 1992년 군사 쿠데타의 실패 이후 차베스와 MBR(혁명적 볼리바르주의 운동)은 제도를 통한 변혁의 길을 선택했다. 1998126일 차베스주의 정당인 제5공화국 운동(MVR)과 선거연합 애국동맹(PP)의 후보로 차베스가 나서 56.2퍼센트란 압도적 득표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애당초 이른바 3의 길로 출발한 우고 차베스의 정치적 진화는 핵심적으로 2002411일 민군합동 쿠데타와 민중의 반격, 2002년 겨울 석유동결파업과 민중의 자발적 조직화, 20048월 소환투표 승리 등 반동과의 대결을 통해 급진화의 경로를 취했다.

차베스는 국내적으로는 플란 볼리바르와 각종 미션을 통해 민중의 상태와 생활을 개선하고 복지를 확대하여 빈곤과 투쟁했다. 국제적으로는 석유정치의 부활과 라틴아메리카의 단결을 추진함으로써,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에 맞섰다. 국내외 반동과의 투쟁에서 정치적 승리를 거두면서, 차베스주의 운동으로, 볼리바리안 혁명으로, 다시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으로 진화해 갔다.

특히, 결정적 계급투쟁에서의 승리 이후, 손쉬운 승리를 거둔 2006년 대선 이후, 차베스 정권은 21세기 사회주의 프로젝트를 공표했고, 일련의 국유화(석유, 전기, 텔레콤, 은행, 철강, 시멘트, 식량생산 등), PSUV 건설, 국유기업의 노동자 참여 및 자주관리, 풀뿌리 코뮌평의회(consejos comunales) 조직화 등의 혁명적 과정을 폭넓게 추진했다.

짧게는 1998년 차베스의 대선승리, 더 길게는 1989년 카라카스봉기와 푼토피호 체제의 붕괴와 1992년의 군사쿠데타로 시작된 볼리바리안 혁명은 반신자유주의에서 21세기 사회주의혁명으로 진화했다. 물론 이 실험이 21세기의 새로운 사회주의혁명인지는 아직 입증해야한 하는 열린 과제로 남아있지만, 차베스와 볼리바리안 혁명의 진화는 주류언론의 이미지 조작으로 왜곡된 인상과 달리, 압도적 다수의 베네수엘라 민중의 지지와 그들의 풀뿌리 투쟁에 기반한 것이다.

이는 제도정치의 틀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플란 볼리바르, 각종 미션 등 다양한 민중주체들의 대중적 사업을 통해서, 그리고 초기 볼리바리안 서클에서 PSUV에 이르기까지 주체의 조직화 과정을 매개로 진행됐다. 이런 투쟁과 건설의 과정은 흔히 베네수엘라의 민간언론과 미국 등 국제 언론에서 차베스의 선심공세, 매표 공작정치로 매도됐다. 그리고 이런 왜곡된 관점과 악의적 보도는 별 여과 없이 한국내 언론을 지배하는 것이 현실이다.

베네수엘라는 아마도 가장 양극화된 사회이다. 이는 차베스혁명의 결과라기보다 푼토피호 체제의 붕괴가 가져온 결과이며, 차베스의 등장과 볼리바리안 혁명보다는 혁명과정에 대한 과두적 세력의 반동적 대응으로 더욱 강화되고 고착됐다. 따라서 베네수엘라의 극단적 양극화문제는 국제적 주류미디어가 요구하는 급진적 볼리바리안 프로젝트의 온건화보다는 과두제 세력의 기득권 박탈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21세기 사회주의혁명과 차베스 집권 4기의 과제

 

내년 2월 출범하는 집권4기 차베스 정권의 과제는 기본적으로 21세기 사회주의 프로젝트인 볼리바리안 혁명의 공고화에 있다. 이는 1989년 카라카스 봉기로부터 시작한 반신자유주의-반자본주의적 투쟁의 역사적 과정을 가속화함과 동시에, 내부의 주체역량을 재조직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세 가지 과제를 도출해 볼 수 있다.

우선, 미국 제국주의의 지속적 위협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는 베네수엘라 반정부 야당세력을 배후에서 조정하면서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지역패권을 재확립하려는 미국의 개입공세를 차단하되 라틴 아메리카의 독자적 지역연합을 강화하는 것이다. 2010년 온두라스와 2012년 파라과이의 쿠데타는 미국이 여전히 반미 친차베스 경향의 정권을 축출할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24월 쿠데타를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으로 극복한 볼리바리안 혁명의 성과가 지역 수준에서는 아직 공고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우려되는 지점이다.

둘째, 혁명내부의 과제로서 차비스모의 결정적 취약성으로 지적되는 부패와 관료주의를 극복할 혁명적 정치역량의 구축이다. 특히 2009년 경제위기를 기화로, 차비스모 내부의 계급투쟁이 격화됐다. 이른바 볼리부르게지아(boliburguesia: 볼리바리안 부르주아지)로 대변되는 차비스모 우파/온건파의 부패와 후견주의에 맞선 풀뿌리투쟁이 그것이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해서, 201110월 대애국동맹(GPP)이 결성됐고, 3만개 풀뿌리 단체를 포함한 비PSUV 세력이 결집하여 170만표를 추가로 조직한 바 있다. 혁명 속의 혁명으로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차비스모 내부의 혁신문제를 결정적으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혁명의 미래는 지속적으로 장애에 봉착할 것이다.

셋째, 포스트-차베스 시대를 대비한 민중적 집단지도력을 아래로부터 구축하는 것이다. 볼리바리안 혁명은 제도 외부의 광범한 대중적 지지에 기반하고 있지만, 동시에 제도 내부의 모순을 극복할 만한 충분한 역량을 구축하지 못한 만큼, 혁명의 미래는 대중의 지속적 자기조직화와 차베스의 과업을 계승할 집단 지도력의 구축 여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을 대신하여

 

이번 대선은 차베스의 승리나 야당후보와의 격차 등 표면적 결과 자체보다는 더 큰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볼리바리스모(Bolibarismo)1958년 체제 푼토피호주의(Puntofijosmo)와의 혁명적 단절을 의미하며, 우고 차베스 개인의 스타일을 넘어 강력한 반신자유주의, 반제국주의의 기조를 베네수엘라 민중운동과 결합하고 21세기 사회주의의 역사적 프로젝트를 실험하고 있다. 볼리바리안 혁명은 1917년 러시아혁명과 다른 경로를 취하고 있다. 1973911일 쿠데타의 비극으로 끝난 칠레의 실험을 실천적으로 극복하여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세기 좌파의 정통주의(?)가 제기한 틀을 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물론, 혁명의 과정은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특히 혁명의 조직화 과정은 불균등하고 주체 및 동맹의 이탈과 합류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혁명은 교육과 의료[미션을 통한 성과], 주택, 사회복지 등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성과를 거두었고, 국유화와 석유자원의 분배, 노동자 자주관리, 빈곤 등 경제적 성과, 선거권 확대와 민주적 절차 등 정치적 성과로 확장해 왔다. 그러나 협동조합, 빈민지원 프로그램 등의 실패 또는 부분적 성과, 낡은 국가기구와 구체제 세력의 잔존, 충분한 동기부여 부재와 경험부족 등으로 인한 효율성 제고의 실패 등의 주체적 요인은 혁명의 장애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는 혁명의 미래에 불확실성이자 긴급한 과제이다.

그렇지만 베네수엘라 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08년 연임개헌 과정의 그림자, 차베스의 건강 등 불안정한 요소는 있지만 실험은 계속될 것이고 주체가 원치 않아도 계급투쟁은 제도안팎에서 계속될 것이다. 포스트 차베스의 문제도 과제로 남겠지만, 차베스 이후의 체제에서 베네수엘라 민중은 성공이든 실패든 불가피한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고, 공황시대 거의 유일한 민중적 정치체제의 미래를 보여줄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 역시 핵심은 주체의 문제다. 지금까지 혁명은 이미 만들어진 교리나 학설에 따른 로드맵이나 시나리오 없이 진행됐고, 그 수준에서 최대치의 성과를 이뤄냈다. 그러나 그 성과는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차베스 개인을 넘어설 집단주체와 조직화는 PSUV로 집약되고 있지만, 21세기 사회주의 프로젝트의 조직적 수단으로는 아직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한계를 넘어가는 주체형성과 조직화는 베네수엘라 혁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이 과제는 베네수엘라의 국경이나 라틴대륙에 한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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