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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좁쌀 한 알 장일순 선생의 삶과 사상
리영희의 유산: 계몽적 지성의 의의와 경계 긋기
민중사건의 증언: 안병무의 민중신학
탈냉전의 선지자, 문익환 통일사상의 현재성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민족의 미학화를 넘어
 
쟁점
‘진보 재편(결집)’ 논의를 보는 불편한 시선
<국제시장>, 혹은 어떤 가족 영웅의 뭉클한 도착…
교육노동운동, 성찰과 전망
전교조운동의 성찰과 전망: 하성환의 ‘교육노동운…
전교조 운동 노선에 대한 비판적 제언
 
정세·시평
‘존엄과 안전’을 새로 쓰자: 4·16 인권선언운동에…
첫 발 뗀 민주노총 2015년 총파업: 박근혜 정부의 노…
특별법 이후, 4.16 운동으로 다시 한걸음
민주노조운동의 새 지평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다시 함께 광화문으로 걸어야겠다: 세월호참사와 분…
 
국제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을 둘러싼 쟁점들
분리된 팔레스타인, 독립의 길목의 장애물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비판적 재해석과 한반도에 …
2014 유럽의회 선거와 좌파의 대응
미 연준의 자산 매입 축소와 신흥국의 금융시장 불안…
 
발언대
통합진보당 해산 이유와 교훈: 싸워야 할 때 싸워야 …
밀양을 말하다: 옴니버스 영화 <밀양, 반가운 손님…
수서발 KTX 노선 분할 민영화와 정부조달협정 개정은 …
한국연구재단 공모 사업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
공단조직화를 위한 모색, 새로운 가능성: 서울디지털…
 
일반논문
가사노동자 노동주체와 노동성격 변화
정치적 주체화란 무엇인가? 푸코, 랑시에르, 발리바…
한국 성소수자 운동과 제도화의 역설
‘영원한 미생未生’만을 위한 노동 공간: 30-40대 직…
우파적 감성과의 사상사적 대결: 오에 겐자부로의 “…
 
기획연재
계급투쟁에서 경쟁협조주의로
푸리에의 <사랑의 신세계>
국가와 폭력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 3권 서평
모든 정당을 없애야 하는 이유
 
현대 정치경제학 비판
캔커피의 진정한 가격은 얼마인가?: 내재적 가치와 …
완전경쟁’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꿈
순환론과 동어반복: 수요-공급이론은 가격의 결정을 …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
 
소수자이야기
청소년성매매 어떻게 볼 것인가
같은 바다, 다른 사람, 상처는 아문 적이 없었다
거지와 국가
군대와 동성애: 로맨스, 폭력, 범죄화, 그리고 시민권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 장애인 탈시설자…
 
다시읽기
자본주의와 주술(화)의 관계: 막스 베버와 발터 벤야…
‘비정상의 정상화’를 의문시하기: ‘포스트 민주…
이윤율의 경제학’에서 ‘소득의 정치학’으로?: G. …
"대표의 개념"과 "선거는 민주적인가": 정치적 대표와…
"증여론"과 "세계사의 구조": 순수증여의 존재론
 
남성이 읽는 페미니즘 고전
성의 정치경제학과 섹슈얼리티의 정치학
'소수자의 리액션’ 혹은 울프식의 ‘뼈 있는 수…
잉여의 시대-타자의 삶
책임 담론이 책임질 수 없는 것
객관성과 중립성의 신화 부수기: 페미니즘 지식이론
 
서평
프레카리아트의 호명과 그 이후
‘나’의 인권이 아닌 우리들의 ‘인권들’
표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소수자들의 삶과 문학 )
비판과 운동의 맑스주의 형성사("탈정치의 정치학")
신자유주의는 미래를 수탈한다(홍석만 송명관의 부…
 
기타
일곡유인호학술상(인권과 인권들) 수상소감 및 심사…
제7회 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소감문 및 심사의 변
최진석 비판: 자유인가 무책임인가, 경계와 교차로에…
24시간 사회의 이면:
홉스봄을 읽으며, 홉스봄을 추모한다
 
 
 
  편집자의 글
 
 
치열한 역사의식과 실천이 빛났던 진보지성을 만나다
작성일 : 15-06-19 19:12
 글쓴이 : 최고관…
 
조회 : 1,337  

치열한 역사의식과 실천이 빛났던 진보지성을 만나다


이번호 특집에서는 ‘한국 현대 진보지성의 궤적’이라는 큰 제목을 가지고 일곱 명의 실천적 지식인의 삶을 되돌아본다. 지식인이라는 말이 남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지식인’ 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를 닦고 성찰하며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동양적 지식인의 참모습이다. 세상의 이치란 현실이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 착취하는 자와 착취 받는 자로 나뉘어 갈등하고 그 갈등의 힘으로 세상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 갈등과 변화는 항상 구체적인 역사적 형태로 드러난다. 언제나 지배하고 착취하는 입장은 필연적으로 변화하는 역사의 힘을 부정하고 ‘현재’를 자연스러운 상태로 정당화하는 논리를 찾는다. 그렇다면 지식인의 운명은 ‘비판’에 있을 수밖에 없다. 세상의 이치는 변화이며 변화를 거부하는 이데올로기를 깨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지식인의 숙명인 것이다. 그래서 지식인은 또한 실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당위적인 이야기이다. 많은 이들이 지식인을 자처하지만, 그리고 지식인으로 불리지만 비판적이지도 실천적이지도 않은 사람들이 허다하다. 지식인들이 모여 있다는 대학은 권력에 아부하고 자본의 비위를 맞추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은 권력과 자본의 편에 서서 그들이 ‘당연하다고’, ‘중립적이라고’, 그래서 ‘과학적이라고’ 우겨대는, 갈등과 변화를 부정하는 ‘정치적’ 입장을 뒷받침하는 담론 생산에 동원되고 있다.
이번 특집이 다루고 있는 일곱 명의 지식인을 모두 뛰어난 이론가라 부르기는 어렵다.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하고 학파를 형성한 학자라고 보기에는 제도권학문과 떨어져 있는 실천가였거나 후학들에게 어려운 숙제만 잔뜩 남겨둔 채 완결된 자기만의 사상을 구축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분들의 궤적을 따라가 보는 것은 그들이 현실을 대했던 치열한 역사의식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탄압과 억압의 시대에 비판의 정신을 굽히지 않았다. 권력 앞에 굴하지 않았고, 현실 운동에 함께 하면서도 자신의 입장만을 강변하지도 않았다. 현실이 가르치는 것, 동료들과 후배들의 비판에 귀 기울일 줄 알았다.
2015년 한국의 ‘지식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이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앞선 세대보다 학문적 토론의 수준은 높아졌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서구사상을 쫓는 식민지적 근성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받을 수는 있지만 수십 년 동안 쌓여온 학문적 성과의 두께는 학술 담론의 수준을 높여 놓았고 지식인 사회의 논쟁을 풍부하게 했다. 하지만 앞선 세대의 조금은 투박하고, 그래서 조금은 고집스러워 보이는 사상의 흔적에서 느낄 수 있는 지식인의 힘은 사라졌다. 사회운동가는 회사원처럼 기능인이 되어가고, 사회비판의 최선두에 서 있었던 대학생들은 취업에 모든 걸 바치면서 경쟁기계가 되어 버렸다. 지식인의 가면을 쓴 사람들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어줍지 않은 평론으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거나 정치권 주변을 맴돈다. 대학의 교수들은 연구재단이 이미 디자인해 놓은 연구의제에 스스로를 맞추어 버린 지 오래다. 그 정도가 아니다. 거대 자본이 대학을 인수하고 그들이 제공하는 연구비를 받기 위해 충성한 지도 오래 되었다. 그리고 소위 지식인들은 더 이상 타자의 목소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지식상품 제조기계가 되어 버렸다.
체계적인 저술을 남기지 않았지만 천주교, 기독교, 천도교, 불교, 도교를 아우르는 장일순 선생의 생명사상은 큰 울림을 남기고 있다. 이론이 아니라 무수한 자료를 읽고 그것에서 우리가 처한 역사적 현실을 읽어냈던 이영희 선생의 치열함은 후학들의 모범이 될 만하다. 척박한 학문적 풍토에서도 한국사회의 성격을 설명하고 변혁적 발전 방향을 모색했던 박현채 선생의 학문적 도전도 우리에게 깊은 고민을 던진다. 비록 자신의 학풍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후학들에게 공부하는 길을 스스로 실천하면서 보여주었던 김진균 선생의 스승으로서의 풍모는 자기 연구 성과를 위해 얕은 지식을 쥐어짜는 요즘 교수들에게서는 넘보지 못할 거대한 산이다. 안병무 선생, 문익환 목사, 그리고 유인호 선생도 그런 분들이었다. 하지만 감히 이 분들의 생각을 거칠고 미완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들의 실천과 그들의 생각이 풀어야 할 숙제로 우리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숙제는 이론과 실천이라는 열쇠 말 두 개가 동시에 없으면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이다.
특집에서 다루고 있는 사상가들이 군부독재의 철권통치 아래서 제한된 이론적 자원을 가지고 현실과 대면하면서 끌어낸 생각들은 이제 우리 현실에서 재해석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숙제를 남겨 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 숙제를 푸는 방법은 꽤 까다롭다. 갇힌 대학의 강의실과 연구실에서는 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남겨놓은 숙제는 억압받고 착취 받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사상과 이론을 고민해야만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숙제가 까다로운 이유는 또 있다. 실천이 필요한 만큼 이론적 숙고도 필요하다. 앞선 세대가 완성되지 않은 사상을 실천의 상태로 남겨 두었다면 거기서 부족한 것은 체계적이고 정교한 이론적 논의일 것이다. 현실과의 대면 속에서 살아 있는 상태로 남겨진 사상을 체계화시키는 작업은 유행하는 이론들을 차례로 섭렵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인내심을 요구한다. 뒤 세대의 지식인들은 앞선 세대의 생각을 버려두고 무수히 많은 화려한 담론의 세계로 나갈 것이 아니라 미완의 형태로 남겨진 생각, 실천 속에 담겨져 있는 생각을 디딤돌 삼아 새로운 이론적 발전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앞선 세대 실천적 지식인들에게 부족한 것이 정교한 이론적 자원이었다면 우리 세대에게 부족한 것은 실천이다. 비판적 지식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실천의 통로를 상실해 버린 우리가 앞선 진보지성들의 생각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은 바로 이 실천의 고리를 되찾기 위한 것이다. 삶을 대했던 치열한 모습을 통해 지적유희에 빠져 급진적인 담론과 수사를 실천으로 착각하고 있는 우리들을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환상에서 깨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의 일상은 이미 산산이 부서져 모든 타자를 적으로 하는 동물의 왕국이 되어 버렸다. 대학도, 지식인도, 심지어 시민운동도 이런 경쟁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있다. 지식은 비판의 무기, 실천의 무기가 아니라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모두가 ‘이건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모두가 이런 일상을 박차고 나갈 용기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장일순, 리영희, 안병무, 문익환, 박현채, 유인호, 김진균이 보여주었던 치열한 역사의식과 실천정신 말이다. 또 하나의 학습의 대상, 학술적 연구의 대상으로 이 분들을 불러내서는 안 된다. 한국 진보지식인들이 실천으로 복귀할 수 있는 자기반성의 출발점, 맨얼굴을 비출 수 있는 거울이어야 한다. 그 거울에 비추어진 우리들 모습을 직시할 때 이론과 실천이 결합된 현실에 대한 비판과 그 비판으로부터 도출된 미래를 얻게 될 것이다.
이창언이 "좁쌀 한 알 장일순 선생의 삶과 사상"에서 보여주려 한 것은 실천가로서의 장일순의 모습이다. 선생은 앞에 나서지 않았지만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역사의 현장을 지켰다. 이창언은 그 묵직한 발걸음을 소상하게 추적하면서 선생의 삶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실천의 정신을 이야기한다. 필자는 장일순이 1960-70년대 민주화운동으로부터 80년대에 생명사상을 기초로 한 ‘한살림’ 운동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서술한다. 장일순은 자신의 생명사상의 근본을 ‘밥사상’인 이천식천(以天食天)으로 내세우고 사회관계를 주와 객, 대립과 갈등구조 중심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공생 관계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그의 사상은 거대한 것을 주창(主唱)하는 중앙집중화되어 있는 남성 중심적 운동, 인간만을 생각하는 운동, 계급-혁명만을 앞세운 체제지향 운동을 넘어서야 함을 의미한다. 풀뿌리로부터 여성성에 근거한 생태중심, 생명중심 운동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장일순의 사상을 그의 삶의 궤적에서 떼어내면 현실인식이 결여된 종교적 낙관주의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실천 속에 있기에 빛이 난다.
이순웅의 "리영희의 유산: 계몽적 지성의 의의와 경계 긋기"는 분단한국의 현실과 대결했던 치열한 지식인으로서의 리영희의 삶과 사상을 되돌아본다. 그는 완결된 이론을 추구하기보다는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엄청난 자료들과 싸웠던 현실적인 유형의 지식인이었다. 리영희가 중국의 문화혁명을 높이 평가했다가 철회한 것이나, 소련과 동구 등의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독일이 통일되는 것 등을 보면서 사회주의를 비판한 것은 이러한 그의 지식을 대하는 실천적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그가 사회주의권 붕괴 후 주장한 내용은 보수 우익으로의 ‘귀순’도 아니고 사회주의를 포기한 ‘변절’도 아니었다. 이순웅에 따르면 리영희가 대안으로 내세운 사회민주주의 체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장점을 결합한 일종의 ‘결합물’이며 한반도에서의 수평적·중립화 통일론 역시 남북한이 서로의 장점은 받아들이고 자신의 단점은 극복하되, 외세의 예속에서 벗어난 자주적 평화통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리영희의 계몽적 지성을 유산으로 물려받으려면 이른바 ‘NL·PD’가 그었던 극단적 경계 긋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계 긋기, 경계 위에 서기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형묵의 "민중사건의 증언: 안병무의 민중신학"에서 복원된 안병무의 삶과 민중 신학도 실천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다. 안병무가 한국 민중신학의 시작을 전태일의 분신에서 찾고 있는 것은 의미가 크다. 전태일의 분신은 국가의 통치를 받는 객체인 ‘인민’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하여 일어서는 주체인 ‘민중’을 보여주었다. 안병무는 민중이 예수와 동일한 역할, 곧 메시아적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보았다.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초월인데, 안병무에 따르면 역사적 사건 안에서 민중이 자기초월을 하는 범례가 전태일 분신이었다. 최형묵은 안병무의 민중론이 성서에서 예수의 주변에 등장하는 ‘오클로스(oklos)’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 그리고 신학적 개념을 역사적·사회적 차원에서 소통시키려고 만든 개념이 ‘공(公)’ 개념이라는 것을 밝히면서 현재는 1970-80년대 민중신학이 갖고 있던 활력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민중신학이 제기했던 문제의식과 신학 방법이 갖는 의의는 여전히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엄연히 존재하는 민중 ‘실재’, 다양한 형태로 경험하고 있는 민중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이 있기 때문이다. 안병무 사상이 가지고 있는 실천적 성격이다.
이승환은 "탈냉전의 선지자, 문익환 통일사상의 현재성"에서 통일운동가였던 문익환의 사상을 되짚어 본다. 1989년 3월 문익환은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대화한 후 4·2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1974년 7·4남북공동성명이 남북 집권층의 합의만으로 서명·공식화된 것이라면 4·2공동성명은 조평통과 전민련이 서명했다는 점에서 7·4공동성명을 실질적인 국민 동의기반 위에 올려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승환에 따르면 4·2공동성명은 남한의 시민사회가 전면에 나서서 만들어낸 남북합의문으로, 문익환의 입장은 북의 논리와 사상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통일운동의 흐름을 정화하는 것이었고 이것이 남북 당국을 움직여 2000년 6·15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고 본다. 문익환을 탈냉전의 선지자라고 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문익환은 통일이 임박했다고 생각했는데, 통일을 위한 준비, 통일 이후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다는 것에 ‘몸서리쳤’다고 한다. 그러므로 문익환의 ① 민 주도 통일사상, ② 공존과 점진성에 기초한 한반도 통일과정론(과정으로서의 통일론), ③ 한국 민주화운동 성과의 통일운동 접목(즉 전국적 시야로의 발전), ④ 탈냉전과 ‘통일맞이’를 위한 실천적 준비 등은 우리 통일운동이 현재 여전히 마주한 문제들이다. 하지만 문익환은 반공주의와 분단국가주의를 극복하고 한국 통일운동의 사상·실천적 정점에 여전히 우뚝 서 있다는 것이 이승환의 생각이다.
류동민의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민족의 미학화를 넘어"는 박현채가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염두에 두면서도 끊임없이 현실 개선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했음을 말한다. 그리고 박현채 민족경제론의 구성요소는 민족경제와 국민경제의 괴리, 당위로서의 민족경제론, 민족적 생활양식론 등인데, 개인사적 단계에 따라 이들 구성요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재구성되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면 박현채는 1차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지만 정부에 비공식 자문을 한 단체인 국민경제연구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는데, 류동민은 이를 경제발전전략에 관한 현실 정책적 안목을 기르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한편 1971년 대통령 선거 때(1971년)는 김대중의 대중경제론 집필을 주도했고 2차 인혁당 사건(1974)에는 연루되지 않았다. 이러한 정황을 볼 때, 끊임없이 현실정치와의 결합을 모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본다.
김창근의 "유인호의 ‘민족·민중·민주 경제론’이 21세기 한국 자본주의에 주는 시사점"에서는 유인호가 일제 점령기의 한국 경제 분석, 미군정 하의 토지개혁 연구, 한국 농업의 협동화 연구, 한국에서의 경제민주화와 공해와 환경 문제에 대한 연구 등에서 중요한 업적을 낳았다고 본다. 이 글은 유인호의 업적 중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 기간의 ‘성과’와 ‘대가’에 대한 연구를 ‘국제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소개하고, 유인호의 연구가 21세기 한국 자본주의에 주는 시사점을 찾고 있다. ‘국제 정치경제학적 관점’은 1960-8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 과정을 설명할 때, 한국전쟁 이후 고착화된 냉전 질서 속에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정책과 냉전 체제 하에서의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및 분단 상황, 일본의 자본주의 발전 등의 국제 정치경제적 요인들을 강조하는 입장을 의미한다.
노중기의 "지식인과 실천, 하나의 전범(典範): 김진균 교수"에서는 지식인사회의 극적인 변화를 배경으로 거론하며 전통적인 지식인으로 어려운 시기를 올곧게 살았던 지식인 김진균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김진균은 박현채, 이영희, 강만길, 이효재 등 여타 1세대 지식인들과 비교하면 자신의 학문적 연구업적에서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다고 본다. 그럼에도 다른 이들과 달리 ‘민중의 스승’으로 불리는 이유를 고찰해보는 것이 글의 주요한 관심사다. 김진균은 1세대 지식인으로 자신의 지적 실천적 활동의 범위를 끊임없이 확대시켜 나갔고, 실천하는 지식인, 스스로를 지양(止揚, aufheben)하는 지식인, 연대하는 지식인이었다. 필자는 김진균의 삶이 현재의 지식인사회에 던지는 비판적 지점과 본질적 문제를 제기한다.
"진보평론"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완료될 때까지 세월호 진행상황을 끊임없이 추적하기로 했다. 61호 특집 "세월호 참사가 던지는 질문, 국가란 무엇인가"에 이어, 62호 시평 "다시 함께 광화문으로 걸어야겠다: 세월호참사와 분단체제를 넘어서", 63호 "특별법 이후, 4·16운동으로 다시 한걸음"에 이어 이번호 시평으로 손진우의 "‘존엄과 안전’을 새로 쓰자: 4·16 인권선언운동에 함께 합시다!"를 게재하게 되었다. 참사가 발생한지 1년여가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특히 진상규명이라는 측면에서만 놓고 보면 ‘왜 참사가 발생했는지’, ‘왜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 참사 당일과 납득할 수 없는 헛발질에 가까운 구조행위가 벌어진 당시의 시점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시도인 ‘진상규명’은 참사의 재발과 반복을 막고, 안전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다. 4.16인권선언 운동은 인권선언 참가자들이 스스로 실천을 조직하고 그 성과를 모아 내년 4월 16일 인권선언을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쟁점란에서는 고민택이 "‘진보 재편(결집)’ 논의를 보는 불편한 시선"을 썼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보 재편(결집)’논의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필자는 ‘진보 재편’을 이끌고 있는 세력과의 논쟁이 이 글의 목적이라고 한다. 이 글에서는 ‘진보 재편’ 흐름과 사실상 무관해진 ‘통합진보당’과, 동시에 기존 ‘진보정당’ 바깥에 포진해 있던 ‘좌파’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다. 강제 해산된 ‘통합진보당’과 나머지 진보 진영이 이번 4·29 선거를 불러온 원인이 되었던,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 문제를 정면에 걸고 선거에 임하지 않은 점, 즉 강제 해산을 저지른 국가 폭력에 맞서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문제제기하면서 국민모임, 정의당, 노동당, 노동정치 연대의 ‘선 야당교체, 후 정권교체’ 주장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다.
정세에서는 이승철이 "첫 발 뗀 민주노총 2015년 총파업: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에 맞선 민주노총의 대응"에 대해 써주었다. 2015년 노동정세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노동시장 구조개악안’은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이 초점으로 최근 민주노총은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과 공무원연금 개악 등에 맞선 4·24 총파업을 마무리했다. 65.1%의 투표율과 84.4%의 찬성률을 보이며 총파업 조직화의 기세를 높였다는 점은 분명 성과다. 그러나 4·24 총파업은 미완의 투쟁이다. 자신감과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으로는 성과라 할 수 없다.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과 공적연금 개악 시도를 일단 저지했지만, 정부가 정한 일정이 미뤄졌을 뿐, 투쟁이 끝난 것도 아니다. 2015년 총파업 투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일반논문으로는 강석금이 "가사노동자 노동주체와 노동성격 변화"를 보내주었다. 가사노동자들은 식모, 파출부, 가사노동자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었는데, 강석금은 전통적 ‘생계유지생산 노동’에서 벗어나서 독립적 경제를 계획하는 가사노동자들의 출현에 주목한다. 이들은 자본주의사회가 소외·배제시켰고 무의미한 노동으로 평가 절하했던 사적 영역의 가사노동을 전면적으로 재규정했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 노동자로 재해석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돌봄을 근간으로 한 모성이데올로기에서 노동을 근간으로 한 모성정체성으로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강석금은 노동자성과 노동권을 확립·확장할 수 있는 방법으로 ① 노동경험의 언어화·문서화·공론화 ② 노동체계의 구체화·데이터화 ③ 조직화 ④ 체계적인 기능교육을 제안한다.
소수자 이야기에서는 김연주의 "청소년성매매 어떻게 볼 것인가"를 게재하였다. 김연주는 10대 성판매 여성을 피해자로 볼 것, 그리고 청소년성매매를 자발적 거래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볼 것을 제안한다. 2004년에 제정된 성매매방지법은 성매매 여성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여성은 범죄자로 규정하는 문제를 낳았다. 그리고 2000년에 제정된 아동·청소년성보호법은 성매매를 하는 10대 여성을 피해자로 재규정하였는데, 성매매 원인을 청소년의 ‘미성숙’, 판단력 부족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매매 유입의 원인을 ‘연령’에서가 아니라 ‘계급’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원조교제에서 조건만남으로 변형된 청소년성매매는 자발적 성매매라는 외형을 띠고 있다. 필자는 이것을 사회구조적인 문제, 즉 수요, 젠더, 계급의 복합적 문제로 보고 심각한 인권 침해로 규정할 것을 주장한다. 사회 안전망의 부족, 사회적 낙인과 배제, 책임의 개인 전가, 무관심, 방임 등이 이들을 성매매로 유입/재유입시키는 원인일 뿐 아니라 성매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읽기에서는 장진범이 "자본주의와 주술(화)의 관계: 막스 베버와 발터 벤야민을 중심으로"를 썼다. 필자는 근대성 중에서도 자본주의와 ‘주술(화)’의 관계를 중심으로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발터 벤야민의 "종교로서의 자본주의"를 비교한다. 근대화가 된다고 해서 주술 또는 ‘비합리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또는 차라리 근대성 자체가 탈주술화와 (재)주술화가 뒤얽힌 복잡한 형세라고 역설한 이 둘의 공통적인 통찰이 옳았다고 본다. ‘역사의 종말’이 선포된 후 세계가 목격한 것은, ‘종교의 귀환’, ‘민족(주의)의 귀환’, ‘인종(주의)의 귀환’ 등 ‘비합리성’의 귀환이고 자본주의와 근대성 자체가 일종의 ‘세속화된 주술’, 또는 스피노자 식의 ‘미신’(superstition)을 구성적 계기로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인권과 인권들"(그린비, 2015)을 저술하여 제8회 일곡유인호기념사업회 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정정훈의 수상소감과 심사의 변을 게재하였다.
정정훈은 수상소감문 "맑스주의와 인권의 행복한 마주침"에서 맑스가 인권을 이기적 인간의 권리라고 말하던 시대는 인권의 전복적 힘이 부르주아의 헤게모니 아래 봉합된 때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봉합의 역사적 과정을 추적해보면, 인권이라는 이념이 국가체제가 등장한 이후 수천 년을 이어온 권리의 차등적 분배체제라는 역사적 권리체제를 전복하는 불온한 이념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오늘날 인권의 정치가 부르주아, 백인, 남성에 의해 봉합된 인권을 탈봉합하여 그 원초적 전복성과 불온성을 해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탈봉합된 인권의 방향은 맑스가 말한 ‘인간해방’,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의 구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정정훈은 맑스주의적으로 다시 사유된 인권의 핵심에는 권리의 코뮤니즘적 성격을 보여주는 관개인적 권리(transindividual right)로서의 인권 개념과 권리의 영구혁명, 혹은 무한한 정치화 성격을 보여주는 (불)가능한 권리로서 인권 개념이 있는데, 코뮤니즘적 권리를 현행화한 사회체제를 구축하더라도 인권의 정치, 또는 정치 그 자체는 결코 끝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일곡유인호학술상운영위원회의 심사의 변(辯)도 실었다.
5월에는 제8회 맑스 코뮤날레가 열렸다. 이번호 특집은 맑스 코뮤날레 "진보평론" 분과토론회를 겸해 기획되었기에 당일 발표되었다. 비록 참가자가 적은 토론회였지만 간간이 젊은이들도 보여 반가웠다. 어쩌면 우리와 단절되어 버렸을 지도 모르는, 불과 2-30년의 진보지성들은 시대를 어떻게 인식했고, 실천했는지 현세대도 공유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글을 보내주신 필자와 독자 제위께 감사 인사드린다. 

2015년 6월 5일
편집위원 서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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