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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쟁점
 
작성일 : 14-11-07 10:07
전교조, 불순한 정치를 말하다: 하성환의 ‘전교조 운동 노선에 대한 비판적 제언’을 비판하며
 글쓴이 : 이철호
조회 : 539  
진보평론 61호 쟁점

전교조, 불순한 정치를 말하다:
하성환의 ‘전교조 운동 노선에 대한 비판적 제언’을 비판하며

이철호 _ 학벌없는사회 운영위원

먼저 지금 전교조는 무얼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2014년 8월 29일 종로경찰서는 교사선언·조퇴투쟁을 주도한 혐의로 전교조 전임자 37명과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세월호 참사 교사선언을 게시한 혐의로 교사 6명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이중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 청와대 게시판에 세월호 참사 교사선언글을 올린 이민숙 선생님 등 3명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은 곧바로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사안의 중대성과 재범가능성, 증거인멸과 도망의 염려를 근거로 구속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2014년에만 교육부는 조합원들에 의해 선출된 각 시도지부장, 본부와 서울지부 전임자 전원을 기소했으며,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고, 미복귀전임자 직권면직 압박, 교사들에 대한 형사고발, 서버 압수수색을 이미 진행했다. 박근혜 정권의 전면적인 정치탄압 칼날에 전교조 조합원들의 상처는 아물 날이 없다.
하성환의 글을 읽으면서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내내 운동의 순수함이란 말이 떠올랐다. 전교조 운동이 순수했을 때는 대중의 지지를 받았으나 지금은 순수하지 못하고 정치적이어서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으로 말이다. 특히 조합원 대중은 교사로서의 순수함을 지키고 있으나 전교조의 상층 지도부들이 정치적으로 끌고 가기 때문에 일반 학부모들은 물론 조합원 대중의 지지조차 받고 있지 못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순수함이야말로 운동하는 자의 미덕이고, 운동조직이나 단체가 견지해야 할 원칙이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사실을 왜곡하여 대중을 현혹해서는 안 되며, 말과 행동이 달라서도 안 된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거나 순수하지 못하다고 비판을 받는 분은 프란치스코 교종과 김영오 씨일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정치적으로 중립이라는 질문에 대해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답했다. 게다가 김영오씨는 이혼을 하고, 자식을 돌보지 않았으며, 금속노조의 조합원이며, 심지어는 전라도사람이라며 불순한 의도로 단식을 했다고 그를 비아냥거리는 글들이 SNS에 넘쳐나고 있다.
게다가 개인이 아니라 전교조와 같은 규모를 가진 노동조합이라면 운동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 조합의 강령에 단체의 활동목표가 제시되어야 하고, 그 강령에 준해서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사업계획은 총회나 대의원대회를 통해서 인준되고, 집행부는 그에 근거해서 사업을 펼쳐나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전교조는 강령 전교조의 강령은 다음과 같다(전교조 홈페이지에서 인용함). “전교조는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을 위해 다음의 강령을 채택했습니다. 우리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확립과 교육 민주화 실현을 위해 굳게 단결한다. 우리는 교직원의 사회 경제적 지위 향상과 민주적 권리의 획득 및 교육 여건 개선에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는 학생들이 민주 시민으로서 자주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에 앞장선다. 우리는 자유, 평화,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국내 여러 단체 및 세계 교원 단체와 연대한다”.
과 대의원대회를 통한 사업 집행구조를 가지고 있다. 선출된 집행부가 사업의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되면 그 사업은 집행되지 않으며, 대의원대회를 통해 사업은 수정된다.
이 글은 하성환의 전교조 비판에 대한 의견이다. 비판 글에 대한 의견이라는 글의 성격상 하성환의 주장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마지막 네 가지 요구를 중심으로 논지를 펼쳐 나간다.

1. 담임수당 현실화 투쟁, 교사 잡무 철폐 투쟁, 학급당 학생 수 감축 투쟁 등 교사의 근무조건 개선 및 교육환경 개선 투쟁을 교육노동운동 조직 제1의 투쟁의제로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GDP 대비 교육예산 6% 확보 등 공교육 강화를 위해 총력투쟁을 전개할 것!

전교조는 교사들의 노동조합이니 교사들의 작업장인 학교 현장의 노동조건과 교육환경에 관련된 사안들에 집중해야 한다는 요구다. 특히 담임수당을 현실화하고, 학급당학생수라는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예산이 증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내가 아는 전교조는 지금까지 이 요구에 대해 외면한 적은 없었다. 학급당 학생수 감축은 언제나 교육환경 개선의 제일 요구였고, 교육예산을 증가하라는 요구를 펼쳐 왔다. 실제 전교조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전교조의 주요 사업과 그 성과를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활동1. 단체교섭을 통해 교원처우,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교원의 처우개선은 바로 질 높은 교육을 위한 첫출발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전교조는 단체교섭을 통해 교원의 처우를 개선했습니다. 교원정원을 대폭 확충하였습니다. 각종 수당의 기본급화를 주장, 임금인상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초등과 중등의 수당 차이를 없앴습니다. 다른 시도·군으로 부임할 때 이전비를 받도록 했습니다. 출근부, 학습지도안 검열 등 관료적 규제를 폐지하였습니다. 일직, 숙직제도를 폐지하였습니다. 각종 잡무를 대폭 축소시켰습니다.
활동2. 전교조는 혁신학교 건설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전교조는 모든 학생이 좀 더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혁신학교운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 교사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혁신학교 소모임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활동3. 차등성과급의 폐지와 수당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전교조는 차등성과급이 교직사회의 위화감을 조성하고, 교사들의 열정을 계량화한다는 점에서 반대, 지속적으로 차등성과급을 반납하고 교사 간 균등분배를 통해 차등성과급 폐지투쟁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활동4. 양성평등실현을 위해 힘써왔습니다. 교직에 여교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여교사에 대한 정책은 여전히 뒷걸음치고 있습니다. 전교조는 여교사의 권익보호를 위해 보건휴가 정착,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실시, 승진시 성차별 금지 등을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활동5. 참교육실천대회 개최 등 참교육의 내용을 알차게 채우고 있습니다. ‘참교육실현’은 전교조의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이기도 합니다. 매년 전국의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 동안의 연구 성과들을 공유하는 참교육실천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각 교과별 모임도 전국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활동6. 전교조는 무상급식 실현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전교조는 그동안 사회적 기금을 모아 소외계층 결식아동에 대한 지원을 해왔으며 유·초·중학교의 무상급식이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활동7. 부패사학을 근절하기 위한 사학법 개정 등 법 개정에 앞장섰습니다. 전교조는 그동안 부패사학을 양산하는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는 성과를 낳았으며, 유아교육법 제정에 앞장섬으로써 공교육의 기초를 확립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전교조는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법제화를 비롯해 교장선출 보직제, 표준수업시수 법제화 등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활동8. 학교운영위원회 설치 등을 통해 교육자치 확대에 힘쓰고 있습니다. 학교운영위원회 설치를 처음으로 제기한 것이 바로 전교조입니다.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가 법제화되고 그 속에서 민주적인 의견수렴을 거쳐 학교운영과 관련된 사항이 집행되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자리매김을 위해 전교조는 그동안 매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활동9. 진보적 교육감, 교육의원들과 함께 올바른 정책수립에 힘쓰고 있습니다. 교육의 획기적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바람으로 당선된 진보교육감, 교육의원들, 그 중에는 전교조 출신 교사도 있으며 전교조의 교육정책을 지지하는 분도 있습니다. 전교조는 진보적인 교육감, 교육의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올바른 교육정책수립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그간 전교조의 주요 사업과 그 성과는 하성환의 요구와 다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다른 한 가지는 제일의 의제로 제시한 ‘담임수당현실화’만은 없다. 그러나 활동 1을 보면 전교조는 여러 명목으로 나누어 지급되는 각종 수당의 기본급화를 주장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학교의 교육활동이 개별 교사의 분리된 노동이 아니라 전체 교사들의 협동의 결과로 학생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 낸다는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수당을 기본급으로 전환함으로써 임금 인상의 결과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에 각종 수당의 인상보다는 전체적으로 수당의 기본급화라는 방향을 견지한 것이다.
교사만이 아니라 어느 분야의 노동자이든 노동자의 작업을 계량화하고 이에 따라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수를 요구하는 것은 마땅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교사의 교육활동 특히 담임 활동은 결이 다른 지점이 있다. 일반적인 노동의 경우 수당의 계량은 노동시간이나 산출해 낸 작업량이라는 두 가지 기준에 의해서 측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교사의 활동 중 담임 활동은 학생들과 교실에 있었던 시간이나 학생들과 상담한 횟수 등으로 계량화하기에는 노동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교육의 성과라는 것이 서비스의 만족도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어서 일회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의 결과로서 학생의 성장은 담임교사와 교과교사, 그리고 학부모의 협조와 학교의 지원 등의 종합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협업적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지금 학교 현실을 보면 아무런 보상도 없이 가장 곤란한 일로 당면해 있는 담임 문제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방안으로 수당의 현실화는 옳은 방향이 아니다.

2. 전교조는 여타 운동 단체와의 연대 이상으로 전교조의 자기 정체성을 최우선적으로 유지하고 운동의 자기중심성을 잃지 말 것! 즉 전교조 내 상설 연구자 집단으로 교육정책/학벌주의 시스템 해체/입시제도/교육과정 연구 인력풀을 가동시키고 각종 교육현안을 심도 있게 비판, 장단기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기관을 설립, 운영할 것! 나아가 상근 전문 연구 인력을 배치하고 전교조가 실질적인 교육정책 대안세력으로 비전을 제시하며 기능하도록 준비할 것! 요컨대 전교조의 정체성을 항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예산 배정 시 싱크탱크에 최우선적으로 예산의 절대액을 배정할 것!

전교조가 실질적인 교육정책의 대안세력으로서의 전문성을 갖추자는 제안은 필요한 일이다. 가능하다면 전문적인 연구자를 배치하여 교육정책/학벌주의 시스템 해체/입시제도/교육과정 연구를 심도 있게 해 나가야 한다. 사실 전교조에는 공식적으로 부설기관인 ‘참교육연구소’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한명의 전임자와 한명의 상근활동가가 있을 뿐이다. 물론 학교 현장에 근무하는 교사들이 연구원으로 참여하여 중장기적인 연구를 수행하고는 있지만, 이정도로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분석과 비판 정도는 가능하지만 교육정책 대안세력으로 자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에 있다. 하성환은 그 이유로 ‘전교조는 여타 운동 단체와의 연대 이상으로 전교조가 자기 정체성을 최우선적으로 유지하고 운동의 자기중심성을 잃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교조의 자기정체성은 무엇인가? 교사들의 노동조합이다. 교직원노조라고 하지만 직원과 함께하고 있지 못한 교사노동조합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이라고 하지만 이미 해직교사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여 법외노조가 되어 버렸다. 교사들의 조직이니 학교 안에서 학생들과의 교육 활동만 하라고 하는 것이 지금 정권의 요구이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정치와 구별되는 치안이란 우선 어떤 사회 안에서 자리나 기능의 분배, 혹은 몫이나 자격의 분할과 관련된 것이고, 그런 분배나 분할을 사회성원들의 ‘합의(consensus)’라는 관념을 통해 유지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치안은 사회 전체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통치와 결부된 것이다. 그것은 몫의 분배를 셈할 때 셈해지는 자와 셈해지지 않는 자를 분할하는 것이고, 자신의 권리나 입장을 말할 수 있는 자와 말할 수 없는 자를 분할하는 것이며, 어떤 것을 문제화할 때 보이는 자와 보이지 않는 자를 분할하는 것이다. 그것은 몫이 없는 자, 말할 자격이 없는 자, 셈해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자를 배제하는 배제의 체계를 작동시킨다. 그런데 그것은 존재자의 일부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기에 없다고 간주되는 자를 배제하는 것이며, ‘없는 자’를 배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분할과 배제는 있어도 보이지 않게 만들고 말해도 들리지 않게 만드는 차원의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정치가 부재한 치안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통치체제가 억압적으로 부여한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하자고 하는 것은 분할과 배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교사 스스로가 말하지 않는 것이며, 청소년들의 말을 가로막는 것이다. 통치가 부여한 정체성을 거부하는 것은 불순하며, 그렇기에 전교조는 불순하게 정치적이어야 한다. 정치적인 것을 가질 때 교육은 지금과 달라질 수 있다. 재생산의 기제로서의 학교의 역할에 종지부를 찍고 좀 더 다른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교육과정이나 학벌사회를 실천적인 연대 없이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순하다. 교육과정이 얼마나 정치적인 것인지는 지금 한국사의 국정교과서 전환문제, 교학사의 역사교과서 채택사건, 지난 7차 교육과정에서 쟁점이 되었던 선택형 수준별 교육과정 등이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의 교육문제가 교육적인 문제인가? 나열하기도 버거운, 이제는 위기라고 말하기도 새삼스러울 만큼 누적한 문제는 교육 문제가 아니다. 교육 문제는 사회문제이며 노동의 문제이다.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이며 복지문제이며 공공성의 문제이며 실업문제이다.
전통적 일자리는 사라지거나 줄어들고 있으며, 새로운 일자리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남은 일자리는 임시직·불안정·비정규 노동이다. 이것으로는 자기 삶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할 리 없다. 삶의 시간과 공간은 뽑히고 짓밟혀 사랑, 가족, 마을 등 지속성에 기반한 공동체는 파괴되어 가고 있다. 삶은 재생산되지 않는다. 이제 자본은 더 이상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며, 청소년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각자 알아서 자신에게 투자해야 한다.
누구나 교육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으나, 교육개혁에 관한 요구는 일자리를 가진 자의 요구에만 부응하여 진행되고 있다. 공공을 위한 사회적인 일자리가 기업에 의한 일자리로 대체되는 신자유주의에서 교육이나 사회의 변화는 기업을 위한 것일 뿐이다. 일자리를 가진 자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고용당하기는 교육의 결과가 아니라 교육의 지상과제가 되었다. 중등교육에서는 대학의 진학이, 그것도 세칭 명문대학의 합격생수가 학교 교육의 목표라면, 고등교육에서는 취업률이 그것도 고시합격자수나 기업취업자수가 평가의 준거이자 교육의 목표가 되었다.
이 시대에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희망을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을 넘어 사기행위이다. 교육을 통해 희망을 말할 수 없는 것, 더 이상 가능성을 말할 수 없는 것, 이는 사회적인 문제이다. 하기에 전교조는 정치적이어야 하고 연대해야 한다.

3. 지부, 지회 단위의 독자 사업을 축소 내지 폐지하고 집행단위를 본부-분회로 계선조직을 단순화시키되 지부, 지회를 분회 활동을 지원하는 지원 참모조직으로 그 성격을 규정하여 정책사업과 예산을 집행할 것!
4. 정보 사회에 걸맞게 전교조 상근 인력을 축소하는 등 전교조 조직 운용을 변화시키고 단위 학교상황, 전국단위 교육상황 등 정보 공유, 서명 조직, 가두시위 등 전교조 활동과 투쟁에서 스마트 폰, e-메일, SNS 등 통신수단을 적극 활용할 것.

이 두 요구는 같은 내용을 바꾸어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지부-지회 같은 중간 단계를 축소하고 본부와 분회로 단순화하면 그만큼 상근인력은 축소될 것이며, 그럼에도 조직의 소통은 필요하니 SNS를 활용하라. 그렇다면 주장의 핵심은 ‘활동의 중심을 분회로 옮겨야 한다’로 해석된다.
현장분회중심이야말로 전국단위단체가 지극히 견지해야 할 원칙이다. 조직의 위계화와 관료주의로 인해 조직의 활동력과 생명력이 고갈되는 사례를 이미 충분히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사립학교의 비중이 높고,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개별학교마다 약간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에 분회 활동의 강화와 이의 지원체계는 필요하다.
그런데 전교조가 개별 학교 중심으로 사업이 달라질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전교조가 운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한국의 교육문제가 개별 학교마다 다르게 존재하는가? 아니면 한국사회 보편성을 반영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조직의 활동체계는 달라질 것이다.
하성환이 이미 앞에서 전교조의 주요한 연구과제로 제시한 학벌주의시스템/ 입시제도/교육과정 같은 연구 과제를 보자. 이것이 개별학교분회에서 운동의 주제로 설정될 수 있는가? 제일의 과제로 제시한 담임수당 현실화가 분회에서 학교를 상대로 이루어 낼 수 있는 의제인가?
한국의 교육을 지배하는 것은 평가에 의한 서열 체제이다. 대학서열체제로 인한 학벌사회, 초중등 교육과정을 왜곡하는 대학입시, 공정성을 가장한 평가는 교육목표의 도달이라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학력이라는 오직 한 가지 기준에 의해 전국의 학생을 서열화시키고 있다. 학벌사회를 형성하며, 교육모순이 응결되어 있는 지점은 대학서열체제이다. 한국사회 대학서열체제의 특징은 입학생들의 성적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에 있다. 또한 사회적으로 높은 소득이 가능한 직업진출에 유리한 학과순으로 서열이 매겨져 있다.
학벌은 신분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학벌은 기존의 패거리가 장악하고 있는 사회권력과 연계하여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이 결과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공공성을 상실한 채 사적인 부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학벌을 획득하기 위해서 각 개인과 가정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비용을 투여하고 있다. 사교육비를 들여서라도 학벌을 획득하는 것은 생애임금을 높이기 위한 합리적 투자다. 그럼 점에서 사교육은 학벌사회로 인해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사회적·국가적 차원에서는 비합리적인 주술이다.
대학입시가 공정한 절차를 통해 대학교육에 필요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한다는 것은 사기극이다. 이 사기극은 기득권층과 그들의 대리인인 정부에 의해서 이데올로기가 유포되고, 학교와 사교육기관에 의해 강화되며,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들이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사기극이 계속 진행될 수 있는 힘은 대학입시가 한국사회와 교육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의 중대함에서 비롯된다.
다시 또 다시 말하지만 교육문제는 개별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이다. 나아가 이는 정치적인 문제이다. 학교 일상 활동에서 분회를 중심으로 소통이 긴밀해지는 것은 학교를 넘어선 연대 활동의 기반이 된다. 당연히 현장 분회활동의 강화는 모든 노동조합의 제일원칙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거나, 조직체계를 깨뜨리자고 하는 것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우리 시대는 1989년이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도 1990년대를 살고 있지 않다. 아니 2014년 4월 16일 이전과 이후가 같다면 도대체 우리에게 역사나 정치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침몰하고 있는 학교에서 교사의 자기 정체성을 지키며 교실에서 학생들의 얼굴을 어떻게 계속해서 마주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이 시대 전교조는 정치적이어야 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에 저항하는 것, 말하지 못하는 것으로 학생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부정당한 것들과 함께 여기 살아 있음을 말해야 한다. 담임수당 현실화가 아니라 통치에 저항하고, 정권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 것으로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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