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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18 14:40
진보평론63호(2015년 봄) 통합진보당 문제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글쓴이 : 최고관…
조회 : 717  

현재 한국사회에는 그 누구도 정확하게 의미를 규정할 수 없지만 누군가를 단죄하고 사람들 사이를 분열시키는 하나의 기표가 존재한다. 그것은 종북이라는 기표이다. ‘종북은 말 그대로 북을 따르거나 추종하는 자들 또는 집단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하지만 그것의 실체는 매우 모호하다. 이 사회에 북을 추종하거나 따르는 자들 또는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종북이라는 기표가 특정한 정파 또는 당파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다른 모든 사람과 집단들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검증을 필요로 하지 않지 않으며 오로지 규정될 뿐이다.

2012년 대선에서 종북은 심지어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것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김대중, 노무현처럼 대한민국의 국가수반을 지냈으며 지배 권력의 정점에 섰던 사람조차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김대중, 노무현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이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체제가 북의 적화혁명 노선에 따라 헌법을 비롯한 체제에 변화가 있었던 것도, 대한민국의 국가 이익을 심대하게 침해한 사례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들은 여전히 남보다 북의 국가에 복무하는 종북이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체제를 전복하고 조선이라는 국가에 대한민국을 가져다 바치고자 하는 위험스런자들로 규정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와 같은 의미의 연속적 생산이 가능하게 된 것일까? 무엇보다도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종북이 생산하는 의미, 단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지시 기능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표 그 자체가 연쇄적으로 발생시키는 정치적 효과에 의해 생산된다는 점이다. 김대중, 노무현이 실제로 종북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특정한 정치계열, 해방 이후 권력을 독점해 온 당파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종북은 이들에 대한 단죄와 협박의 기표이다. 따라서 한국의 정치에 존재하는 특정한 정파 또는 당파, 예를 들어 새누리당, 심지어 뉴라이트계열을 제외한 모든 개인과 집단들은 종북이 된다.

여기에 종북이라는 기표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위험’,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자신을 일체화하면서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으며 타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종북이라는 기표가 만들어내는 프레임은 파시즘의 이데올로기와 동일한 형상이다. 그것은 하나의 일관된 체계를 가진 이즘(ism)’이 아니라 대중의 분노를 부추기면서 그들의 분노를 공격으로 전화시키는 동원적 이데올로기(mobilizing ideology)’일 뿐이다.

종북이라는 기표가 의미를 생산하는 것은 바로 이런 동원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종북이라는 기표는 을 환기시킴으로써 자신과 다른 모든 것들을 종북으로 몰아세우면서 대중의 분노를 이들에 대한 공격적 에너지로 바꾸어 놓는다. 그렇기에 인종이라는 누빔점(quilting point)’을 중심으로 파시즘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듯이 반북이라는 누빔점을 중심으로 타자에 대한 공격을 생산하면서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파시즘과 다른 하나의 지점을 가지고 있다. 파시즘이 케빈 패스모어에 의해 이것도 반대, 저것도 반대라는 부정적 이데올로기로만 묘사될 수 있다면 종북오직 이것이라는 도그마(Dogma) 형식으로만 묘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북이라는 기표든 파시즘이든 그것이 작동하는 토양은 동일하다. 그것은 대중적 분노이다. 하지만 이들이 작동하는 토양인 대중의 분노는 조작된 것이거나 허구는 아니다. 그것은 명백한 사회-역사적 토대가 있으며 객관적으로 주어진 그들의 삶에 근거한다. 현실은 그들을 분노하게 만들며 그들의 분노는 그들을 행동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지배자들은 그런 분노를 권력의 자양분으로 삼을 뿐이다. 권력은 사람들의 집단화와 그런 집단의 행위가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지배자들은 그들의 분노의 에너지를 자신의 권력으로 흡수하고자 한다.

이미 스피노자는, 폭군은 항상 슬픈 정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슬픈 영혼들이 상납하고 선전하기 위해서 폭군을 필요로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폭군은 성공하기 위해서 영혼들의 슬픔을 필요로 한다. 어쨌든 이들을 통일시키는 것은 삶에 대한 증오이며 삶에 대한 원한이다.” 한국사회에서 이런 증오와 원한을 부추기는 정치학은 분단체제의 적대성을 통해서 작동되어 왔다. 과거의 증오의 정치학은 ‘6·25=에 대한 공포를 환기시키면서 남북의 냉전적 대결을 부추기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가주의 생산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지금의 종북이라는 기표가 생산하는 증오의 정치학은 이라는 공포의 대상에 대한 환기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201412월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매우 아이러니한 네 번의 사건이 있었다. 첫째는 1210일 오후 전북 익산시 신동성당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토크 콘서트장에서 벌어진 18살 고등학생에 의한 황산 테러 사건이다. 두 번째는 그로부터 9일 후인 1219일 이루어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이며 세 번째는 올 122일에 이루어진 이석기 내란음모 공판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판결이다. 네 번째는 3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신체적 위해라는 테러 사건이다.

현재 이들 4가지의 사건들은 종북이라는 기표사슬을 통해서 대한민국 국가주의를 강화하고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강화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하지만 이들 사건을 시간의 연속적 계열로부터 떼어놓고 본다면 그 결과는 매우 아이러니하다. 첫째와 넷째 사건은 동일하게 타자에 대한 신체적 위협과 폭력이라는 테러적 사건이다. 하지만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은 아주 다르다. 첫 번째 사건에서 한국의 검찰과 경찰, 언론은 황산테러의 주범은 근본적으로 위험한 인물이 아닌, 심지어 애국자이자 영웅으로 간주됐고, 테러를 당한 신은미와 황선을 종북주의자로 몰아갔다. 반면 네 번째 사건의 주범은 참작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인 악이자 무조건적인 단죄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가 내린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과 통합진보당 소속의 국회의원 5명에 대한 의원직 박탈 결정은, 그로부터 한 달 뒤에 열린 이석기 내란음모최종심에서의 대법원 판결과 모순적이다. 대법원은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명분으로 제시한 ‘RO의 실체내란음모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최고 법률기관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자기 모순적인 사건이다. 그럼에도 종북 프레임을 생산하는 자들은 이런 상충성에 주목하지 않는다. ‘종북이라는 기표 자체가 생산하는 프레임 안에서 이미 단죄하고, 그리고 그들의 유무죄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진보평론 63호는 특집 기획 대신에 <긴급진단> 코너를 마련했다. ‘통합진보당의 해산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라는 제목 하에 대담과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과 관련하여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한 편의 논문을 실었다. 통합진보당 문제와 한반도 모순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대담에서 이영채는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최근의 사건들을 한국내적 맥락에서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역사 및 국제적인 맥락에서 분석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는 통합진보당의 문제를 한국의 진보운동에 대한 내적 성찰의 계기로 삼고 있다. 그가 보기에 이번 통진당 사태는 한국전쟁 이후, 그리고 탈냉전시대를 맞아 잊힌 폭력혁명이라는 방식이 아직도 유지된다는 점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검증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사건이자 분단체제 속의 모순, 아시아 반공주의, 북한의 이미지, 공론화하지 못했던 폭력혁명론의 모순 등이 중첩된 동아시아에서의 21세기 버전의 혁명운동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이를 진단하기 위해 동아시아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역사를 현재의 시점에서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그는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각국의 공통의 리버럴 세력들이 실패를 했고, 공통의 보수주의 세력이 전면 등장하고 있는 것은 이후 진행된 민주화가 국가폭력을 제거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며 “2000년 중반부터 영토문제와 역사 문제가 동시에 등장한 것은 전후 60년 간 동아시아 국가들이 국가주의와 내셔널리즘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라고 본다. 따라서 그는 동아시아의 각국의 노동자들이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을 벗어나 동아시아의 연대의 방안을 모색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간략하게 소묘될 수 없다. 이 대담은 통합진보당 문제를 동아시아라는 국제적 차원에서 역사와 현재를 논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6·25전쟁과 천안함 침몰 사건 등과 관련된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음미해야 할 핫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긴급진단>에는 홍철기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과 민주 헌법의 이론이라는 논문을 실었다. 앞의 대담이 동아시아라는 국제적 차원에서 통합진보당 문제를 다룬다면 이 논문은 통합진보당의 해산 판결과 관련하여 헌법민주주의의 관계를 정면으로 다룬다. 또한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과 관련된 제반의 논의들이 현재의 법적 체계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면 이 논문은 헌법과 민주주의 관계 속에서 민주 정치를 사유하고 있기에 이전의 논의들과 그 질을 달리하고 있다. 수도 이전에 관한 헌법재판소 위헌 소송 이후 한국에서 현재 헌법재판소는 최고의 권력 기관이 된 것처럼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근거하여 주어진 사안이 헌법에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보면, 헌법은 성경이 되며 헌법재판소는 그런 성경을 해석하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신의 뜻을 전달하는 목사와 신부처럼 사도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을 때, ‘정치종교적인 사법적 판단에 의해 실종될 수밖에 없다. 홍철기는 바로 이 점에 착목하고 있으며, “민주 정치의 본질은 헌법과 민주주의 사이에 완전한 일치란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서 정치란 갈등과 불일치를 전제로 하는 관계인 동시에 이 간극과 틈에 가교를 놓는 매개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정치 대신에 법치를 강조하는 수사와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현상을 비판하고 안과 바깥의 구별불가능성(indistinction)’이라는 모순, 혹은 내부와 외부 중 어느 한쪽만을 택할 수 없는 아포리아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헌법의 초시간적이고 초월적인 본질로 성역화시키지 않고, 좀 더 내재화되고 상대화된 개념으로 재해석하면서 그 아포리아가 제공하는 긴장을 어떻게 유지하는가에 달려 있다.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도 이런 아포리아 속에서 전개되는 투쟁을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발언대에서는 이번에 기획된 <긴급진단>에 맞추어 종북몰이에 의해 이미 발언권을 상실해 버린 것처럼 매장되어 가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목소리를 들었다. 헌법재판소 판결의 부당함을 세 가지로 제시하며 헌재의 정당해산 판결은 정당해산의 근거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음을 강변한다. 뒤이어 나온 대법원이 이석기 내란음모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고, RO 역시 실체가 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왜 진보당은 해산당해야 했을까. 반공과 반북이라는 폭압적 정치상황이 존재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진보정당 운동이 갖는 한계와 결함 역시 진보정당 운동의 실패 원인이었고 이는 첫째, 진보진영의 분열과 대립, 반목이다. 둘째, 대중적 토대와 기초가 없었고 대중운동과 결합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대담과 함께 읽으면 통합진보당의 해산의 의미를 우리 운동의 현재 속에 그려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참신하고 깊이 있는 분석이 담긴 다양한 글들이 실렸다. 진보평론의 강점이라고 자부하게 되는 글들이다.

 

진보평론 63(2015년 봄) 목차

긴급진단 | 통합진보당 문제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 통합진보당 문제와 한반도 모순 / 이영채·고민택 대담

-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과 민주 헌법의 이론/ 홍철기

시평

특별법 이후, 4·16 운동으로 다시 한걸음/ 미류

발언대

통합진보당 해산 이유와 교훈: 싸워야 할 때 싸워야 진보정치이다/ 통합진보당 당직자

쟁점

<국제시장>, 혹은 어떤 가족 영웅의 뭉클한 도착증에 관한 보고/ 김소연

정세

민주노조운동의 새 지평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민주노총 직선제 평가와 신임 지도부에 거는 기대와 과제/ 고민택

국제

- “샤를리 엡도테러 사건을 둘러싼 쟁점들/ 오창룡

- 분리된 팔레스타인, 독립의 길목의 장애물/김태언

일반논문

- 정치적 주체화란 무엇인가? 푸코, 랑시에르, 발리바르/ 진태원

- 한국 성소수자 운동과 제도화의 역설/ 나영정

소수자이야기

같은 바다, 다른 사람, 상처는 아문 적이 없었다/ 이한숙

다시읽기

비정상의 정상화를 의문시하기: ‘포스트 민주주의시대의 국가, 권력, 사회주의’/ 이재욱

페미니즘 고전읽기

성의 정치경제학과 섹슈얼리티의 정치학/ 박영균

서평

- 프레카리아트의 호명과 그 이후/ 이건민

- ‘의 인권이 아닌 우리들의 인권들’/ 장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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