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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6-11 16:12
진보평론 64호(2015년 여름) 발간 안내
 글쓴이 : 최고관…
조회 : 901  

치열한 역사의식과 실천이 빛났던 진보지성을 만나다 

 

이번호 특집에서는 한국 현대 진보지성의 궤적이라는 큰 제목을 가지고 일곱 명의 실천적 지식인의 삶을 되돌아본다. 지식인이라는 말이 남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지식인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를 닦고 성찰하며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동양적 지식인의 참모습이다. 세상의 이치란 현실이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 착취하는 자와 착취 받는 자로 나뉘어 갈등하고 그 갈등의 힘으로 세상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 갈등과 변화는 항상 구체적인 역사적 형태로 드러난다. 언제나 지배하고 착취하는 입장은 필연적으로 변화하는 역사의 힘을 부정하고 현재를 자연스러운 상태로 정당화하는 논리를 찾는다. 그렇다면 지식인의 운명은 비판에 있을 수밖에 없다. 세상의 이치는 변화이며 변화를 거부하는 이데올로기를 깨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지식인의 숙명인 것이다. 그래서 지식인은 또한 실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당위적인 이야기이다. 많은 이들이 지식인을 자처하지만, 그리고 지식인으로 불리지만 비판적이지도 실천적이지도 않은 사람들이 허다하다. 지식인들이 모여 있다는 대학은 권력에 아부하고 자본의 비위를 맞추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은 권력과 자본의 편에 서서 그들이 당연하다고’, ‘중립적이라고’, 그래서 과학적이라고우겨대는, 갈등과 변화를 부정하는 정치적입장을 뒷받침하는 담론 생산에 동원되고 있다.

이번 특집이 다루고 있는 일곱 명의 지식인을 모두 뛰어난 이론가라 부르기는 어렵다.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하고 학파를 형성한 학자라고 보기에는 제도권학문과 떨어져 있는 실천가였거나 후학들에게 어려운 숙제만 잔뜩 남겨둔 채 완결된 자기만의 사상을 구축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분들의 궤적을 따라가 보는 것은 그들이 현실을 대했던 치열한 역사의식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탄압과 억압의 시대에 비판의 정신을 굽히지 않았다. 권력 앞에 굴하지 않았고, 현실 운동에 함께 하면서도 자신의 입장만을 강변하지도 않았다. 현실이 가르치는 것, 동료들과 후배들의 비판에 귀 기울일 줄 알았다.

2015년 한국의 지식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이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앞선 세대보다 학문적 토론의 수준은 높아졌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서구사상을 쫓는 식민지적 근성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받을 수는 있지만 수십 년 동안 쌓여온 학문적 성과의 두께는 학술 담론의 수준을 높여 놓았고 지식인 사회의 논쟁을 풍부하게 했다. 하지만 앞선 세대의 조금은 투박하고, 그래서 조금은 고집스러워 보이는 사상의 흔적에서 느낄 수 있는 지식인의 힘은 사라졌다. 사회운동가는 회사원처럼 기능인이 되어가고, 사회비판의 최선두에 서 있었던 대학생들은 취업에 모든 걸 바치면서 경쟁기계가 되어 버렸다. 지식인의 가면을 쓴 사람들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어줍지 않은 평론으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거나 정치권 주변을 맴돈다. 대학의 교수들은 연구재단이 이미 디자인해 놓은 연구의제에 스스로를 맞추어 버린 지 오래다. 그 정도가 아니다. 거대 자본이 대학을 인수하고 그들이 제공하는 연구비를 받기 위해 충성한 지도 오래 되었다. 그리고 소위 지식인들은 더 이상 타자의 목소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지식상품 제조기계가 되어 버렸다.

체계적인 저술을 남기지 않았지만 천주교, 기독교, 천도교, 불교, 도교를 아우르는 장일순 선생의 생명사상은 큰 울림을 남기고 있다. 이론이 아니라 무수한 자료를 읽고 그것에서 우리가 처한 역사적 현실을 읽어냈던 이영희 선생의 치열함은 후학들의 모범이 될 만하다. 척박한 학문적 풍토에서도 한국사회의 성격을 설명하고 변혁적 발전 방향을 모색했던 박현채 선생의 학문적 도전도 우리에게 깊은 고민을 던진다. 비록 자신의 학풍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후학들에게 공부하는 길을 스스로 실천하면서 보여주었던 김진균 선생의 스승으로서의 풍모는 자기 연구 성과를 위해 얕은 지식을 쥐어짜는 요즘 교수들에게서는 넘보지 못할 거대한 산이다. 안병무 선생, 문익환 목사, 그리고 유인호 선생도 그런 분들이었다. 하지만 감히 이 분들의 생각을 거칠고 미완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들의 실천과 그들의 생각이 풀어야 할 숙제로 우리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숙제는 이론과 실천이라는 열쇠 말 두 개가 동시에 없으면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이다.

특집에서 다루고 있는 사상가들이 군부독재의 철권통치 아래서 제한된 이론적 자원을 가지고 현실과 대면하면서 끌어낸 생각들은 이제 우리 현실에서 재해석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숙제를 남겨 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 숙제를 푸는 방법은 꽤 까다롭다. 갇힌 대학의 강의실과 연구실에서는 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남겨놓은 숙제는 억압받고 착취 받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사상과 이론을 고민해야만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숙제가 까다로운 이유는 또 있다. 실천이 필요한 만큼 이론적 숙고도 필요하다. 앞선 세대가 완성되지 않은 사상을 실천의 상태로 남겨 두었다면 거기서 부족한 것은 체계적이고 정교한 이론적 논의일 것이다. 현실과의 대면 속에서 살아 있는 상태로 남겨진 사상을 체계화시키는 작업은 유행하는 이론들을 차례로 섭렵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인내심을 요구한다. 뒤 세대의 지식인들은 앞선 세대의 생각을 버려두고 무수히 많은 화려한 담론의 세계로 나갈 것이 아니라 미완의 형태로 남겨진 생각, 실천 속에 담겨져 있는 생각을 디딤돌 삼아 새로운 이론적 발전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앞선 세대 실천적 지식인들에게 부족한 것이 정교한 이론적 자원이었다면 우리 세대에게 부족한 것은 실천이다. 비판적 지식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실천의 통로를 상실해 버린 우리가 앞선 진보지성들의 생각을 다시 되돌아보는 것은 바로 이 실천의 고리를 되찾기 위한 것이다. 삶을 대했던 치열한 모습을 통해 지적유희에 빠져 급진적인 담론과 수사를 실천으로 착각하고 있는 우리들을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환상에서 깨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의 일상은 이미 산산이 부서져 모든 타자를 적으로 하는 동물의 왕국이 되어 버렸다. 대학도, 지식인도, 심지어 시민운동도 이런 경쟁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있다. 지식은 비판의 무기, 실천의 무기가 아니라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모두가 이건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모두가 이런 일상을 박차고 나갈 용기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장일순, 리영희, 안병무, 문익환, 박현채, 유인호, 김진균이 보여주었던 치열한 역사의식과 실천정신 말이다. 또 하나의 학습의 대상, 학술적 연구의 대상으로 이 분들을 불러내서는 안 된다. 한국 진보지식인들이 실천으로 복귀할 수 있는 자기반성의 출발점, 맨얼굴을 비출 수 있는 거울이어야 한다. 그 거울에 비추어진 우리들 모습을 직시할 때 이론과 실천이 결합된 현실에 대한 비판과 그 비판으로부터 도출된 미래를 얻게 될 것이다.

 

진보평론 64(2015년 여름) 목차

 

* 편집자의 글

치열한 역사의식과 실천이 빛났던 진보지성을 만나다

  

* 특집 : 한국 현대 진보지성의 궤적

- 좁쌀 한 알 장일순 선생의 삶과 사상/ 이창언

- 리영희의 유산:계몽적 지성의 의의와 경계 긋기/ 이순웅

- 민중사건의 증언: 안병무의 민중신학/ 최형묵

- 탈냉전의 선지자, 문익환 통일사상의 현재성/ 이승환

-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민족의 미학화를 넘어/ 류동민

- 유인호의 민족·민중·민주 경제론21세기 한국 자본주의에 주는 시사점/ 김창근

- 지식인과 실천, 하나의 전범(典範): 김진균 교수/ 노중기

 

* 시평

존엄과 안전을 새로 쓰자: 4·16 인권선언운동에 함께 합시다!/ 손진우

 

* 쟁점

진보 재편(결집)’ 논의를 보는 불편한 시선/ 고민택

 

* 정세

첫 발 뗀 민주노총 2015년 총파업: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에 맞선 민주노총의 대응/ 이승철

 

* 일반논문

가사노동자 노동주체와 노동성격 변화/ 강석금

 

* 소수자 이야기

청소년성매매 어떻게 볼 것인가/ 김연주

 

* 다시읽기

자본주의와 주술()의 관계:막스 베버와 발터 벤야민을 중심으로(“직업으로서의 학문”, “종교로서의 자본주의”/ 장진범

 

* 일곡 유인호 학술상

인권과 인권들”(정정훈) 수상 소감 및 심사의 변()

* 가격 : 15,000/ 1년구독료 58/ 2115천원/ 3165천원

매월 4,800(계좌이체나 CMS 신청 가능)

* 문의: 02) 2277-7950/ jbreview@hanmail.net/ FAX:02) 6008-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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