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LOGIN | 구)진보평론 홈페이지 가기| 이론지 보러가기  
 
특집·기획
좁쌀 한 알 장일순 선생의 삶과 사상
리영희의 유산: 계몽적 지성의 의의와 경계 긋기
민중사건의 증언: 안병무의 민중신학
탈냉전의 선지자, 문익환 통일사상의 현재성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민족의 미학화를 넘어
 
쟁점
‘진보 재편(결집)’ 논의를 보는 불편한 시선
<국제시장>, 혹은 어떤 가족 영웅의 뭉클한 도착…
교육노동운동, 성찰과 전망
전교조운동의 성찰과 전망: 하성환의 ‘교육노동운…
전교조 운동 노선에 대한 비판적 제언
 
정세·시평
‘존엄과 안전’을 새로 쓰자: 4·16 인권선언운동에…
첫 발 뗀 민주노총 2015년 총파업: 박근혜 정부의 노…
특별법 이후, 4.16 운동으로 다시 한걸음
민주노조운동의 새 지평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다시 함께 광화문으로 걸어야겠다: 세월호참사와 분…
 
국제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을 둘러싼 쟁점들
분리된 팔레스타인, 독립의 길목의 장애물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비판적 재해석과 한반도에 …
2014 유럽의회 선거와 좌파의 대응
미 연준의 자산 매입 축소와 신흥국의 금융시장 불안…
 
발언대
통합진보당 해산 이유와 교훈: 싸워야 할 때 싸워야 …
밀양을 말하다: 옴니버스 영화 <밀양, 반가운 손님…
수서발 KTX 노선 분할 민영화와 정부조달협정 개정은 …
한국연구재단 공모 사업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
공단조직화를 위한 모색, 새로운 가능성: 서울디지털…
 
일반논문
가사노동자 노동주체와 노동성격 변화
정치적 주체화란 무엇인가? 푸코, 랑시에르, 발리바…
한국 성소수자 운동과 제도화의 역설
‘영원한 미생未生’만을 위한 노동 공간: 30-40대 직…
우파적 감성과의 사상사적 대결: 오에 겐자부로의 “…
 
기획연재
계급투쟁에서 경쟁협조주의로
푸리에의 <사랑의 신세계>
국가와 폭력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 3권 서평
모든 정당을 없애야 하는 이유
 
현대 정치경제학 비판
캔커피의 진정한 가격은 얼마인가?: 내재적 가치와 …
완전경쟁’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꿈
순환론과 동어반복: 수요-공급이론은 가격의 결정을 …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
 
소수자이야기
청소년성매매 어떻게 볼 것인가
같은 바다, 다른 사람, 상처는 아문 적이 없었다
거지와 국가
군대와 동성애: 로맨스, 폭력, 범죄화, 그리고 시민권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 장애인 탈시설자…
 
다시읽기
자본주의와 주술(화)의 관계: 막스 베버와 발터 벤야…
‘비정상의 정상화’를 의문시하기: ‘포스트 민주…
이윤율의 경제학’에서 ‘소득의 정치학’으로?: G. …
"대표의 개념"과 "선거는 민주적인가": 정치적 대표와…
"증여론"과 "세계사의 구조": 순수증여의 존재론
 
남성이 읽는 페미니즘 고전
성의 정치경제학과 섹슈얼리티의 정치학
'소수자의 리액션’ 혹은 울프식의 ‘뼈 있는 수…
잉여의 시대-타자의 삶
책임 담론이 책임질 수 없는 것
객관성과 중립성의 신화 부수기: 페미니즘 지식이론
 
서평
프레카리아트의 호명과 그 이후
‘나’의 인권이 아닌 우리들의 ‘인권들’
표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소수자들의 삶과 문학 )
비판과 운동의 맑스주의 형성사("탈정치의 정치학")
신자유주의는 미래를 수탈한다(홍석만 송명관의 부…
 
기타
일곡유인호학술상(인권과 인권들) 수상소감 및 심사…
제7회 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소감문 및 심사의 변
최진석 비판: 자유인가 무책임인가, 경계와 교차로에…
24시간 사회의 이면:
홉스봄을 읽으며, 홉스봄을 추모한다
 
 
 
  기타
 
작성일 : 14-09-23 19:14
최진석 비판: 자유인가 무책임인가, 경계와 교차로에 선 철학
 글쓴이 : 이건민
조회 : 2,432  

진보평론 61호(2014년 가을)/ 독자투고





최진석 비판: 자유인가 무책임인가, 경계와 교차로에 선 철학

 

이건민 _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평생회원

 

 

내가 이 글에서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신선하고 파격적이며 직관적인 주장으로 최근 창조 인문학의 전도사등으로 불리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의 철학노트와 강연에 대한 비판이다.

최진석은 자기 자신의 욕망에 주목하며 자신의 주체력을 무한 긍정하라고 설파하면서 대중들에게 자유-독립-자율-해방의 카타르시스를 마음껏 선사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그 백미는 바로 SBS CNBC Who am I(이하 Who)에서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강연이라고 할 수 있다(2013118일 방영). “정지한 이념과 신념에 갇힌 사람은 경직”, “보편적 이념·기준은 조백(찌꺼기)”, “찌꺼기에 빗대서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리가 발 딛고 설 곳은 사건과 감각”, “욕망의 담당자로 경계에 서있는 주체로 자신을 돌아보라”, “나를 침해하는 모든 것에 도전하라”, “충고하지도, 듣지도 말라”, “자기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보편적 이념에 해박하고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고유한 활동성을 가지는 것”, “자신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훨씬 자유롭습니다등등.

필자는 그의 철학적 주장이 명쾌함과 과감성, 신선함이라는 커다란 무기를 갖고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그 명쾌함과감성의 원천은 단순한 이분법적 구도 설정사회와 역사가 빠진 개인의 철학에 있음을 지적하고, 이는 대중적 지지와 호응, 인기를 가져오는 효과를 낳는 것과 동시에 사회, 역사 등을 이해함에 있어서 다양한 난제들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음을 주장하고 싶다. 아울러 그의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이분법적 구도 설정이 비판 내지 공격 받기 쉬움에도 그의 주장을 쉽게 비판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를 제시하고자 한다. 나는 그것을 바로 그가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놓은 면죄부 부여하기로 명명하고자 한다. 또한 명시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의 글과 강연을 통해 추론할 수 있는 그의 역사관에 대해서도 비판하고자 한다.

 

카타르시스의 원천으로서의 이분법적 구도 설정’, 그 단순성으로 인한 문제

 

이중적 의미에서의 면죄부 부여하기

 

구성의 오류, 비사회성: 그의 철학에서의 개인과 사회의 창조성

 

역사 변화·흐름의 방향성에 관한 질문

 

이른바 후진국-중진국-선진국에 관하여

 

역사관의 빈곤과 사회의 결여, 그 가벼움과 위험성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트온 쪽지로 보내기

 
   
 

Copyleft by 진보평론(The Radical Review)   전화: 02)2277-7950 팩스: 02)6008-5138
(우100-391) 서울 중구 장충동1가 38-32 파인빌 40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