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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작성일 : 15-06-20 11:29
일곡유인호학술상(인권과 인권들) 수상소감 및 심사평
 글쓴이 : 일곡유인호 학술상
조회 : 2,290  

제8회 일곡 유인호 학술상


일곡 유인호 선생(1929-1992)은 한국 사회에 경제 민주화, 농업 협업화(요즈음 한창 회자되는 표현을 빌리자면 농업 ‘협동조합’을 통한 발전 방안), 공해 문제 등을 처음으로 제기한 맑스주의 경제학자다. 1980년에 민족·민주 경제학을 주창했고 민중의 삶과 현장에 초점을 맞추고 민중경제학자, 비판경제학자로서 독재 정권이 낳은 고도성장의 그늘을 꾸준히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또한 자신의 학문적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 실천가이기도 하시다.
일곡기념사업회는 고인의 학술연구와 실천의 궤적을 재조명하고 후학양성의 일환으로 2008년 학술상을 제정하여 매년 수상해 오고 있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이하여 이번 수상작은 정정훈의 "인권과 인권들"이다. 진보평론은 일곡기념사업회 학술상 후원단체로서 수상소감, 심사의 변을 게재하기로 하였다. 아래는 수상 목록이다.

2008년 제1회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 박영균, 메에데이
2009년 제2회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 이광일, 메이데이
2010년 제3회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최규진,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11년 제4회 "인지자본주의", 조정환, 갈무리
2012년 제5회 "신자유주의의 탄생", 장석준, 책세상
2013년 제6회 "위기의 경제학", 신희영, 이매진
2014년 제7회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 김정한, 소명출판
2015년 제8회 "인권과 인권들", 정정훈, 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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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소감문

맑스주의와 인권의 행복한 마주침

정정훈 · 수유너머 N




상을 받았습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질곡이 가장 폭력적으로 드러나던 시기, 군부독재정권의 억압적 지배가 절정에 달한 때에 민중을 위한 경제학에 대한 치열한 탐구를 지속하셨던 맑스주의 경제학자 일곡 유인호 선생님을 기리는 상입니다. 이제 겨우 맑스주의 연구자로서 첫발을 딛고 있는 제게는 너무나 과분한 상입니다. 이 상을 제게 주시는 것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일곡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아 맑스주의 운동의 이론과 실천 진영에서 더욱 열심히 활동하고 제대로 연구하라는 일곡유인호기념사업회 선생님들을 비롯한 선배 연구자분들의 격려와 가편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곡유인호학술상의 수상이 제게 너무나도 영광이며 자랑스러운 일임을 몇 마디 겸양의 말로 숨기지는 않겠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영광스러운 상을 주신 뜻을 마음 깊이 새기려 합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제 마음 속에서 계속 울려 퍼지던 말이 있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 “함께 살자!”
2009년 실용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CEO 대통령의 집권 2년차에 경찰폭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사람들이 외친 말입니다. 용산 남일당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의 사람들. 저는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서 인권의 의미를 이보다 더 잘 짚어낸 말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두 개의 구별된 문장이 아니라 이어서 읽어야 하는 하나의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함께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권의 이념이 아닐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권은 타인의 생존과 존엄을 희생해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든 형태의 힘에 맞서서 평등과 함께 사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자들의 권리입니다. 그래서 인권은 그 시작부터 타인의 희생에 바탕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자들을 불안하게 만들던 불온한 이념이었습니다. 이 책은 인권의 그와 같은 전복적 정치성을 다시 생각해보려는 시도를 담고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이라면 모두가 따라야 할 도덕적 규범과 같은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권리를 가진 자와 권리를 빼앗긴 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투쟁에서 권리를 빼앗긴 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정치적 이념으로서 인권의 의미를 규정해보고자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해방의 정치로서 ‘인권의 정치’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라는 문제, 더욱이 해방의 정치라는 문제에 대한 저의 고민은 역시 맑스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어떤 문제설정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맑스의 글들을 읽으면서, 그리고 그의 사상에 입각하여 때로는 그를 충실히 따르며, 때로는 그를 변주해가며, 혹은 그와 대결하는 방식으로 그를 풍부화하는 수많은 맑스주의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저 역시 맑스주의자가 되어갔습니다. 그 사상을 운동의 이론적 기초로 삼는 운동을 하면서 맑스주의자로서 살기를 다짐했었습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맑스는 인권에 대해서 비판적입니다. 젊은 날의 맑스는 “인권이란 … 인간들과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이기적 인간들의 권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냉혹하게 추구하는 부르주아의 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인권에서 개인들 사이의 연합과 공동체는 철저하게 배제됩니다. 그는 인권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이른바 인권 중에서 그 어느 것도 이기적 인간,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 즉 자기에 매몰되고 자신의 사적 이익과 사적 의지에 매몰되어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개인을 초극하지 못한다.”

맑스는 부르주아적 인권이 기대고 있는 정치적 해방을 넘어서 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인간해방으로 제시됩니다. 다시 한 번 그의 문장을 인용하려 합니다.

“현실적이고 개별적인 인간이 추상적 공민을 자신 속으로 환수하고, 개별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경험적 삶, 개별적 노동, 개별적 관계 속에서 유적 존재가 되어 있을 때, 그리고 인간이 자기 ‘고유의 힘’을 사회적 힘으로 승인하고 조직하며, 따라서 그 사회적 힘이 더 이상 정치적 힘의 형태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을 때, 이때 비로소 인간 해방이 완성된다.”

인권에 대한 맑스의 이와 같은 비판에 저는 철저하게 동감합니다. 하지만 맑스의 인권비판은 역시 시대의 산물이기도 할 것입니다. 맑스가 인권을 이기적 인간의 권리라고 말하던 시대는 인권의 전복적 힘이 부르주아 헤게모니 하에 봉합되어버린 때였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그러한 봉합의 역사적 과정을 추적했고, 그 결과 인권이라는 이념이 처음 등장하던 당시에는 결코 부르주아, 백인, 남성의 권리로만 축소될 수 없는 어떤 급진성을, 국가체제가 등장한 이후 수 천 년을 이어온 권리의 차등적 분배체제라는 역사적 권리체제를 전복하는 불온한 이념임을 드러내보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인권의 정치는 부르주아, 백인, 남성에 의해 봉합된 인권을 탈봉합하여 그 원초적 전복성과 불온성을 해방해야한다고 말하려 했습니다. 이때 탈봉합된 인권의 방향은 곧 맑스가 말한 ‘인간해방’, 다시 말해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의 구성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맑스주의적으로 다시 사유된 인권의 핵심에는 관개인적 권리로서의 인권이라는 개념과 (불)가능한 권리로서 인권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개인적 권리로서 인권이 권리의 코뮤니즘적 성격을 보여준다면 (불)가능한 권리로서 인권은 권리의 영구혁명, 혹은 무한한 정치화 성격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코뮤니즘적 권리를 현행화한 사회체제를 구축하더라도 인권의 정치, 또는 정치 그 자체는 결코 끝날 수 없음을 뜻할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의 5장과 6장에 관개인적 권리이자 (불)가능한 권리의 정치로서 인권의 정치를 이론적 차원에서 규명하는 논의를 담았습니다. 1장은 오늘날 인권의 위기를 규정하는 계기를 신자유주의 통치체제, 인권 담론의 약화, 인권 감성의 쇠퇴라는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으며, 2장은 인권의 기원적 시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혁명을 분석함으로써 인권이 결코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철저하게 정치적인 것임을 보이고자 했습니다. 3장과 4장은 인권에 대한 정치철학적 논쟁을 다룹니다. 3장에서는 인권에 대한 비판적 논의들을 검토하였고 4장에서는 인권의 정치성을 재구성하는 현대정치철학자들의 입론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책에는 인권의 정치에 대한 이론적 작업들로 이루어진 1장에서 6장의 논의들과는 별도로 오늘날의 사회적, 문화적 현상들에 대한 문화정치학적 분석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구체적인 인권현실을 분석하는 글들이 실려 있습니다. 좀비문화와 신자유주의의 관계를 논의하는 프롤로그, 우리 사회의 안전담론과 폭력을 새로운 통치체제라는 맥락에서 다룬 간주곡1, 급증하는 자살 문제를 생명권력 개념과 연관 지어 분석한 간주곡2, 투명인간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정치철학적 개념들을 바탕으로 해석한 에필로그가 그것입니다.
인권의 정치에 대한 고민을 담은 이 책이 제7회 맑스 코뮤날레에서 일곡유인호학술상을 수상하게 된다는 사실이 제게는 어떤 소회를 불러일으킵니다. 2003년 이화여대에서 열린 제1회 대회를 설레는 마음으로 참석한 이후 저는 한 회도 빠지지 않고 참여해왔습니다. 그리고 3회와 4회 대회에서는 총무팀의 일원으로 실무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지적 자극을 받았고, 다양한 공부거리를 발견하였습니다. 맑스코뮤날레가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저의 지적 성장의 중요한 계기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고 합니다. 이 책은 2012년 늦여름 시작된 ‘2012생명평화대행진’, 쌍용자동차해고노동자, 강정마을주민, 용산참사생존자들, 밀양주민들과 함께 했던 전국행진과 그해 겨울부터 다음해 봄까지 대한문에서 계속된 ‘함께 살자 농성촌’의 자장 속에서 씌어졌습니다. 행진과 농성촌의 실무자로 참여하면서 만났던, 함께 싸웠던 쌍차, 강정, 용산, 밀양의 투사들 그리고 같이 했던 인권활동가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들이 아니었으면 이 책은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학문적 수련과정에서 제가 만난 훌륭한 선생님들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은사 강내희 선생님께 진심어린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무뚝뚝한 전형적 경상도 남자이신 선생님께서 제자들에 대한 애정표현이 서투신 만큼이나 제자인 저도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한 번도 제대로 전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학자의 글쓰기가 가져야할 엄밀성과 사유의 치밀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특히 강내희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실천하는 지식인의 모습과 선배 맑스주의 연구자로서 끊임없이 공부하시는 모습은 평생을 배우고 싶은 부분입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 만난 것은 아니지만 수유너머N이라는 코뮨에서 인연을 맺은 이진경 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친구가 될 수 없으면 스승이 될 수 없고, 스승이 될 수 없으면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이탁오의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진경 선생님은 친히 알려주셨습니다. 선생님, 앞으로도 지금처럼 함께 가겠습니다.
또한 제게는 너무나 좋은 동료들이 있습니다. 함께 <문화과학>을 만들어가는 편집위원 선생님들께 감사와 우정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수유너머N의 동료들은 제 공부, 활동, 삶의 핵심 역량입니다. 누구 못지않게 당신들께도 감사인사 드립니다.
앞으로도 이 책이 2009년에 시작되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외침, “여기 사람이 있다!” “함께 살자!”라는 외침, 권리를 박탈당한 자들의 외침에 대한 하나의 메아리로 읽혔으면 하는 소망과 더불어 수상소감을 마치고자 합니다. 

2015년 5월 16일
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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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일곡 유인호 학술상, 심사의 변(辯)


최근 젊은 진보적 연구자들이 좋은 저술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어 제8회 일곡유인호학술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결국 제8회 일곡유인호학술상의 명예를 거머쥔 책은 정정훈의 "인권과 인권들"이다. 이 책은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학술적 공헌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민주화 이후 인권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졌고 이에 대한 학술적인 작업들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저작은 현재까지 한국에 나와 있는 인권에 대한 정치철학적 저서 중 이론적으로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또한, 이 저작은 단순히 이론적 탐색의 층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한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정치적 실천들 및 인권운동에 대한 구체적 고민들과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우 보기 드문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저서는 1장에서 인권 담론이 현재 처해있는 ‘위기’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해서, 2, 3, 4장에서 프랑스 대혁명(또는 그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권 운동의 장구한 역사 및 인권 개념을 둘러싼 이론적 논쟁의 역사를 독창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있으며, 5, 6장에서 현재 인권운동을 다시 한 번 급진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점에 착목하여 우리의 논의와 실천을 재조직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까지 모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인권과 인권들"은 오늘날 이론과 (대중운동으로서의) 인권운동의 융합이라는, 일곡상의 취지와 맑스 코뮤날레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프랑스의 맑스주의자인 루이 알튀세르는, 사회주의 사상은 노동자 계급의 외부로부터 부르주아 지식인에 의해 ‘수입’ 또는 ‘주입’되는 사상이라고 말했던 칼 카우츠키에 반대하여, 그것은 우연한 계기에 부르주아 계급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노동자 계급의 편에 가담한 지식인이 노동자 계급에 의해 교육받으면서 전적으로 노동자 계급 안에서 발전시킨, 노동자 계급 자신의 사상이며, 이런 작업을 수행하는 지식인이 바로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하는 ‘유기적 지식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정훈의 저작, "인권과 인권들" 또한, 이런 유기적 지식인의 실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서문에서 ‘제주도에 놀러간다’는 기대에 차서 별 생각 없이 참여했던 2008년 ‘제주인권회의’가 인권에 대한 자신의 소박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어떻게 뒤흔들어 놓았으며 그 후로 어떻게 자신을 점점 더 인권에 대한 고민 속으로 몰고 갔는지를 회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정작 자신을 변화시켰던 것은 그 회의에서 토론된 내용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만난 인권활동가들이었다는 고백을 한다. 인권활동가들의 지난한 활동 및 투쟁과의 이 우발적이지만 지속된 마주침이야말로 이 저작을 낳았던 근본적인 힘은 아니었을까? 따라서 이 저작은 오늘날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서 있어야 할 지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실천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둘째, 이 저작은 이론적으로, 오늘날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있는 자유주의적이고 상투적인 인권 개념 대 이런 개념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인권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오늘날 급진적인 정치철학적 흐름들 양자를 비판하면서 ‘인권’ 그 자체를 급진적인 정치철학적 실천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는 점에서 맑스주의 이론의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권 개념은 사적이고 부르주아적이며 신자유주의는 이런 인권 개념을 더욱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정정훈은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하에서 내적이거나 또는 외적인 방식으로 배제되어 있으면서 강력한 시큐리티-통치의 대상이 되고 있는 대다수의 빈민대중이 ‘인간’의 형상을 띠고 있다기보다는 (최근 묵시록적인 SF물에 등장하곤 하는) ‘좀비’의 형상을 띠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의 권리’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매우 근본적이지만 곤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질문은 기존의 강단학계 또는 부르주아적 법이론 내에서는 결코 던져지지 않았던, 아니 결코 던져질 수 없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오늘날 인권을 매우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는, 아렌트, 아감벤, 바디우, 지젝 등과 같은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인 입장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이들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프랑스 혁명의 인권사상을 보수주의의 입장에서 비판했던 에드문드 버크의 코드를 은밀하게 재전유하고 있다. 그 코드는, 인권이란 ‘정치적인 것’과 본래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인간의 권리란 ‘정치적 존재’가 아닌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본래적으로 갖는다고 가정되는 권리를 뜻한다. 여기서 인권은 단순한 생명으로서의 인간 또는 심지어 동물로서의 인간이 갖는 ‘생존’에 대한 권리를 가리키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비교적 안락한 물질생활(의식주)을 영위할 권리를 가리킬 뿐이다. 따라서 오늘날 바디우를 비롯한 인권 비판가들은 ‘정치적인 것’이란 단순한 생명으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자 애쓰는 모든 불이익과 고통을 감내하고, 심지어 자신의 죽음까지도 불사하면서 어떤 이상적이고 진리적인 가치를 추구하거나 그러한 가치가 구현되는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함께 주체로 떨쳐나설 때에 출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정훈은, 1789년 이전에 시작되어 1871년 파리코뮌까지 지속된, 장기적인 프랑스 혁명의 역사를 검토하면서 인권이란 결코 생존 또는 안락함에 대한 집착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성’으로부터 배제된 자들이 자신을 인간으로 선언하고 그렇게 인정받기 위한 정치적 투쟁의 담론이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인권은 인간이 본래적으로 갖고 있다고 가정되는 권리, 곧 신이나 자연이 태어날 때부터 인간에게 부여해준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를 박탈당한 ‘인간 이하의 인간’ 또는 ‘비인간’이 자신을 평등한 ‘인간’으로 선언하고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투쟁함으로써 쟁취하는 권리이다.
셋째, 바로 이로부터 그는 ‘좀비’가 빈민대중의 일반적 형상이 되어 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체제 안에서 인권의 담론이 다시 한 번 재발명되고 정치적으로 급진화될 필요성을 찾아내고 오늘날 인권 개념을 재규정하고 그것의 급진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좀비는 (먹기만 하는) 좀비로 남고자 할 때가 아니라, 인간이 되기 위해 정치적으로 투쟁할 때에만 스스로를 인간으로 만들 수 있고 그렇게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 그는, “인권은 단지 인간이라는 특권적 생명체의 생존의 유지를 위한 권리가 아니다 … 동물화된 존재로서의 인간을 위한 권리, 모든 정치적 삶의 형식을 잃어버린 단지 살아 있기만 한 자의 권리가 아니라 … 정치적 주체화를 시도하는 자들의 권리”이며, 따라서 “인권의 정치란 무엇보다 바로 권리를 박탈당한 자들의 정치적 주체화를 모색하는 정치”라고 말한다(190-91쪽). 따라서 인권의 정치는 인간의 정치가 아니라, (적어도 일차적으로는) 비인간의 인간-되기의 정치이자, 비인간으로 취급받던 자들이 인간의 범주에 스스로를 포함시킬 것을 강제함으로써 인간의 본성 그 자체를 확장적으로 재규정하고 재발명하는 정치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넷째, 그는 인권의 정치를 발본적으로 재발명하기 위해서 스피노자철학에 근거하여 인권 개념을 ‘관개인적인 권리(transindividual right)’로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인권의 정치와 운동들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고 있다.
그는 인권비판 담론들의 문제점을 비판한 이후, 자유주의적으로 변질된, 따라서 자본주의체제에 순응주의적으로 변질된 도덕화된 인권 담론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을 수행하면서 인권에 대한 새로운 정초짓기를 시도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저서의 진정한 백미는 5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여기서 새로운 혁신의 토대로 삼고 있는 것은 ‘연합을 통한 개체들의 역량 확장’이라는 스피노자의 철학이다.
자유주의는 어떤 개인이 갖는 개인성이란 그가 타인과 관계 맺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와 관계할 때에만 가장 순수하게 규정될 수 있다는 허구적 신화를 발명해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그런 ‘고립’은 개인적 실존의 파괴, 곧 ‘죽음’을 의미할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개인의 개인성은 그가 타자(그것이 타인이든 자연 내의 또 다른 사물이든 간에)와 끊임없이 교통하는 가운데에서만 현실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말하는 ‘관개인적인 권리’를 단순히 ‘집단적 권리’ 또는 ‘집단의 권리’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인이 권리의 담지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갖는 권리 및 그것의 실효성은 오직 개인들이 서로에 대해 맺는 관계 속에서만 현실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대문자) ‘인권’과 (소문자) ‘인권들’을 구분한다. 전자가 어떤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인 이념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대문자) 인권이 이러저러한 제한과 함께 구체적으로 제도화된 결과로 주어지는 실정적 권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대문자) ‘인권’과 (소문자) ‘인권들’의 관계를, 인권들이 결코 (대문자) 인권을 온전히 실현할 수 없으며 (대문자) 인권은 항상 다시 인권들의 제한성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는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 저작은 인권 개념의 발본적인 재발명을 통해서 오늘날 인권의 정치가 지닌 의미와 중요성뿐만 아니라 인권과 인권들 사이에서 맺고 있는 운동적 혁신의 방향과 연대 또는 연합의 새로운 형식들의 발명이라는 실천적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일곡유인호학술상 심사위원들은 앞으로 이 저작의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하여 더 나아간 연구들이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오늘날 개인들 사이의 무한 경쟁을 조직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그 경쟁을 통해 개인을 자유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의 개인성들, 독특성들을 파괴하고 있으며 개인들의 자립성, 더 나아가 끝도 없는 자살행렬이 보여주고 있듯이 그들의 실존 그 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인권의 정치가 다시 한 번 급진적인 해방의 정치로 출현하기 위해서는 권리의 관개인적 성격에 주목하고 연대 또는 연합의 새로운 형식들을 발명하는 실천을 반드시 벌여야 하며 이 저작은 이런 실천에 지대한 공헌을 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심사에서 탈락한 책들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내년을 기약하고자 한다.

2015년 5월 16일
일곡유인호학술상운영위원회 위원장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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