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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정치경제학 비판
 
작성일 : 13-12-24 16:20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글쓴이 : 김정주
조회 : 2,659  
진보평론 57호(2013년 가을) 현대정치경제학 비판

김정주 ╻ 진보평론 편집위원/ 경제학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2008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영국에 미쳤을 때, 영국 여왕이 왕립학술원 소속 경제학자들을 모아놓고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현대 경제학은 왜 이러한 위기를 사전에 예측하지 못했는가?”
이러한 질문은 경제학자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을 것이다. 이는 대중이 경제학자들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현대 경제학은 어렵다. 경제학 논문은 수많은 방정식과 수식들로 가득 차 있고,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경제학자들의 학문적 권위는 높아지는 듯 했다. 문제는 이러한 논문들을 통해 경제학자들 스스로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경제적 행위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자신해왔다는 점이다. 위의 질문은 이러한 현대 경제학의 지적 권위와 자신감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진보평론”은 이번호부터 “현대 정치경제학 비판”이란 제목 하에 10회에 걸친 연재글을 게재한다.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목적으로 한다. 목차는 아래와 같다.
1)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2) 순환론과 동어반복: 수요공급이론은 가격의 결정을 설명하는가?
3) ‘완전경쟁’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꿈
4) 캔커피의 진정한 가격은 얼마인가?: 내재적 가치와 경제적 거품
5) 청년창업: 모든가 자본가가 되는 유토피아?
6) ‘제3의 물결’과 아프리카의 눈물
7) 경제성장과 경제발전은 뭐가 다르지?
8) 스펙은 필수 실업은 선택?
9) 금융이라는 무한에너지: 21세기 연금술사의 비극
10)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노동해방’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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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학에서 ‘자본주의’란 금기어

오늘날 대학 강의실에서 경제학 강의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거의 필수과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학을 전공하고, 철학을 전공하는 많은 학생들이, 심지어 공과대학에 소속된 학생들마저도 대학을 졸업하기 전 경제학의 기초과정의 한 두 강좌 정도는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한다는 어떤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학생들이 경제학 강의를 찾는 주된 동기는 사회진출과 취업에 경제학 강의가 도움을 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을 갖는 것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실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우리의 삶이 어느 시대보다도 경제적 조건에 강하게 결부되어 있고, 따라서 자신의 삶을 옥죄는 경제적 조건으로부터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경제학은 현대인의 필수 교양이라는 생각도 경제학 강좌 수강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 경제학 이론은 학생들이 기대하는 것만큼 사회진출이나 취업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학, 특히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이론적 사고에 익숙해질수록 누구나 자신의 사고와 현실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괴리를 느끼게 될 것이다. 경제학의 ‘지배적’ 이론은 현실의 ‘직접적’ 반영물이라는 신앙심에서가 아닌 현실의 실존으로부터 모든 이론을 평가하는 실존주의자들에게 이러한 괴리는 더 커질 것이다. 그렇다고 대학 강의실에서 배우는 경제학 이론이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위한 풍부한 교양을 제공해주는 것도 아니다. 경제학은 사람들에게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다양한 경제적 정보를 받아들여 끊임없이 계산할 것을 요구한다. 얼마만큼의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편익과 만족은 어느 정도인지, 비용보다 편익이 클 때에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최적’인지, 그 반대의 경우는 또한 어떤 선택을 해야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지 등등. 경제학을 배우면 배울수록, 또한 경제학적 사고에 익숙해질수록 이러한 비용과 편익에 대한 계산은 무한히 반복되며, 이러한 계산에 익숙하지 않거나, 혹은 이러한 계산과정 없이 의사결정을 수행한 사람은 ‘비합리적’ 경제주체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시장에서 도태되는 운명일 뿐이란 걸 배우게 된다. 따라서 현대 경제학이 그리고 있는 ‘호모에코노미쿠스’의 세계에서는 끊임없는 비용-편익에 대한 계산을 벗어난 ‘자유로운’ 삶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며, 인류의 유일한 종으로 간주되는 ‘호모에코노미쿠스’에 대한 탐구 외에 인간에 대한 어떤 이해나 교양도 제공해주지 않는다.
이처럼 현대 경제학은 오직 자기이해의 극대화를 위해 경제적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고 최적의 선택을 고민하는 ‘호모에코노미쿠스’로부터 출발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경제적 측면을 ‘시장경제(market economy)’란 개념으로 설명하고, 또한 이상화 한다. 이 경우 계산의 주체로서의 개인의 ‘최적화’된 선택과 행동이 어떻게 사회 전체의 ‘최적성’을 보장해줄 수 있느냐 하는 점이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특정 개인에게 좋은 것이 반드시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좋은 것은 아니듯이, ‘호모에코노미쿠스’로서 개인의 최적화된 선택이 사회 전체의 경제적 최적성을 반드시 보장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인 혹은 개별 경제주체의 자기 이해관계에 기초한 이기적 동기가 어떻게 사회적으로도 최적의 결과를 보장해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아담 스미스가 “한 끼의 맛있는 저녁식사는 푸줏간 주인과 제빵업자의 이타심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이기심 때문에 가능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이후, 현대 경제학이 보여주고자 했던 ‘시장경제’의 가장 매력적인 모습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순수하게 이론적으로만 보자면, 현대 경제학은 ‘후생경제학’의 여러 정리를 통해 보여주려 했던 대로 ‘시장경제’의 모습을 이상적이고 매력적인 것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실은 현대 경제학이 강조하고 있는 ‘최적성’ 개념은 개별 경제주체들이 자신들의 비용을 극소화 하거나, 혹은 편익(효용)을 극대화 한 결과로서 도출된 개념일 뿐이지, 그것이 결코 사회구성원 모두가 동의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바람직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예를 들어, 사회구성원 모두가 골고루 배를 곯지 않으며 소비해야 하는 빵의 최소 수량이 300개라 하자. 이는 아마도 사회적 ‘필요’를 반영한 빵의 수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 하려는 제빵업자는 100개 정도의 빵만을 생산할 수도 있다. 즉 제빵업자의 이윤을 극대화 하는 빵의 ‘최적’ 생산량은 빵에 대한 사회적 ‘필요’와는 무관하게 결정될 수 있다. 따라서 현대 경제학이 강조하고 있는 ‘최적성’ 개념은 자기이해에 기초해 비용과 편익을 끊임없이 계산하는 ‘호모에코노미쿠스’로서 생산자나 소비자의 이윤과 편익(효용)을 극대화 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존재하는 사회적 ‘필요’를 완전히 충족시켜준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경제학 교과서의 대부분은 시장경제에 대한 이상적이고 매력적인 묘사들로 가득하다. 더욱이 이처럼 이상적으로 묘사된 시장경제의 상은 경제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메커니즘의 ‘직접적’ 반영물임이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시장경제 내에 ‘자유’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인간의 근원적 자유가 아니라 오직 계산할 수 있는 자유, 혹은 계산에 기초해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을 의미할 뿐이며, 이러한 계산과 선택을 방해하는 그 어떤 간섭도 시장에서의 ‘호모에코노미쿠스’적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로 간주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현대 경제학이 가르치고 있는 시장경제란 경제적 모델을 통해서만 사회를 바라보진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설명하기 위해 사실 경제학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경제학 이외의 훨씬 다양한 주제의 연구를 위해 ‘자본주의(capitalism)’란 개념을 일반적으로 쓰고 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사람들은 시장경제란 용어와 자본주의란 용어를 동일한 의미로 간주하면서 애써 구분하려 하지 않거나, 혹은 ‘시장 자본주의’란 용어처럼 두 개념을 혼용해서 쓰기도 한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가 검토하는 바처럼 ‘시장경제’란 개념과 ‘자본주의’란 개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완전히 다른 의도와 목적에서 정의하고 있는 개념이며, 따라서 그 개념들이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적 대상 또한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이 두 개념 가운데 어느 것이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좀 더 더 잘 설명해주느냐 하는 점이 될 것이다.
비록 그 의미를 애써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시장경제란 개념 대신 자본주의란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경제학 교과서를 펼쳐드는 순간 자본주의란 용어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자본주의’란 단어는 현대 경제학에서 일종의 추방된 언어일 뿐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자본주의란 개념적 망원경을 통해 사회를 조망하게 되는 순간, 현대 경제학이 시장경제란 개념을 통해 너무도 이상적이고 매력적으로 그렸던 사회가 순식간에 뒤틀리고 헝클어져 너무도 기괴하고 기묘한 모습으로 재등장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경제학의 이론적 사고와 현실 사이에 메우기 어려운 괴리가 존재하듯이, 경제학 강좌를 듣기 위해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다음과 같은 분열적인 질문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될 것이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이상적일 만큼 매력적인 곳인가, 아니면 너무도 기괴하고 기묘한 곳인가?


2. 시장경제 對 자본주의

3. 희소성의 원칙과 인간의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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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ynancy 16-06-09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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