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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자이야기
 
작성일 : 14-12-29 11:46
거지와 국가
 글쓴이 : 윤수종
조회 : 2,457  
진보평론 62호(2014년 겨울)  소수자이야기



윤수종 · 전남대 교수/ 사회학과


1. 머리말

이 글은 신문기사에 나타난 기사들을 중심으로, 출처인 신문기사의 세세한 날짜 표기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1945년 이후의 거지의 실태와 생활, 그리고 국가의 단속과 수용에 주목한다. 국가가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을 어떻게 처분해 왔는지,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유지해 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해방 전의 거지 실태를 간략히 언급하도록 하겠다.
거지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조선시대나 대한제국 시기에도 거지를 구휼하는 사업을 전개한 바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중반 들어, 특히 가뭄이나 홍수 피해를 입은 하층농민들이 몰락하면서 거지가 격증하게 되었다. 호남지방과 서북지방의 가뭄피해가 컸으며 양 지역에서 특히 거지가 늘었으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몰려드는 거지 때문에 농촌의 부자들은 도회지나 읍으로 옮겨가기도 하였다. 또한 여러 지역에서 거지들은 ‘떼’를 이루어 움직였다. 수 명 또는 수십 명이 거지떼를 이루어 다녔으며 어린 아이부터 여성노인까지 구성원도 다양하였다. 농촌지역에서 발생한 거지들은 도시나 읍내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비교적 부유한 지역이라고 알려진 도시나 읍내로 더 많이 몰려들었다.
1931년 9월말의 조사를 보면 전국 거지 총수 5만 3,939명(«동아일보», 1931.12.3.).
 전국 거지 총수는 5만 4천여 명에 이르러 조선 총인구의 1/370에 달하였다. 370여명에 한명 꼴로 거지였다는 것이다. 도별로는 전북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경남, 경북, 강원, 전남 순이었고 서북지방은 이보다 훨씬 적었다. 그 후 화전민의 몰락 등으로 거지는 더욱 늘어났으며 나환자들까지 거지대열에 합류하였다.
거지들은 나홀로 구걸을 하기도 하지만 집단을 이루어 거주하거나 구걸한다. 거지들은 총독부나 경찰의 관점에서는 ‘부랑자 및 거지’라는 이름 속에 있었다. 단속을 할 때에는 대부분 밤 늦게부터 새벽 사이에 거리에서 방황하는 ‘부랑자’와 동시에 거지를 검속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걸려드는 거지들은 나홀로 거지들이었다. 거지들은 대체로 조석, 즉 아침과 저녁을 구걸하였다. 점심때는 방황하거나 상점이나 행인에게 금전을 구걸하였다. 농촌의 거지들은 처마 밑이나 헛간, 창고, 아니면 빈집 등에 숨어들어 잠을 자곤 하였다. 추운 겨울에는 불을 피우고 자다가 화재가 발생하여 죽기도 하고 움막이나 빈집을 태우기도 하였다. 물론 추운 겨울에 길이나 건물 밑에서 자다가 동사하는 일도 흔히 일어났다.
거지들은 일정한 집단유대와 보호장치가 필요하였고 그 때문에 다리 밑이나 움막 등에 집단적으로 모여 살게 되었다. 물론 거처에는 내부 위계가 있었고 거지대장이 통솔하였다. 경찰은 범죄에 대한 의심으로 다리 밑에 거주하는 거지집단을 단속하기도 하였지만 대체로 이들은 직접적인 단속 대상은 아니었다.
거지들은 항상 범죄자라는 의심을 받았다. 빈집이 불타면 그곳에 드나들던 거지들을 의심하는 것이 상례였다. 많은 경우 거지들이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모닥불을 피워놓고 자다가 불을 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거지에 대한 수용은 일제강점기에는 민간에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을 뿐 총독부의 정책으로 제대로 추진된 적이 없었다. 단속하여 내다 버릴 뿐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환자거지에 대한 수용은 1930년대 중반 이후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거지의 상황은 일제로부터 벗어났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재민(戰災民)들과 해외동포들의 귀환으로 거지는 더욱 증가하는 양상을 띠었다.

- 계속

2. 거지의 실태

1) 거지의 일시적 폭증과 변화

2) 거지의 생활
(1) 나홀로 거지(순 거지)
(2) 거지사회
(3) 앵벌이 조직

3. 단속과 수용
1) 단속

2) 수용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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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er gene… 16-08-1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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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 18-06-2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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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kans for taking the time to post. It's lifted the level of deb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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