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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계급투쟁에서 경쟁협조주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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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폭력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 3권 서평
모든 정당을 없애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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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작성일 : 12-06-19 18:54
모든 정당을 없애야 하는 이유
 글쓴이 : 시몬 베이유
조회 : 3,066  

진보평론 52호(2012년 여름) 기획번역

 

이 글은 시몬 베이유가 죽고서 7년이 지난 19502월 "원탁(La table ronde)" 26집에 처음 실렸다. 그 후 1957년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에서 다른 글들과 함께 묶여 책으로 나왔고, 2006년에는 끌리마(Climats) 출판사에서 앙드레 브르똥의 서문 등을 달아 소책자로 나왔다(번역: 이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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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당이란 말을 대륙적 의미로 사용한다. 앵글로 색슨 계열의 나라들에서는 정당이란 말이 전혀 다른 것을 뜻한다. 이 전혀 다른 것이란 영국적 전통에 뿌리내린 것이어서 다른 곳에 옮겨질 수 없다. 한 세기 반의 경험이 이를 충분히 입증한다. 앵글로 색슨 정당들은 놀이와 스포츠의 요소를 갖는데, 이는 귀족적 기원을 갖는 제도들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반면 평민적 기원을 갖는 제도들에선 모든 게 진지하다.

프랑스의 경우 1789년의 정치적 관점에선 정당이라는 생각이 존재할 수 없었다. 정당은 반드시 피해야할 악()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물론 자코뱅들의 클럽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원래 자유로운 토론의 장소였을 뿐이다. 그 성격이 바뀐 건 어떤 숙명적 과정에 따른 게 아니다. 전쟁의 압박과 기요틴이 클럽을 전체주의적 정당으로 변화시켰다.

공포 정치 아래서 분파들의 투쟁을 지배한 것은 톰스키(Tomski)가 말했듯 한 당파만이 권력을 잡고 나머지는 모두 감옥에 간다는 생각이었다. 그 결과 유럽 대륙에서 전체주의는 원죄처럼 정당들을 사로잡았다.

유럽인들의 공공적 삶에 정당이 자리 잡은 것은 한편으론 공포 정치의 유산이고, 다른 한편으론 영국의 영향 때문이다. 정당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정당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가 되진 않는다. 정당이 좋은 점을 갖는 한에서만 정당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당의 나쁜 점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러므로 정당들이 어떤 좋은 점이 있어서 나쁜 점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정당들은 있어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다음처럼 묻는 게 훨씬 낫다: 정당들은 손톱만큼이라도 좋은 점이 있는 걸까? 정당들은 순수한 형태의, 또는 거의 순수한 형태의 악이 아닐까?

정당들이 악이라면, 정당들의 행위가 만들어내는 것은 오직 악일 수밖에 없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썩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좋은 것, 즉 선()의 기준은 무얼까? 그것은 첫째로 진리와 정의, 둘째로 공공적 유용성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의 권력으로서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오히려 좋은 것을 위한 수단이다. 옳건 그르건 유효하다고 여겨지는 수단 말이다. 가정을 해보자. 히틀러가 아니라 바이마르 공화국이 최고로 의회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유대인들을 수용소에 보낸 뒤 교묘하게 고문해서 살해했다고 말이다. 그런 고문은 지금과 똑같이 일말의 정당성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오직 올바른 것만이 정당하다. 범죄와 거짓말은 어떤 경우건 정당할 수 없다.

우리의 공화주의적 이상(理想)은 전적으로 루소의 일반의지 개념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 개념은 거의 곧바로 의미를 잃었다. 개념이 복잡할뿐더러 주의를 요하기 때문이다.

"사회계약론" 만큼 아름답고 강력하고 명석하고 명확한 책은 드물다. 몇몇 장()을 예외로 친다면 말이다. 사람들은 "사회계약론" 만큼 큰 영향을 끼친 책은 드물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아무도 그 책을 읽지 않은 것 같다.

루소의 출발점은 두 가지의 명백함이다: 첫째로, 이성은 정의와 무해한 유용성을 판별하고 선택하는 반면, 모든 범죄는 정념(passion)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 둘째로, 이성은 모든 사람에게서 동일하지만, 정념은 대부분의 경우 서로 다르다는 것. 이 두 가지 명백성의 귀결은 다음과 같다. 어떤 일반적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각자 고찰해서 의견을 표명한다고 해보자. 그 의견들을 서로 비교해보면, 올바르고 합리적인 부분은 서로 일치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반면, 부당하고 잘못된 부분들은 서로 다르리라는 것이다.

보편적 합의가 진리일 수 있다고 우리가 인정하는 것은 오로지 이러한 종류의 추론 때문이다.

진리는 하나다. 정의도 하나다. 반면 오류나 불의(不義)는 무한히 다양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올바름과 진리 속에서 하나로 모인다. 반면 거짓과 범죄는 사람들을 끝없이 흩어지게 한다. 하나로 모이는 것은 물질적인 힘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이런 결합은 범죄나 오류보다 물질적으로 훨씬 강력한 진리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적합한 장치가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만약 그런 장치라면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쁜 것이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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