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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기획
 
작성일 : 11-03-15 17:36
21세기 사회주의전략: 녹색사회주의+급진민주주의
 글쓴이 : 서영표
조회 : 1,320  

서영표/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1. 머리말

 

2010년 한국사회는 극심한 사상적 혼란을 겪고 있다. ‘진보’라는 이름 아래 사회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가 뭉뚱그려지기도 한다. 여기에는 대략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한편으로 권위주의적 성향의 보수정권의 공세에 직면하여 이념과 지향을 뛰어넘은 ‘민주주의’블록을 형성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반MB연합은 이러한 압력이 상당한 정도의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른 한편 반보수 전선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에 의해 조장되고 있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에 앞선 10년 동안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를 주도했고 스스로의 정치적 기반을 허물어 버리면서까지 자본의 편에 섰지만, 이제 정권 재탈환을 위해 선별적으로 ‘진보’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진보개혁’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야당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모호한 ‘민주주의’ 블록을 넘어설 이념적 좌표와 실천적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는 좌파의 무능이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념적(관념적?)으로는 급진적이지만 그것을 현실 실천과 결합시키지 못함으로써 제도정치에서는 자유주의야당과 차별성을 가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념적으로만 급진적인 면은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반자본주의적 또는 탈자본주의적인 다양한 형태의 저항이 가지는 급진성을 개량적이라고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결국 이론과 실천은 괴리되고, 정치는 의회와 정당으로 축소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진보개혁’과 다른 좌파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진정한 진보는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추상적 수준에서 답하기는 쉽다. 이념만의 급진성이 아닌 구체적 일상으로부터 사회변혁의 잠재적 힘을 이끌어 냄으로써, 제도정치에 참여하지만 그것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민주주의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독점적인 시장의 힘을 사회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를 ‘진보개혁’이라고 포장하지만 비민주적이고 비반응적(unresponsive)이며 관료적인 제도정치의 관행에 순응하고 시장의 힘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제기하지 않는 자유주의자들과 다름을 보여주는 길이기도 하다.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할 때 ‘진보정치세력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공허한 구호이며 ‘민주대연합’의 낡은 정치공학에조차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구체적 현실과 교감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정치의 싹을 틔우는 것, 그리고 제도 안에서 제도에 저항하는 것, 더 나아가 시장에 힘을 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인 힘을 길러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몇몇 이론가들의 구상에 의해 성취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이유에서 이 글이 제목에서처럼 21세기 새로운 사회주의전략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방향으로서 중요한 화두가 될 수 있는 두 가지, 즉 녹색사회주의와 급진민주주의의 개략적인 내용을 제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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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o 18-06-2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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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h, I wish I would have had that inofimatron earlier!
Delia 18-07-08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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