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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기획
 
작성일 : 14-09-19 10:17
멈춰진 세월, 멈춰진 국가: 신자유주의적 통치성과 폭력의 새로운 형상
 글쓴이 : 최원
조회 : 483  

진보평론 61(2014년 가을) 특집


멈춰진 세월, 멈춰진 국가: 신자유주의적 통치성과 폭력의 새로운 형상

 

최 원 _ 건국대 연구교수/ 철학

 

 

 

세월호가 침몰한지 20여 일이 지나고 이미 구조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완전한 절망으로 바뀌었을 때, KBS의 김시곤 보도국장은,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즉시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후 이러한 교통사고담론은 아예 세월호 참사를 하나의 교통사고에 불과한 것으로 몰고나가기 위한 새누리당의 기본담론으로 채택되어 집권세력의 책임회피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으며, 또 부분적으로는 여론 조작에 성공한 듯이 보이기까지 한다. 반면 이러한 악의에 차고 비겁한 왜곡을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는 늘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교통사고 가운데 하나이거나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가 아니라 명백한 인재라고 말함으로써 사고발생을 예방하지 못하고 구조에 총체적으로 실패한 국가에 대해 그 책임을 추궁하려고 했다.

세월호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라는 이러한 성격규정의 의도는 물론 완전히 정당한 것이며, 국가의 공적 책임이라는 문제를 적절히 제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세월호 사건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라는 말, 상당히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또 어찌 보면 너무 틀에 박힌 것처럼 보이는 이 말을 우리가 한 번쯤 의문에 부쳐보고, 세월호는 그 이상이었다고 말해야 비로소 이 끔찍한 사건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 글은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이 사건의 본질을 다시 고민해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쓴 글이다. 나는 우선 미셸 푸코의 안전권력및 그것의 현대적 양상으로서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성’(neoliberal governmentality)에 대한 논의를 통해 세월호 사건을 조명해보고, 이를 통해 드러나는 폭력의 새로운 형상을 에티엔 발리바르의 논의에 기대 분석해보고자 한다.

 

1. 세월호, 안전권력,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2. 폭력의 새로운 형상과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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