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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기획
 
작성일 : 14-12-29 10:16
복음교황 프란치스코와 한국사회
 글쓴이 : 김선필
조회 : 402  

진보평론 62(2014년 겨울) 특집 | 종교와 사회운동


복음교황 프란치스코와 한국사회


 

김선필 · 제주대학교 박사과정 / 사회학과


 

1.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불어오는 새 바람

“Habemus Papam!(우리는 교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13313일 바티칸에 새로운 교황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윽고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새로운 교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교황이 전통적으로 입던 모제타(망토)도 걸치지 않았고, 금제 십자가 대신 은제 십자가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그가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Buona sera?(안녕하세요?)” 새 교황이 세상에 던진 첫마디였다. 이어서 모두가 놀랄 일이 벌어졌다. 새 교황이 사람들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청하였던 것이다. 환호로 가득 찼던 광장은 순식간에 침묵에 빠졌다. 사람들은 새 교황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새 교황은 사람들의 기도를 받고 나서야 세상을 향해 보내는 우르비 엣 오르비(Urbi et Orbi)” 곧 첫 강복을 주었다. 그는 좋은 밤 되시고 편히 주무십시오!”라는 말로 세상과의 첫 만남을 마무리했다. 새 교황이 보여준 검소하고 소탈한 모습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사람들은 새 교황의 행보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곧 그들은 새 교황의 첫인상이 진짜였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의 등장과 함께 불어온 새바람은 가톨릭교회를 넘어 온 세상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바티칸과 로마는 다시 활력이 넘치기 시작했고, 가톨릭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를 본받으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교황은 세상을 향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세상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좌초위기에 놓여있던 가톨릭교회는 그의 등장과 함께 세상의 중심에 다시 서게 되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을 이룬 그의 이름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Jorge Mario Vergoglio) 즉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등장은 한국사회에도 이슈가 되었다. 권위를 내려놓고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습 속에서 혹자들은 새로운 리더십을 찾기도 하였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예언자적 모델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바티칸과 한국의 물리적 거리에 비례했던 것인지, 교황에 대한 관심이 한국사회의 주요 이슈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난 8월에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티칸과 한국 사이에 존재하던 물리적 거리가 없어졌다는 의미이자, 교황이 세상에 불어넣고 있는 새 바람이 한국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 그가 머물다간 45일은 한여름밤의 꿈대한민국이 행복했다라는 기사제목(신형식김고금평, 2014)처럼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인상을 남겼다. 사람들은 교황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고, 그와 함께 하길 원했으며, 그로부터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아픔들을 위로받길 원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이제 우리는 다시 홀로서기를 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바티칸으로 돌아간 교황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가 승천한 뒤, 그가 올라간 하늘을 바라보던 사도들에게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말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사도행전 1,11)” 그렇다. 2,000년 전 예수가 이 세상에 왔다갔다고 할지라도, 사도들의 목숨을 건 선교활동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그리스도교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황이 한국사회에 가져다준 새 바람이 한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봄바람이 될지, 아니면 반짝 불고 사라져버리는 돌풍에 그치게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이 땅에 남겨진 우리의 역할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 글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기고 간 새 바람이 한국사회에 변화를 일으킬 봄바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좀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오늘날의 프란치스코 교황을 있게 한 원천(fons)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계속

2. 교황 프란치스코, 세상 속으로더욱 깊숙이

3. 진보교황? 개혁교황?! 복음교황프란치스코!!!

4. 가톨릭교회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회적 관심

5. 복음교황, 프란치스코와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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