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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기획
 
작성일 : 15-03-20 16:00
통합진보당 문제와 한반도 모순(이영채)
 글쓴이 : 대담: 이영채
조회 : 583  

진보평론 63호(2015년 봄)

긴급진단 | 대담_통합진보당 문제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통합진보당 문제와 한반도 모순 

 

 

이영채(일본 게이센여학원대학교 국제사회학과 교수)

고민택(진보평론 편집위원)

· 정리 : 김상운(진보평론 편집위원)

· 일시 : 201523일 오후 5~7

· 장소 : 진보평론 사무실

 

 

고민택  처음 뵙습니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저는 진보평론 편집위원 고민택입니다. 대담에 응해주심에 대해 진보평론을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원래 진보평론에서는 이번 63호 특집 “종북,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글을 선생님께 부탁드렸는데, 결과적으로 대담 형식으로 선생님의 의견을 듣는 것으로 정리되었습니다. 혹시 대담 형식을 택하신 이유가 있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요? 독자들에게 인사 겸 간략하게 자기소개도 해주세요.

이영채 저는 한국의 성공회대학교와 성격이 비슷한 일본 도쿄에 있는 케이센여자대학교 국제사회학과 교수 이영채입니다. 이 대학은 전 학생 원예 이수가 필수이고, NGO나 환경 및 복지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대학교 총학생회장의 경험이 있고, 소위 좌파학생운동의 전국연대활동도 했었습니다. 일본에 간 건 15년 정도 됩니다. 전공은 지역 및 국제정치이고 북일관계를 주로 연구하고 있지요. 하지만 일본의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어서 한국에 소개하기도 하고, 전후보상운동을 매개로 한일시민연대운동의 코디네이터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진보평론하고는 예전의 학생운동 인연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있는 정도고요.
이번에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으로 약칭) 사건에 대해 글을 청탁 받았는데, 다른 업무와 겹쳐서 글을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통진당 문제는 경직된 한일관계 속에서 가볍게 거론하기 어려운 주제이기에 주저되는 바도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최근 동아시아의 여러 가지 정세를 고려하면 통진당 사건은 꼭 한국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에 여러 측면에서 깊게 사고해야 할 지점들이 있다고 봤습니다. 예를 들어 통진당 문제를 동아시아 혁명운동의 역사적 측면에서 볼 필요도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해 시간적 및 공간적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겠죠. 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하고, 역사적인 분석을 하기에는 제 역량이 너무 부족하기도 해서, 좌담회 형식으로 의견을 나누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민택  진보평론에서는 이번 대담의 제목을 “통합진보당(진보당) 문제와 한반도 모순”으로 잡았습니다. 선생님께 사전에 대담 주제를 선정해 주실 것을 요청 드렸고, 선생님께서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제안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 대담의 원래 제목보다 선생님께서 제안하신 대담
이영채(일본 게이센여학원대학교 국제사회학과 교수)
 주제가 더 크게 보입니다. 일단 시야가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전체를 겨냥하고 있고, 시간적으로도 지금의 정세만이 아니라 전후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부분에 공감합니다. 한반도 정세(상황),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모순이 적어도 동아시아 상황과 별개로 논의될 수 없다고 봅니다. 선생님께서 대담 주제를 그렇게 잡으신 맥락이나 의미에 대해 먼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영채  전체적인 분석 틀이 있어서 토론주제를 제출한 건 아닙니다. 우선, 통진당 사태가 사회적 쟁점이 되는 것은 한국이 분단사회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53년 분단체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죠. 두 번째는 동아시아 전체가 아직도 반공구조라는 기본 틀을 가지고 있고, 통진당 사태에 대한 해외의 시각도 반공주의 시각으로 재단하고 있다고 봅니다. 올해가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이 되는데, 지금까지도 한반도는 53년 분단체제와 동아시아의 냉전체제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전후 70년간 우리는 또는 아시아 각국의 진보주의자들이 추구한 진보는 무엇이었는지 국제적인 시각에서 다시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국제적 시각으로 통진당 사태를 볼 때, 장애는 바로 북한입니다. 우리사회도 그렇지만, 일본이나 동아시아 국가들도 북한이라는 국가에 대한 인식이 너무 단순합니다. 독재국가라는 프레임 안에서 갖 는 북한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한국의 변혁운동에서 통진당이 대표하는 세력이나
고민택(진보평론 편집위원)
 그들의 운동의 의미에 대한 해석을 어렵게 하는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보면 일본의 연합적군파처럼 통진당도 어떤 의미에서는 동아시아의 혁명세력 중 하나로 규정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통진당만이 아니라 과거 지리산의 빨치산도 동아시아 혁명운동의 일환으로 해석해 볼 수 있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한국전쟁에 대해 한국[남한]사회는 북한에 의한 침략전쟁이라고, 북한은 조국해방전쟁이라고만 규정하고 있지요. 한국전쟁의 의미에 대해, 이런 대립구도를 떠나서 더 넓게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동아시아 혁명운동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한국전쟁은 좌파의 혁명운동 속에 전쟁이라는 수단을 처음으로 적용한 예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소련공산당, 중국공산당, 조선노동당 그리고 일본공산당 모두 최소 혁명전쟁에 동의했고 함께 추진했습니다. 맑스레닌주의가 됐든 주체사상이 됐든 혁명운동에 무력이란 수단을 적용하는 것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통진당 사태는 한국전쟁 이후, 그리고 탈냉전시대를 맞아 잊혀버린 폭력혁명이라는 방식이 아직도 유지된다는 점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검증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사건이라고도 봅니다. 어떻게 보면 통진당 사태는 분단체제 속의 모순, 아시아 반공주의, 북한의 이미지, 공론화하지 못했던 폭력혁명론의 모순 등이 중첩된 동아시아의 21세기 버전의 혁명운동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통진당 사태를 일국적인 시각만이 아니고 종전 이후 동아시아 혁명운동의 연장선에서 그 의미에 대해 평가를 해보자는 것이 기본적인 문제의식입니다. 그 역사적인 배경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 봤으면 합니다.

고민택  큰 틀에서 어떤 뜻인지 알겠습니다.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아슬아슬한 쟁점도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약간 긴장도 되고 흥분도 됩니다. 본격적인 대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늘의 대담 제목과 관련한 선생님의 모두 발언을 먼저 들었으면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한반도 모순이 무엇이라고 보며 또한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그 속에서 이른바 “분단체제론”이나 민족주의 세력(진영)에 대한 견해, 그리고 한국 ‘좌파’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응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이영채  어렵네요. 말을 잘못하면 지뢰를 밟을 것 같네요(웃음). 이 문제에 대해 모두(冒頭) 발언을 하면 설명이 길어질 것 같고요. 뒷부분에 대한 감상만 말씀드리자면, 저도 한국에서 소위 좌파계열 운동을 했기 때문에 민족주의적인 운동보다는 국제프롤레타리아 연대라든지, 한국사회의 변혁을 위해서 계급 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학생운동 시절에는 한국 운동가들이 그렇게까지 열심히 운동하는데 왜 소위 변혁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남북한이 독자적으로 통일을 주도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고 고민을 했었지요. 이런 고민이 유학의 동기가 된 것 같고요. 그런데 일본의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한반도의 모순이, 우리의 운명이, 우리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주변강대국(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의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말 그대로 한국의 모순 자체가 국제적인 모순이구나, 그런데 이에 대해 정말 국내적인 시각만을 갖고 변혁운동을 사고해 왔었구나, 이런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도쿄대나 게이오대 같은 보수적인 곳에서 논쟁하면서 일본의 이해관계를 피부로 느낀 것이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일본의 공산당이나 사회당, 신좌파 분들과 만나게 되고, 그들의 혼네(본심)와 부딪치면서, 변혁세력의 관계자도 말로는 국제프롤레타리아트를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의 인식 속에는 일본인, 일본국가, 일본이 갖고 있던 제국주의, 식민주의적 사관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했어요. 한국 좌파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아! 우리가 국제프롤레타리아트주의라고 말은 해 왔지만 실제로는 일국적인 사고를 계속 해왔었구나. 그런데 한국도 일본도 중국도 냉전시기에는 변혁운동 세력들이 국경을 넘어본 적이 거의 없었죠. 실제로 국제프롤레타리아운동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는 국제연대운동이 얼마나 존재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일본식민지시대가 종식되고 특히 한국전쟁 이후에는 국제운동이 단절된 상황 속에서, 머리로는 국제프롤레타리아주의를 고민했지만 실제로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속에 갇힌 운동을 계속해왔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택  잠깐만요. 그 점은 세계 모든 나라 변혁운동의 보편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데 한반도의 모순은 분단이라는 문제가 중첩되어 있어서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것 아닙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쉽게 국제프롤레타리아 운동과의 연속선에서 단절이 주는 과중한 고통이나 어려움보다는 분단 그 자체를 가장 핵심적인 모순으로 바라보게 되거나,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상황, 이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한반도의 모순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영채  방금 지적하신 대로 인식이 구조를 넘어설 수는 없기 때문에, 분단 구조 속에서 변혁운동을 사고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 속에서 북한에 대한 선입견, 또는 편견도 만들어졌구요. 우리가 재생산해낸 이론들도 결과적으로는 한국의 분단구조, 또는 국가기구의 억압적인 성격 속에서 우리 스스로 그 정도의 변혁운동을 고민했던 것이고 그 산물이겠지요. 그런데 제가 말씀드린 “한반도 모순의 국제주의”는 꼭 그게 미국의 영향력이나 미국이 분단을 주도해 왔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에요. 한반도의 국제적 모순에는 미국만큼이나 러시아, 중국, 일본도 아주 첨예하게 한반도의 이익과 맞물려 있었죠.
올해가 청일전쟁 120년인데요, 우리들은 청일전쟁에 대해 얼마나 국제적인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청일전쟁이죠. 이 청일전쟁에 대해 국제정치학 등에서는 지금까지도 세력균형론이나 재편론으로 얘기되고 있어요. 청일 세력권의 충돌에 의해 한반도는 전쟁터가 되었고요. 당시 청군은 평양지역에, 일본군은 서울지역에 주둔했고, 38도선은 이 충돌을 피하기 위한 주둔선이었죠. 러일전쟁 때도 마찬가지였죠. 러일전쟁에 개입한 미국이 포츠담회담에서 양 세력의 균형선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38도선이었습니다. 45년 8월 15일에 이 38선이 갑자기 그어진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만일 38선이 냉전이 만든 선이고 한국전쟁 이후에 고착되면서 세계적인 냉전의 최전선이 되었다면, 세계적인 냉전이 붕괴되었으므로 38선도 당연히 붕괴되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 38선이 아직 붕괴되지 않은 데에는 냉전 이외의 다른 요소가 38선에는 있지 않느냐, 이것이 제가 말하려는 한반도의 역사적인 국제모순이라는 것입니다. 이 국제간의 이해 충돌 속에서 한반도는 어떤 “국익”을 추구해야 하며, 그러한 성격을 분석하면서 변혁운동가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운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 사고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냉전 시대에 이동의 자유가 없었기에 좌파가 운동을 폭넓게 사고할 수도 없었겠지만, 그것 또한 분단구조와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구조가 어떻게 보면 우리의 운동을 일국적으로 규정해 왔으며, 그 속에서 우리는 냉전시대의 운동을 해 왔던 거겠죠.
하지만 탈냉전시대, 지금 같은 신자유주의적 글로벌리즘 시대에는 냉전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좌파연대운동이나 변혁운동에 대한 사고가 필요함에도, 실질적으로 그러한 변혁운동에 대한 나름대로의 재구축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경험을 하고 있는가 하면, 또 그렇다고 생각되지 않고요.

고민택  말씀하신 것 중에 개념적으로 두 가지를 더 얘기해 봤으면 하는데, 하나는 ‘북에 대한 선입견’이라는 말씀이 있거든요. 그것은 곧 선생님 자신이 북에 대한 나름의 자기 정리가 있다는 건데, 이 점에 대해 말씀을 들어봤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는 ‘한반도의 국익추구’, 이른바 국익이 등장했는데요. 변혁운동이 일국적 차원만이 아니라 일국을 둘러싼 지정학적, 더 나아가 세계적 차원에서 형성되는 정세와 연동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국제세력관계와 무관한 변혁운동은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너무 국제정치적, 세력관계 중심으로 사고해 버리면, 마치 남북한이 선통일 단결해서 국제적 관계에서 자유로워질 때에만 변혁운동이 가능하다는 식으로도 들립니다.

이영채  먼저 북한에 대한 선입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국제정치적 입장에서 북일관계를 전공했고, 북한에 대한 내적 연구를 위해 여러 자료도 보게 되었습니다. 계급적 좌파운동의 전통에서 보면, 소위 NL계열의 북한인식은 찬미주의, 또는 ‘종북주의’ 등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NL계열의 이런 인식은 물론 문제가 있지요. 하지만 북에 대해 국제적인 측면과 역사적인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연구해 보면 북한은, 나름의 정치 시스템과 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반드시 맑스-레닌주의의 한 형태라거나, 유교적 수령주의, 아니면 코포라티즘적 국가라고 규정하지는 않더라도 말입니다. 북한이 내놓는 성명서나 노동신문, 저작집을 보면 물론 정치적으로 과장된 부분과 왜곡된 부분들이 존재하지만, 그 속에서 북한은 이성적이고 목적의식을 가진 하나의 정치 행위자로서의 모습을 보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북한은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며 시대에 적응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55년 평화공존 시기에, 북한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해서, 한국보다 훨씬 먼저 자본주의 국가인 일본과 손을 잡으려 했습니다. 1970년대 초에는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미중국교정상화, 중일국교정상화 등이 이루어지면서 국제 정세와 지역 정세가 급변했죠. 이른바 데탕트시대이죠. 이 시기에도 북한은 한일기본조약을 인정한 채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려고 했죠. 그 시기에는 오히려 한국이 북한보다 내적으로 경직되어서 유신체제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고요. 결국 남과 북은 미국과 중국의 압력에 의해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지만, 국내적으로는 자신들의 정치체제를 훨씬 더 강고하게 하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국제정세의 완화가 국내정세의 완화로 이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유신체제와 수령체제를 만드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습니다.
1990년대 냉전 붕괴시기에 북한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소굴인 자민당과 대화하며 3당 선언을 통해 오히려 북일국교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북한은 국제정세, 지역정세, 국내정세 속에서 아주 냉철한 정세판단의 능력을 갖춘 하나의 정치적 행위자라는 것을 한국도 일본도 인정할 필요가 있는 거죠. 그렇지만 우리들은 기구나 체계로서의 북한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냉전 이데올로기와 반북 이데올로기, 또는 민족 이데올로기로 북한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북한 체제 자체의 정상성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을 저는 북한에 대한 선입견이라고 규정합니다.

고민택  말씀 길어지기 전에 잠깐만요. 지금 말씀은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그런데 현재의 시점에서 북에 대해서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서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먼저, 북 정권(체제) 성립 이후의 과정은 선생님이 말씀 하신대로 보거나 설명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북을 오늘날의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뒤에서 더 본격적으로 얘기하겠지만, 북이 자신의 정권과 체제를 여전히 사회주의로 말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하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말씀하신 맥락에서 북을 보면 크게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럴 경우 오히려 한국의 냉전(반공·반북)세력과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대북압박정책이 더욱 큰 문제가 되겠지요. 그리고 이 측면은 여전히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럼에도 ‘불편한 진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북이 계속해서 자신의 정권과 체제를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앞의 진단으로 뒤의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고 올바른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북 스스로 어떤 단절이나 변화를 꾀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필요성이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영채  맞습니다. 어떤 뜻으로 질문하신지도 알겠습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북한은 왜곡된 사회주의 국가체제이죠, 어떻게 보면 유교적 수령주의라고 하는 게 적절할 것입니다(일본의 스즈키 마사유키가 이렇게 규정합니다). 그리고 중국과 소련, 일본과 한국, 미국 사이에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많이 해 왔지요. 김일성 시대에는 경제성장이라는 기록도 남겼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에는 선군정치를 통해서 체제를 지키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는 달리 세습론을 통해 왜곡된 통치체제의 모순을 낳았지요. 또 이런 왜곡은 경제정책의 실패, 부패한 관료 제도를 만들었어요. 이 과정에서 현 체제를 변화시키면서 전환하기 힘든 모순덩어리의 북한 사회주의체제가 성립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그 과제는 남습니다. 현실적으로 변혁운동을 고민하는 입장에서도 동아시아지역에서 북한 붕괴를 상정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북한의 붕괴가 곧바로 세계 지도상에서 북한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또한 체제가 갑자기 쿠데타나 민중봉기에 의해 붕괴됐을 때 발생하는 난민이나 정치혼란을 고려하면 붕괴된 정치체제 수습도 쉽지는 않죠. 북한 체제 평가와는 별도로, 이런 북한 체제와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현실적인 과제를 국민들은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좌파운동진영이나 실질적으로 대안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이론이나 이데올로기만이 아니라 북한 붕괴 및 변화, 통일에 대한 현실적인 운동의 과제와 정책적 대안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고 봅니다.
저는 일본모델을 자주 설명하는데, 전전(戰前)의 일본 천황제가 북한의 현재 모델이라고 봅니다. 김일성은 어떻게 보면 일본에게 ‘이지매’를 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지매의 특성은 당한 자가 다른 곳에서 자기가 당한 이지매와 똑같은 구조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천황제에 의해 탄압을 받았지만 결국 천황제를 만들어버린 것이지요. 전전의 일본 천황제는 없어졌지만, 그 모습은 북한의 수령제 속에 지금도 남아 있는 거죠. 북일관계를 깊게 보면 그 유사성이 많이 보입니다. 전전의 일본 천황제가 전후에는 어떻게 변했는가. 미국과 연합국이 일본의 천황제를 소프트랜딩한 게 “상징천황제”입니다. 실질적인 권한은 없애고 정통성은 인정한 것이지요. 이것이 전후 일본 체제의 붕괴를 피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측면에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상징천황제가 가져온 전후 일본사회의 모순구조에 대한 평가는 별도로 하고요.
북한도 붕괴를 피하는 하나의 해결방식으로 북한식 상징천황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소프트랜딩을 위해서는 김일성 수령 체제를 상징적으로 만들면서 북한 체제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변혁시킬 수 있는 어떤 형태가 필요하겠죠. 이것이 어떻게 보면 김대중 대통령에 의한 햇볕 정책일 수도 있고, 중국식 개혁모델을 따르게 하는 방법일 수도 있고요. 북한을 붕괴시키지 않으면서 체제를 변혁하는 여러 방식의 고려 속에는 좋든 싫든 북한의 김일성 체제를 우리가 인정하면서 가는 게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이해하게 된다면, 강대국들 사이에서 소국외교를 실시해 온 김일성과 김정일의 정치행위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겠죠. 아시아의 냉전구조와 분단구조가 해체되면, 북한체제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고민택  여기서 가지를 치면서 또 두 가지 문제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북한식 체제의 변화에 대해서 북은 자주적, 또는 우리식 사회주의라 하고 있고, 이것이 최고의 가치로서 존재하는데, 이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가 됐든 어떤 다른 체제로의 변화까지도 염두에 둔 얘기인지 궁금합니다. 또 하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현실적 조건에서 과연 그렇게 가기 위한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인지 의문도 있구요.

이영채  1950년대에는 소련이 북한에 투자를 했습니다. 1960년대에는 동유럽국가들이 투자를 했지요. 중소분쟁의 영향이 있자, 1970년대에는 재일동포기업이 많이 했습니다. 재일동포들은 북한에서 합영기업을 했는데 거의 다 실패했죠. 이후 80년대에 일본기업들이 들어갔는데 역시 실패했습니다. 현재 일본정부는 이들 기업에 보험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에는 한국기업들이 투자했죠. 대표적인 것이 개성공단이고요. 개성공단이 애초 계획보다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지금은 중국기업이 대북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결국 북한의 경제체제는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외부자금의 지원이나 투자 없이는 지속될 수 없음을 북한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북한은 여러 형태의 외부 자본을 흡수하면서 북한 나름의 자본주의 축적형태를 갖추었다고도 보입니다. 2000년대 이후 일본과 미국이 국제공조를 통해 폭넓은 경제 봉쇄 정책을 실시하고 있음에도, 북한은 점진적인 형태이지만 어느 정도 경제성장을 해왔습니다. 94년부터 97년까지의 위기를 극복했고, 현재 북한은―장기적인 체제 붕괴단계에 있을지도 모르겠으나―2000년대 중반부터는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봅니다. 식량문제는 아직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지만, 경제는 회복단계입니다. 국경감시가 엄해지기도 했지만, 탈북자들이 급격히 감소한 것은 내적경제회복의 효과입니다.
경제봉쇄 속의 북한의 경제회복의 원인이 중국의 지원 때문인지, 북한식의 조그마한 규모의 체제는 사회주의 체제라고 해도 자체적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인지, 독재이긴 하지만 한국의 개발독재처럼 부패 속에서도 성장하는 특성이 있는 것인지,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북한 경제 체제는 분명 성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장 속에서 분배 및 평등, 공평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빈부격차도 커지고 있습니다. 좀 더 넓게 생각하면, 북한도 신자유주의 글로벌 경제의 영향을 받고 있는 아프리카의 어느 사회주의 독재국가와 똑같은 하나의 체제라는 것입니다. 북한만이 지구상에서 독특한 체제인 것은 아닙니다. 북한의 체제 변화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떻게 보면 실질적인 변화는 아니더라도 상징적인 변화는 나름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북한식 사회주의적 자본주의라고 할까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 모델도 변혁의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아직 그런 기회는 있다고 봅니다.

고민택  그런데 문제는 북이 어느 아프리카 소국이었으면 그렇게 해도 될 텐데. 왜냐하면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질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문제는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으로 핵심적인 공간에 위치하고 있는데, 북을 그냥 놔둘 리가 없다는 거죠. 또 한민족 입장에서 보면, 남과 북이 서로 체제를 그냥 인정해주고 그쪽은 그쪽대로 살고 우리는 우리대로 살자, 그러면 괜찮을 수도 있는데, 진실이든 거짓이든 남북 모두 통일을 최고의 가치로, 상호 공유지점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죠. 차라리 통일은 장기적 과제로 미뤄 두고, 각각 하나의 국가로 살아가자, 라고 하면, 그럴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못하잖아요. 현실적으로 남북 지배계급 모두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고요. 차라리 한국의 노동자계급이나 변혁운동, 또는 좌파 쪽에서 그런 입장을 피력하는 것도 한 방법일 텐데, 감히 얘기를 꺼내지 못하거나 또는 그렇게 보고 있지 않잖아요. 제가 보기에 한반도 모순의 또 중요한 한 요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영채  물론 동감합니다. 앞서 국익추구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이 얘기를 잠깐 하죠. 먼저, 북한 체제가 붕괴되지 않는 이유도 실질적으로는 지정학적 요소가 크고, 한반도가 통일되지 않은 이유에도 지정학적 위치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가 한반도의 국익에는 불리하기도 하고, 유리한 지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무현 대통령 때 “동북아 중심국가”, 즉 균형자가 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적이 있지요. 제가 만난 일본 및 중국의 외교관계자들 및 학자들은 모두 다 비판적이었어요. 노무현 대통령의 발상은 맞죠. 우리가 분쟁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중재국이 되겠다는 이야기지만, 일본이나 다른 강대국들은 한반도 같은 작은 나라가 중재를 할 수 있는 힘이 있느냐며 비아냥거립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한반도 중심주의에 대한 잠재적인 경계의식의 발로이기도 합니다.
현재 남북한의 통일을 바라는 주변국은 하나도 없어요. 미국은 남북한의 분단구조를 이용하여 무기를 팔아먹고 있죠. 남북분단 및 동아시아 냉전구조가 미공화당이나 민주당 입장에서 국익이 되기 때문에 통일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입장은 어떠할까요. 현재 상태에서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북한은 한국에 흡수통일 될 것이고, 미국의 영향권 하에 있는 통일한반도가 출현하겠죠. 그러면 북한 및 중국의 동북지방은 미정보국의 먹이가 될 것입니다. 중국의 경제개발은 3단계로 추진되어 왔는데 제1차 경제개발은 남부의 상하이 지역, 제2차 경제개발은 중부의 베이징이나 대련 중심, 제3차 경제개발은 북쪽의 연변 및 두만강지역을 중심으로 한 동북지역입니다. 이 3차 경제개발이 성공해야만 중국 경제가 순환구조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북한의 흡수통일이나 북한의 붕괴는 중국동북지역의 경제 불안을 가져오고 이것은 중국의 경제발전에 불리한 요소가 됩니다.
중국은 한국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한반도 개입에 불과한 것이라 보지 않고 중국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파괴공작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중국은 미국의 한반도 주둔도 중국혁명에 대한 파괴 또는 봉쇄에 있다고 보고 있기에, 북한의 흡수통일보다는 분단 상태의 유지가 중국의 국익이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도 현재 영향력이 유럽까지 미치지 않기 때문에 국익을 위해 아시아 쪽으로의 남하정책에 눈을 돌리게 되었지요. 이런 맥락 속에서 러시아는 김정은 체제를 인정해 주면서 남하의 발판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고요.
일본의 경우, 한반도가 통일되면 인구 7천-8천명의 중급규모의 나라가 주변국에 등장하는 것을 의미하죠. 현재 한국은 약 4천 7백만 명을 가지고도, 삼성이 소니를 이기고 도요타에 대해 현대차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데, 남북한이 통일이 되면 그 잠재력은 훨씬 커지겠죠. 일본 입장에서는 현재 중국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통일한반도를 상상하면 머리가 더 복잡해집니다. 일본은 그 어느 나라보다 한반도의 정세변화에 민감합니다. 청일전쟁이 왜 일어났겠습니까. 일본의 국익은 한반도의 변화와 직결되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통일 또는 공존체제에 대해 그 어떤 주변국도 찬성하지 않는다는 점이 바로 한반도 모순이자, 동아시아 모순이기도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국익이라는 것을, 통일이라는 것을, 또는 한반도중심주의를 전면적으로 주장하면 할수록 오히려 주변 국가들은 경계를 하면서 국제적으로 분단 정책을 펼치는 데 공조합니다. 1945년 8월 이후 왜 한반도가 분단되었는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죠. 이 구조를 이해한다면 노무현 대통령 때 얘기했던 동북아 중심국가라는 정책이나 표현도 매우 신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이 진정한 국익이냐, 만약 통일이나 남북한이 단결하는 것도 하나의 국익이라고 본다면, 우리의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데올로기적인 선언이 아닌 실질적인 국익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주의와 내셔널리즘은 마음속에 꼭 집어넣고 주변국들이 동의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정책들을 쓸 필요가 있다고 봐요. 구체적인 예를 들면, 외국인 참정권인정, 사형제폐지 등이 그런 것에 해당하겠죠.
동아시아의 국가주의나 국가폭력, 냉전구도 속에서, 동아시아가 갖지 못한 보편적인 과제가 너무 많아요. 인권, 평화, 군축이라든지. 한반도가 동아시아 국가들을 설득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책들을 제안하는 것이 오히려 ‘국익’을 가져온다고 봐요. 그게 꼭 우리가 비판하는 내셔널리즘이나 민족주의로 귀결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민택  얘기가 엄청나게 복잡하네요. 국익이라는 표현 자체는 동의하지 않지만, 무슨 말인지는 저도 공감되기도 합니다. 노동자계급의 이익으로 표현해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이 땅의 노동자들이 그런 세력관계나 이런 부분들을 냉철하게 이해하고 분석해서 인식해야 한다는 점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인데, 표현이 다른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진당 사태로 다시 돌아오죠.

이영채  말씀하신 대로 한국 내에서 변혁운동과 계급 운동적 측면에서의 통진당 사건 분석에 동의합니다. 저는 통진당 사태에 대해 일본의 보수 미디어들과 일본 내에서 한국과 연대하는 일본의 민주세력의 관점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일본의 보수 미디어는 통진당 사태 등을 한국을 비판하는, 즉 ‘혐한’의 쟁점으로 활용합니다. 재특회 등 일본의 보수세력들은 박근혜 정권이 한일 정상회담은 안 하면서 위안부문제 해결만을 요구한다며 한국 및 박근혜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죠.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에서의 한국군대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한겨레신문의 정부비판 논조를 일본의 우익들이 활용합니다. 또한 일본에게는 위안부 문제 등 역사반성을 요구하면서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위안부제도 실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한국정부의 역사 문제에 대한 이중적 태도도 비판합니다. 그런 연장 속에서 통진당 사태에 대해서도 한국 국가기구의 폭력성이 전 세계적으로 드러난 충격적인 사건이라는 식의 논조입니다. 북한의 장성택 숙청과 한국의 통진당 해산에 대해 일본의 보수미디어에서는 둘 다 비슷한 성격의 폭력적인 국가기구를 가진 양쪽 사회의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식이죠.
일본산케이 신문 기자가 고소된 사건이 있는데―이 문제의 본질을 별도로 하더라도(물론 저는 개인적으로 산케이 신문의 보도에 여성비하 및 차별의 문제도 있다고 봅니다만)―일본 언론은 언론탄압이라는 측면만을 강조하면서 표현 및 언론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강조하죠. 이런 연장선에서 통진당 사태를 두고 언론탄압을 넘어 정당과 정치 활동에 대한 탄압, 사상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 “못된 나라”라는 이미지를 강조합니다.
한편, 일본 민주세력의 입장은 좀 복잡합니다. 전후 일본사회에서 한국사회의 국가폭력성을 적나라하게 인식시켜준 사건으로 통혁당과 인혁당 사건, 민청학력 사건, 그리고 80년 5월 광주학살 등이 있습니다. 이 사건들은 일본사회가 한국 독재국가의 폭력과 무자비함을 확인한 대표적인 사건들로, 일본시민운동 및 재일조선인의 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체제적 정치조직사건 또는 조작사건은 70-80년대 군사독재정권에서나 가능했던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한국은 이미 87년부터 98년, 또는 2008년까지 약 10년에서 20년 동안 민주화를 경험했고, 아시아에서 가장 진보적인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였는데, 이런 나라에서 통진당 해산처럼 변혁운동이나 좌파세력의 혁명운동을 해산이라는 방식으로 탄압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죠.
일본에는 한국의 양심수 석방을 위한 연대모임이 있습니다. 김대중 구명운동, 김지하, 홍성담, 임수경 석방운동, 그리고 서승 교수와 같은 재일한국인유학생 간첩사건 등에 연대해온 분들이지요. 저는 2000년대 중반, 이 분들과의 술자리에서 한국이 민주화되어서 그런 부분을 국가가 해결하고 있는데 왜 지금까지 그런 운동을 하고 있냐, 이제 새로운 운동으로 방향전환이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농담조로 문제제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석기 사건, 통진당 해산 등 일련의 사건들이 터지자, 70년대, 80년대처럼 그분들이 절반은 손으로 직접 쓴 석방 운동 및 탄압 비판 성명서를 받아보면서, 한국사회의 국가폭력 구조가 전혀 바뀌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민택  일본의 보수세력도 충격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은 잘 몰랐습니다. 민주세력이야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봤지만. 아무튼 이해관계가 다르지만 결론은 같게 나오는군요. 그런데, 이 문제는 아무래도 “한국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와 연동해서 봐야 될 것 같은데요. “한국에서의 통진당 사태”에 대해서 저부터 얘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저는 “통진당 사태”를 말할 때, 국가폭력 외에도, 내부적으로 발생한 두 가지 사건(사태)을 함께 보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분당 사태’ 건이고, 또 하나는 2012년 대선 당시, 이정희 대표가 TV토론에서 “나는 박근혜 씨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나왔다”라고 발언한 건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 중에서 제가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뒷부분입니다. ‘분당 사태’는 운동진영에서도 많은 공개적 논의가 있었지만, 발언 건은 그다지 논의되지 못했습니다. 일종의 해프닝으로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상당수는 공감하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발언 건을 ‘사태’ 수준으로 봅니다. ‘분당 사태’는 어느 면에서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로서 관계자 내부 문제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발언 문제는 일종의 (계급/정치)대표성 문제를 띠고 있습니다. 저는 이정희 대표의 발언이 87년 이후 형성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맥락과 의미를 일시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발언은 ‘민주대연합/야권연대’의 본질을 드러낸 것이자, 운동을 87년 이전으로 후퇴시킨 건입니다. 이른바 ‘박정희의 딸’, ‘유신독재 부활’과 같은 언술이 그렇거니와, 헌재 판결을 앞두고 이정희 대표가 “박근혜대통령님 복수는 저 하나로 끝내주세요”라고 했을 때는 치욕감마저 느껴야 했습니다. 진보당은 ‘진보정당’이라는 진지가 있는 만큼 ‘민주대연합/야권연대’를 주도한다는 인식과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진보정당’이라는 진지를 만든 이유가 바로 ‘민주대연합/야권연대’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전면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인식과 논리는 세계사의 흐름과 동떨어진 시대착오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정세를 인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자본주의(세계체제) 아래에서 민주주의 문제는 상존합니다. 글로벌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아래에서는 제국주의 나라에서도 민주주의가 후퇴/약화되고 있다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그게 바로 부르주아민주주의 본래 모습입니다. 한국도, 물론 상황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맥락은 같습니다. 한국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민주주의 문제는 계급문제,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문제입니다. 부르주아민주주의(체제)는 강화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폐기/대체되어야 합니다. 이게 현 정세의 핵심입니다. ‘통진당 사태’는 지배계급이 계급문제, 체제문제를 은폐/희석시키기 위해 오히려 민주주의 수호자로 나서는 모양을 취한 것입니다. 민주주의 담론을 오히려 어떻게 무너뜨릴 것이냐가 관건적이라는 게 제 판단입니다.
이영채  지금 말씀하신 내용에 제 생각을 조금 추가해 보지요. 저는 한국은 87년 민주화 이후 87년 헌법개정 등을 통해 국가 성격은 제도적으로나 국가폭력 면에서나, 많이 변화했다고 생각해요. 통진당 해산 사건에 대한 충격은, 절차적인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선거제도에 의해 진보당이 체제 내로 공식적인 진입을 했고, 한국헌법 또는 한국사회가 그런 변혁적 성격 정도는 이제는 수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변혁적인 정치 요소들을 일거에 다 배제시키는 국가의 폭력성을 다시금 확인하였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이게 70-80년대처럼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헌법재판소라든지 미디어 등을 통해서 절차적으로 통진당 해산을 추진하는 지배 방식은 분명 군사정권과는 다른 방식이죠. 그래서 박근혜 정권을 파시즘으로 규정할 수 있느냐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국가의 폭력적 성격의 강화는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글로벌리즘 속에서 일본이나 유럽국가에서도 나타나는 명백한 현상이고, 한국도 그런 연장선에 있는 국가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것을 동아시아의 공통적 측면에서 재구성해보지요.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네 개의 체제들은 민주화 국면을 한번 씩은 경험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천안문 사건일 수도 있고, 타이완에서는 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을 통해 민진당이 등장했고, 한국에서는 김대중 및 노무현 정권이 등장했지요. 일본은 2000년 후반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를 했고요.
이처럼 체제 변화는 먼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강화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하기는 했으나 결국에는 그것이 완전하게 성공하지 못했죠. 게다가 신자유주의의 시대를 맞이하여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리버럴한 자유주의 세력들이 후퇴를 하고 오히려 보수 원류, 그것도 국가 폭력성에 의존했던 그 사회의 원조 보수 세력들이 대부분 정권에 복귀를 한 상태죠. 북한의 장성택 숙청사태도, 북한 사회주의 체제가 만들 수 있는 최대한의 리버럴한 세력은 장성택 정도라고 보는데, 결국 제거 당했기 때문에 북한은 3대세습의 완성으로 간 것이죠.
지금 현재 동아시아는 독재적인 억압기구에 대항하여 획득한 민주적 프로세스가 실패하고, 다시 보수적 원류들이 정권을 획득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국가권력의 폭력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입니다. 극우보수와 적대적인 대립에 있는 것을 탄압하면서 리버럴 세력들에게 빼앗겼던 자기들의 정체성을 다시 회복하려 합니다. 국가를 보수 원류의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프로세스들이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속에서 통진당 사태도 동시대에 발생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폭력의 공통된 현상이라는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아시아는 공통적으로 민주화 과정을 통해서 국가 폭력성을 실질적으로 제거하지도 못했고 국가폭력의 성격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왜 국가의 폭력성은 다시 등장하고 있는지, 그것도 제도적으로 유지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전후에 우리가 만들어왔던 동아시아 국가기구의 특성들에 대해 좀 더 분석을 해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개발독재”라는 국가기구의 공통적 성격, 그리고 북한을 포함해서 “군사정치”의 문화가 공통적으로 있었다고 봅니다. 이 두 가지를 실질적으로 민주화 운동 속에서도 제도적으로도, 인식적으로도 극복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이런 과제는 노동자계급운동을 통해서도 극복하지 못한 것이지요. 노동자계급조차 그런 경향에 오히려 향수를 가지면서 되돌아가고 있는 작금의 이 현상을 고려하면, 변혁운동 과정에서 우리들이 극복하려고 했던 구체적인 과제는 과연 무엇이었는가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진당 사태는 물론 우연적인 계기일 수도 있고, 계급적인 국면의 중요한 요소인 측면도 있겠지만, 동아시아 국가의 현재적인 국가폭력의 특성이 한반도에서는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한국에서는 통진당 해산사태라면, 북한에서는 장성택 숙청사건이겠죠.

고민택  동아시아를 넘어서 유럽, 미국에서조차도 반테러법처럼, 폭력성은 다 발현되고 있거든요. 통진당 사태가 한국적 상황에서 국가폭력성이 드러난 것은 맞죠. 그리고 우리가 잠깐 까먹어서 그러는데, 사실 노무현 탄핵까지 했어요. 노무현 탄핵 때는 엄청난 대중의 반발이 즉각적으로 표현됐는데, 노무현 탄핵 이상으로 통진당에 대한 탄압, 정당해산 (이석기 사건은 또 기존의 국가보안법이나 뭐 그런 흐름이 있으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겠지만) 이건 정말로 엄청난 것 아닙니까. 세계사적으로도 엄청난 것입니다. 그럼에도 노무현 탄핵 때와는 달리, 사실 대중들의 반응이 행동으로까지 즉각적으로 표현되지 않고 있어요.

이영채  그 부분은, 아까 두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하나는 분당 사태의 연장선 속에 있었다고 지적하신 부분이죠. 87년 이후 운동의 토대가 바뀌었다는 점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제도 질서 속으로, 변혁운동 진영도 절차성을 요구받는 프레임 속으로 들어갔음을 의미하는 거죠. 민주주의라는 게 민주집중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분당사태를 둘러싼 모습을 볼 때, 변혁운동진영이 87년 이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체제 속에서의 단련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실패했다는 겁니다. 절차상 민주주의를 스스로 구현하지 못한 것이지요.
절차상 민주주의를 활용한다고 결정했을 때는 위험성도 감수해야 하는 거죠. 일본의 경우, 94년도에 사회당과 자민당이 연합정권을 실현한 이후, 일본 사회당이 몰락한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들이 이전에 주장했던 요구와 절차상의 민주주의 하에서 그들의 주장이 바뀌고 모순적으로 보였을 때, 지지 대중들이 따라가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죠.
통진당의 경우도 부르주아 민주주의 질서 속에서의 비합법적 변혁운동은 어떤 방식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이 부재했던 결과라고 봅니다. 통진당과 북한의 직접적인 정치적 연계가 없다할지라도 사상적인 측면과 지향점에서 유사성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봐요. 그것은 그들이 직접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라기보다는 한반도의 모순이 만든 공통점의 연결고리이겠죠. 비합법활동이나 폭력혁명 등에 대해 과연 우리가, 변혁운동 속에서 어디까지 사고해야 하며, 현재 신자유주의 글로벌리즘 시대에 얼마나 활용도가 있는지, 폐기해야 되는지 등에 대해서 여러 논쟁이 필요함에도, 우리들은 솔직하게 그런 논쟁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 거죠. 이처럼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질서 속에서 무력적·비합법적 활동에 대한 운동 진영 내부의 공론이 부재한 가운데, 통진당이나 그 일부의 비합법적 요소나 경향이 표면화된 것이고, 이것들을 극우들이 활용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운동진영을 심판하게 하는 형태가 되었지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통진당 (일부) 세력들로부터 체제를 지켜내야겠다는 식으로 극우들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행동에 나섰을 때, 우리들의 대응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게 현재만의 과제는 아니고,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 연장선 속에서 방치된 주제라고 봅니다.

고민택  개인적으로는 통진당 혹은 주사파와 북과의 연계 문제에 대해서는 좌파의 책임도 있다고 봐요. 좌파가 그 부분에 대해서 발언을 안해 왔죠. 사실상 거의 방치죠. 그리고 입장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고요. 이는 그 세력이 존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고 봅니다. 그 점에서는 부채의식이 있죠. 차이는 차이대로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런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제가 앞에서 얘기했던 것은 그들이 대중투쟁, 계급투쟁 문제와 관련하여 기존 진보정당 운동에 대해 최소한의 것조차도 무화시키는 것은, 북과의 연계를 떠나 검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후자가 더 심각하다고 봐요. 그 점에서 우리가 만일 이것을 제대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면, 또 다시 헤맬 수밖에 없게 될 거라는 우려가 듭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국가폭력성이라는 것이 계급문제나 체제문제와 무관한 것이 아님이 전면에서 얘기되어야 하고요. 세월호 사태를 보더라도, 국가의 민주화만이 아니라 국가 자체가 뭐냐는 질문이 대중적으로 등장하잖아요.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보면서, 국가의 폭력성도 폭로시켜야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한국은 특별히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부족하므로 이를 채워야 된다는 식으로 접근하게 되면,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앞으로 진전되기 어렵다는 것이 제 핵심적인 문제의식입니다.
이영채  북한문제가 겹치는 지점에서 국가폭력성이 발생할 때, 노동자계급운동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노동운동진영에서 북한 문제를 계급문제와 민족문제의 대립구도로 보거나 노동자계급운동이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침묵, 아니면 아예 비판적인 입장을 갖는 경향은 문제가 있지요. 하지만 노동자 계급운동이 왜 북한문제에 대해 혁신과 진전을 못했는가를 생각해 보면, 노동운동도 분단구조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분단구조를 실질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변혁운동을 재구축해야 했지만 분단구조라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봐요. 그게 좌파운동진영이나 구PD운동진영이 갖고 있는 비현실주의, 어떻게 보면 현실도피라고 봅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한반도의 국제적 모순과 국제연대운동이 꼭 반제운동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한반도라는 국제적인 모순 속에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존재하기에, 북한에 대한 논쟁은 필요합니다. 북한 체제 인정이 꼭 NL계열이라든지 주체사상에 대한 동의는 아니죠. 그리고 노동자계급도 민족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족의 일원이라는 존재적 한계는 당연히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 체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통진당과 관련 세력들을 중심으로, 북한과의 공식 및 비공식 비합라인을 통한 연대가 한국혁명운동의 일환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한국체제의 모순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이들의 운동을 혁명적인 전위운동이나 헌신적인 운동으로 보이게끔 만들어버리는 좌파진영의 북한 문제 배제도 그들의 정체성 강화에 공헌했다고 봅니다.
국가폭력과 북한문제가 연결된 지점에서 발생한 인혁당 사건 및 통혁당 사건의 예를 보면, 현재 분단구조 속의 남북관계는 대략 삼중구조로 존재하는 것 같아요. 첫째는 일반대중, 둘째는 중간층인 핵심대중, 셋째는 비합법적인 핵심전위가 있는 거죠. 그런데 분단된 한반도와 파쇼의 폭압적인 국가폭력 속에서 이 전위들은 혁명전략을 고민하면서 여러 형태로 북한과 연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들이 있는 거죠. 그렇지만 핵심대중에는 그렇게 연결이 되어 있는지, 안 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층들이 있고, 일반대중이라 함은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열정만으로 모인 사람들이죠. 그런데 비합법적인 핵심전위의 행위를 규제하면서, 핵심 대중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북한과 연계되어 있다며 사형시키고 탄압하는 것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지만, 한국식 부르주아 국가, 한국식 국가보안법 체계로는 그 문제제기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북풍 사건을 보면, 지배계급도 북한과 연결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거 때도 개입을 해왔고. 또 대한항공 폭파사건도 김현희라는 사람도 그렇고, 이게 일방적으로 북한만이 주동해서 가능한 거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거기에는 뭔가 제3의 요소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해요. 대표적으로는 박정희 암살의 문세광 사건이 그래요. 1973년에 김대중 납치사건이 있었고, 궁지에 몰린 박정희 정권을 구한 것은 74년에 발생한 문세광 사건입니다. 당시 한국에 있던 일본 특파원은 “너무나도 절묘한 타이밍에 발생한 사건이었다”고 말합니다. 한국정부가 공개한 자료와 일본자료 등을 통해서 검증해 볼 때, 문세광 총에 맞아서 육영수 여사가 암살됐다는 점에 대해서 여러 의문점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잖아요. 문세광은 왜 그곳에 보내졌는가, 문세광이 거의 검문을 받지 않았고, 경찰 조사기록을 봐도 의문점이 많아요. 또 당시 한국의 국가권력 내에서도 암투의 시기였죠. 육영수 여사 암살은 우연일지 모르지만, 박정희 이외의 기관들이 하나의 정권 기관 속에서 서로 다른 이익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이죠. 만약 드라마 <아이리스(IRIS)>처럼(웃음) 북한 정권과 한국의 정보기관 간의 적대적 공존의 이해관계가 있다면,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모순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문제를 변혁운동 속에서 얼마나 설명해내면서 그 부분들을 운동으로 발전시킬 것인가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자계급운동 속에서 분단모순에 대해서 기피할 것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운동 속에서 구체적으로 논쟁할 필요가 있으며, 제2, 제3의 통진당 사태가 날 때 방관만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고민택  아주 재미있네요. 기왕에 그런 말이 나온 김에, 최근에 아주 뜨거운 천안함사건에 대해서도 분석해주시죠.

이영채  천안함 사건(2010년 3월 26일) 발생 직전인 2009년 말 일본은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됐죠. 하토야마 신내각은 오키나와의 후텐마 미군기지를 헤노코로 이동하는 것에 반대하고, 주민들의 뜻대로 현외로 이전하겠다고 최초로 약속한 정권입니다. 하토야마 수상은 2010년 3월초까지도 오키나와에 가서 현외 이전 약속을 지키겠다고 공언했죠. 하지만, 3월20일 천안함 사건이 터지면서 이 약속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일본의 미군기지는 오키나와라고만 생각하지만, 실제 한국의 주한미군, DMZ에 있는 미군, 그리고 괌의 미군기지는 하나의 세트라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국경을 중심으로 자기 지역의 미군기지만 보지만, 미국입장에서는 DMZ부터 일본의 오키나와와 괌까지 하나의 작전지도상에서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미국은 2001년 이라크전쟁 이후 노무현 정권시기입니다만, 미군기지를 한강 이남의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DMZ 내에서 꼭 북한만을 대응하는 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지역의 기동전에서 쓸 수 있는 부대로 재편을 하려했지요. 전략적 유연화라고 부릅니다.
이런 점에서 오래된 후텐마에서 헤노코지역으로 미군 기지를 동시기에 이전하는 것도 전체적인 유연화 전술에서 등장하는 재배치입니다. 그런 의미로 미국의 오키나와기지 재배치는 동아시아 미군재편에 있어서 평택기지의 이전 및 확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죠. 그런데 하토야마 정권이 미군기지를 현외로 이전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일본 영토 내에서 미군기지를 축소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한반도로 가져가라고 하든지, 미국영토에 재배치하라는 주장이 됩니다. 실질적으로 일본 본토 내에서 미군기지를 받을 지역은 없으니까요.
하토야마의 대미자주노선은 미국으로서는 노무현 정권보다도 골칫거리였다고 봅니다. 결국 미일갈등이 표출되고 있는 시점에서 3월20일에 천안함 사건이 터진 거지요. 사건 직후 하토야마수상은 동아시아가 분쟁지역임을 새롭게 알았다는 식의 코멘트를 하면서 오키나와기지의 현외 이전을 단념하고 오키나와 지사에게 사죄했습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민주당과 일본본토사람들에게 당한 네 번째(류큐처분, 오키나와 분리독립, 기지를 가진 채의 본토반환) 배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실망이 작년의 선거에서 폭발한 것이죠.
천안함 사건이 터졌을 당시 북한은 김정일의 뇌출혈 수술 등 지도자의 병 문제로 정권계승을 서두르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당시 북한 권력당국의 상황에 실질적인 이익이 없었던 시기였어요. 일본의 보수미디어는 군부의 폭주라고 했지만, 그건 상상에 불과하지요. 한국에서도 이명박 정권이 초기 북한 관여설을 배제한 것처럼, 천안함 사건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당장의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요. 일본 입장에서 천안함 사건은 청천날벼락이었고요. 중국 입장에서 봐도 천안함 사건이 터짐으로써 한국전쟁이후 미군 함대가 처음으로 서해안까지 들어와서 훈련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안전보장의 우려가 더 많았겠고요.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누가 범인이냐를 따질 때 그 사건으로 가장 이익을 보는 사람을 범인이라고 지목한다고 하네요. 미국의 정치전공 교수를 천안함 사건 이후에 뵀었는데, 이 분이 2월 정도 미국무성 간부와 식사를 하셨다고 해요. 그때 미국무성 간부가 했던 말이, 하토야마는 동아시아 상황을 너무 모른다, 아마 큰 불에 델 것이라고 했다고 해요. 그런데 그 이후에 한 달도 안 되어서 천안함 사건이 터짐으로써 하토야마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지요.
저는 음모론을 좋아하지도 않고, 북한의 침략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이 배후라고 말씀 드린 것도 아닙니다만, 결과적으로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일본의 하토야마 내각이 결국 미군기지의 오키나와 현외 이전에서 실패하고, 그 결과 사임을 하였고 장기적으로는 민주당 정권이 붕괴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미군기지 이전문제는 오키나와의 현재적 문제로 남아있고요.
하토야마 전 수상은 퇴임 이후 <동아시아공동체>라는 연구소를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어요. 그 방송에 나가서 하토야마 씨와 천안함 문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일본의 갑작스런 독립, 미일안보조약의 성립, 미해병대의 오키나와 주둔 이유는 한국전쟁이라는 설명을 했습니다. 미일안보조약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한반도 분단 해결에 어떤 정책을 가질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며, 이 정책이 명확하지 않으면 미일안보조약 개정도 오키나와 미군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데 이것을 일본만의 문제, 오키나와의 문제만으로 보고, 수상이 열심히 노력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봤던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도 천안함 사건을 한국의 국내적인 맥락에서만, 남북간 관계에서만 볼 것이 아니고 동아시아 전체의 미군기지 재편 전략에서 사고를 하면, 천안함 사건의 의미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베트남의 폭격, 즉 프랑스의 패전이후 베트남 통킹만에서의 미군 함대 폭침사건이후 미군의 베트남전 개입이 시작되지요. 나중에 이것은 미국의 자작극임이 증명되었는데,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세력 확대를 위해 필요한 계기였다고 보입니다.
이런 것과 유사한 구조가 동아시아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을 변혁운동 내에서는 고려하기가 어렵고, 안보논리가 나오면 결정적으로 위축되기 쉽고 안전보장 논리에 대한 전문지식인이 부재하기에 그런 부분에 대한 대답을 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진보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당시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그것 자체도 통제되고 있던 시기였기에, 아직도 분단 및 냉전구조 속에서 변혁운동은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고민택  혹시 그 연속선상에서 ‘세월호 사태’도 얘기할 것이 있나요?

이영채  그건 조금 너무 복잡한 얘기이기도 하고, 신자유주의적인 것도 있는 거 같고 ….

고민택  네, 그러면 이 이야기는 그쯤하고요, 다음 선생님께서 크게 두 번째 주제로 제기해주신, ‘동아시아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 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부분에서 ‘한국전쟁과 조총련의 탄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조총련’ 부분은 제가 잘 모르기도 하지만 ‘동아시아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를 말하는데, ‘조총련’을 어떤 맥락에서 얘기하려고 하시는지요?

이영채  일본 식민지 시대인 1930년대부터 코민테른의 1국1당의 원칙에 의해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체류조선인공산주의자들은 중국공산당의 일원이 되었고, 일본에 있었던 조선인공산주의자들은 일본공산당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북한정권수립과 중국공산혁명의 과정도 이런 일국일당원칙에 의거한 동아시아 공산주의 혁명운동의 연관 속에서 진행된 과정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949년만 해도 소련 공산당과 스탈린은 한반도를 무력으로 통일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1950년 1월, 김일성과 박헌영이 스탈린을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국제정세가 변하였다”며, 무력을 사용하는 한반도 전쟁을 승인하게 됩니다. 변화된 국제정세라 함은 1949년의 중국공산혁명이죠. 이 중국공산혁명은 베트남이나 동남아시아 지역에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에 대한, 군사혁명을 결정하게 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도 사실 같습니다. 지금은 냉전 시대의 자료가 공개되었기에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제안, 스탈린의 승인, 모택동의 동의로 결정되었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오히려 냉전 시대에 존재했던 자유주의적인 역사관보다 더 냉전적인 결론으로 귀착되어버렸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꼭 침략전쟁으로만 규정하지 말고, 무력을 사용한 동아시아의 혁명전쟁의 일환이었다는 측면에서 보면, 한반도 분단 고착화라는 결과만이 아닌 동아시아 각국에 미친 영향까지 폭넓게 살펴볼 다양한 쟁점이 있음을 알 게 됩니다.
먼저 한국전쟁은 재일조선인 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1945년 종전직후인 9월부터 일본에서는 전전의 일본공산당 멤버들이 석방됐고, 일본공산당재건 운동도 추진되었죠. 그런데 당시 일본공산당 간부들은 대부분 30년대 중반부터는 치안유지법에 의해서 감옥에 있었거든요. 이들이 45년 9월 석방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일본공산당은 큰 힘을 갖지 못했어요. 일본공산당재건을 위한 제1차 회의는 당시 재일조선인들의 운동단체인 조련사무실에서 개최했어요. 45년 8월 이후부터 대략 47년까지 일본인들은 패전이라는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조선인들은 암시장에 진출하는 등 경제권을 장악해 갔습니다. 일본공산당이 48년에 선거에 나갔을 때 선거운동원들은 조선인들이 많았습니다. 조선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반천황제를 내세운 것은 일본공산당뿐이었기 때문이에요. 즉 전후 일본공산당 재건의 역사에서 재일조선인들의 역할은 빼놓을 수 없어요. 조선인 김천해가 일본공산당의 중앙위원을 할 정도로 조선인들은 일본공산당 내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고 일본공산당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이후 이 흐름이 결정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49년부터 일본정부와 미군정청(GHQ)은 좌경화된 조련을 폐지시켰고, 일본공산당 활동가들은 소위 ‘빨갱이들’로 공직에서 추방당합니다. 냉전의 영향을 받으면서 미군정청은 일본사회의 민주적 조치를 정지하고, 한국전쟁에 대비하는 정책들을 전개합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일본에 있었던 미군은 한국전쟁에 투입되어야 했지요. 미군이 없는 공백기의 일본 사회는 좌파나 공산주의자들이 대두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막기 위한 무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경찰병력이지요. 이게 바로 자위대입니다. 말하면 자위대설립의 목적은 지금처럼 해외에 파병한다든지 국제협력을 하기 위한 단체가 아니고 일본의 내란을 막는 것을 그 목적으로 창설된 것입니다. 지금도 그 성격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조선인의 조직인 조련은 해체되지만, 민전이라는 새로운 단체를 결성하게 되고, 일본공산당은 51년 무력혁명노선을 표방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일본공산당 주요 멤버들은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지하로 들어가 버리거나 중국으로 망명하기도 했죠. 이에 반해 조선인들은 일본에서 탄약이 제조되고, 폭격기가 출발하는 것을 보면서, 전차 한대를 정지시키면 조국의 수많은 민중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열차를 습격하는 등 폭력혁명노선을 앞장서 실천합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일본공산당은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18석 정도의 의석이 있었지만, 한국전쟁의 중간인 1952년 선거에서는 0석으로 전멸하게 됩니다. 결국 일본공산당은 6전 대회를 통해, 폭력노선의 잘못을 인정하고 폐기선언을 하는데, 이때 폭력노선에 앞장선 민전의 조선인 활동가들도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53년 스탈린이 죽고 나서야 소련의 아시아혁명 특히 일본의 혁명론도 포기하게 되는 것이지요.
나중에 조총련을 만든 한덕수는 한국전쟁당시 북한을 왕래하면서 조선인들의 혁명운동이 일본혁명을 위한 대리인의 역할만 하고 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결국 김일성은 55년에 소련공산당과 중국공산당과의 회의를 통해 일본공산당에서 재일조선인들이 전원 탈퇴하고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방향으로 노선전환을 하게 됩니다. 이때 일본공산당내의 조선인들이 탈당하면서 만든 조직이 조총련입니다. 조총련의 등장은 몇 가지 의미가 있는데, 먼저, 재일조선인운동은 이제 일본공산당이 아닌 조선공산당의 직접 지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한덕수의 설명처럼, 조총련은 더 이상 일본혁명의 대리단체가 아니고 조선의 혁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지금까지는 국제프롤레타리아주의에 의해서 동아시아 혁명이라는 공동의 과제가 있었다면, 이제는 일국적인 자기 민족 혁명을 하는 운동노선이 55년에 정착되어버립니다. 일본공산당은 민족문제에 대해 일국적으로 돌아서고, 일본공산당사 60년사까지는 조선인들의 흔적이 있었지만, 60년사 이후, 전후 일본공산당 재건에 대한 조선인들의 역할은 거의 다 지워버리고, 일본공산당의 노선은 반제투쟁 노선으로 정착이 됩니다. 조선노동당도 민족주의 정당으로 바뀌게 되며, 그것은 중국공산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아시아에서 한국전쟁이 혁명운동에 미친 결정적인 영향은, 국제프롤레타리아주의 운동 시대가 끝나고, 일국적인 자기 혁명운동, 또는 민족주의 운동을 우선시하는 형태로 전환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보면, 솔직히 한국전쟁 이후에도 많은 세력들이 국제프롤레타리아주의를 이야기했고, 일본도 한국도 각각 변혁운동을 고민해왔지만, 실질적으로 우리는 일국적인 혁명을 사고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존재해 왔던 것입니다. 한국전쟁은 또한 일본공산당, 중국공산당, 그리고 소련공산당 등 각국의 주류 혁명운동 속에서 동아시아의 폭력 혁명노선을 폐기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후에 일본이나 한국 등에서 사회운동에 존재하던 폭력 혹은 비합법 노선들은 어떤 형태로 지속 또는 변질되어 왔을까요?
일본의 경우, 1955년 이후 일본공산당을 비판하면서 탈퇴했던 사람들은 일본공산당은 실력행사나 무장노선을 폐기하고 제도 및 의회투쟁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소위 “신좌파”로 불리는 세력들입니다. 이들은 폭력혁명노선을 견지하고 있었지요. 이들 신좌파는 일본공산당이 일본을 미국의 식민지라고 규정하면서 민족해방을 위한 반미투쟁을 주요모순으로 설정한다고 비판합니다. 반면 신좌파는 일본은 고도로 발전한 국가독점자본주의이고 이미 아시아에 진출해서 착취하고 있다는 가해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일본공산당은 일본을 미국의 식민지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피해자 사관의 논리를 가졌던 것이며, 가해자라는 인식은 없었던 것이죠. 이러한 일본공산당의 국가주의와 내셔널리즘적 성격은 1955년 이후에 정착된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 한국전쟁 이후 국가보안법이 견고해지면서 공산당과 사회당이라는 명칭의 정당을 갖지 못했지요. 우리에게 공산당과 사회당이 존재했다면, 제가 보기에 NL계열은 일본공산당과 비슷한 성격의 한국공산당 계보가 되었을 것이고, PD계열은 일본사회당의 성격을 가지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 좌파계열의 정당에서 탈퇴하거나 포함되지 못한 혁명세력들, 이것이 바로 일본의 신좌파세력들입니다.
신좌파들은 일본을 독점자본주의라고 규정하고, 반일본공산당을 걸고 혁명운동의 재건을 위하여 폭력혁명 노선을 견지하게 됩니다. 그들 신좌파들 노선의 최종적인 결과가 소위 연합적군 사건인데, 일본에서는 아사마 산장사건으로 알려져 있지요. 폭력혁명노선을 견지하다가 실패하고 탄압을 받자, 혁명근거지 확보를 통한 장기혁명을 주장하게 되고 이들은 도쿄인근의 군마현 아사마산 주변에서 훈련캠프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결국 경찰들의 추격으로 마지막에는 인질극을 벌이면서 저항했는데 이후 조사해보니 훈련캠프 생활 중, 반혁명활동을 이유로 스스로 동료들을 죽였음이 알려졌고 일본사회에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도 한국의 통진당처럼 일부에 불과했던 세력들이죠. 운동 전체의 주류가 아니고 일부에 불과했던 성실한 혁명세력들이었고 당시의 극좌노선을 대표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공산당의 혁명운동의 변질과 일본에서의 혁명운동에 대한 좌절 속에서도 혁명운동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혁명적 근거지를 구축하겠다는 헌신적인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자기폐쇄성이었고, 그들의 맹목적인 선도투쟁은 일본 국가권력과 자본에게 이용당하면서 일본 사회운동 전체의 궤멸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아사마 산장 사건의 한국판이 통진당 사태라고 봅니다. 하지만 통진당 사태의 책임이 꼭 통진당에게만 있는 것은 분명 아니죠. 아사마 산장 사건, 즉 일본연합적군사건은 기본적으로 동아시아에서 한국전쟁이 초래한 일국적 운동의 역사적 귀결이라는 측면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가운데 전개된 일본 사회의 혁명적 변혁운동의 여러 번의 실패, 좌파의 변질과 좌절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혁명운동의 연장선에서 보면 이게 통진당사태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연합적군사건이 일본의 전후 사회 중요한 분기점이었고, 통진당 사태도 장기적 관점으로 보면, 한국변혁운동의 중요한 분기점은 아닌가 동시 비교를 해볼 필요가 있겠죠.

고민택  국제프롤레타리아주의에서 일국적 사회주의로, 다시 일본 사회운동의 현황까지 말씀해주셨습니다. 총괄적으로 동아시아의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다시 거꾸로 이론을 짚어보니까 훨씬 생생하네요. 저는 잘 모르는 것도 있어요. 아사마 산장이라든가. 나중에 저도 찾아보기는 하겠는데. 여전히 이 부분은 국제주의와 일국사회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이후 동아시아에서의 변혁운동 또는 혁명운동이 이런 역사적 경험과 정세를 인식하고 이후 어떻게 대처해야 될 지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영채  거대한 과제인데, 이런 분야는 저보다는 고 선생님이 더 조예가 깊으실 것 같습니다. 제 의견을 말씀드리면 첫째 동아시아에 있어서 마르크스주의는 진정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더 비교 연구를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했죠. 그런데 우리는 근대화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또 우리사회는 어떤 모델을 통해 근대화를 가져왔는가, 이 문제가 하나의 공통의 과제인 것처럼, 또 하나의 축으로는 동아시아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문제가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일본과 중국과 북한과 한국에서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을 해왔고 무엇을 실천하려고 했는가. 그리고 그 마르크스주의가 레닌주의였다면, 이 레닌주의를 각국에서 어떻게 인식해 왔으며, 실제 어떤 실천을 해왔는가.
이런 문제들의 연장선상에서 일본, 한국을 중심으로 한 변혁운동진영들은 과거의 경험에 대한 공유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글로벌 시대에 겪고 있는 공통의 문제의식과 어려움에 대한 공동의 국제적 토론장이 필요하다고 봐요. 이런 문제들에 대한 공동의 이해 없이 각자의 변혁운동의 세계만을 고집한다면, 우리가 말하는 인터내셔널이나 연대주의, 글로벌시대의 운동방식으로 적합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고민택  구체성과 현실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주세요.

이영채  저는 일본 사회운동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실천해 왔던 사람들, 또는 변혁운동을 해왔던 사람들의 사례를 여러 형태로 계속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제가 알기에는 ‘맑스코뮤날레’ 이런 대회들이 있죠. 그런데 왜 이것을 동아시아 대회로 하지 않는 건가요? 우리가 한때 세계사회포럼을 추진하려고 했지 않습니까. 세계사회포럼은 스펙트럼이 꽤 다양한데 어떻게 보면 탈마르크스주의, 반마르크스주의 세력과의 연대의 측면도 있었다고 봐요. 세계사회포럼은 본질적으로는 리버럴한 신자유주의 세력의 자본지원에 의해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죠.
동아시아에서도 많은 연대 운동이 있어요. 미군기지연대운동, 역사교과서운동 등 시민운동의 연대 노력들은 지속적이고 대중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변혁운동을 꾀하고 특히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하여 변혁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실질적인 공동연대의 경험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아는 어떤 소그룹들은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는 곳도 있지요. 이런 좌파적 변혁운동 세력들의 장기적이고 대중적인 교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냉전과 분단 구조 속에서 이들 변혁운동세력은 누구보다 갇힌 운동을 해 왔고, 그 상태에서 다들 각개격파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과격한 부분만 남아버린 것이죠. 탈냉전시대를 맞이해서는 소련의 해체 속에서 모두가 휩쓸려갔고 전망을 찾지 못한 것도 사실이죠. 그렇다면 새로운 전망을 세우기 위해서는 과거의 경험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지금도 누구든지 일국적인 운동은 안 된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벽을 넘지는 못 했습니다. 현재는 국제프롤레타리아트주의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요. 그것을 실질적으로 실현하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그런 발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그 말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봐요. 지금 시기야말로 민중연대만이 아니고 동아시아 프롤레타리아 연대라는 것이 절실하죠. 신자유주의에 의한 빈곤과 격차가 더 심해져 가고 있음에도 그 기본적인 개념 자체도 실질적으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게 연대 운동이 직면한 과제라고 봅니다.
앞서 한반도의 국제모순이나 천안함 사건 및 통진당 사태를 국제적 시각으로 보자고 말씀드린 것은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 또는 일본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은, 미군기지도 그렇고요, 더 이상 일국적인 사건들이 아닌 것 같아요. 이것은 현재 동아시아의 국제정세 속에서 공통으로 일어나는 연관성 있는 문제들입니다. 물론 일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동시에 진행되고 있죠. 그래서 신자유주의 글로벌 시대의 하나의 사안은 일국적인 자기 나라만의 문제로 해결되지도 않고 분석도 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저는 쌍용차 사태라고 봅니다. 이런 문제들과 그 배경을 분석할 때 국제정세와 동아시아 정세가 중요한 축으로 들어가야 하며, 그럴 때에야 이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각국의 공통의 리버럴 세력들이 실패를 했고, 공통의 보수주의 세력이 전면 등장하고 있으며, 개발독재 시대에는 공통적으로 개발독재의 모습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운동의 현주소는 지금도 자기 국가만의 운동적 시각 속에서 계속 정세분석을 하고 있다는 거죠. 해외네트워크를 통해 정세분석을 공통으로 해가면서 상호 연대하는 이런 틀도 어디선가는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 노력 속에서 자신의 국가의 운동을 재구축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 시야, 운동의 방식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노하우들을 자본들은 실현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이 민영화를 하면, 대학을 법인화시키면 일본도 따라 합니다. 한국에서 아주 “모순적”으로 잘 나가는 정책을 일본은 그대로 따라가기도 하지요. 자본계급들은 아주 철저하게 상호 연대 모델을 가지고 교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공계 중심의 대학개혁 방향은 철저하게 미국 자본의 영향 속에서 한국과 일본 자본들은 아주 비슷한 방향으로 구조재편을 동시에 진행시키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국철민영화가 일본에선 1983년에 있었고 한국은 199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제기되었지요. 자본에 의한 개혁과제들은 큰 시대적인 흐름을 통해 텀(term)을 가지고 나타나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거의 동시기에 일어나는 거 같아요.
그럼에도 운동을 하는 사람이나 또는 노동자계급이, 일본의 사회운동의 경험을 배우려고 하고 있기도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일본에 대한 편견이 많은 것 같아요(웃음). 오히려 더 민족주의적이고 변혁적이기에, 일본에 대한 내셔널리즘적 프레임을 가지고 있기에 장점이 되면서도 단점이 되는 것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계급은 어느 사회든지 누구보다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에, 민족주의적인 이데올로기에 휩쓸리기 쉬운 상태입니다. 일본도 상황은 똑같습니다.
고민택  말씀 하신 것에 대해 저도 거의 다 공감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어디하고 연계를 가져야 될지, 이런 판단도 쉽지 않고, 중국 같은 경우는 더 어려움이 있는데. 동아시아의 연계성을 어떻게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인가를 위해서도 각국의 운동이 어쨌든 살아나야 할 텐데, 이 점이 일차적으로 걸립니다. 물론, 각각이 살아나고 그 다음에야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라도 작은 것이라도 연계성과 연관성을 찾아내고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이영채  예를 들어, 레닌이 그렇게 말했잖습니까. 각 나라의 민중들이 어떻게 밥을 짓고 있는지, 밥을 짓는 방식을 모르면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각국의 노동자들이 현재 어떤 상황에 빠져 있고 어떤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연대도 불가능하고, 혁명운동도 가능하지 않다고 봐요. 우리가 연대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 심포지엄 형태만이 아닌 여러 연대 방식이 있겠지요. 저는 그 대표적인 것이 외국인 노동자 문제라고 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각국의 빈곤 문제로 인해 다른 나라로 이동을 하고 있지만, 이들은 국경을 넘는 멀티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일본 사회의 경우 노동운동이, 사회변혁운동이 퇴조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대기업위주의 귀족주의 노동운동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국내 산업에 위기가 닥쳤을 때 자본은 해외로 싼 노동력을 찾아 이주를 했죠. 거기서 많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있었지요. 그때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본에 가서 대기업 노동조합에 연대를 요구했지만, 개발도상국에서의 노동자 착취에, 일본 노동자들의 이익이 존재했기 때문에 일본노동계급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호소에 침묵했습니다.
한국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한국 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고, 대기업의 직접진출로 해외착취를 하고 있음에도, 한국노동운동이 외국인 노동자와의 연대에 대해서 사고하고 있는가. 저는 이런 시기에 국제프롤레타리아주의랄까, 정체성을 가지고 운동을 재구축하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더 이상 한국 노동자계급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사회도 이미 다문화 다가정 시대가 되어 한국은 전 세계 어디보다도 신자유주의 글로벌 사회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거부하려고 해도 벌써 자본은 한국을 다문화사회로 만들어가고 있지요. 일본과 한국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으면 사회의 유지와 지속이 어려울 정도로 저출산 및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회변화에 우리의 운동이 대응하고 분석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는가. 결국은 일국적이고 연대하지 못하고 고립되었기 때문에 운동이 실패했음에도, 지금도 다시 일국적으로 문제를 사고할 수밖에 없는 조건 속에 놓이게 되고, 우리는 지금 그런 모순 속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고민택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국이나 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이죠. 거꾸로 말하면, 미국은 다문화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민족으로 있음에도 글로벌하게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노동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제국주의의 혜택을 오히려 그들도 받고 있는 현실이죠. 그런 점에서 보면 막막하기도 해요.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러나 오히려 지금이 세계를 투명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동안 우리에게 너무 가려져 있었고, 제대로 못 보고, 시야가 좁고,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 있다고 할 때, 엄청난 대가를 치른 거죠. 쉽게 얘기하면 학습비용, 기회비용을 너무 많이 치른 것. 20세기 초의 상황보다도 21세기인 지금이 훨씬 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예컨대 세계혁명이라는 부분이 다시 화두로 등장하게 되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또 2008년 세계공황 이후로 그런 부분들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들이 등장하고 있고, 그렇게 본다면 다시 기운을 차리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구축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이영채  제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유럽의 경우도 공통적인 경제위기 상황이라고 봅니다. 그 속에서 유럽의 사회운동은 인터내셔널리즘의 복원을 주장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미 각국 부르주아지들이 주도하는 국제적 성격이 유럽통합 과정에 이미 포함되었지만, 경제위기를 맞이하면서 그것과는 다른 형태의 사회운동의 인터내셔널리즘이 필요하다고 사고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동아시아는 똑같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움직임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지금 자본과 부르주아 국가는 일국적이고 보수적인 내셔널리즘을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통해서 정권을 유지하고 있죠. 그런데 변혁운동을 하는 세력들이, 일단은 각국의 세력이 워낙 열악하니까 일국적으로 싸우는 데, 유지하는 데 열정을 쓰는 것이 현실이지요. 냉전 때는 냉전이라는 이유로, 지금은 또 운동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하지만 좀 더 냉철하게 보면 국가주의와 내셔널리즘이라는 틀 속에 우리가 존재하기에 변혁운동가들이 마음은 국제연대에 있고 새로운 운동을 구상하지만, 계속 일국적인 방식으로만 존재를 강요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네트워크 없이 더 이상 운동의 새로운 구축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이고, 당을 만들든 변혁조직 운동을 하든, 각국의 운동 당사자들이 연대할 수 있는 새로운 네트워크나 이를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고민택  시간상 얘기를 마무리해야겠는데, 맨 앞에서 뒤로 미뤄뒀던 동아시아의 변혁운동의 의미와 신자유주의 글로벌 시대의 동아시아의 전망을 묶어서 논의를 전개하면 좋겠습니다. 그 점에서 동아시아에 대해서 변혁운동의 의미와 전망에 대해 제가 먼저 말하고 선생님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가령 동아시아의 핵심적인 무게 중심이라고 할까, 이것은 아무래도 중국의 재등장, 부상이죠. 이는 전체 국제세력관계 등과 관련해서 핵심적인 문제죠. 또 하나는 동아시아가 아주 치열한 역사전쟁에 돌입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이라는 관계도 있지만, 동아시아 내부의 패권전쟁이 같이 맞물리면서, 동아시아적 표현인 역사전쟁이 재구축된 것이라고 보는 거죠. 아베 내각의 등장도 위안부 문제나 과거문제가 단순히 과거문제에 대한 해결이 아니고, 미래를 어떻게 선점해가고 규정해 갈 것이냐에 놓여 있기에 결코 쉽게 해소되거나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요. 그런데 아쉬운 것은 동아시아가 유럽과는 조금 달리, 물론 유럽도 그런 문제가 있지만, 민족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각국의 군사화를 부추기고 있고, 저는 한국의 통진당 사태도 구시대 정치적 수준의 문제뿐만 아니라,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군비경쟁과 관련된 미국의 이해관계와도 맞물려 있고, 실제로 그런 점에서 이것을 확장해서 봐야 한다고 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동아시아 변혁운동이 세계 전체 변혁운동에서 새로운 지역으로 불가피하게 등장할 수밖에 없고 이미 등장하고 있다고 봅니다. 동아시아가 과거 100여년의 역사 속에서 변혁운동의 중심이 되지는 못했죠. 그런데 다시 동아시아가 주목받는 이유는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그런 상황과 맞물리면서, 결국 동아시아의 변혁운동이 세계 전체 변혁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커질 것이고 중요해질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도 동아시아 전체 변혁운동의 한 중심축이 어쨌든 한국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운동 상황이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87년 이후에, 노동계급운동이든 변혁운동이든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또 한반도 모순을 해결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이 동아시아 전체의 변혁운동이나 세계 전체의 변혁운동에 끼치는 중요한 함의가 담겨져 있다고 봅니다. 때문에, 일국적이고 시야가 좁고 갇혀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파장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한국의 변혁운동의 자기 임무랄까 과제가 거꾸로 보면 다지 번져나갈 수 있는 부분도 굉장히 큽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변혁운동이 뭔가 새롭게, 그리고 세계를 향해 다시 발언하고 문제의식을 던지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영채  동아시아에서 왜 갑자기, 2000년 중반부터 영토문제와 역사 문제가 동시에 등장하고 있을까요? 결론적으로는 전후 60년 간 동아시아 국가들이 국가주의와 내셔널리즘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라고 봅니다. 동아시아의 각국의 노동자들이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을 극복하지 못한 것도 변혁운동의 한계이고요. 그런데 왜 이문제가 다시 보수우익이 주도하면서 민족주의적 성격으로 대두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동아시아의 보수주의가 주도해 온 국가모델이 각국에서 실패했고 민족주의와 영토문제를 이용해서 문제의 본질을 가리고 있는 형국이지요.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전환시킬 것인가가 중요한데, 결국 국가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시각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독도를 계속 국가적인 시각으로 고유 영토라고 보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민족주의적인 시각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독도는 어떻게 보면 우스갯소리로 하면 바다의 것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정하지 않지만, 한일관계의 갈등의 장이라는 의미에서 독도는 한국과 일본의 분쟁지역이지만 가능하면 이것을 어떻게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아시아의 평화의 섬으로 바꿀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인 것입니다. 시간상 독도문제의 성격에 대해서는 생략하고요.
예를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서해평화구상을 통해서 분쟁지역을 평화와 공존 및 번영의 지역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을 하셨죠. 그게 한계는 있었지만. 발상으로서는 왜 남북한은 가능한데, 한일 간은 안 되느냐? 같은 민족 사이에서는 영토나 바다를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다른 민족들 사이에서는 이런 식으로 유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요? 제주도 일대의 이어도 문제도 중국과 한국이 정면충돌할 경우 ‘고유영토론’이라는 것만으로 이 문제에 대해 자기 정당화를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는 거죠. 동아시아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부딪혀보면서 저는 동아시아 공동체가 유럽의 통합모델처럼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유럽은 민족의 동질성이 있고 동일민족에서 파생된 근대국가 성립과정이 존재했지만, 동아시아는 여러 다른 불균형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중국, 미국, 소련, 타이완 등도 포함해서요. 이 지역에서 국가내셔널리즘을 바로 깬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봅니다.
그 대신 조그마한 지역경제블록 형태로 인식을 바꿀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후쿠오카와 부산은 원래 하나의 생활권이죠. 그리고 오키나와와 제주도, 타이완 같은 경우도 하나의 생활권이고, 또 인천이라든가 칭따오라든지 이 쪽 지역도 하나의 경제권이고. 북한의 나진·선봉이라든가 두만강 개발지역이라든지, 일본의 시마네 및 돗토리현과 동해·속초, 이런 지역들은 오히려 일본 식민지 시대에는 하나의 공동 경제체였죠. 이렇게 여러 가지 블록으로 경제교류 및 인적교류를 촉진하는 방식을 통해서 국가내셔널리즘을 약화시키는 방법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실질적인 생활권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1948년 8월 15일 이후 국경이 일방적으로 만들어지면서, 우리가 준비하지 못한 근대국가라는 틀 속에서 계속 생활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이처럼 경제적인 접근도 가능하다고 보고요.
마지막으로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의 변혁운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의 측면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일본사회의 변화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일본 사회의 보수화는 막을 수 없어요. 평화헌법 개정도 지금 버티고는 있지만, 평화헌법 개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 같아요. 역으로 일본사회가 변혁운동과 평화운동을 지향할 수 있는 사회인가 하면, 일본은 70년대까지는 가능했지만, 현재로서는 사회당·공산당의 집권은 불가능하고, 민주당이 재구축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면 동아시아의 변혁을 일본 사회에서 기대하기는 어렵죠. 중국이 변화할 것인가. 그것도 시간이 걸릴 것이고. 북한은 더 악화될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대만이 주도할 수 있는가, 그렇지도 않죠. 이런 점에서 한국사회가 보수화된다면 동아시아 지역에는 전쟁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터졌을 때 이것이 무력 충돌까지 가지 않고 저지될 수 있었던 것은 천안함 사건이라는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노동자 및 시민들이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여당을 참패시킨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야당의 힘도 아니었죠. 야당은 두 손 들었고, 결국에는 국민들에게 석고대죄를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죠. 바로 한국의 민주화운동의 힘입니다. 이렇게 보면 동아시아의 위기를 저지할 수 있는 힘은 한국 민주화 운동이고, 한국의 민주화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지금 남은 마지막 희망이기에 더욱 중요합니다. 한국의 노동자계급이나 시민운동의 민주국가 지향 운동은 예전에는 일국적인 운동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키는 마지막 희망을 만드는 운동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에 대항해서 민주사회를 계속 요구하는 것은, 국제적인 운동이라고 봅니다. 국내적인 운동 역량을 보면 쇠퇴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동아시아 운동의 전체 역량을 보면 가장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한국의 운동이 살았을 때 일본 및 아시아의 운동도 그것에 연대하면서 자극을 받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이 한국 운동의, 뭐랄까 민주화를 수출하는 방식(?)이라든지 한국 운동의 수출이라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되겠죠. 독재정권이 하는 개발독재모델, 새마을운동 수출 운운처럼 한국의 운동을 아시아에 수출하겠다는 방식이 아니라, 한국의 운동을 통해서 아시아와 연대하는, 중심 허브가 되겠다는 발상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운동은 한국만의 가치관이 아닌, 아시아의 여러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관에 입각하여 다양한 정책들을 펴야 할 것입니다. 사형제 폐지라든지, 외국인 참정권이라든지 …. 통진당 해산사태를 벌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상집단을 한국사회가 폭넓게 받아들이는 다양성이 존재할 때 아시아 사람들이 한국 사회운동과 연대를 하려 할 것이며, 이는 한국사회가 아시아에 기여하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통진당 사태에 대한 개인적 의견이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사상적 탄압에 대해 방치하고 그것이 용인되는 한국사회가 됐을 때, 아시아에서 설득력을 갖기는 어렵죠. 벌써, 저만 하더라도 한국사회가 축적해 온 민주화운동의 성과에 대해 일본 시민단체들과 공유하면서 연대를 만들어왔는데, 통진당 사태를 통해 하루아침에 한국사회의 운동에 대해, 지금까지의 역사와 성격 자체까지도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고, 신뢰를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고민택  이제 마무리에 들어가죠. 통진당 사태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고, 어떻게 보면 좌파들도 그 점에서는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고 대처와 대응을 하려 하는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즉각적인 대중들의 반응 자체가 여러 이유 때문에 지체되는 것도 있고, 통진당 내부의 자기 정비·정돈도 필요한 것 같고, 좌파운동이 그것을 밀고 나가기에는 자기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저는 그렇게 심각하게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의 변혁운동이 동아시아나 세계의 변혁운동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사실 통진당 사태나 한반도 모순에 대해 한국 변혁운동 또는 좌파가 자신의 해법을 제시하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느냐가 중요한데, 아직은 정리정돈이 안 되고 있는 것이죠. 또 통진당 또는 민족주의 진영의 인식과 활동이 계속해서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현실이 여전히 존재하죠. 문제는 이것들이 서로 엉켜있다 보니까 그런 것인데. 그런 점에서 저는 사실 통진당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습니다. 문제는 좌파운동, 또는 노동자계급운동이 이 문제를 자기문제화하면서 대중적으로 제기하고, 정치적으로 제기하면서 힘을 가져가는가가 사실 해결의 열쇠라고 보죠. 그런 점에서 오늘 대담의 큰 흐름에 대해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지 않나 느낍니다.
다만, 제가 처음에 얘기했지만, 2008년 세계공황 이후에 자본주의 모순이 급격하게 드러나고 있는 정세에서, 노동자계급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은 그러한 문제를 중심적인 과제로 삼는 것이 과연 맞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어떤 급격한 변화만을 기다리고 있거나 아니면 점진적인 것에 모든 것을 내맡길 수도 없는, 그러니까 급격한 변화를 늘 염두에 두되 또 단계적 과제나 과정에 대해서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영채  일본 같은 경우는 전 세계가 다 혁명이 일어나더라도,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일 것 같아요. 역사적인 패배와 국가권력 및 자본의 탁월한 통제방식에 의해 일본의 변혁혁명은 쉽지가 않아요. 하지만 그런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에서도 노동자들은 살아야 되지요. 유인물을 한 장 나눠줘도 받아주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그 사람들은 운동을 하고 있어요. 그런 곳에서 제가 보고 배웠던 것은 하루 이틀 할 운동이 아니고, 40년 50년 자기가 평생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운동을 삶으로 하고 계시더라고요. 우리는 1-2년만에 해결이 안 되면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하기도 하지요. 물론 억압의 성격과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지 모르겠지만, 일본사회가 갖고 있는 억압의 구조는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미국과 일체화되어 있고, 인간이 인권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인 것 같아요. 우리는 아직도 노동자 계급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일본은 노동자라는 인식이 없고 젊은 세대들은 노종조합이라는 말을 모르지요.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사회를 바꿔보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사회에서 변혁을 꿈꾸면서 살아가는 이들은 너무 큰 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미래의 한국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조그마한 것에서의 작은 승리가, 그 사람들이 살아가고, 또 전체 운동이 연결되어가는 고리인 셈이죠. 예를 들어 홋카이도의 혹세가쿠엔이라는 대학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으로 보도한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우에무라가 강사를 역임하고 있었는데, 아사히신문의 위안부 기사취소 사태이후, 재특회 등 일본우익들이 우에무라 강사를 해고하라며 매일 600통 씩 대학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처음 이 대학에서는 대학의 자율성이란 기준으로 계약해지에 반대하다가, 나중엔 너무 힘들어서 해고에 동의했고, 해당 강사도 주변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하니 계약해지에 동의했지요. 하지만 학원장, 즉 이사장이 마지막까지 해지를 고민하다가 끝내 계약연장을 결정했습니다. 대학원장의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우익의 공격이 알려지면서 연대하고 격려하는 시민들의 전화가 매일 똑 같이 600건 걸려왔다는 것입니다. 결국 대학관계자들도 이러한 격려에 힘내서 계약연장에 동의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조그마한 승리인 것 같지만, 그 모순은 지금 그 사회에서 가장 결정적인 모순입니다. 그것에서 양보를 하면 큰 싸움에서 이길 수 없어요. 지금 신자유주의에서의 노동자계급이 갖고 있는, 시민들이 갖고 있는 모순은, 아주 자그마한 싸움이지만, 모든 모순이 가장 결정적으로 거기에 응축되어 있지요. 저는 그것이 어떻게 보면 한국의 쌍용자동차 문제일 수도 있고, 일본의 역사문제에 대한 표현의 자유의 억압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 부분들을 노동자계급이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작은 싸움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보수화는 일본의 문제인 것 같지만,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또다시 일본이 전쟁국가가 된다면 그 전쟁은 일본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아시아태평양전쟁도, 일본이 시작했던 전쟁들은 다 한반도가 전장이었습니다. 결국 일본의 보수화·군국주의의 결과는 한국이 희생자가 되는 구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혹세가쿠엔의 강사 한 명을 해고하는 문제도 결국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똑같이 한국의 노동자들도 시민들도 응원의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지요. 그것이 바로 우리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죠.
가르치는 학생이 매일 쌍용자동차 이창근씨의 굴뚝투쟁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르고 메시지를 보내곤 한답니다. 이 일본학생이 원래는 케이팝을 좋아했는데, 한국에 어학연수를 하면서 쌍용자동차 문제를 알게 되었고, 쌍용차문제로 졸업논문까지 작성했습니다. 시간이 되면 광화문에 가서 1인시위를 하고 싶다고도 해요. 그 학생은 그게 쌍용자동차 노동자에 대한 연대이기도 하지만, 일본사회에서 자기의 하나의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조그마한 부분에 대한 연대운동이 상호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민택  맺어야 되겠습니다. 긴 시간 잘 들었습니다. 우리가 애초에 설정했던 부분을 독자들이 어느 정도는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것부터 얘기하면,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여러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투쟁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투쟁하는 것이 당장 자기의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넘어서서 동아시아 전체의 혁명의 어떤 맥락 속에 자기의 투쟁이 있는지를 이 대담을 통해 읽어낼 수 있다면 더욱 큰 힘과 용기를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통진당 사태의 문제를 일국적인 또는 한반도를 넘어서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 속에서 자리매김 했을 때, 우리의 시야가 훨씬 더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까 대담 속에서 국가폭력을 폭력 그 자체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와의 연관성, 또는 자본과 노동의 모순에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가. 따라서 오늘날 민주주의 문제, 즉 국가민주주의는 국가와 민족주의의 중복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보다 더 상향시켜 내는, 권리나 자기결정도 체제문제와 계급문제와 맞닿아서 확장될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세 번째는 한국변혁운동이 세계변혁운동 또는 동아시아 변혁운동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위상을 다시 확인하면서 동아시아의 연대, 국제프롤레타리아운동의 복원으로 나아갈 때, 일국적 운동도 잘 되고 또 일국적 운동을 벗어나는 길이 되지 않을까, 이런 것을 느꼈습니다. 긴 시간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영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진보평론의 여러 분들과 연대를 했으면 좋겠고, 혹시 일본이나 동아시아 연대운동과 관련해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세요. 진보평론의 건투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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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bie 18-06-2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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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IS I should have thuoght of that!
Destrie 18-06-25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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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p these arieclts coming as they've opened many new doors fo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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