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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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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작성일 : 13-06-27 15:31
지젝의 들뢰즈 읽기에 나타난 인간주의적-관념론적 오독
 글쓴이 : 김재인
조회 : 860  

진보평론 56호(2013년 여름) 일반논문

지젝의 들뢰즈 읽기에 나타난 인간주의적-관념론적 오독

김재인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단/ 철학


이 글은 지젝(Slavoj Žižek)의 영향력 있는 저서 신체 없는 기관. 들뢰즈와 결과들”(2004)에 나타난 들뢰즈 읽기의 문제를 비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젝은 이 책에서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와 들뢰즈가 과타리와 함께 쓴 "안티 오이디푸스"를 대결시키면서, 전자를 통한 후자의 극복을 도모한다. 지젝이 보기에 이 두 책은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지젝의 작업은 두 가지 중대한 오류를 내포한다. 첫째로, 지젝은 "의미의 논리""안티 오이디푸스"를 직접 읽지 않았거나 적어도 직접 인용하지 않는다. 그는 주로 델란다(Manuel DeLanda)의 해석 또는 아마추어적인 인상비평 수준에서 들뢰즈를 논할 뿐이다. 둘째로, 지젝은 두 책의 내용을 완전히 오독한 나머지, 자신의 들뢰즈 비판의 증거를 스스로 말소한다. 그렇다면 이제 남는 것은 지젝 자신의 의견뿐인데, 이것을 들뢰즈의 이름과 더불어 설파하는 것은 바른 행실은 아니다. 요컨대 지젝의 책은 논증은 없고 억측만 난무하는 책이 되고 말았다.

원칙대로라면 이 글의 논의는 지젝이 거론하는 "의미의 논리"의 주요 대목에 대한 바로잡기와 더불어 "안티 오이디푸스"의 얼개라도 제시하는 순서로 진행되어야 맞겠으나, 주어진 지면의 한계 때문에 후자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른 자리로 미루기로 하겠다. 그렇더라도 지젝의 폭력적 읽기가 갖는 위험성이 지젝 자신의 사고의 위험성은 아닌지 돌아볼 기회를 갖기에는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1.
들뢰즈를 과타리에서 구출하라? 

1) "의미의 논리""안티 오이디푸스"

2) 들뢰즈의 헤겔적 몸짓 또는 욕망의 억압이라는 딜레마

3) 지젝이 읽은 의미의 논리의 논리: 잠재와 준-원인




2. “-원인잠재에 대한 지젝의 텍스트 오독

1) "의미의 논리"에 나타난 -원인개념과 들뢰즈의 윤리학

2) "의미의 논리" 속의 잠재개념의 부재




3. 자유의지라는 인간주의적-관념론적 토픽과 일관된 잣대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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