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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작성일 : 13-12-18 16:06
1957-58년 세미나에서의 라캉의 이중전선: 욕망의 그라프 구축의 쟁점들
 글쓴이 : 최원
조회 : 984  

진보평론 58호 (2013년 겨울) 일반논문


1957-58
년 세미나에서의 라캉의 이중전선: 욕망의 그라프 구축의 쟁점들

  최원_ 건국대/ 철학

슬라보이 지젝은 루이 알튀세르와 자크 라캉의 논쟁을, 라캉의 욕망의 그라프 안에 마련된 두 수준 또는 두 층 간의 차이에 준거하여 해석한다(Žižek, 1989, p. 124). 지젝은 그라프의 하층이 상징(the symbolic)의 작동을 묘사하며, 상층은 그러한 상징이 어떻게 실재(the real)에 의해 관통되는지를 묘사한다고 본다. 이와 같은 이해에 입각하여 지젝은, 알튀세르가 상징계 안에서 주체의 소외가 일어나는 하층에 자신의 논의를 한정한다면), 라캉은 그 위에 한 층을 더 추가함으로써 실재(주이상스)의 차원을 도입하고, 그리하여 상징 그 자체로부터 주체의 분리가 어떻게 인식 가능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알튀세르는 주체를 상징의 단순한 효과로 환원한 완고한 구조주의자로 나타나는 반면, 라캉은 그러한 알튀세르의 입장에 대한 발본적 비판자로 등장한다.

이 글에서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논의로 직접 들어가지는 않으면서 이러한 지젝의 관점을 반박하고자 하는데, 이를 위해 우리는 욕망의 그라프의 하층을 상상(the imaginary)으로, 그리고 상층을 상징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올바르다고 주장할 것이다. 지젝의 오해는, 상상적 국면 자체 안에 미리 도착해 있는 상징과 고유한 의미에서의 상징(곧 상층에서 상상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는 순수 상징) 간의 라캉의 결정적 구분을 무시하는 데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실재는 상상으로부터 상징으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촉매로서 불안(anxiety)이라는 형태로 개입해 들어온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2층으로의 이행을 이론화함으로써) 상징의 필연성에 대해 고집하는 것으로 보이는 쪽은 오히려 라캉이다. 지젝은 욕망의 그라프를 설계한 라캉의 의도, 곧 실재가 아니라 상징이 갖는 지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를 왜곡함으로써 그의 맑스주의 비판의 내용 또한 변질시킨다.

이 논문의 일차 목표는 따라서 욕망의 그라프에 대한 라캉의 이해를 규명하는 데에 있다. 우리는 무의식의 형성들(Les Formations de l'inconscient)”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라캉의 다섯 번째 세미나에 대한 독해를 통해 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데, 이 세미나는 욕망의 그라프가 라캉에 의해 최초로 개발되는 세미나이기도 하지만, 또한 상품에 대한 칼 맑스의 정식이 비교적 길게 논의되는 두 편의 세미나 중 하나이기도 하다(다른 하나는 열여섯 번째 세미나이다). 결론에서 우리는 이러한 독해를 통해 분명해진 라캉의 의도가 라캉적 이데올로기 비판에 있어서 갖는 몇몇 함의들을 끌어내려고 시도할 것이다.

"세미나 V"에서 라캉은 상이한 두 개의 전선에 개입하는데, 그 중 하나가 맑스주의와의 전선이라면, 다른 하나는 멜라니 클라인(또는 클라인 학파)과의 전선이다. 그러나 이 두 전선에 라캉이 두는 비중은 대칭적이지 않다. 더욱 중요한 것은 클라인과의 논쟁이다. 맑스주의와의 논쟁은 파생적이기 때문에, 클라인과의 논쟁에 비추어 그것을 살펴보는 편이 좀 더 이해하기에 용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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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라인과의 논쟁

 

2. 환유에서 은유로

 

3. 세 번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4. 맑스주의와의 논쟁

 

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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