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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언대
 
작성일 : 11-12-16 16:48
화재와 행정폭력에 굴하지 않고 재건한 포이동 재건마을
 글쓴이 : 신희철
조회 : 781  

  50호-발언대

신희철/전 포이동주거복구공대위 상황실장

지난 612, 서울시 강남구 타워팰리스 건너편 포이동266번지(개포41266번지’) 재건마을을 화마가 휩쓸고 갔다. 일요일 오후 초등학생이 피운 작은 불이 초동 진화에 실패하면서 전체 96가구 중 75가구를 전소시켰다.

화재와 강남구청의 복구 불허, 이어진 강제철거를 통해 근 2년간 묻혀있던 포이동 재건마을의 사연이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지난 2007, 진보평론 제29호에도 소개되었던 포이동 266번지: 넝마주이마을과 넝마공동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 도시빈민 강제수용과 강제이주로 조성된 재건마을

  1) 박정희 대통령, 자활을 명목으로 도시빈민 강제수용하다

  19817동두천시 자활근로대 숙소 운영 규칙을 보면 자활근로대는 넝마주이, 구두닦이 등 가두 청소년을 집단 수용하기 위해 만든 단체이들을 강제 수용하기 위한 숙소·연료비·작업복·작업화 등의 예산은 국가가 지급하며 관할경찰서와 자치단체장이 숙소 사용 대상자를 정한다고 못을 박고 있다. 자활근로대원은 19822,300명 이상이었고 전국적으로 결성되었다. 자활근로대를 관리하기 위해서 지도관(현 경찰)을 파견하였고 하루 일과 및 노동성과를 군대식으로 통제하였다. ‘후리가리라고 하여 수시로 단속과 강제연행, 고문, 거짓 자백 강요 및 삼청교육대 등으로의 수감 등 인권유린을 저지르기 일쑤였고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 때는 마을 출입을 통제했다.

서초구 정보사 터에 편재되어 있던 자활근로대도 마찬가지였다. 300명이 넘는 자활근로대원들을 강제수용하다 보니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지 않고, 그러자 정부는 이들을 1981년에 강남 곳곳에 흩어진 자투리 땅 10곳에 분산 배치(강제이주)했다. 이 가운데 1-2지대였던 포이동266일대를 뺀 9곳은 강남 개발의 광풍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당시 포이동200-1번지였던 양재천 옆 허허벌판에 조성된 마을은 재건마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분산 이후에도 자활근로대 통제는 계속되었다. 이렇다 할 우물도, 주거지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쓰레기 적치장이라, 정부와 지도관들이 비닐하우스와 쌀, 김치를 제공하였다. 주민들은 쓰레기를 치우고 우물을 직접 파는 등 어렵게 삶의 터전을 일구어 나갔다. 결혼을 하게 되고 가족이 늘어나면서 차츰 판잣집을 짓게 되었는데 후리가리라는 단속과 인권 유린을 피해 판잣집에는 가족만 남고 대원들은 인근에 토굴을 파고 숨어 지내는 일도 많았다.

그 이후에도 강남구청은 다른 도시빈민들을 연이어 이 마을로 강제 이주시켰다.

 2) 자활근로대에 이어 계속된 도시빈민 강제이주

강남구청은 1989년 봄, 개포4동 청사 건축으로 그곳에 살던 원주민 14가구를, 여름에는 베트남전 상이용사 16가구를, 1998년에는 양재천 개발 공공주차장 부지에 살던 넝마주이 36가구를 강제 이주시켰다. 강제이주 때마다 정부와 구청은 이곳이 너희가 살 터전이다라고 했고 정부나 구청, 경찰들에게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집의 규모를 줄이고 길을 줄여 새로운 이주민들을 받아들이고 서로 의지하며 살게 되었다.

2. 강제 이주시켜 살라고 하더니 불법점유자로 몰아

  그러나 정부와 서울시, 강남구청은 이곳이 너희 삶의 터전이라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재건마을을 해체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갔던 것이다.

강남개발이 진행되면서 서울시와 강남구청은 하천부지이던 마을 부지를 1988년 도서관부지로 변경했다. 1988년 이전까지는 주소지가 인정되고(포이동200-1번지) 주민등록도 등재되었으나 도서관부지로 변경한 이후(포이동266번지)부터는 주민등록을 새 주소지로 등재해 주지 않았다. 포이동266번지로 등재해야 하지만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유령마을로 취급하였고 지도상에 없는 주소가 되었다. 주민들은 불가피하게 주소지 등재가 가능한 인근지역, 더 멀리 인천, 군포 등의 친척 집으로 위장전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 정부는 자활근로대 결성 및 운영이라는 반인권적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활근로대를 1990년대 초반까지 전국적으로 해체했다. 재건마을로 분산 배치되어 있던 1-2지대 대원들에게도 1988년 올림픽 이후 사표서를 작성하게 했다.

그리고 1990년부터는 주민들에게 토지변상금이 부과되기 시작했다. 토지변상금이 뭔지 영문을 몰랐던 주민들은 당시 마을을 담당하던 지도관들이 너희가 이거 한번만 내라. 성의를 보여라라고 하니, 무슨 의미인지 알지도 못한 채 어렵게 돈을 빌려 토지변상금(당시 약 30만원)을 납부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1년부터 대대적으로 토지변상금이 부과되고(당시 약 260여만원) 미납된 세대에겐 이자까지 부과되었다. 납부하지 못한 세대는 재산이 압류되기도 했다.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2003년 들어 서울시와 강남구청은 도서관부지였던 마을 부지를 일방적으로 학교 부지로 용도 변경하면서 주민들에게 마을을 나가라고 위협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강남구청에 의해 재건마을로 강제이주 되었건만 돌아온 것은 불법점유자, 위장전입자라는 딱지와 퇴거 요구였다.

주민들은 더 이상 당할 수만은 없었다. 현대백화점 옆 시유지에 지으려던 학교를 난데없이 재건마을 부지에 짓겠다고 변경하면서 노골적으로 주민을 내쫓으려는 의도인 퇴거 요구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구청, 경찰들에게 항의한번 못하고 굴종의 삶을 살아야 했던 주민들은 철거민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투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20035월 스스로 조직을 결성하게 되었다. 포이동266번지사수대책위원회가 바로 그것이다. 사수대책위는 강남구청과 서울시청을 대상으로 집회와 항의방문을 하고 학교 부지로의 용도 변경 철회와 강제이주 인정, 토지변상금 철회, 주민등록 등재, 점유권 보장등의 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3. 당당한 주민임을 제기하기 시작하다

 

재건마을 주민들의 이야기가 마을 밖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게 바로 이때부터였다. 2004년부터는 타워팰리스 앞 판자촌으로 언론과 방송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포이동 주민들은 철거민단체(현 민중주거생활권쟁취를위한철거민연합)에 함께 했고 2005년 여름 빈민현장활동을 통해 좀 더 다양한 빈곤시민사회단체, 대학생들과 연대하게 되었다. 이후 여름과 겨울마다 대학생들의 빈민현장활동이 포이동 재건마을을 거점으로 진행되었다. 강남구청과 서울시청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당면 이슈 중 하나였던 유령마을 취급 문제를 알리기 위해 유령시위를 했고 주민등록 일제 정리 기간에 맞춰 집단 전입신고 투쟁을 진행했다. 웰컴투포이동 문화제를 진행하고 매년 겨울을 앞두고는 민주노총 서울본부 남동지구협의회 소속 노동조합과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들이 김장을 함께 담그기도 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2007414, 주민 대표들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면담이 이뤄졌고 오세훈 시장은 사태해결을 약속하였다. 그해 913, 서울시가 마을에 장기전세주택 SHift를 짓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주민들과의 약속을 번복하기도 하였지만 포이동 주민들과 강남구의회, 인근 주민들의 Shift 개발 반대로 유보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09! 드디어 주민들의 염원 중 하나였던 주민등록 등재가 이뤄졌다. 바뀐 개포41266번지(구 포이동266번지)로 나온 주민등록증을 받은 주민들의 기쁨은 평범한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이어 강남구청은 마을에 공동화장실을 설치하고 배수로를 공사를 하였고 주민들이 요구해온 강제이주 인정, 토지변상금 철회, 점유권 보장을 긍정적으로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대화를 통한 해결 가능성이 높아졌고 서울시와 강남구청이 직접 국민권익위원회를 대동하고 마을을 방문하여 강제이주 자료를 취합하고 다른 지역 선례를 알아보며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화재가 나기 얼마 전 신연희 현 강남구청도 마을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4. 화재와 퇴거 압박

  1) 화재의 아픔을 딛고 복구에 나서다

  2011612, 대형 화마가 평화롭던 재건마을을 휩쓸고 지나갔다. 혹시 모를 화재를 대비해 마을 곳곳에 CCTV와 소화기, 소화전을 설치하고 대비했건만, 매년 소방서와 소방훈련을 진행해왔건만, 신고한지 30분 만에 달랑 소방차 한대가 출동하고 소방차에 물이 없다며 뜸을 들이고, 마을 안으로 번져가는 불을 화재 발생 지점에서만 진화하려 하는 등 다분히 의도된(?) 초동 진화 실패로 96가구 중 75가구가 사실상 전소하고 말았다. 주민들은 “(소방서가 불이) 다 타 버리도록 내버려두는 거야”, “차라리 우리가 끌 걸하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상황은 돌이키기 어렵게 되었다. 오래된 주민의 아픔이 해결될 것이라 기대했던 게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꺾이지 않았다. 주민들을 비롯하여 빈곤시민사회단체는 포이동266번지(재건마을) 화재 진화 실패 규탄, 주거 복구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많은 시민들의 성금과 후원을 통해 화재 현장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강남구청이 화재 현장과 잔재를 방치하자 직접 현장을 치우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화재로 인해 임시로 천막에서 진행하던 공부방도 직접 짓기 시작했다.

 

2) 강남구청과 서울시, 실효성 없는 임대주택 이주 유도

 

반면 강남구청은 서울시와 협의하여 복구는 불법이라며 서울 곳곳의 매입임대주택이 포이동 주민의 주거문제 해결의 근본이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강제 이주시켜, 살라고 했고, 그렇기에 화재 전에는 점유권, 혹은 지상권을 함께 검토했던강남구청과 서울시가 화재를 빌미로 일방적으로 나가라는 것으로, 주민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주민 대부분이 독거노인, 한부모가정, 조손가정인 상황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던 공동체를 해체하여 각 가정을 벼랑으로 내모는 폭력이기도 했다. 주민 대부분의 생계 터전인 고물상 등 영업장에 대한 대책도 없이 주거문제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강남구청과 서울시가 제시한 해당 임대주택들도 지하방 혹은 반지하방이 대부분이거나 타 자치구에 흩어져있거나 개발 예정지역에 있기도 했다.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했던 판자촌 혹은 판잣집 대신 근본적인 주거대책이라고 제시한 임대주택의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욱이 화재 전에 마을을 떠나 임대아파트에서 살려고 했던 주민이 토지변상금을 이유로 임대아파트 보증금이 압류되어 쫓겨났던 전례가 있기 때문에 구청이 여론에 떠밀려 언론플레이용으로 실효성 없는 임대주택을 강요한다는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보증금 압류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채 마을을 떠나 임대주택으로 가겠다고 하면 보증금을 융자해주겠다고만 이야기했다. 강남구청은 임대주택으로의 이주 방침을 발표한 후 한 달이 훨씬 지난 725일에야 토지변상금을 이유로 한 임대주택 보증금의 압류를 배제하기로 내부 방침을 결정했다. 강남구청이 임대주택을 대책으로 제시했다면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을 때 그 이면에서는 까다로운 입주 자격요건으로 탈락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거나 노동능력이 없어 임대료를 부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신청했다가 탈락했던 것이다.

결국 주민 대부분은 공동생활과 생계의 어려움, 공무집행 방해 및 불법건축 등을 내세운 강남구청의 고소고발에도 마을을 재건하고 공동체를 지킬 것을 결정했다. ‘현 자리 주거복구 및 점유권 인정이냐, 아니면 강제 퇴거되어 죽느냐만 남은 상황이 되었다.

 

3) 강남구청, 복구는 불법이라며 수차례 강제철거

 

화마, 수마를 겪은 판자촌, 비닐하우스촌 대부분은 복구하고 싶어도 제도적으로, 정치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시유지 등 국공유지에 집을 짓고 생계를 꾸려가고 있지만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이들을 불법점유자 몰고 재해 현장에 집을 다시 지으려고 하면 용역깡패를 고용하여 강제철거를 벌이는 게 현실이다. 물론 지자체장들의 결단으로 복구를 허용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내쫓고 막대한 개발이익을 챙기기 위해 대부분의 지자체장들은 법과 제도를 운운하며 복구를 불허한다. 작년에 화재를 겪은 서초구 산청마을 비닐하우스촌은 집을 복구했다가 구청과 용역깡패들에게 강제철거 당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포이동 재건마을도 화재가 난지 다섯 달이 넘도록 강남구청이 주거복구를 불허한다며 1차례의 철거 시도에 이어 화재 두 달 째인 812일과 929일 새벽을 기해 복구한 집들을 2차례 강제 철거하였다. 심지어는 화재 잔재마저 다섯 달이 넘도록 현장에 방치했다. 812일에는 140여명의 구청 직원들과 용역깡패들이 난입하여 주민들을 강제로 끌어내고 해머로 집을 부쉈다. 929일에는 인근 공영주차장의 담장을 포크레인으로 뚫고 들어와 항의하는 주민들을 폭행하고 집을 부쉈다. 매번 철거 때마다 많은 주민들이 다치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강남구청과 관할 경찰서인 수서경찰서는 큰 마찰 없이 철거가 이뤄졌다고 거짓 발표를 했다. 특히 수서경찰서는 강남구청으로부터 철거 예고를 받지 않았고 현장에도 제때에 오지 않았으면서 구청의 발표만 반복했다. 강남구청은 이에 더해 그나마 새벽이라 불상사가 없었던 것이라며 이후에도 새벽에 철거할 것임을 공공연하게 밝혔다. 사회적으로 야간(일몰 이후부터 일출 전까지), 동절기, 폭우 시의 강제철거로 인해 많은 불상사가 있어왔고 강제퇴거 자체를 근절하기 위한 관련 법 제정운동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강남구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욱이 강남구청은 주민들이 계속 집을 복구한다면, 화재 피해를 입지 않아 지상권이 고스란히 보장되어야 할 건물, 마을 공동체의 상징인 마을회관까지 철거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위협했다. 그리고 인권 침해 소지를 안고 있는 행정대집행법을 악용하여 철거에 들어간 2,300여만원의 비용을 주민대표에게 부과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4) 강남구청, 현 자리 대책을 제시하기에 이르다

 

강남구청의 지속적인 현 자리 복구 불허 방침, 임대주택 이주 홍보가 있었지만 강남구청에 대한 비판 여론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화재 복구를 불허하는 것은 지나친 행정폭력이라는 것과 강제이주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서울시와 강남구청의 책임회피, 지속적인 대화 회피와 강제철거를 통해 확인된 한나라당 소속 신연희 강남구청장의 권위주의 때문이다. 강남구청 스스로도 임대주택 이주 신청자 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주민대표가 주민들의 임대주택 신청을 가로막고 있다고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812일 기습 철거를 전후로 현 자리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기 시작했는데 장기전세주택 또는 임대아파트가 지어지기 전까지 인근(개포41267-1번지. 근린공원부지이나 수년째 방치) 혹은 현 자리 일부에 임시주택 마련고물상 등 영업장 대체부지 마련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강제이주와 점유권을 인정하여 법률적 검토가 이루어질 때까지 (시유지를)무상대여하고 모든 고물상 등 영업장 대체부지를 강남구 내 마련하라는 주민들의 요구와는 거리가 있지만 현 자리 혹은 인근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기 시작했다는 면에서 기존 임대주택 이주만 강요하던 것과는 달랐다. 그러나 세부사항들에 대해 서면으로 약속하라는 주민의 요구에 대해 강남구청은 “(구청이) 검토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으면 확실하게 한다는 말이라며 서면약속은 회피한 채 진전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고 이 와중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임하고 해당 시유지 바로 옆 아파트단지 주민들의 반대가 있자 은근슬쩍 백지화하고 말았다. 대신 강남구청은 재건마을 부지 내 대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화재 현장의 절반을 강남구청이 공영주차장으로 쓸 수 있도록 주민들이 양보한다면 나머지 부지에 복구하는 것은 간섭하지 않겠다고 제시했다. 강남구청이 서면으로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주민들은 이를 믿고 이미 복구했던 집들 중 구청이 공영주차장으로 사용하겠다고 한 부지에 세웠던 집 11채를 마을 내 공터로 옮겨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남구청은 며칠 지나지 않아 또 약속을 번복하고 주민들이 (공영주차장 부지 내 복구한 주택)자진철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마을 내 고물상 부지에 지으라고 한 것은 아니다라며 929일 새벽, 강제철거를 자행했다. 강남구청은 약속 파기와 새벽 강제철거 논란이 일자 담당부서를 도시계획과에서 주택과로 변경하고 사태에 대해 사과하며 이후에는 강제철거하지 않고 대화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강남구청이 현 자리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였지만 구청은 수시로 약속을 번복했다. 929일 철거에 대한 사과가 있었음에도 구청이 허락한 곳 외에 집을 지으면 복구한 다른 집들도 밀어버리겠다고 하며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주민들이 추가로 복구하면 기존 복구 주택도 밀어버리겠다”,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더라도 철거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강제철거와 관련한 비판적인 여론, 재건마을 부지가 시유지이기 때문에 결정권자인 박원순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부담을 느낀 강남구청은 주민들과 현 자리 대책에 대해 협상에 나서게 되었다. 10월부터 11월 초까지 한 달 여 진행된 협상에서 강남구청은 아직 복구하지 못한 12가구 부지를 최소로 제안하면서 소위 외부인, 외부단체를 마을에서 배제하려고 하였다. 더불어 마을회관을 해체하려고 하였다. 피 말리는 협상에서 외부단체 차단이라는 각서쓰기를 주민들은 거부했고 대신 마을회관 망루와 연대단체 깃발과 현수막, 3-4층 자진철거는 수용하고 아직 복구하지 못한 12가구까지 포함하여 총 52가구의 복구를 임시주택으로 인정받고 강남구청의 서면 약속을 받게 되었다.

 

5.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포이동 재건마을은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복구가 인정되어 그나마 마을 부지에 대한 사업계획 수립시행 시까지 임시주택을 인정받게 되었다. 소위 불법점유, 불법건축이라며 전국적으로 화재, 수재 현장에 대한 복구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아직 화재 복구가 인정되지 않고 있는 서초구 산청마을 또한 복구가 속히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야말로 임시주택 인정만 다뤄졌기 때문에 임시주택 이후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포이동(현 개포동)에만 판자촌이 재건마을 외에도 구룡마을, 수정마을, 달터마을이 있고 전국적 곳곳의 판자촌, 비닐하우스촌에 대해 주민과 공동체를 고려한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어야 한다. 포이동 재건마을의 경우, 정부와 강남구청이 도시빈민을 강제 이주시켜 조성한 마을이라는 점, 주민들의 주거생계교육 터전이자 보존해야 할 공동체라는 점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불법점유자라며 부과한 토지변상금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로 인해 재산이 압류되고 공매에 넘어가고 있다. 이는 마을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족쇄가 되고 있다. 2,300여만원에 달하는 철거비용을 주민대표에게 부과한 것 또한 해결되지 않고 있다.

포이동 재건마을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가난하지만 우리가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할 공동체가 있다. 재건마을 재건은 아직 미완의 단계다. 제대로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한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따라서 강남구청이 그렇게 두려워하는 외부인의 연대가 여전히 절실하다. 더불어 지난 10.26 서울시장 선거기간에 박원순 현 시장이 약속했듯 주민 주거권과 생존권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마을을 방문하여 주민의 고충을 듣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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