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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언대
 
작성일 : 13-03-19 16:51
난민, 고통과 희망의 경계에 선 사람들
 글쓴이 : 강은숙
조회 : 1,053  

55호(2013년 봄) 발언대

난민, 고통과 희망의 경계에 선 사람들

강은숙/ 난민인권센터 사업팀장



1. 들어가는 말


한국에서는 작년 한 해 동안 1,143명이 난민을 신청하여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올해 7월부터는 난민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1992년 한국정부가 난민협약에 가입한 이래, 한국은 난민 배출국에서 수용국으로 전환되었으며, 그 규모가 계속 증가하여 지금까지 5,000명이 넘는 난민들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또한 그동안 난민에 대한 제도적 고려는 기존의 출입국관리법으로 난민의 법적지위를 결정하는 행정적인 절차가 전부였다면, 곧 시행될 난민법은 그 한계에도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난민들의 사회적 지원에 관한 내용들을 포함하게 된다. 한국사회가 난민과 공존하며 살아가기 위해 진지한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다수의 한국인들과 난민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면 난민이 누구예요?, 어디서 오나요?, 한국에도 난민이 있나요? 왜 한국으로 오죠?”라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한국인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서 기아, 전쟁, 재난으로 인해 대량으로 발생하는 난민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종종 접하며 해외의 난민지원기구 등을 후원하는데 인색하지도 않다. 하지만, 본국을 탈출해 한국에 건너와서 살고 있는 난민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곧잘 당혹감을 표현하곤 한다. 그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뿐 아니라 어떤 이유로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 오는 난민들은 따지고 보면 바로 수십 년 전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난민들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은 이유로 한국 땅을 밟는다. 실제로 20세기 초 한국은 수많은 난민을 배출한 지역이었다. 일본의 침략 이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만주와 중국, 미국 등지로 탈출하여 독립운동을 하기도 하였고, 6.25 전쟁의 와중에 수많은 국내 실향민과 난민들이 발생했다. 군부독재정권시절에는 정부와 권력에 저항했던 민주화운동가들이 박해를 피해 해외로 탈출하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근래에 한국에 들어오는 난민들이 처한 현실을 보고 있자면 과거 한국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저 마다에게 가해지는 폭력적 현실의 이면에 비록 조금 다른 이유가 작동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무참히 파괴되는 상황은 예전의 한국 그리고 오늘날 우리 주변의 난민들이 꼭 닮아 있다. 여전히 세계의 수많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유혈충돌, 구금, 투옥, 고문구타, 강간, 약탈, 인신매매, 방화 등의 폭력적 일상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난민들은 박해를 피하고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나라로, 또 한국이라는 나라로 망명을 감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유입되는 난민신청자에게 지금껏 한국정부는 법적인 지위를 인정해 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난민에 대한 한국인들의 사회적 인식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에서 또 다른 곤경과 차별의 삶을 지속적으로 겪어야만 한다. 이 글은 바로 이러한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난민들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고자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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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떤 난민들이 한국으로 오는가?

 

난민협약에 따르면 난민의 요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충분한 공포를 가진 자, 둘째,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 받기를 원치 않는 자, 셋째, 박해로 인해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길 원치 않는 자이다. 즉 이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되면 난민협약에 의거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다.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 신분, 정치적 의견이라는 다섯 가지 박해사유에 따라 난민의 유형을 분류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러한 이유들이 중첩되어 발생하는 경우가 많거나 이러한 유형에 속하지 않는 특수한 이유들도 존재한다. 한국에 난민으로 입국하여 보호를 원하는 난민들의 경우 위와 같은 요소들을 포함하면서도 대개는 정치적 의견의 문제 때문에 온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타국에 건너오게 되는 이유는 여행, 진학, 사업, 노동 등 무척 다양하며, 각 나라들은 이와 같은 이유에 따라 외국인에 대한 법적 체류의 형태를 허가하고 분류하게 된다. 난민의 경우는 그 목적이 생존과 직결되어 있으며 박해가 종식될 때까지 사실상 비호국에 거주하게 되는 정착형 이주민형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에 망명하는 난민들은 기아나 전쟁 등에 의해 대량으로 발생하는 집단적 난민의 형태보다는 정치적 신념, 종교, 문화적 이유로 이주한 개인 난민이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1) 한국에 유입되는 난민 현황

 

한국이 1994년 난민협약과 관련된 법조항을 신설하여 발효한 이래 난민 신청을 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난민의 숫자는 꾸준히 증가하여 2012년까지 5,069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들 중 난민으로 인정된 숫자는 320명에 불과하며, 인도적 지위를 허가한 숫자는 188명이다. 즉 나머지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인정을 받지 못해 본국으로 강제송환되거나, 송환을 피해 미등록 상태로 체류하고 있다. 난민협약국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사항이 강제송환금지의 원칙인데, 자신의 난민성을 입증하지 못하는 난민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시 예상되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강제출국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구분

신청

인정

인도적

지위

불허

철회

취소

전체

법무부 심사

행정

소송

가족

결합

1

심사

이의

신청

법무부

소계

1994

5

0

0

0

0

0

0

0

50

39

0

1995

2

0

0

0

0

0

0

0

1996

4

0

0

0

0

0

0

0

1997

12

0

0

0

0

0

0

0

1998

26

0

0

0

0

0

0

0

1999

4

0

0

0

0

0

0

0

2000

43

0

0

0

0

0

0

0

2001

37

1

1

0

1

0

0

0

2002

34

1

1

0

1

0

0

8

2003

84

12

11

1

12

0

0

5

2004

148

18

14

0

14

0

4

1

7

9

2005

410

9

9

0

9

0

0

13

79

29

2006

278

11

6

1

7

1

3

13

114

43

2007

717

13

1

0

1

1

11

9

86

62

2008

364

36

4

0

4

16

16

22

79

109

2009

324

74

45

10

55

4

15

22

994

203

2010

423

47

20

8

28

9

10

43

168

62

2011

1011

42

3

8

11

18

13

21

277

90

4

2012

1143

60

25

0

25

15

20

31

558

187

 

Total

5,069

324

140

28

168

64

92

188

2,412

833

4

* 취소자 반영 난민인정자 수: 320

* 2012.12.31 기준 심사중: 1,333

 

 

2) 한국에 유입되는 난민의 유형과 특징들

 

우리나라에서 난민지위인정을 신청하는 난민들은 대부분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 출신이다. 동남아시아 출신의 경우에는 버마의 민주화 운동가들 및 소수민족들, 방글라데시 줌머족과 스리랑카의 소수민족, 네팔의 반정부 운동가 등이 많다. 중동의 경우 파키스탄에서 탈레반의 위협을 피해 온 난민들, 이라크 소수민족, 종교적인 박해를 피해 온 난민들이 많으며, 최근에는 시리아 사태로 인해 위협받는 난민들도 유입되고 있다. 아프리카 출신의 경우 정치활동, 인종 및 부족 간의 갈등, 종교적 탄압, 성적 소수자 집단에 대한 박해 등 다양한 이유로 한국에 입국하고 있다.

나라별로 난민신청자의 규모를 보면, 파키스탄(978), 스리랑카(612), 네팔(440), 미얀마(370), 나아지리아(348), 우간다(308) 순이며, 이에 반해 난민인정자의 규모는 미얀마(130), 방글라데시(65), 콩고민주공화국(27), 에티오피아(19), 이란(13), 우간다(9) 순이다. 파키스탄과 스리랑카 신청자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실제 법무부에서 인정하는 난민인정자는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출신 난민이 압도적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먼저 파키스탄, 스리랑카, 네팔 출신의 난민신청자의 경우 우리나라에 이주노동자로 입국한 뒤 체류연장을 위해 난민제도를 악용한다는 인식이나, 입국 후 난민사유가 발생한 현지체제 중 난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이들 나라 출신의 신청자가 난민으로 인정된 경우는 지금껏 2명에 불과하다. 반대로 미얀마나 방글라데시 출신 난민의 인정률이 높은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신청자 그룹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또 국내 시민단체와 연대가 비교적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각 국가별 난민인정률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정치의 외교적, 정치적 차원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기도 하고, 또 국내에서 박해 사유가 얼마나 충분히 알려져 있는가 하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국적

신청

인정

불인정

철회

심사 중

인도적체류

불인정

총계

5,069

320

171

2,412

833

1,333

파키스탄

978

2

13

425

149

389

스리랑카

612

0

3

259

117

233

네 팔

440

0

4

280

108

48

미 얀 마

370

130

25

134

41

40

중 국

359

7

20

261

69

2

나이지리아

348

2

4

200

28

114

우 간 다

308

9

11

145

50

93

방글라데시

242

65

2

107

29

39

시리아

149

0

0

1

0

148

코트디부아르

122

4

21

68

20

9

콩고DR

114

27

16

48

17

6

에티오피아

85

19

15

29

7

15

이 란

66

13

4

37

8

4

기 타

876

42

33

418

190

193

 법무부의 자료임에도 <1>의 연도별 현황과 <2>의 국가별 현황 중 인도적 지위 숫자에서 차이.

 

 

3. 난민, 고통과 희망의 경계에 선 사람들

 

본 장에서는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난민인권센터의 인터뷰 자료 및 출간물의 질적 자료를 활용하여, 한국에서 난민들이 실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다각도로 조명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타국에서 난민으로서 살아감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되는 것은 바로 그가 한 인간으로서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고 살아가는지 그렇지 못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취업과 생계의 문제, 주거와 의료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에 거주하는 난민들은 제3세계 국가 출신의 이주노동자들 및 미등록 외국인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대부분 그러하듯 극심한 차별과 소외의 경험 속에서 우리사회에서 철저하게 밑바닥으로 내몰린다. 즉 그들은 자신의 박해 경험을 인정받아야지만 한국에서 그나마 최소한의 기본적인 법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으며 또 심신을 철저하게 파괴한 자신의 박해 경험으로 일상생활을 올바르게 유지하는데 한계가 있다. 또한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온 난민들의 경우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차별과 무시는 더욱 이들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난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본국에서 나름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며, 또 나름대로의 전문적 재능과 지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즉 난민들은 박해와 곤경에 처했지만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경을 넘은 적극적인 행위자이기에 나름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1) 박해를 믿지 않는 한국사회

 

난민들은 급박한 본국의 박해 상황을 탈출하다시피 하여 한국에 입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방하나 들쳐 메고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보를 충분히 갖지 못한 채 공항에 도착하는 경우도 많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 신청을 하게 되면, 자신이 본국에서 겪었던 박해사실을 입증해야만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그 과정은 난민신청자들에게 커다란 부담과 인내심을 요구하게 된다. 한 콩고민주공화국(이하 콩고로 간략히 표기) 출신 난민은 콩고 정권에 불리한 기밀정보를 누설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감옥에서 고문을 당한 뒤 본국을 탈출해 왔는데, 수차례에 걸친 출입국사무소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진술에 대해 의심을 받아야 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한 난민 단체의 활동가가 콩고 현지를 방문하여 관련 서류를 구해 제출했지만 결국 난민으로 인정되지 못했다. 그는 난민불인정에 대한 행정소송을 진행한 뒤에야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었고, 난민으로 인정받는데 5년여를 기다려야만 했다.

우간다 난민의 경우 물가폭등과 독재정치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소위 안가(safe house)라고 불리는 비밀 감옥으로 끌려가 6개월 간 고문을 받다가 한국으로 탈출했다. 그는 당시의 고문 경험을 회상하는 것에 대한 수치심과 고통으로 자신의 박해 사실에 대한 체계적인 진술을 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난민단체의 지원을 통해 심리치료를 받고 신뢰 관계와 안정감을 어느 정도 회복한 뒤에야 자신의 박해사실을 표현하고 난민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심리적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한 어떤 지원도 없는 상황이다. 또한 출입국의 심사 과정에서는 신청자를 심문하거나, 진위여부를 따지는 방식으로 인터뷰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면담과정에서 오히려 심리적 어려움을 느끼거나 그로 인해 자신의 경험이 왜곡된 채로 전달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각국의 문화적 관습, 사회제도 등이 한국사회와 판이하게 다른 경우도 많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난민으로 인정받는데 고려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예컨대 아프리카에서는 주술을 통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문화가 매우 일반적이다. 또한 우리나라처럼 행정체계가 발달되지 않아 자신이 익숙한 마을의 행정구역 단위를 혼동하는 경우도 있으며, 부족단위와 왕국이라는 경계가 더 익숙한 경우도 있다. 또 우리나라의 경우 엄격한 출입국 절차에 의해서만 출국을 할 수 있지만, 3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직원을 매수하면 무리 없이 심사를 통과하여 비행기에 오르기도 한다. 사망증명서 등과 같은 각종 공문서는 수기로 쓰이거나, 발급조차 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행 및 문화적 차이들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이들의 박해경험은 종종 그저 황당한 이야기로 간주된다. 비합리적인 사회의 관행 속에서 발생한 박해를 합리적으로설명하고 입증하기를 요구하는 제도 속에서 이들은 난민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는데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난민들은 자신의 박해상황을 벗어나고 보호를 요청하기 위해 한국에 오지만, 박해사실을 입증해 내는 과정에서 또 다른 박해와 차별을 경험하게 되고, 이러한 입증의 과정 때문에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물론 모든 난민신청자를 박해사실에 대한 평가 없이 수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난민이 살아 왔던 환경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심사과정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도 역시 사실이다.

 

2) ‘하향평준화되는 이주노동자로서의 삶

 

난민이라는 지위는 노동 시장에서 가장 열악한 이주 노동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난민신청자들의 경우 고용허가를 받아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보다 법적 지위가 더 불안정하기 때문에 외국인력 노동시장 내에서도 더 한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미얀마 출신의 한 난민에 의하면 고용주들이 연수생 비자로 온 노동자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지만 훨씬 적은 월급을 주는 상황 때문에 난민은 한국에서 일종의 노예나 다름없다고 얘기한다. 현행법상 난민을 신청한 자는 1년이 지나기 전에는 취업이 허가되지 않고 생계에 대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기에 사실상 대기하는 기간 동안 법적보호를 받지 못한 채 노동시장에서 철저하게 착취당하며 지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의 교회나 시민단체 등의 쉼터에서 일시적으로 거주하거나, 친구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최저 생계비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난민으로 인정된 경우는 내국인과 동일하게 취업을 할 수 있고, 각종 사회복지제도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언어적, 문화적 편견으로 인해 이른바 3D 업종에서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다수이며, 이러한 업종에서도 피부색 등을 이유로 천대와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난민들(신청자, 미등록자 포함) 가운데 약 52%가 무직 상태에 있으며, 이들 중 100만원 미만의 급여로 생활하는 경우가 55%에 이른다. 난민인정자의 경우는 약 17%가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취업자의 경우에도 100만원 미만의 급여를 받는 경우가 41%에 이른다.

난민들은 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전문직에 종사했던 경우가 많지만 한국에서는 이들이 지닌 경력이나 경험을 살려서 취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고 대부분이 제조업 공장 등의 일용직에 종사하게 된다. 당연히 이들이 취업과 정착을 위해서는 한국생활 및 직업활동 등에 필요한 재교육 프로그램 등을 받아야 하지만, 제도적으로 난민을 위한 정착·적응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기에 적응의 문제를 홀로 감당해야 한다. 아프리카 난민의 경우 다수가 영어 또는 프랑스어를 구사하기에 아주 소수는 외국어학원 강사와 같은 일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러나 이역시도 원어민 출신국을 선호하는 업계 분위기 때문에 이러한 직업을 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렇듯 본국에서 변호사, 교사, 학생, 정치활동가, 엔지니어, 목사 등으로서 전문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었던 난민들은 한국에 오는 순간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로 하향평준화된다.

 

3) 박해 그리고 또 다른 차별, 이중의 트라우마(Trauma)

 

난민들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저마다의 박해받은 경험으로 인해 생겨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구금, 고문, 구타, 강간, 방화 등 난민이 받았던 박해의 경험들은 자연스럽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같은 정신적 고통을 야기 시킨다. 대부분의 난민이 이와 같은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한국 땅을 밟으며, 불안정한 삶을 시작한다. 이러한 트라우마와 함께 낯선 땅에서 느끼는 신뢰할 수 없는 모든 환경, 상황, 정보, 사람에 대한 긴장감과 부담감이 중첩되어 일정기간을 극도로 높은 심리적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예컨대 한국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교통체계에 대한 낯설음과 더불어,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걸을 때 누군가가 감시를 하거나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경험을 종종 호소한다. 수개월이 지난 뒤에야 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누군가가 무기로 자신을 위협하거나 끌고 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약간의 안정감을 찾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난민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다른 나라의 경우는 심리치료가 난민지원 프로그램의 필수적인 부분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극심한 트라우마가 종종 적응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간다에서 성적인 소수자로서 박해를 겪고 한국으로 온 한 난민은 지하철을 타면 종종 사람들이 나를 테러리스트로 보는 것 같다고 표현하였다. 본국에서 성적 소수자로서 마을 사람들의 조롱과 위협을 경험해야 했다면, 한국에서는 낯선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러한 외상을 재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고립감 속에서 매일 매일의 삶이 감옥에 있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다른 우간다 난민은 난민으로 인정받고 어느덧 한국생활을 한지 5년이 되어 간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한국입국의 이유를 질문 받았지만 두려움과 심리적 어려움 때문에 그녀는 박해사실을 얘기하기 어려웠다. 종종 가까운 관계가 형성된 뒤에야 자신이 우간다에서 겪었던 강간과 구타의 경험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커밍아웃은 자신을 더욱 타자화 시키는 경험이 된다. 난민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회에서 난민인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은 난민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포기하게 만든다. 오히려 저는 영국에서 그저 여행하러 한국에 왔어요라며 자기 감추기를 택한다고 한다. 많은 난민들이 특수한 경험을 표현하고 이해를 받기보다는 무관심과 오해를, 그저 무시하는 법을 배워가면서 자신의 상처를 다스리는 법에 익숙해져 있다.

한국인과의 연결이 어려운 것뿐만 아니라 난민들은 같은 나라 사람들과도 충분히 안정적인 관계를 맺기 어렵다. 왜냐하면 같은 나라사람일지라도 결국 자신을 박해한 사람은 본국의 적대부족이거나 마을사람이거나 정치세력이거나 정부의 직원들이기 때문에 같은 국적 출신의 사람을 만나더라도 신뢰 관계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다. 앞서 말한 콩고 난민의 경우, 한국에 온 뒤에 콩고대사관 직원이나 콩고 사람들이 자신을 미행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며, 본국출신의 사람들을 피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여성으로서 박해를 경험했던 난민은 종종 본국 출신의 남성들에게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로써 난민은 사실상 공동체적 연결을 갖지 못한 채 홀로 자신에게 의존해야 하는 조건에 놓이게 된다. 그렇기에 방글라데시 줌머족이나 미얀마 친족처럼 한국으로 이주한 뒤 동질적인 경험과 배경을 지닌 공동체를 형성하며 지내는 난민들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심리적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된다. 물론 이들 공동체는 한국의 시민단체의 지원 및 한국인들과의 교류가 없다면 다시 고립될 수밖에 없다.

 

4) 적극적인 행위자로서의 난민

 

흔히 우리 사회에서 난민의 존재는 누군가의 도움과 구호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소극적인 사람들로 간주된다. 물론 이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이 이들을 무기력하고 수동적으로 살아가게끔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저항하거나, 박해를 극복하고자 탈출한 사람들이기에 오히려 적극적인 행위자로서 이해될 필요도 있다.

난민인정자의 경우 한국이라는 나라를 택한 두 번째로 중요한 이유로 민주화운동 경험을 배우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미얀마나 방글라데시 난민들의 경우는 한국 입국 과정 자체가 한국에서도 정치적인 활동을 유지하고 공동체 활동을 유지하려는 의식적인 목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 등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가 정부의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온, 한 중국 난민은 쪽방에서 마땅한 직업 없이 10년 넘게 생활을 하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낯선 땅에서 최저생계 수준 이하에서 살아가는 안타까운 삶이지만, 그는 중국 민주화에 대한 신념을 담아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며, 재한 중국시민단체들을 지지하는 활동을 하며 지내고 있다. 그는 중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이지만, 그가 만약 조국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중국이 민주화된 이후가 아니라 민주화의 물결이 시작되는 날일 것이라고 말한다. 박해에 대한 두려움을 지녔지만, 또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 난민으로서의 더 큰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콩고 난민 역시도 자신과 같은 처지의 난민을 돕고, 콩고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현재의 삶을 배움으로 채워가고 있다. 한 이라크 난민은 대량난민이 발생한 조국에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난민들을 지원하는 트라우마센터를 건립할 날을 꿈꾸며 공부를 하고 있다.

이렇듯 난민들은 현실의 모순과 억압적인 상황을 몸소 접하면서 좀 더 정직하게 현실을 이해하는 능력을 지닌 존재이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여정 속에서 더욱 간절하게 희망을 모색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4. 나가며

 

갈등이 없는 사회가 없듯이 오늘날에도 국제사회는 심각한 정치적 갈등과 분쟁으로 얼룩져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도 그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한국이라는 곳을 피난처로 삼아 찾아오고 있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이들에 대한 문제를 그저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치부하고 그들에 대한 사회적, 윤리적 책무를 한국사회의 과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글로벌’(global)을 수없이 외치지만 정작 우리의 시선은 한국이라는 우물 안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아니, 한국에서 버젓이 살아가고 있는 그들조차 외면하고 쳐다보지 못하니 그 편협함이 부끄럽기만 하다. , 난민들의 실상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인권의 문제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이라는 단어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어있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사회에서 늘 인권을 누리지 못한다.

여기서 한 가지 밝힐 것은 이들에 대한 관심이 비단 굉장히 특별한 존재에 대한 특이한 관심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전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가까이는 말리에서 내전이 발생해 프랑스를 비롯해 여러 나라들이 그러한 전쟁에 이렇게 저렇게 얽히기 시작하였다. 또 시리아와 이집트를 중심으로 중동지역에서는 급격한 민주화의 물결이 일어나며 전 세계가 소용돌이 치고 있다. 요컨대, 전 세계가 내용이야 어찌되었건 더욱 가까워진 것이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럴수록 더 깊고 강한 서로의 영향력 속에 놓인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문제도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고민해야 하며 전 지구적인 문제도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한국사회에서 급증하기 시작한 난민에 대한 고민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한국전쟁이나 군사독재의 경험과 같이 다양한 이유로 굴곡진 한국의 근·현대사는 이와 같은 난민들의 개인적, 사회적 경험을 공감할 수 있는 충분한 토대가 될 수 있다. 물론 한편에서는 너무도 빠르게 변해온 한국의 역사가 우리로 하여금 내집단에 대한 강한 집착 혹은 타자에 대한 경계와 배제의 경향을 낳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적 경험을 거울삼아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은 현재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우리는 난민이라는 타자를 통해 우리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출발점에 서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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